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재봉사
말을 타고 달려 나간다
말발굽 가락 따라 박음질이 초원을 헤치며
어깨선 고지를 바늘땀 점점이 찍고 넘는다
소매의 등고선을 타고 한 굽이 돌아
허리곡선 아래 더 넓은 숲 속에 들면, 나무들
원피스 자락으로 훌쩍 자라난다
한 줄기 바늘바람 지나간 자리마다 깃 칼라의
꽃이 피며 가지마다 열매 주머니가 달린다
저르릉 흐르는 실개천 물소리에 솔기마다
길이 환히 열리고 다 자란 나무들
제각기 색과 이름을 달고 우거진다
숲의 바람소리 한 옥타브 높아져 가면
재봉사들의 입가에도 네 박자 바람이 분다
오락가락 외다리추로 박자를 맞추던 뻐꾸기
두 팔을 니은자로 편안히 놓일 즘이면 슬몃슬몃
재봉사들에게 침입하는 졸음의 장난에
바늘땀은 달아나는 실뱀처럼 간혹 휘어진다
누군가 따뜻한 사랑얘기 확 풀어놓으면,
실뱀은 놀라 굽은 오솔길로 달아난다
초원의 저녁이 산수유 빛으로 피어오르면
말갈기가 섬유의 보푸라기로
소복이 둥근 먼지 꽃으로 피어난다
재봉사의 발등에는 슬리퍼 자국, 소복소복
한 쌍의 반달로 부풀어 환하다
반달을 신고 귀가하는 발자국에 달빛이 고인다
《자갈치 아지매》 / 변삼학/ 문학의전당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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