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치유의 정치와 종교
글 _김정용 베드로 광주대교구 신부
불안치유의 정치?
여야의 주요 대통령후보자들의 대선출마선언문은 그 자체로만 보아서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의 근본문제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처방까지 정치적 수사로는 크게 나무랄 것이 없는 듯하
다. 그럼에도 그들의 절절한 출마선언문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
은 전혀 들지 않는다. 뭔가 희망을 크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신이
나지도 않는다. 마음 없는 국민사랑타령 같은 대선출마선언문 따위가 그들
의 정치에 크게 상심한 사람들의 멎은 심장을 다시 쿵덕거리게 하기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나마 대선후보자들의 출마선언문에서 눈에 띄었던 것 가운데 하나
는 모두가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불안한 사회로 진단하고, 국민들의 불안한
삶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요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
는 점이다. 민초들의 기본적인 삶과 살림살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는 공통된 인식은 다행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정치가들의 언어는
다만 신기루일 뿐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민생은 불안의 폭
염 속에서 숨을 못 쉴 지경이지만 대선후보자들은 여전히 민생현실과 거리
가 먼 자기욕망의 대선행보를 하기에만 바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숱한 사람들의 삶과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벼랑 끝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대선후보자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것
이며, 어떤 이들의 꿈을 말하는 것일까. 대명천지에 사설 경호경비업체(컨
택터스)가 노동의 현장을 폭력으로 지배해도 대선후보자들 그 누구 하나도
꿈쩍하지 않는다.
대체 그들이 말하는 국가는 어디에 있으며 정치달인이요 민생불안의
해결사로 자처하는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국회를
비롯하여 법원, 검찰, 인권위원회, 언론 등 각계에서 난신들이 염치조차 모
르고 활개 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생불안을 치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민생
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기만 해도 다행이겠지만 이조차도 헛된 희망이 아닌
가 싶기도 하다.
정치가 인간 삶의 문제들을 속속들이 해명해 주거나 풀어줄 수는 없지
만 그래도 문제는 정치다. 정치는 삶의 안전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
의 안전망, 곧 공동선과 정의의 안전망이 부실하면 삶은 허물어지고 불안한
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핵심적인 것은 노
동의 존엄성 보호와 경제질서의 정의인데 이를 그저 시장권력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방
치하는 것과 같으며, 현실적으로 정치 없이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아무튼 오늘날 삶을 불안하게 하는 근본문제가 민생의 살림살이(보육,
교육, 주거, 취업, 고용, 건강, 노후 등)와 관련된 것이기에 경제정의를 위한 대
선후보자들의 기본철학이 무엇이며, 어떤 정책으로 이를 풀어내고자 하는
지를 눈여겨볼 일이다. 어떤 후보가 그에 적절한지를 냉철하게 분별하여
대통령을 뽑는 것은 삶의 안전망을 우리 손으로 직접 구성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치유의 종교를 위하여
여야의 대선후보자들이 삶의 불안 해소에 국가운영의 초점을 맞추고 그 원
인을 제거하려는 의지는 적어도 환영받을 일이지만 그것은 대체로 사회경
제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사회 안에서 종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종교가 사회경제정의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가능성과
능력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가 인간의 욕구와 가치를 온전히
정화해 주지 못한다는 것도 틀림없다. 여기서 정치의 종교화나 종교의 정
치권력화와 마찬가지로 탈정치적 종교나 사회성 없는 영성 역시 논쟁할 가
치가 없다. 정치와 종교의 역할이 서로 결을 달리한다 해도 둘 다 인간 삶
의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차원이 존재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한 삶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해명하
고 삶의 방향을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분명 종교의 영역(인문학적 성찰과 더
불어)에서 다뤄질 만한 것이다. 오늘날 삶의 사회경제적 불안요인을 무시하
지 않는다고 해도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우리 삶의 불안이 사회경제
적 이유에서만 생겨나는 것일까? 인간의 사회경제적 욕망과 삶의 불안은
서로 기생하는 관계인 것이 아닐까?
물론 인간의 욕망이 순전히 죄악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 공존하는 인간미를 상실한 인간
의 욕망이다. 이 욕망의 악순환이 우리 한국사회의 많은 삶의 영역에서 깊
이 자리하여 혈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누군가는 그에 대
한 의식조차 못하고 불안을 공기처럼 호흡하고, 또 그 누군가는 삶의 불안
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욕망을 제도화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이 물음에서부터 자신의 존재이유를 새
롭게 숙고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욕망의 종교화를 통해 탐욕의 정치를
정당화함으로써 삶의 불안을 야기하고 지속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종교는 종교화된 욕망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치유의 종교로 존재
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가 무엇보다도 치유의 종교, 곧 권력과 빵과 명예의
탐욕을 치유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첫댓글 정치의 종교화나 종교의 정치권력화와 마찬가지로 탈정치적 종교나 사회성 없는 영성 역시 논쟁할 가
치가 없다.
제가 밑줄치며 집중하여 읽는 습관이 있어서 간방지게 줄을 그은 상태로 올렸습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용신부님은 매우 논조가 뚜렷하여 아주 좋은 강론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