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火/ 연중 제 7주간 화요일.
또는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평일, 또는 <기념>미사:
① 야고 4,1-10 ㉥ 마르 9,30-37
* 오늘의 성인('24.05.21)
디모테오 순교자 남, 빅토리오 순교자 남, 세쿤디노 순교자 남, 에우티치오 순교자 남, 이스베리가 동정녀 여, 테오필로 증거자 남.
* 부부의 날.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연중 제7주간 화요일- 하늘까지 치고 올라가 ♧
ㅁ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야고 4,10)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ㄴ)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다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사람과 겸손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되기 더 어려울까?
그러면서 탁 든 생각은 겸손의 사람이 더 되기 힘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영적으로는 둘 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겁니다.
겸손한데다가 사랑하기까지 한다면 그것이 최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랑은 인간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지만,
겸손 특히 낮은 것은 인간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과 작음과 낮음은 인간적으로는 싫은 것을,
완덕의 이유와 영적인 이유로 되려고 하는 것이겠습니다.
완덕과 영적인 이유라면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가 되려는 것인데
제 생각에 하느님 앞에서가 아니라면
겸손하고 작고 낮은 자 되는 것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간 누구가 인간에게 자기를 굽히고 낮추겠습니까?
같은 인간인데 누가 누구에게 굽히고 싶겠습니까?
밸이 꼴리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억지로 자신을 굽히는 것이지
할 수만 있다면 남 위에 군림하고 싶고 적어도 밑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서고 싶어서 낮추는 것이고,
하느님 앞에 설 때 낮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첫째가 되려면’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첫째란 하느님 앞에서 첫째지 인간들 가운데서 첫째가 아닐 것이고,
첫째가 되기 위해 꼴찌가 되라는 말씀도 하느님 앞에서 첫째가 되려면
사람들 가운데서는 꼴찌가 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레오나르도야, 이왕 오르려거든 고작 이 세상에서 사람들 위에 있으려 하지 말고,
오르고 오르다 하늘까지 치고 올라 하느님 앞에서 첫째가 되어라!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권고한 것을 되생각합니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 두지 마십시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오류동공동체/서울신사동수도원분원//
평의원/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국가영적보조/재속프란치스코회 위원장"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