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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D6ElA_Fp9k?si=0BCYE9azRswn4awx
중풍병자를 치유하심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를 부르심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13, 개역개정)
- 본동네(1절) 가버나움을 가리킨다. 갈릴리 바다 서북쪽에 위치한 이곳의 이름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이다.
- 세관(9절)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곳이다. 로마 제국은 가버나움의 무역로를 통과하는 물품에 새를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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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는 서기관들의 생각을 악하다 하시고, 죄 사함의 권능을 보이려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며,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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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를 치유하심마태복음 9장 1~8절
1 예수께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자기 마을로 돌아오셨습니다.
2 사람들이 중풍 환자 한 사람을 자리에 눕힌 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안심하여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3 이것을 보고 몇몇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더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7 그러자 그 사람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8 이를 보고 무리는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세의 선포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이를 신성모독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병을 고치심으로 죄 사함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음을 증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회복보다 영혼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참된 치유는 몸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는 문제 해결만을 구하며 죄와의 관계는 외면하고 있지 않나요?
예수님의 용서의 권세를 오늘 내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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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를 부르심마태복음 9장 9~13절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태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11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12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십니다. 마태는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였지만, 예수님은 그의 과거보다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격 있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제자도는 완전함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여전히 자격을 따지며 예수님 앞에 서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지금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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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한 알의 밀알이 품는 소망
꿈같았던 범선이의 생애 첫 직장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리해고 대상 1순위는 작업능력이 떨어지는 범선이 같은 자폐성 및 정신지체 장애직원들이었다. 문제는 정리해고된 우리 아이들이 일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고용할 작업장도 거의 없고, 또 찾는다해도 자폐장애인으로 고용되기는 더 어려웠다. 보호작업장이 가장 이상적인 진로이나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리해고를 당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건 매일 기도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우리가 장애인을 위한 보호작업장을 시작하면 어떨까? 교회와 의논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내 개인 사업으로 번 수익이 이때를 위함이라 생각하고 모두 투자해 보호작업장의 기본을 갖추었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장애인 직원이 주가 되고 일반 직원이 도움을 주는 형태로 최소 인원을 채용했다. 이들의 직업교육 방법은 오로지 반복뿐이다. 반복의 힘은 컸다. 직원들의 느린 손으로 만든 '헵시바 수제비누'가 선보였다. 밀알보호작업장은 아직 정부의 보조가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자력으로 운영해 나가야 했다.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고, 그 외에 들어가야 할 비용도 많았기에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니만큼 아깝다는 생각 없이 비용을 충당했다. 밀알보호작업장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시작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했다. 나는 밀알보호작업장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소원했다. 하나의 밀알이 커다란 나무가 되듯, 이 작업장이 확장되어 모든 장애인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확장되기를 꿈꾼다
♧ 한 절 묵상
9장 1~2절 | 예수님께 나음 받기를 바라고 찾아온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중풍병을 나음 받은 그는 단지 자신의 육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보다 먼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 받는데 많은 마음을 씁니다. 바른 신앙의 사람은 먼저 영적인 건강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도는 죄의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잃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함을 받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국내
입양에 관한 특별법 시행으로 입양 절차가 민간 기관 중 심에서 국가 공적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입양 아동 이 건강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국외
이슬람교 국가인 이란에서 가정교회와 여성 리더들 중심 으로 복음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란 성도들이 박해에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명언 마태복음 9장 1~13절
복음은 사람을 위로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 마틴 로이드 존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영혼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응답한다. - 조나단 애드워즈
예수님은 우리가 충분히 회개한 후가 아니라, 회개가 필요할 때 오셨다. - 팀 켈러
예수님은 종교적으로 실패한 자들의 친구가 되셨다. - 윌리엄 바클레이
그리스도는 상처를 감추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은혜를 흘려보내신다. - 찰스 스펄전
복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에게 가장 달콤하다. - J. C 라일
예수님 앞에서는 실패의 이력이 아니라, 은혜의 가능성이 보인다. - 삶을 노래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태복음 9장 13절
1월31일
마태복음 9장 1~13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누구를 부르시는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죄 사함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병의 치유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먼저 보이지 않는 죄의 문제를 다루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이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판단을 넘어 은혜로 사람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바라보게 하며, 그 은혜 앞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장 13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흠 없는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은혜가 필요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중풍병자의 가장 깊은 문제는 병이 아니라 죄였고, 마태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과거가 아니라 자기 포기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용서하시고, 그 용서로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신앙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리에서 멀어지고,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부르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예수님의 관심은 질병 치료를 넘어 죄 사함과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인간의 질병은 죄의 문제와 함께 해결되어야 온전한 치료가 가능합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한 영혼에 대한 긍휼 없이 율법의 잣대로만 상대를 판단하려 든다면,
주님의 권능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모든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으로 관계를 한정하지만,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스스로를 병든 자요 죄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건강한 자녀로 회복시키십니다.
- 묵상 질문: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생각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요?
- 적용 질문: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그에게 어떻게 친구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본동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데리고 온 것을 고쳐주시고 세관에 앉아 일하는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긍휼인가 비판인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일을 마가복음 2장에는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침상 채 달아내렸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죄를 용서하고 병도 낫게 하여 침상을 들고 가게 하셨지만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죄 용서하신 것을 신성모독죄라고 정죄하기에 바쁩니다.
세리 마태를 불러 제자를 삼고 그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실 때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셨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데 썼기 때문에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신앙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 살리기 위한 복음으로
쓰는지 아니면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는지 살펴보고 우리가 이해한
말씀을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데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제사보다 사랑이 우선
예수님은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호세아의 말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할 때 형식주의에 빠지거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장 영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between)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상황에만 신경을 쓰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까지 치료하시고 죄의 근원을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거룩한 주일, 예배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은혜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왜 예수안에 새생명이 주어집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것은 길이 없는 것을 말하면 빛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좋은 것이 끊기는 것이며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라 했습니다
사망이 익숙한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걷게 되었습니다 다시 걷게 되었다는 것은
새생명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심은 예수님이 나에게 새새명을 주길 원하시며
내가 예수안에 살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이요 빛이신 예수안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새생명에 감사하며 예수님 주신 새생명을 자녀들과 형제들
공동체 그리고 삶의 현장에 흘려 보내며 예수의 생명을 흘려 보내며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 속에 사는 삶❞
❚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셨으며, 병든 사람과 죄인들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십자가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1~8절).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호수를 건너 본 동네 즉,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1절). 이때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보냈다고 진술(막 2:3~4)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 내용을 생략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신성 모독이라 여겼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죄 사함의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5~6절a).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6b~8절).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자신이 궁극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의 믿음을 보시고 육신의 아픔을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 또한 사해 주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나의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까지는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이 만나는 고통과 아픔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부르심 앞에 당당히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9~11절).
예수님은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는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9절). 유대적 관점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지극히 불경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많은 세리들, 죄인들과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10절). 이 광경은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하느냐?’(11절)라고 말했습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현실에 안주하며 부를 누리는 삶에 만족하고 지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권세 있는 명령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안정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삶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 그리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과 가까이 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겪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고 하는 이 사명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삶이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라 할지라도 오늘 내 자신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부르심 앞에 당당히 순종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겉으로만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흉내 내는 거짓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훈련에 힘써,
풍성한 은혜 속에 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이웃을 향한 섬김을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2~13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한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듯이, 자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기 때문에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사가 아니라 자비(호 6:6)라는 하신 말씀의 뜻을 배우라고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잣대로 백성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일에 앞장을 섰지만,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선한 의사와 같이 백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싸매시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 죄인들과 어울리신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는 일이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더욱 깊이 연구하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만 자랑하거나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웃들을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한 것만큼 이웃을 향한 섬김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겉으로만 예수님을 흉내 내는 거짓 성도가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훈련이 있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종교적 행위만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섬김의 마음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마 9:1~13절)...
지금도 완고한 이 세대는 병 고칠 능력도 없고 죄를 사할 마음도 없으면서,
사랑과 긍휼 대신 비판과 증오를 택하여, 남들도 죽이고 자기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사랑과 긍휼을 택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
또한 사랑과 긍휼이 많아서 주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고 주의 이름으로 연약한 것을 고쳐주는 제자로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마9:9)
그러므로 성령의 사랑과 긍휼이 충만한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유1:2)
제 삶의 문제만 해결 받으려 하며 죄의 문제는 가볍게 여겼던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죄를 사하시는 주님의 권세 앞에 겸손히 나아가게 하소서.
또한 자격 없는 저를 은혜로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과거에 머물지 않고 즉시 순종하여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의로움이 아닌 긍휼을 붙드는 제자가 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 앞에 담대히 응답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