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전통의 강호를 꼽으면 빠지지 않는 팀이 바로 월드컵에서 4회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이다. 하지만 이번 유로2016을 앞두고는 이탈리아에 대한 우려가 많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팀의 중심이었던 피를로가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중원의 중심인 마르키시오와 베라티는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또한 화려했던 중앙공격수들을 보유했던 과거와 달리 주전 공격수 펠레의 무게감은 훨씬 약해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벨기에와 스웨덴을 상대한 두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지었다. 이탈리아는 분명 전력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능력을 조금만 보인다면 필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탈리아 수비가 너무도 끈끈하다.
공격수들을 꽁꽁 묶고 있는 이탈리아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인 보누치. ⓒUEFA EURO 2016
이번 유로의 특징은 매우 적은 득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24개로 참가팀을 확장하면서 과거에 비해 팀 간의 전력 차이가 커졌다. 과거에 한 경기도 허투루 볼 수 없는 치열함을 보였다면, 이번 대회에서는 알바니아,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처럼 조금 무게감이 떨어지는 팀도 찾아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을 보유한 팀들도 약팀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막 후 네 골 이상 터진 경기가 전혀 없고, 한 경기에서 3득점 이상을 기록한 팀도 전혀 없다. 경기 기록이 보여주듯 이번 대회는 수비력이 빛나는 대회이다.
최상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팀들이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통해 공격적 활로를 열고 있다. 특히 수비 전술은 대부분 두 줄로 수비를 세우며 조밀한 간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인 능력에서 심각할 만큼의 차이는 보이지 않고 수비 조직력을 갖추자 ‘객관적 전력’을 무시할 수준에 이르렀다. 알바니아처럼 상대적 약팀들도 수비력 자체는 매우 훌륭했다. 이러한 수비와 역습을 주 무기로 삼는 축구는 아틀레티코마드리드의 선전을 비롯해 유럽 축구의 전반을 주도하는 주류가 되었다.
유벤투스 시절부터 끈끈한 수비를 선보였던 콩테. 개인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팀의 조직력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UEFA EURO 2016
이탈리아의 경기는 이러한 흐름을 잘 반영한 축구를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는 호화 스쿼드를 기록한 벨기에는 물론 스웨덴을 상대로도 철저히 수비적인 운영을 펼쳤다. 스페인,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 이름값이 높은 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도권을 내주는 경기 운영을 펼치고 있는 팀이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의 전술은 보통 ‘언더독’이 펼치는 전술이다. 하지만 카테나치오로 알려진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축구의 전통적인 색과 잘 어울리는 운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의 이탈리아는 콩테 감독이 과거 지도했던 유벤투스의 3백을 그대로 이식한 센터백 라인을 중심으로 팀 전체가 수비적 견고함이 강력하다. 이탈리아의 주전 센터백 세 명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는 모두 대인 마크 능력이 뛰어나고 영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지금처럼 조밀한 간격을 중심으로 ‘팀 차원’의 수비를 펼치는 가운데에 수비의 리더가 될 선수들이 많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번 이탈리아의 미드필더진을 두고 패싱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모습은 수비적으로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탈리아의 선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상대의 공격 방향 전환에 따라 수비부터 미드필더까지 형태를 유지하면서 상대 공격 예봉을 꺾고 있다. 이탈리아의 수비 형태를 흩트릴 팀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두 줄 수비 돌파를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이 수비 형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크랙’의 존재인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크랙인 메시와 네이마르는 남미 출신의 선수들이다. 개인 돌파로 수비 한, 두 명을 가볍게 벗겨낼 선수는 현재 유로2016에서 찾아볼 수 없다.
벨기에의 골문을 연 자케리니와 스웨덴의 골문을 연 에데르, 수비적 운영 중에도 제한된 기회를 연결하는 미드필더들은 이탈리아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UEFA EURO 2016
이번 유로2016의 이탈리아는 화려하거나 날카롭지는 않다. 모든 팀을 이길 것이란 느낌을 주는 팀은 아니다. 유로2012의 스페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독일처럼 완벽한 경기력으로 우승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꺾을 수 있는 팀을 꼽기도 어렵다. 이탈리아는 아마 이번 대회에서 가장 뚫기 어려운 방패가 될 것이다. 스페인은 이미 두 줄 수비 돌파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보여주었다. 프랑스 역시 루마니아와 알바니아 수비 돌파에 어려움을 겪었다. 괴체를 가짜 9번으로 활약하는 독일의 공격력도 크게 떨어졌고 마찬가지로 두 줄 수비 공략에 애로를 겪었다. 즉 이탈리아처럼 수비수들의 개인 기량마저 뛰어난 팀을 상대로는 모든 팀이 어려움을 겪으리란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언급한대로 두 줄 수비가 등장하면서 수비 전술이 가다듬어지고, 수비 조직이 조밀해진 현재 축구 흐름에서 이탈리아 수비력은 극대화될 수 있다. 지금 두 줄 수비를 효과적으로 돌파할 전술적 준비가 된 팀을 찾기 힘들다. 축구, 특히 단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공격이 무게감은 조금 떨어지지만 수비력이 갖추고 있는 강점이 뛰어나다. 또 스페인도, 독일도 역습이 당하는 그림은 그려지지만, 이탈리아는 역습을 당하는 그림은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이탈리아가 지공 상황에서 치명적인 찬스를 노출하는 것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토너먼트 진출이 이미 확정된 이탈리아는 토너먼트 단계에서 승부차기의 운만 조금 따른다면 높은 곳, 우승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승리 후 환호하는 이탈리아 선수단. 이 환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UEFA EURO 2016
지지 않을 것 같은 팀 컬러가 이탈리아의 강점이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정신 무장 상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고 스타플레이어 한, 두 명에 의지한 팀보다, 열한 명의 선수가 하나로 잘 뭉친 팀을 이기기 더 힘든 법이다. 잘 단합된 팀은 쉽사리 깨기 어렵다. 이탈리아가 모든 경기를 통쾌한 승리로 연결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탈리아는 끝내 패배하지 않고 승리를 꾸역꾸역 거둘 수 있는 팀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팀은 좋은 축구, 화려한 축구를 한 팀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팀이다. 이탈리아는 끈끈함으로 유로2016 정상에 설 수 있을까. 그 결과는 토너먼트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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