어울사랑 가족 여러분!
트럼펫 소리 언제 들어보셨나요?
오케스트라의 뒷편, 호른과 트럼본같은 동료 악기와 함께 앉아
화려한 현악기의 잔치에서 겨우 양념처럼 소리를 내는 그런 트럼펫 소리 말구요,
세상의 맥이 탈 풀린 밤, 그것도 어둠이 집어삼킨 밤 하늘, 별들이 무리지어 쏟아지는 밤에
홀로 허공 가득 힘차게 퍼져 나가는 트럼펫 소리 들어보셨나요?
어울림 연주가 영주시 문화회관을 꽉 채웠던 사람들 가슴을 온통 음악의 향기로 흥건히
적셨던 날, 그 밤 소백의 하늘호수 펜션에서는 다시 임채일 님의 트럼펫 소리가
제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트럼펫의 고전이 된 '밤하늘의 트럼펫' (Il Silenzio), 아일랜드 민요 '데니보이' 가
소백의 넉넉한 봉우리들이 품은 하늘 호수에 내려앉는 순간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트럼펫 소리는 제가 좋아하는 홍익대 앞의 재즈클럽 '문글로우'에서 신물이 나도록 들었지만,
몽롱한 조명과 매캐한 담배 연기, 왁자지껄한 도시의 소음들에 포박된 트럼펫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습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그 소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당당한 소리였는가 하면,
아침이 찾아오면 스러져야 하는 달맞이꽃처럼 애절한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장엄한 소백산이 품었다 토해놓은 희방폭포수처럼 도도한 소리였는가 하면,
펜션 호수에 빠진 달빛처럼 고요히 흔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연주해주신 어울사랑의 가족 임채일님의 닉네임처럼 스매싱!
그야말로 머리와 심장을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영어로 '스매싱'이라는 말은 '깨부수다'는 말이지만,
흔히 구어체 회화에서는 '기가 막히게 좋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What a smashing time! (기가 막히게 좋은 시간! 이었습니다.)
짙은 생명의 향기를 뿜어내는 소백의 울창한 나무들과, 실루엣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부드러운 소백의 능선과
그 능선 위 휘황한 별빛이 떨어져 비늘처럼 반짝이는 호수와 그 호수의 품에 안긴 순백의 펜션,
그 안에서 어울림의 식구들이 옹기종기 두런두런 노래와 삶과 자연을 얘기하며 깊어가던 밤,
스매싱님의 트럼펫은 소백의 봉우리와 바삭대는 나뭇잎과 구슬프게 울어대는 뻐꾸기와 휴식을 모르는 풀벌레 소리,
일렁이는 호수와 호숫가를 서성이는 바람과 꾸벅꾸벅 졸던 별빛,
그리고 우리들의 알콜내음 묻어나던 웃음소리와 함부로 부딪히는 술잔 소리를 모두 삼켜버렸습니다.
이 모든 소리를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작은 금관악기에서는
눈부신 나팔꽃이 영롱한 소리로 피어났습니다.
이 차가운 금속악기는 세상 모든 소리를 버무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같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유장한 소리로 환생시킨 것입니다.
영주시민회관을 달궜던 어울림 선율의 여운이 트럼펫 선율에서 한꺼번에 폭발했습니다.
게으른 천성탓에 마음만 먹고 머리로만 생각하고 손으로 옮겨가지 못한 악기 배우기
정말 시작해야겠습니다.
케니지가 달콤하게 연주하는 소프라노 섹소폰 소리에 매료되어 테너 색소폰이 배우고 싶었는데
스매싱님의 트럼펫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 트럼펫 소리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 환상의 소리 듣지 못하신 가족 여러분께 제가 쓴 시로 소리 한 자락 들려드립니다.
트럼펫 소리처럼 힘찬 한 주 되시길~
- 서울 여의도에서 goforest 合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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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2011.06.19
어둠에 갇힌 밤이 다시 열린다
한 사내
두손 곱게 감싸 쥔 트럼펫에
가슴 밑바닥 뜨거운 숨결 길어올려
두 볼에 불렸다 불어넣는 순간
먼데 뻐꾸기 소리도
창밖 개구리 소리도
솔숲 서성이던 바람소리도
반쯤 졸음에 잠긴 이야기소리도
빨려 들어간다.
차갑게 침묵하던 좁은 금관
세상 모든 소음 잘게 으깨고
사랑 이별 웃음 눈물 그리움도 다 버무리더니
허공 가득 토해놓는 소리
나팔꽃으로 피어나는 선율
까무룩 잠들었던 별들 다시 깨어나고
고요하던 호수 다시 출렁이고
기억 저편
생존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다시 타오르는 감성의 덤불
@@@
( # 영주시민회관에서 열렸던 어울림 연주회 풍광은 허진구 선생님께서 전해주실 것입니다.)
첫댓글 저도 트럼펫 소리를 좋아합니다, 멀리, 아련하게 추억의 저편을 건드리는 듯한 묘한 느낌을 제게 주곤해서 하거든요, 위원장님의 소프라노섹소폰 소리가 벌써 기대 되네요,
시인의 감성은 남 다릅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어찌 이리 표현할 수 있으신지... 국악기면 국악기 양악기면 양악기 포레스트님 손에 걸리면 다시 태어 나는것 같습니다. 제가 다 정신이 바짝 납니다. 저도 고등학생 시절에 트럼펫을 조금 만졌었는데... 아무튼 이글을 읽는 분들은 그날 밤 함께하지 못함이 두고 두고 안타까울 겁니다.^^
영주 철인님~ 아니, 하늘호수 펜션 주인님~ 어울림 가족들에 내어주신 잠자리 행복했습니다. 장미꽃에서 접시꽃으로 옮겨 붙은 불타는 이 여름 가기 전에 하늘호수에서
어울림 여름 콘서트 한번 제안해야겠습니다. 이병욱 선생님의 기타와 임채일 선생님의 트럼펫과 김인철 선생님의 클라리넷.... 그때는 하늘 호수가 더 푸르고 깊어지겠지요~
다음에는 제가 꿈꾸던 호수 마당에서 열린 음악회 한번 해야 겠습니다.^^
평생 잊지못할 여행을 했네요...지금까지 기계를 통해서 나오는 포장된 트럼펫 소리만 들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실제로 들어보니 색다른 맛(생것의 맛,,날것의 맛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과분한 칭찬에 소름(?)을 느끼며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어설픈 연주를 이토록 과하게 표현하시다니요~~그저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날의 귀하신 분들과의 자리를 못 잊을것 같습니다~
역시 goforest 님의 글은 전달력이 뛰어나 순간순간의 감성까지 모두 느껴집니다. 함께하지 못하여 아쉽지만, 언제나 흥이넘치는 어울사랑의 또다른 흥의잔치에 함께할날을 고대하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장마가 시작이라네요.. 건강유의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