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교정 차 간 대전
강헌모
오늘 대전수필문학회 제 41호 원고교정이 있는 날이다. 해서 대전에 가야했다.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나서 서대전역 근처에 있는 강강술래식당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대전 복합터미널 앞에서 서대전역 방향으로 가는 2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쉽게 도착하였다. 식당을 알아내고 시간이 남아서 예전에 하숙했던 곳을 찾으려고 걸어서 서 대전육교 아래까지 갔다. 그곳에서 더 걸어 충남기계공고 근처까지 갔다. 가옥이 많이 생겨서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문화동에 있는 문화초등학교로 보이는 곳을 보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런 후, 이번에는 육교까지 올라가서 예전에 하숙했던 집을 찾기 위해 내려다보았는데, 어림잡아 충남기계 공고를 기준으로 해서 서 대전육교에서 얼마 안 걸어서 하숙집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근데 예전의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43년 전의 고 1때 하숙을 한 집을 찾으려니 어림도 없었다. 아마 그 집은 철거가 되었든지 이사를 갔든지 했을 것 같다. 비록 한옥이 몇 채 있긴 했으나 어떤 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하숙을 했던 집이 한옥이었다. 지금은 하숙했던 부근에 빌라가 생겼고, 아파트도 들어섰다. 또 학교도 생겼다.
서 대전육교에서 바라보아 확실한 것은 내가 철로 옆에서 하숙을 했던 거다.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과 함께 상주엔가 가서 잠을 잤었는데, 기적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또 동생들과 함께 기차타고 부산까지 간 것도 기억난다. 명절 때 되면 부산에 있는 큰 집에 가곤하였다.
내가 오늘 고1때 하숙했던 집을 찾지 못했지만 어림잡아 철도 옆에 있는 한옥을 생각하며 그쪽을 육교위에서 내려다보니 감개무량했다. 충남기계공고 앞에서 육교까지 집들이 없고 허허벌판이었다. 근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집들로 가득 차있다. 그것들은 새 집이 아니다. 꽤 시간이 흘렀으니 헌집이 되는 건 당연하다.
대전 문화동에 갔다가 서 대전육교로 돌아오는데, 육교 건너편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많은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한옥내지 빌라의 헌집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마치 그것이 농촌의 초라한 집들과 대도시의 좋은 집들과 견주어도 될까? 비교가 되어 빈부의 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대전육교 아래에서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마땅하게 갈 때가 없는가 보다. 농촌에는 노인회관이 있어 이웃과 정을 쌓기에 알맞은데, 도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으니, 육교아래의 공간에 게이트볼 연습장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제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작가들의 원고교정을 해야 하니 서둘러 예전의 하숙집을 찾으려 애썼다. 마침 원고 교정하는 장소도 서 대전육교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하숙집을 보려고했다. 좁은 골목길을 가면서 개조심이라고 씌워 있는 집이 없는지 살펴보기도 하였다.
내가 서 대전육교아래의 철도 옆에서 하숙할 때는 하숙집에서 어느 정도 걸어 나오면 군인아파트가 있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도마동에 위치한 학교에 다녔다. 올 때는 군인아파트에 있는 정류장에서 내리곤 하였다. 근데 지금은 군인아파트는 없어졌고 다른 건물이 있으며 육교 주변에도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 일들이 어제 생활한 느낌이다. 헌데,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나는 대전에 갈 때마다 고등학교 다녔을 때를 늘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운 내 학교를 말이다.
이제 원고 교정시간이 되어가서 목적지인 강강술래 식당으로 갔다. 여러 사람들이 일찌감치 와서 원고를 교정해가고 있었다. 나도 내 원고를 받아서 읽어 내려가며 어색한 것들과 수정할 것들을 교정해 나갔다. 틀린 것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래서 교정 작업을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편의 수필을 제출했으니 한 번만 읽어보고 교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시간이 걸렸다. 내 원고교정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음식이 들어왔다. 나는 하던 교정을 마친 뒤에 음식을 먹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한 셈이다. 소고기와 국물, 버섯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듯한 느낌으로 밥 한 공기를 쉽게 비웠다.
교정하면서 의문 나는 점이 있어서 앞에 앉은 선생님에게 느낌표와 물음표에 대해 여쭈었다. 그것을 찍을 곳이 애매모호해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정확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밥을 먹고 나서 나는 박권하 선생님이 세계여행을 많이 한 것에 대해 깜짝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며 글을 잘 쓰셨다고 하였다. 책 쓴 글을 편하게 읽었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언제 그 선생님 같은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오늘 원고교정모임에 작년과 같이 25명이 참석해주셨다. 작가님들이 성실히 원고 교정해 나가는 힘으로 나도 덩달아 힘입어 교정을 잘 해 나갔다. 원고교정을 단체로 하니 혼자 했던 것보다 교정이 더 잘되었다.
모임을 마치고 오는 길에 중앙시장에 들러 사고 싶었던 가방과 옷을 샀다. 또 정인구 팥빵을 사서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오늘 하루 중에 8시간가량을 대전에 다녀오는데 소비하였다. 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다. 43년 전에 서 대전육교 부근에서 하숙했던 곳과 멀리로 보이는 충남기계 공고를 바라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어 감동적이었다. 또한 작가들과의 만남으로 원고교정이 잘 이루어져 기뻤다.
대전수필문학회 작가들의 건강과 문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2019~2021년 대전방문의 해”에 대전의 발전과 으뜸가는 도시로 탄생하여 염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