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차
2012년 5월 7일, 몇 달전부터 계획했던 아리랑의 고장 정선과 영월여행을 하는 날이다.
늘 하는 일에 변함없으나 주변의 업무를 대충 정리하고 집사람과 떠나기로 했다. 맡은바 취재와 지역관리는 휴대전화등으로 원격관리키로 했다. 회사에서는 이런 여행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오전 4시30분경 눈을 뜬 나는 이생각 저생각하다 몇일전 꿈에서 본 내 어머니의 광채 가득한 얼굴, 아니 흰 한복을 입으신 풍모를 회상하며 웃음짓는다.
옆에서 잠을 자던 오복이와 초코가 기상했다는 신호로 내얼굴에 혀를 낼름거린다.
집사람과 떠날 여행으로 나름 흥분끼가 가슴을 누른다.
아침을 뚝딱하고 지하실에 있는 자동차로 갔다.
네비게이션에 강원도 정선 5일장이 서는 곳을 입력했다. 229km란다.
오전 7시 25분경 집을 출발했다.
하늘은 맑다. 비오는 날이 많은 예년의 5월 봄같잖다.
가을하늘보다 더 높이 푸르다. 길가의 가로수 역시 연두색에서 진녹색으로 짙음이 더해지고 있다.
산과 들 모두 우중충한 회색의 겨울을 뒤로한채 신록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전 7시 50분경 신탄진 톨게이트를 진입한 애마 알페온은 경부고속도로를 경유, 중부고속도로 증평에서 국도로 나왔다.
4차선의 국도로 괴산-충주-제천을 거쳐 박달재에 도착했다. 박달재 휴게소에서 집사람과 커피한잔으로 서로의 향긋한 기분을 나눴다.
지난 해 장인 장모님과 함께 제천 한방한식을 먹으러 갔다가 들렸던 박달재 휴게소다.
이젠 기운이 쇠약하셔서 자동차 여행도 못하시게 된 노친네의 안타까운 마음을 서로 부비며 우리는 정선으로 향했다.
집떠난지 4시간만인 11시 30분경 드디어 정선 5일장이 서는 정선시내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2일과 7일에 장이 서는 이곳의 전통 장에는 전국에서 온 관광객등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혼이 담겨있다는 정선아리랑이 곳곳에서 울려퍼짐과 함께....
“오시라는 정든님은 왜 아니오시고
오지말라는 봄비는 주룩주룩 온다
앞산의 살구꽃 필락말락하고
우리들의 정은야 들락말락한다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게”
시장은 계절이 계절인 만큼 주산지답게 곤드레나물을 비롯 곰치, 명이, 고사리등 각종 나물과 각종 한약재가 좌판에 넘친다. 수북히 쌓인 봄소식은 이렇게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메밀전병등 메밀음식을 파는 간이점포도 곳곳에 포진, 간식으로 저격이다.
메밀전병과 메밀전을 1000원씩 주고 사먹었다.
올해산 건 나물도 몇 가지 샀다.
점심은 시장내에서 곤드레밥과 올챙이국수, 그리고 콧등치기 라는 메밀로 만든 국수같은 음식을 맛보면서 참 잘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맛은 깨소금맛뿐인 것같았다. 매콤하기도 하고.....
사실 집사람과 서로 부부의 연을 맺은지 올해 29년이다. 1년 가까이 교제하다 결혼을 했으니 올해가 천숙환이란 여자를 만난지 30년이 되는 셈이다.
우리세대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애들 키우고 집안 살림챙기느라 우리 자신 아니 집사람 자신만을 챙긴 일은 한번도 없었다.
옷 한 벌 사는데도 벌벌떨었고 한푼도 헛되이 쓰지 않는 집사람이다.
그래서 손벌림없이 이만큼 사는 지도 모르겠다.
부부간의 단독(?)여행은 지난 해 담양의 죽록원을 다녀온 것이 처음이요 이번이 두 번째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곳에서 20여km 떨어진 구절리 레일바이크장을 찾았다.
예전부터 타보고 싶었던 기구다. 집사람도 나와 같이 타보고 싶었다고 했다.
7.2km 거리를 레일바이크로 가는 철길은 봄날씨의 화창함과 간간히 불어오는 봄바람으로 기분도 상쾌하다.
14시 50분 출발 바이크다. 집사람과 2인용으로 22000원을 지불했다.
출발지로 돌아오는데는 코레일이 제공하는 풍경열차를 승차했다.
꼭 1시간30분이 소요됐다.
인근의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레비했고 아우라지를 갔으나 별게 없었다. 여름철에는 애들과 물놀이 하기 십상인 장소였다.
내일 일정과 숙소를 잡기 위해 남면에 위치한 리 카지노호텔를 선택했다. 607호실이다.
짐을 풀고 집사람과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호텔주변을 뱅뱅돌았다. 이곳까지와서 고기를 먹기도 그렇고 이곳의 명물인 나물을 먹고 싶었다.
동네 두바퀴째 발견한 식당에서 더덕구이를 겸한 곤드레정식을 먹었다. 곤드레막걸리와 함께....
집사람도 맛있게 먹는다. 고깃집만 있다고 불평하던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맛있는 저녁 후 호텔에서 휴식이다.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2일차
리 카지노호텔에서의 단잠을 채우고 새벽 5시경 눈을 떴다.
7시까지 침대에서 뒹굴다 세면을 했다. 전날 시장에서 1만원을 주고 산 ‘정선민둥산수리취떡’ 한 개로 입맛을 채운 뒤 다음 관광지로 나섰다.
화암동굴로 가는 길. 중간에 몰운대와 소금강, 그리고 화암약수등 정선 8경중 하나들이다. 1800년대 정선군수가 이름을 지었다는 몰운대는 구름이 쉬어간다는 뜻으로 높이 50m이상 절벽위에 정자가 있고 그 주위는 널적한 바위가 널부러져 있다. 아마 100명이상이 앉을 수 있는 넓이다.
길가에서 등산로를 따라 6~700m에 위치했다. 집사람과 아침밥도 못먹은 상태에서 그곳을 다녀왔다 사진도 몇 컷 촬영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프라다든가 휀디인가 명품이라는 선그라스를 모자와 매치한 집사람이 멋있다. 한손에 V자를 유도한 나의 요구에 미소가 더욱 아름답다.
몰운대에서 1km정도 지나 계곡에 차려진 절벽의 바위가 마치 조각한 것처럼 멋있다. 금강산을 이곳에 옮겨놓은 것 같다.
잠시 집사람과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기념 촬영을 했다.
화암면사무소 소재지에서 한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9시반경이다.
식사후 인근의 화암동굴에 도착, 9시58분에 출발하는 모노네일을 타고 동굴입구로 갔다.
이곳 화암동굴은 일본 강점기에 금광으로 금을 캐다가 발견된 석회동굴이다.
길이가 1800m정도인데 끝부분 600여m남겨놓고 땅속에 운동장크기의 공간이 있고 그곳에 종류석이 자라고 있다는데 적이 놀랐다.
금과 자연의 만남이란 주제가 있는 동굴견학이었다.
동굴속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같은 인형이 등장하여 금광속의 일과 채굴장면들을 연출했고 밀랍인형들이 그 금광속의 광부들 활동을 재연했다. 진짜금도 한덩어리 있었다 기증한 것이었다.
출구 인근에는 이곳 금광의 광부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광부촌도 재현해 있었다. 초가집과 향철집(관사), 그리고 무당집-광부들이라 정신적인 믿음을 위해 무속신앙이 성행했으리라-. 대장간, 목공소등이 있었다 밀랍인형의 자세도 잼밌다 특히 화장실에서 대변보는 소년의 모습이.....
5월인데도 동굴속은 무척 추었다. 집사람과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집사람도 추운지 꼭 잡는다. 예전 신혼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30여년전의 나와 숙환씨. 남들같이 애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서로 관심을 갖고 위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낸 30대 초의 우리들의 삶이었다. 집사람이 서울(부천)에서 살기 어렵다며 대전 친정에서 지내는 바람에 한 3여년을 주말부부로 살아온 일도 있었다.
아침부터 강행군의 관광으로 집사람이 피로가 밀려온단다.
우리는 정선의 관광을 뒤로하고 영월로 향했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는 그 외에도 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여기에서 마치기로 한 것이다.
영월에는 도착하면서 들른 곳은 이조시대 초기의 왕권다툼과 패자의 처지와 승자의 위치등을 후손에게 극명하게 일러준 청랑포였다.
삼촌인 수양대군으로부터 왕권을 빼앗기고 군으로 추락하여 섬아닌 섬인 영월의 청랑포에 구금된 단종.
권력싸움으로 돌출된 사육신과 생육신, 그리고 김삿갓과 현대의 행정구역 김삿갓면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조선의 6대 임금으로 등극했으나 나중 7대 세조로 등장한 삼촌 수양대군에 의해 내몰린 단종의 안타깝운 삶이 조명됐다. 청랑포의 기와집 어가에서 단종의 모습이라는 밀랍인형에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청랑포 어가 인근의 소나무숲이 참으로 멋있었고 그중 우뚝 선 2줄기 소나무가 단종의 마음을 후세에 전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안 죽었어요. 백성을 위해 정사를 보겠습니다”
영월의 어두운 기억에 이어 간 곳이 한반도지형을 닳은 마을을 전망하는 선암마을 인근.
청랑포에서 20여km남짓한 곳에 위치한 한반도지형은 정말 우리나라 지도와 똑같은 모양이다. 울릉도와 제주도만 없다. 동강줄기가 휘감고 돌아가는 그 모양이 우리나라속의 한반도였다.
집사람이 사진촬영에 잘 응한다. 예전에는 사진찍자고하면 손사례치던 모습에서 모델도 해주고 촬영해주기도하는 것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변했다. 예전에 비해 맘에 여유도 생긴 것 같고....
생전 기구타는 것을 싫어하던 집사람이 모노레일고 타고 레일바아크도 타고....
세월을 그래서 좋은지 모르겠다. 늙는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사람이 여러모로 알알이 굵어진다는 긍정의 모습도 있으니 말이다.
당초 영월에서 1박을 하고 대전에 갈 요량이었지만 우리는 일정을 변경했다.
영월의 관광을 줄이고 집사람이 가보지 않은 단양에서 하루를 묶은 뒤 수상관광을 하기로 한 것,
이에따라 우리는 단양으로 향했다.
오후 4시경 단양관광호텔에 짐을 풀었다. 침대방이 아니다 온돌방을 주문했다. 403호실. 평일이라 아침은 무료로 제공한다는 안내 호텔리어의 소식이 반가웠다. 아침 식당 찾기가 어려운데 다행이다.
규모는 컸으나 내부 시설은 어제 잤던 호텔보다 못하다. 커피포트도 없다. 티브이도 참 낡았다. 15년전 우리집에서 쓰던 엘지 평면 32인치다.
저녁은 지역 특산물로 먹기로 하고 호텔의 소개로 단양 특산품인 마늘 전문점에서 했다.
장다리식당. 충북 전통음식 9호점이란다. 반찬이 20여가지 나오는데 마늘구이 마늘장아찌, 마늘육회, 마늘소스, 머스타드소스 연 마등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마늘약선요리랄까
1인분에 10,000원, 12,000원, 15,000원, 20,000원, 25,000원짜리가 있다. 우리는 20,000원짜리를 먹었다. 오리수육도, 육회, 생선등 푸짐했다.
소금강 입구에서
3일차
상쾌하기보단 다소 피로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집사람도 나도 얼굴에 부기가 있다. 당초 장회나루에서 수상관광을 즐기고 이번 여행을 마치려 했으나 계획이 변경됐다.
집을 보고있는 딸 지연이와 점심이라도 함께 한 뒤 서울로 보내자는 집사람의 제안에 일정부분 동의되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침밥을 호텔이 제공한 한식위주의 부폐를 들고 다시 방에 들어와 우리가 즐겨 시청하는 “내인생의 단비”라는 아침 드라마를 보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이것으로 공식적 여행은 종료됐다.
나와 집사람이 30년전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에 정수가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거금을 용채로 보내왔고 지연이도 우리집 귀염둥이 쵸코와 오복이를 보실피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오는등 애들이 애썼다.
무슨일이든 그 결과가 긍정적이건 아니면 부정적이던 간에 거기에는 댓가가 있다. 우리 두사람의 일이 아니고 주변의 모든이가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아들 정수와 지연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집사람에게도 같이 가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드리고 싶다. 가을에 다시 한번 여행할 것을 약속하면서...........
2012년 5월 10일 오전
|
첫댓글 즐거운 여행일기 잘봤습니다
이내용을 참고로 정선에 내려가면 좋을거 같습니다
제가 사는곳이 제천이라 정선 영월 단양 별로 구경 거리가 없는줄 알았는데
그래도 사람사는 냄새가 묻어나네여.
조은 추억 되셨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