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6 F조 조별예선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의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났다. 이번 유로 본선 참가국 중 가장 적은 인구수를 가지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이번 유로 본선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전 국민의 약 10%가 프랑스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포르투갈 나니의 선제골에 끌려가는 듯했던 아이슬란드는 끝내 동점골을 넣은 후, 수비수의 힘을 다한 수비와 골키퍼의 선방쇼 끝에 무승부를 지켜냈다.
경기 후 포르투갈의 주장 호날두는 경기 후 아이슬란드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호날두는 ‘아이슬란드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비만 계속 했고, 역습만 하려했다. 그들의 소심함을 볼 수 있었다.’고 하며 아이슬란드가 수비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호날두가 아이슬란드의 축구를 비난한 것을 두고 또 일각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귀중한 동점골을 성공시킨 비야르나손. 포르투갈은 치명적 수비 실수를 저질렀다. ⓒ UEFA Euro 2016
2016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코파아메리카센테나리오와 유로2016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수비 축구'의 등장이다. 세계적 축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대회들인 대륙간 대회답게 최근의 축구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다. 상대적 약팀들이 수비 축구를 내세우면서 강호들의 고전이 이어졌다. 브라질 역시 에콰도르와 페루의 단단한 수비를 끝내 열지 못해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프랑스는 루마니아를 상대한 개막전에서 파예의 극적 결승골에 힘입어 겨우 2:1 승리를 따냈고, 스페인 역시 경기 막판 수비수 피케가 골을 넣으면서 체코의 질식 수비를 겨우 격파할 수 있었다. 단순히 포르투갈과 비긴 아이슬란드 뿐 아니라 많은 팀들이 이미 흔히 말하는 ‘수비 축구’를 펼치고 있다.
많은 팀들이 수비 축구를 펼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비 축구는 객관적 전력 상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난 스페인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이의 경기를 보고 많은 이들이 개인 기량의 차이는 곧 팀 전체의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 기량의 차이를 가장 ‘티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두 줄 수비 전술이다.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두 줄로 좁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이 돌파를 당하더라도 금세 커버 플레이가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선 미드필더-수비수 2개의 라인 사이에 한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더 배치하여 더 타이트하게 공간을 좁히기도 한다. 최근의 수비 전술은 굉장히 조직적이고 견고해져있다. 이른바 ‘언더독’들이 ‘자이언트킬링’을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수비 전술 역시 조직력을 갖추지 못하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수비 전술은 개인 기량과 상관없이 팀의 조직력과 연관이 되어 있다.
과거에도 이런 밀집 수비 돌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종종 나오는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몰디브에게 비기던 때처럼 뭔가 제대도 맞지 않아 졸전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수비 전술은 한 단계 진화해서, 역습을 통해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밀집 수비 돌파를 위해서 공격하는 팀은 라인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마련이고 배후에 넓은 공간을 노출한다. 이 곳을 빠르고 간결하며 조직적인 역습으로 공략한다면, 개인 기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다. 역습 전술은 수비 전술을 소극적 운영이 아닌 하나의 전술로서 가치를 부여했따.
역습 전술도 조직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지난 스페인-체코의 경기에서 체코의 수비력은 눈이 부셨지만, 역습 과정에서는 조직력이 떨어져 충분히 스페인을 괴롭히는 데에는 실패했다. 역습 전술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지 못한다면 90분 동안 수비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비 축구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효율적인 역습은 필수이다. 수비-역습은 모두 팀의 조직력에 기반을 두고 있고 연습을 필요로 한다. 즉 모든 팀이 단순히 수비적으로 물러서는 것 만으로 전술적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력을 갖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은 열세인 팀이 우세인 상대를 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코파아메리카와 유로2016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전술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축구 전술의 흐름이 공간의 이용과 관련이 깊은 두 줄 수비 그리고 역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쟁이 본질인 축구에서‘승리’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하는 것은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여러 차례의 찬스를 무산시킨 포르투갈, 호날두 역시 결정적 찬스를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 UEFA Euro 2016
이제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의 경기를 되짚어보자. 포르투갈은 아이슬란드에 비해 훨씬 많은 기회를 잡았고,그것을 골로 제대로 연결했다면 호날두가 불평할 이유도 없었다. 포르투갈의 공격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혹은 결정적인 선방을 선보인 아이슬란드의 할도르손 골키퍼 탓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맹공 속에서도 골을 결정짓지 못한 것은 포르투갈의 잘못이다. 또한 골 결정력 부족 혹은 골키퍼의 선방 속에 무승부를 기록하는 경기 양상은 축구에서 결코 드문 경기 양상은 아니다.
‘수비, 수비, 수비만 하고 역습을 노렸다’는 호날두의 비난은 그의 소속팀 레알마드리드의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마드리드에게도 딱 들어맞는 설명 아닌가.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의 전력 차이는 레알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마드리드의 차이보다 훨씬 크게 벌어져있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에게 비기거나 진 후에 매번 불평할 생각이 아니라면, 호날두의 불평불만은 그저 결과에 대한 짜증일 뿐이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결국 사임한 둥가 감독. 두 줄 수비를 공략하기에 둥가의 공격 전술을 날카로움이 떨어졌다. ⓒ The Guardian)
코파아메리카와 유로2016의 화두는 이미 ‘두 줄 수비’와 ‘수비 축구’이다. 메이저 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에게 두 줄 수비는 돌파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이들보다 약세에 선 팀들은 강팀들을 두 줄 수비를 통해 잘 막고 역습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토너먼트의 후반에 이르러 양 팀이 비슷한 전력을 가지기 전까지는 이런 경기 양상이 이어질 것이다. 스페인처럼 객관적 전력이 강한 팀은 두 줄 수비를 돌파할 줄 아는 것도 필수적 미덕이 되었다. 특정 전술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팀을 어떻게 강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축구의 전술에 우월한 것은 없다. 팀의 구성에 맞게 승리 확률이 가장 높은 전술을 택하면 충분하다. 팀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철학이 옳지 않아서 계속된 패배로 연결된다면 의미가 없다.축구에서 철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스페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군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축구로 다른 축구 철학을 내세운 팀을 이겨버리면 될 일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나서줄 것이란 생각은 너무 어린 생각이다. 호날두 정도의 선수라면 남의 축구에 대해 불평하기 전에 자신의 축구로 상대를 괴롭힐 생각을 하는 것이 맞다. 아이슬란드는 축구의 규칙 내에서 본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축구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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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비축구가 이런 유로같은 단기대회에서는 무승부만캐도 높은라운드까지 올라갈수있기때문에 더욱 효율적인거같음.
동감합니다. 현실적으로 훌륭한 대안이죠. 수비축구.
사실 포루투칼도 별로 공격적인 것 같지 않던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