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_아버지_1
뼈의 마디
좁은 길을 빠져나오자 우측으로는 작은 농장이 있는데, 벌써 사람들이 나와 밭을 갈고 있다.
작년에 보니, 두 어 평씩 분할을 받아 농사를 짓고 가꾸는 곳이었다. 토마토 고추 채소들이 마치 귀농을 위한 시험장처럼 보인다. 그리고 좌측에는 사슴농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는 지 적막하다.
나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이 출발하는 마음가짐이 오늘의 등산을 무사히 마치고 성공적으로 되었다거나 또 다음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오늘은 마음껏 자유를 주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다면 계획을 세우고, 그렇지 않다면 짧은 실패를 체험할 것이다. 모든 것이 약이다. 지금까지 학교에 갇혀 지내 왔다면 이제 넓은 세상에 나와 스스로 항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선두에 있지만 잠시 길을 찾아들고 방향을 잡아주기 위함뿐이지, 제 발로 앞으로 나와 대열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렇게 재미없는 가족이 있을까. 조붓한 길을 오르면서 서로 한 마디도 없이 묵묵히 걷고 있다. 서로의 간격을 좁힌다는 것이 쉽지 않다. 친구들 사이도 아니고, 회사원들과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가 단절되었던 부자간의 거리가 쉽게 가까워질 리가 없다. 아무래도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는 색다른 방법이 필요 했으나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뒤따르고 아내는 몇 십 미터 뒤처져 따라오고 있다.
-아빠가 퀴즈하나 내볼까?
-그러던 가요.
좀 전에 자취방에서 선배가 기르던 개를, 찍은 것을 엄마에게 보여 주며, 영국산 뭐, 뭐 라며 설명하던 기억이 나서 말했다.
-탤런트 최지우 가 기르는 개 이름은?
-지우개.
-그러면, 못 팔고도 돈버는 사람은?
-…….
-철물점 주인이지.
-날마다 가슴에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버지.
앞서가던 두 노인이 멈춰 섰다. 그새 지칠 리가 없는 언뜻 보아도 등산을 많이 다나는 분들 같았다. 피해갈 수도 있지만 멈추기로 했다. 따라오는 아내를 기다릴 겸 쉬어가기 위해 서 있다. 낮은 산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숲 너머로 하늘이 더 없이 푸르게 보인다. 겨울이나 봄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쾌청한 날씨였다.
-왜 안가요?
기다리던 아들이 답답한지 묻는다. 그 말을 들었는지 앞에서 소나무에 기대 쉬고 있던 두 분이 성큼성큼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반보로 걷는 우리보다 한보한보 크게 걷는 발걸음이 평지처럼 빠르게 보인다. 쫓아가고 싶다. ‘저 정도는 걸어야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참는다. 남자는 때론 자식도 라이벌로 생각한다.
-아까 그 퀴즈의 답이 혹시 아빠 아닌가요?
나는 뒤를 돌아보며 웃는다. 아들도 활짝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얼마 가지 못해 쉬게 되었다. 앞서가던 두 노인 도 우리들 시야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벌써 다 온 거 아녀?
아들은 산봉우리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숲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빽빽하던 나무가 간벌을 한 탓인지 희미하게 시야기 트였다. 그러나 산 밑에서부터 걸어온 시간은 채 10 분도 되지 않았다. 산 너머에 산이 있고 더 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잠시 내려가기도 해야 되는 것이 산행인 것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뒤늦게 합류한 아내는 물부터 찾는다. 그러나 나는 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매번 충분한 물을 준비했을 때는 두 병중 채 반병도 마시지 않고 버리기 일 수였다. 배즙 3개와 귤 6개 배 하나 그리고 과자 종류를 챙겨왔을 뿐이다. 나름대로 준비한 나로서는 낭패일 수밖에 없다. 아내는 배즙을 마시지 않았다. 산에 온 이유와 부합되지 않을뿐더러 배낭을 챙겨온 나에게 약간의 원망도 섞어 불만을 행동으로 표시했을 것이다.
젊을 때는 아내가 전부 챙겼다. 차가 없을 때도 아이 둘 데리고 도봉산이나 남한산성을 갔을 때도 지겹도록 많이 챙겨가는 스타일 이었다. 나는 그 때 무작정 떠나자고 했고 아무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빨리 떠나자 고만 했다. 아마 그때 고생을 덜 한건 그런 아내 때문이 아닌 가 생각한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지금에 와서 조금 더 몸이 건강한 내가 더 챙겨야하는 것이다. 산에서 물을 구해야 된다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연목구어가 따로 없다. 아들에게까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내와 처음 만났던 날 그녀와 나는 보문산에 갔었다. 대전에 온 김에 구경이나 시켜주겠다고, 천동에서 가까운 보문산 공원에 가서 야외 음악당까지 걸었다. 별 얘기 없이 걸었다. 출발부터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져 우산을 준비해 갔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었다. 모든 결정권은 그녀에게 있다고,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만 좋다면 그때부터 생각해볼 요량이었다. 다방에서 단둘이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시집을 가려고 하시죠.
-밥을 많이 먹는다고 아버지가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해서…….
말은 촌스럽게 했지만 그녀는 무척 세련돼 보였다. 많이 준비를 한 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세련미가 흘렀다. 서울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나였지만 이제까지 그런 용모와 몸매를 가진 여자를 본적이 없었다. 목소리가 돋보였으며 눈은 내가 빨려 들어갈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마음에 든 여자는 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녀는 이미 고속버스를 예매해 놓았었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 내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나는 우산을 잃어버린 줄도 몰랐다. 그녀는 끝까지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연락한다고만 말 할뿐이었다. 그녀는 고속버스에 오르기 전에 오른손을 높이 들어 나를 향해 흔들었다. 안녕, 내가 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진실한 마음마저도 초라해 보였었다.
내가 선본여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 안양 외숙모가 점을 보고 왔었다. 외숙모는 나를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다 좋다고 그러더라. 재복이 특히 많다고, 그런 디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자식복은 없다더라.
그때 외갓집도 부유한 편은 못되었고, 나도 지독한 가난뱅이였다. 군대에 갔다 오고 취직을 해서 겨우 단벌로 출근하며 월급으로는 옷장만만 하며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다.
-재복이 있다니 좋네요. 그 까짓 자식은 내 자식인데,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지요.
가볍게 여겼던 그 말은 맞았다. 돈도 벌만큼 벌었고 집도 샀고 사업도 잘되어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내말을 통 듣지를 않았다. 잠시 불러 단둘이 조용한 곳에 가서 좋게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 더없이 가까워야 할 사이에 무엇인가 나뿐 것이 막고 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예정된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전생에서 이승으로 또 훗승으로 이어진 길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빈 말로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점쟁이가 우리의 운명을 예측한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제 외숙모님을 만나면 또 다른 얘기는 없었는지 아들과의 인연이 어땠었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토록 밉던 아들이 요즘은 불쌍해 죽을 지경이다. 남들은 취직이다 결혼이다 해서 모두 잘 나가는데,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애비로서 그리 안타깝게 느껴질 수가 없다. 잘 나가는 지방대 토익 950점 영문과 성적 77명중 4등 줄곧 장학생…. 그 자신감 있던 목소리는 잦아들고 저도 미안한지 조심조심하고 밤늦게 주방에서 떨그럭 소리를 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이럴 때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대학 4년 동안 여자친구도 하나 사귀지 않고 졸업을 했다. 왜 그랬을까? 젊음도 멈춰있는 게 아니라 흘러가고 있는데, 저만치 앞서가는 뒷모습을 보니 지난날의 내 모습도 떠오르기도 하고 왠지 우울해 진다.
반석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멈췄다. 사는 곳을 조망하기 좋도록 바위가 솟아있고 나무들도 밑으로 있어 산으로 보면 눈동자 같은 곳이다. 아파트에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 이쯤에서 보면 사방으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시내로 나가는 길과 조치원으로 가는 길, 그리고 새로 내고 있는 대전 당진 간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인다. 군수사령부가 보이고 노은 3단지 예정지구가 보이고 대전국립묘지가 우측으로 보인다. 저 멀리 흰 새들도 열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아래로 보인다.
-잘 보이지.
-가다가 중간에 내려가는 길은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표정은 다르게 읽혔다.
-언제 이곳에 와본 적 있니?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날씨처럼 풀어진 얼굴이다.
-힘들지? 집에 있는 것 보단 났지 뭐. 집에 있어봤자 잠을 잤을 텐데, 걸어보니 느끼는 것이 많지 않아? 목표가 있으니까 산을 오르는 게 아니겠어. 저 밑에서 말했지 오늘 우리가 오를 산을 보았지 그때 너는 높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는 1/3쯤 온 거야 왕복으로 치면 1/6이지만 그래 목표가 있으니까 의심하지 않았잖아 잡념도 없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한눈팔 시간도 없다는 거야. 나는 오늘 네가 등산을 마치면서 좀더 큰 목표를 다시 세웠으면 해 , 어떤 장애인은 그랬다더라. 자기의 꿈은 세계의 지붕인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거라고 건강한 사람도 오르기 힘든 곳을 그런데 꿈도 꾸지 않은 사람은 동네산도 오르지 못했는데, 어느 날 장도가 뉴스에 나오더라는 거야 멋지지 않니?
-그저 그런데요.
-알았어, 먼저 올라가 엄마, 아빠는 천천히 갈 테니 왕복코스니까 내려올 때 만나면 돼.
아들은 먼저 올라갔다. 잘 가다가도 수가틀리면 곧잘 집으로 간다거나, 차에서 내리던 놈이었는데, 혼자 걸으면서 가슴속에 추운 겨울을 견딘 나무도 넣어보고 바위도 넣어보고 길도 끌어다 포개보고 그러면서 인생을 관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마무리 할 나이가 되고 너는 뼈를 이어갈 자식이 아니더냐? 너와 우리는 한 몸이 될 수 없는 것. 단지 우리 사이에는 물렁뼈 같은 마디가 있고, 그 위에 네가 한 줄기를 이뤄 주기를 바랄뿐이다. 크게 보면 기억나는 날도 별로 없는 것. 오늘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기억나는 그런 날이길 바란다. 마디처럼.
그 후, 아들과 우리는 정상 아래쪽에서 다시 만났다. 쭉 능선으로 연결된 길이기 때문에 산의 좌우가 잘 조망되고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펴고 않았다. 이 곳에서는 공주 쪽도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 산은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은 산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도로는 산과 강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뻗어있다. 자연의 순리를 어찌 인간이 역행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번 와보면 두툼한 책 한권을 가슴에 담듯이 담아갈 수 있는 것을……. 서늘한 솔바람은 절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아들은 두 개 남은 배 즙을 몽땅 들이켰다. 아침도 안 먹고 온 터라 무척 허기진 모양이었다. 모두 정상에서 풀어놓고 밥이나 간식을 먹었을 텐데, 말은 안 해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여러 번 다닌 우리도 힘든데 처음 온 큰 산이 오죽 힘들었으랴 그러나 너는 젊음 하나로 올라 왔겠지 그게 진정한 자존심이야
-봐라, 저 쪽에서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곳이야 , 한발 한발 오르니까 정상에 올랐잖아 그래서 꿈은 크게 가지고, 삶의 목표는 자신보다 한발 앞에 두면 돼 그러다보면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이지 너도 산으로 치면 공부한 것으로 치면 바로 이곳쯤 와 있는 거겠지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노력하면 머지않아, 취직을 할 수 있을 거야 힘내….
-먼저 내려갈게요.
-천천히 내려가 발 조심하고.
잘 찾아 갈까 걱정하는 아내에게 걱정을 붙들어 매라고 당부한다. 다른 때 보다 많이 늦었지만 정상은 그 자리에서 부모님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사나이를 산 아이로 알고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