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3.月. 맑음
추사고택秋史古宅 안채의 갇힌 마당.
아담한 추사고택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ㅁ자형의 집이란 드나드는 문을 닫아버리면 외부와 차단된 갇힌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가운데는 갇힌 마당이 하나 있다. 남달리 총명했던 어린 추사가 안채의 갇힌 마당을 드나들며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자신의 인생역정의 어떤 파란들을 예견할 수 있었을까. 안채 기둥 주련과 6칸 대청 벽에는 추사 자신이 평생을 통해 깨우쳐낸, 가장 아꼈다는 두 문구의 글이 걸려있다.
‘大烹豆腐瓜薑菜 대팽두부과강채. 최고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일상적인 외부와 차단되어 갇혀있다는 것은 고립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폐쇄된 공간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열린 공간이며 이상향과 바로 통할 수 있는 수승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황무지 가운데 우물이 그렇고,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가 그렇고, 계곡 벼랑 끝에 서 있는 정자가 그렇고, 저 깊은 어디론가 뚫려 있는 동굴이 그렇고, 막막한 벽 가운데 있는 창문이 그런 것처럼 갇힌 마당은 범상한 눈으로는 사방이 막혀 있는 안채의 갇힌 장소에 불과했을 테지만 명민하고 현철한 추사의 안목으로는 그곳은 바로 드높은 하늘을 거침없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사색과 자아성찰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을 드나들면서 어린 추사의 가슴 속에 한 켜 한 켜 학문과 예술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ㅁ자로 갇혀 있기에 하늘을 향해 더 크게 열려 있는 갇힌 마당의 크기가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학문과 예술의 크기로 자연스레 변화된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갇힌 마당에 서서 몇 번이고 되새김질을 해본다. 저 높은 곳의 거대한 반구 위에는 짙고 옅은 회색구름들이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이 웅성이며 언제부터인지 둘러선 채로 그렇게 흘러 다니고 있다.
눈이 서걱대는 관아의 뒤뜰.
의좋은 형제공원에 펼쳐진 예산 옛이야기 축제장을 이곳저곳 둘러보다 옛 관아가 있는 곳까지 들어가 본다. 관아 마당에는 죄인의 주리를 틀던 한 쌍의 긴 몽둥이와 볼기를 치던 십자가 모양의 태형틀과 곤장이 있어서 무시무시했지만 조그만 문을 지나 들어가 본 관아의 뒤뜰은 가슴 정겹고 눈 서걱대는 시원한 풍경이 열려있다. 갈색 나무창살 문으로 외벽을 대신한 자그마한 집, 서른 개는 분명 넘을 듯한 크고 작은 옹기항아리들이 어깨를 기대고 있는 장독대, 예전에는 분명 예뻤을 아담하게 휘어진 연못, 그리고 사람의 손길과 애정이 조금만 미처도 금세 활짝 피어난 꽃들로 가득할 것 같은 화단, 윗부분이 깨져 달아나 더 고집스럽게 보이는 대원군 척화비, 손끝에 만져지는 듯한 봉수산의 부드러운 곡선, 벽에 걸려 있는 몇 두름의 마른 마늘 등을 뒤뜰 입구에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서 한참동안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자주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보아도 눈에 익숙하고 또 보자마자 옛이야기가 줄래줄래 쏟아져 나오는 친밀한 풍경들은 내 가슴 속에 항상 넘칠 듯 고여 있었던 모양이다.
관아를 나서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복장을 갖춰 입고 둘러서 계신다. 무엇을 하시느냐 여쭤보니 물을 주제로 한 인어공주와 두레의 구연동화를 준비하고 계신단다. 우리 일행들은 편하게 주변에 둘러앉아 구연동화를 관람한다. 두레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역시 인어공주와 왕자님의 사랑이야기가 들어 있는 인어공주가 재미있다. 사랑하는 왕자님을 위해 마녀를 찾아가 목숨을 담보로 사람의 몸을 얻어 지혜와 인내로 왕자님을 도와 물 절약에 성공을 한 뒤 영원히 행복하게 사실 인어공주와 왕자님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린다. 그리고 영원히 살다보면 드물지만 짜증이 나는 순간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때마다 첫 눈에 반했던 그 기억을 회상하며 행복을 솟아나는 샘물처럼 만들며 살아가시라고 축복을 해드린다. 나도 아내를 볼 때마다 하얀 드레스와 보석 왕관을 쓴 인어공주를 보듯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2층 숙소에서 바라본 예산의 새벽.
시계 알람을 새벽 4시50분에 맞춰놓고 새벽에 방을 나서기에 편리하도록 아예 운동복을 입고 잠자리에 눕는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그곳의 새벽을 둘러보고 그 고장의 맨얼굴과 맑은 새벽기운을 느끼며 달리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랜 취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양말을 꺼내 가지런히 옆에 놓고 방의 불을 끈다. 밤부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내일 새벽에는 멈출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알람이 미처 작동하기 전이다. 알람 단추를 누르고 나서 살그머니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본다. 숙소 뒤편 공터에 오렌지색 가로등불이 안개처럼 번져나는데 굵고 세찬 빗방울들이 허공에 가득하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과 건물의 지붕과 공터바닥에 무수한 빗줄기가 끊임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 꽂힌다. 예산에 들어 첫 밤을 새고 맞은 검은 새벽의 힘찬 빗발은 짙은 회색 하늘로부터 우직하리만큼 수직으로 쏟아져 내린다. 예산은 예로부터 양반이 살고 있는 문향文香어린 고장이라 비도 사람을 닮았는지 바람에 촐싹이는 법 없이 그렇게 늠연하게 내리고 있다. 그 비를 한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마침내 달리기를 포기하는 대신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로 마음을 바꾸고 일행을 깨워 함께 온천장으로 향한다.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땀을 흘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비를 맞으며 우중주雨中走를 즐기는 것 못지않게 쾌적한 정신적 쾌락을 느껴보는 좋은 방법이다.
어느 가을날, 도중도島中島를 거닐다.
윤봉길 의사께서 태어나신 생가(광현당)가 있는 땅은 주위를 빙 둘러가며 냇물이 넘쳐나게 흐르고 있어서‘한반도’가운데 있는 섬이란 뜻으로 도중도라 명명하셨단다. 도중도를 들어가기 위해 도중도교를 건너가는데 때마침 내린 비로 다리 아래로 흐르는 흙탕물의 기세가 위용이 대단하다. 다리 위에서 그 세찬 물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당장 그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큰 힘과 기세를 느끼면서 도중도에 들어선다. 푸른 잔디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의사께서 태어나신 광현당과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며 야학을 지도했던 부흥원이 보인다. 한눈에 들어오는 넓은 터에는 학습장과 산책로가 잘 조성이 되어있고 한쪽에는 연못과 연밭이 있다. 기세가 누그러진 비가 계속 내리고 있지만 우산을 심장의 박동처럼 두드리고 있는 것은 꼭 빗방울만은 아닌 듯하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했던, 약한 것을 보면 마땅히 도왔고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었던, 장한 의사義士를 길러낸 속 깊은 여유와 불같은 격정도 함께 빗방울 사이를 춤추듯 돌아다니고 있나보다.
평소에는 눈에 그리 띄지 않은 무궁화가 비오는 도중도에서는 연보라의 신비로운 색깔로 우리 일행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섬 안의 섬인 도중도에서는 땅을 밟으면서도 허공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연보라색의 무궁화가 가리키는 방향을 유념해서 바라볼 일이다. 여기에 와서는 소리들 뒤에 숨어 있는 소리를, 색깔 안에 감춰있는 향기를 꼭 상기하고 가슴 깊이 새겨야할 일이다.
네 번의 감칠맛 나는 식사, 그 몇백 배의 따스한 인정人情.
5000주의 사과나무에 둘러싸인 채 순금박이 동동 떠 있는 사과와인에 된장국을 함께 먹는 맛이란 아마 이곳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성농원에서의 점심식사는 오랜만에 처가에 와서 먹는 한 끼의 식사에 다름 아닌 푸근한 밥상이었다.
요즘에는 오리고기가 대세인지라 어디를 가더라도 즐겨 먹게 되는 것이 오리고기인데 로뎀가든에서 먹은 저녁식사는 오리고기의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아주 흐뭇했다. 이틀 동안 성의를 다한 안내와 더불어 자상한 설명을 해주신 예산역사연구소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일부러 참석해서 얼굴을 익히고 친밀감을 더해주신 예산군 문화관광과 분들의 따스한 인정과 호의를 느끼기에 충분한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사실 하루 세 때 중 손님맞이를 하다보면 아침식사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아침식사는 상황에 따라 식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수정복집의 복 해장국은 아주 맞춤한 선택이었다. 잘 끓인 복의 시원한 국물을 한 수저 한 수저 떠먹으면서 비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운치는 속 깊은 배려가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내가 평소 곱창구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비 호의적인 관념을 명쾌하게 부숴버린 삽다리 돼지곱창의 원조 신창집 곱창구이는 음식이란 재료 못지않게 누구의 손에서 요리되느냐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쫄깃하고 고소하며 씹히는 맛이 단순한 듯 끌리는 곱창구이는 마치 팸투어를 통해 예산이 초행길인 나와 예산을 이어주는 특별한 관계처럼 느껴졌다. 하룻밤 이틀 낮을 지내는 동안 이만큼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 시간의 쓰임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느낌을 주었던 여행이 얼마나 있었던가?
비와 구름과 햇살 닮은 인정人情... 생각의 웅덩이를 건너다니며 진정한 천천히의 미학을 느끼게 해준 예산 팸투어는 나에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해박하고 자상한 설명을 해주신 예산역사연구소 소장님, 바쁜 일과 중에도 수시로 참석하시여 친밀감을 보여주신 문화관광과 김진영 계장님과 각 부원님들,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한 몸이 되어 움직여주신 김종대 사무국장 님과 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 1박2일 동안 예산 팸투어에 참가한 모놀과 정수 회원의 이름으로 글을 올립니다. -)
첫댓글 수정복집의 아침해장국도 시원하고
삽다리 곱창구이
생각보다 쫄깃하고 고소했지요
이번, 예산팸투어의
여러가지 좋은 프로그램중에서
윤봉길의사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게된 기회를
참, 고맙게 생각됩니다...
긴울림님, 정말 콕콕 집어서
자상하게 우리를 대표해서 후기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 합니다
긴울림님이 이번에 함께 하셔서 후기 걱정 안 한것도 사실이거둔요..ㅎㅎ
든든하고 묵묵하게 마치 호위 무사처럼.. 함께 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도 곱창에 대해 비호의적인 관념을 한번에 무너뜨린 마지막 만찬이였습니다.
신창 곱창구이와 탕 정말 맛 있었어요~
[호위무사]가 딱 어울립니다. 헌데 무사가 거구라서 칼차고 담이나 기와지붕 위를 날지는 못 하겠죠? *^^*
어디 있나 찾아 보았더니
예산 문화 관광홈페이지 -아주 특별한 여행- " 나의 추천여행기" 란에 올려 주셨네요~
감사 합니다
예산이란 지명처럼 예의와 도덕을 갖춘 고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함께 한 듯 예산이 가깝게 다가옵니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후기 잘 보았습니다. 긴울립님 감사합니다. *^^*
이 여행기 전체멜 한번 보내도 되는지요. 향기야님은 사진 좀 올려주세요.
이보다 더 좋은 후기가 어디 있겠어요?
우드님 사진이 좋을건데요~
네...저도 사진 올려 볼께요
1박2일의 여정을 물 흐르듯~~~ 특유의 멋드러진 감성으로 섬세하게 풀어내신 여행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보니 그날이 생생합니다, 비록 비는 내렸으도... 둘이서 한방 쓰기로 한 약속! 따뜻하고, 포근한 밤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