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보아라/문보근
아들아 보아라
바람이 분다고 훌쩍 날아가 버리는
홀씨를 바라보는 민들레 마음은 어떠했을까
장마철이긴 하지만
네가 내 곁을 떠나는 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구나
너는 차마 말을 못 꺼내고
나는 외면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
서로는 그랬을까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너는 간다는 말 안 하고
나는 잘 가란 말을 하지 못한 채
너는 갔고 나는 너를 보내고 말았구나
그러나
너의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숨이 탁 막혀왔고 비가 때리는 창문을
미친 사람처럼 열고 떠나가는 너의 뒷모습을
절규하듯 나는 바라보았다
너의 모습이 아니 보일 때까지
들이닥치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웃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냉정한 아비라고 말하고
너는 차가운 자식이라고 말들 한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냉정한 아버지가 맞다
그러나. 너는 차가운 자식은 절대 아니다
심지가 깊은 자식이
이 세상에 너 말고 또 누가 있더냐
우리가 한집에 있어도
네가 내게 눈길 한번 안 주는 의미는
글 쓰는 아버지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려는 너의 배려이었고
네가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나
조용히 드나들었던 이유는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괜히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도량이 넓은 너의 속 마음 때문이었고
어쩌다 너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네 방에 들어갔을 때 너는 하던 일에 열중해
나는 그냥 나왔던 적이 있었지만
그런 너의 모습은
나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너의 마음인 줄 나는 안다
네가 태어나던 날
우렁찬 너의 울음소리에 나는 기뻐서
너와 같이 울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
고집을 부리고 떠를 써도 이쁘기만 한 내 새끼
그런 너이기에 너를 밖에 내 보낼 때면
나는 유리잔을 내보내는 심정이었고
집에 네가 있어도 가스불을 끄지 않는
사람처럼 나는 불안했다
너는 내 삶의 전부였고 존재 이유이다
나는 너를 보고 있을 때는
황홀한 오페라 한편을 감상하고 있는 듯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들이 자식 자랑할 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너를 떠올렸다
나에게 자랑이면 너다,
너 빼고 자랑할 것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너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나는 후회막급이다
그동안 너는 얼마나 힘들었느냐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네가 얼마나 큰 외로움을 겪어야 했겠느냐
아들아
이 아버지를 애써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표현에 약한 아버지를 이해해 주면 안 되겠니
무표정한 표정은 근엄해 보여 좋고
말수가 적은 것은
너를 믿기 때문에 굳이 해줄 말이 없어서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겠니
아버지는 말은 안 했지만
네가 살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구조인지
남향인지 통풍은 잘 되는지
밤늦게 귀가하는 너에게 주차공간은
넉넉한지 아버지는 몹시 궁금했다
처음 내 곁을 떠나 분가를 시작한 너에게
뭐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그동안 엄마가 해준 음식만 먹었던 네가
이제는 순수 조리해야 하는데
과연 잘 할 수 있는지,
너는 나에게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버지는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 너를 본다
아들아
굳이 나가서 잘 살아라, 말하지 않는 것은
너는 거기 있어도 내 안에 있고
나는 여기 있어도 네가 있는 거기에 있다
내가 너를 낳았다지만
너는 나를 아버지라 불러 한 몸이지만
엄연히 우린 이체 이심을 부정할 수 없구나
그래서 서로는 생각하는 것이 달라
이견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네게 섭섭함을 많이 줬을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잘 몰라
억지를 부려 너에게 부담이 줄 때도 있었다
이 아버지를 용서하거라
네가 어렸을 때
어린 너의 눈동자가 얼마나 예뻤더냐
내 등에 업혔을 때 너는 얼마나 편안했더냐
이젠 우린 그 시절만 생각하자
아들아
네가 휴식하고 잠자고 꿈을 키어왔던
네 방을 지금 나는 들어와 서있다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는 것은
네가 내 곁을 떠난 아쉬움도 아니고
험한 세상에 네가 잘 못 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도 아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 한마디 못하고 너를 보냈다는 것
그 아쉬움이 눈물을 만들고 있구나
얼마 후에 너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지만
그래도 그 한마디는 했어야 했다
그 한마디로 나가는 너를 좀 더 가볍게
보냈어야 했는데 하는 것이다
아들아
오늘 밤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군 생활 제외하고는 부모 곁이 아닌
처음 홀로 맞이하는 밤이 되겠구나
내일 아침은
네 손으로 처음 가스불을 켜 조리를 해야 하고
이 아버지 없는 곳에서
너는 첫 출근을 하겠구나
나이가 차면 누구나 부모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아버지는 왠지 오늘은
헝하다
외롭다
그립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