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33) 천부교 장례식의 의미
구원을 주는 성신은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성신뿐
1987년 5월 16일 광주교회로 발령을 받아 가보니 대부분의 교인들이 성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987년 9월 27일 주일예배 때 성직임명식을 가졌습니다. 그날 성직 임명을 받은 교인은 신문철 권사, 양회장 권사, 김판용 권사, 안종길 권사, 김기태 권사, 노병준 권사, 유양옥 권사, 김인식 집사, 조영달 집사, 박재학 집사로 권사 7명과 집사 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3일 성직임명 추천서를 협회에 제출하여 보고를 드렸습니다.
1987년 11월 15일은 부산 해운대 글로리 호텔에서 소비조합원을 위한 만찬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날 하나님께서는 교역자들과 소비조합원들에게 안찰을 해 주시고 해운대 글로리 호텔로 장소를 옮겨 만찬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또 신앙촌 여학생들이 준비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교역자들과 교인들을 위해 만찬회를 자주 열어주셨는데 1988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전국 교역자들과 각 교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인들을 초청하시여 부산 해운대 글로리 호텔에서 만찬회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날 만찬회에 광주교회 구희만 부관장과 교인들도 참석하였습니다.
전국의 학생들이 맑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모여서
1988년 개교한 시온실고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인재 육성에 노력
1988년 3월 7일 신앙촌에서 한일물산 주식회사 부설 시온실업고등학교 개교식 및 입학식이 거행되어 참석을 하였습니다. 시온실업고등학교는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전국의 학생들이 모인 학교입니다. 신앙을 바탕으로 지, 덕, 체가 겸비된 유능한 인재를 기른다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988년 3월 13일 저는 광주교회 주일학생들을 데리고 목포 유달산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을 간다고 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자주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광주교회 주교생들과 반사들은 광주 서구에 있는 염주종합체육관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목포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착 하자마자 목포교회 관장님께서 “도관장님, 잘 오셨습니다. 오늘 갑자기 교인 장례가 났습니다. 장례 예배를 주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부교에서 장례 예배는 큰 의미를 지닌 의식이기 때문에 저는 구희만 부관장과 백현덕 반사에게 장례식에 다녀올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유달산에 먼저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장례식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장례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빨리 귀가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있는 유달산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부관장과 반사가 헐레벌떡 거리며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관장님, 한정호라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놀란 저는 아이들과 조를 짜서 유달산 근처 곳곳을 목포시가지 골목마다 찾아다녔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던 끝에 골목에서 울고 있는 정호를 발견하였습니다.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은 정호는 정호대로 선생님을 찾아 헤매고 저희는 저희들대로 아이를 찾아다니면서 서로 엇갈린 것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이 많이 생기는 가운데, 그날의 경험은 교역자나 반사들이 아이들을 위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세심한 관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광주교회 반사였던 백현덕 반사는 현재 한일물산 주식회사 수예부 과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슬성신 은혜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권능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 주신 권능 가운데 가장 큰 기사 이적
광주교회로 발령을 받은 지 1년 만인 1988년 5월 16일 마산교회로 다시 발령이 났습니다. 광주교회에 시무하는 1년 동안 저는 많은 장례식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특히 전라남도는 기성교회의 세력이 다른 어떤 곳보다 센 지역이라 장례가 나면 안 믿는 불신자들과 기성교인이나 가족들에게 시신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례가 나면 광주는 물론 나주, 노안 등 주변 여러 지역에서 항상 연락이 오곤 했습니다.
시신이 피어나다
그러던 중 마산교회로 발령이 났는데, 마산으로 간 지 두 달이나 지난 7월 27일 광주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관장님, 광주에서 장례가 났는데 꼭 와 주십시오. 유족들이 모두 독실한 기성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꼭 오셔서 장례에 참석해 주셔야겠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광주로 장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갔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한보심 권사님으로 독립유공자였습니다. 권사님의 아들네들은 전부 독실한 기성교인이고, 딸 김정희 씨만 전도관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김정희 씨는 전도관식 장례를 반대하는 오빠들에게 엄마가 살아 생전 전도관에 다니셨으니 장례는 전도관 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여 관장님들과 전도관 교인들을 모시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족들의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김정희 씨는 현재 신앙촌 건설부 이사로 있습니다.
천부교에서 장례식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이슬성신 은혜로 죽은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권능을 유족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저희들에게 수많은 기사이적을 보여주신 가운데, 벙어리가 말을 하고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곱추의 허리가 펴지고 문둥병 환자가 깨끗이 낫는 등 많은 기사이적을 보여주셨지만, 그 가운데 제일 큰 기사이적은 바로 썩어 물크러지는 시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부교의 장례식은 세상 어떤 종교의식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이긴자
1988년 10월 9일 제8회 이슬성신절 예배가 기장신앙촌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 구약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을 말씀하시며 “내가 이슬과 같으리니 한 그 이슬 같은 성신을 초창기에 나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이다. 그것을 내리는 자가 바로 감람나무인 동시에 하나님이다. 진정 구원을 주는 성신은 마지막 때 감람나무가 와서 하나님의 신을 내리는, 이슬성신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호세아서 14장 5절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필 것이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 6절에 「그 가지는 퍼져서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에 나온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창세기 32장 28절에 「네가 하나님과 사람을 힘을 겨뤄 이겼으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였으니 이스라엘은 이긴 자의 명칭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곧 이긴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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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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