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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도봉구 창동역 육교 밑에 자리잡은 서울 푸드마켓. 지난 8일 오후 물건이 다 떨어져서 이곳을 찾은 ‘어머님’,‘아버님’들을 그대로 돌려 보내던 곽은철(38) 소장의 마음은 누구보다 무거웠다.
푸드마켓 창동점은 서울시가 작년 3월 부터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위해 서울 사회복지협의회에 위탁 운영하고 있는 무료 생활용품 매장이다. 25평 규모의 푸드마켓 내부는 평범한 동네 수퍼마켓이 연상되지만 과자와 빵, 라면 등 각종 식료품이 빼곡하게 차있어야 할 매대에는 고추장과 된장, 녹차, 비누, 초콜릿 등 몇가지 물건들만 듬성듬성 진열돼 있었다.
지난 해 6월 부터 이곳의 살림살이를 맡아온 곽 소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오늘이 제일 힘든 날”이라며 “오전에 채워놓은 물건이 동나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어머님, 아버님(이용자들)들에게 오후 부터는 웬만하면 ‘물건이 더 많을 때 오시라’고 돌려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비해 물건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는 올 초 3000여 가구였던 회원이 5000가구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곽 소장은 “노원구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8000가구 중 2500여 가구가 이미 회원으로 등록했다”며 “나머지 5000여 가구도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데 물건이 없다고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달에 3000명 정도 이곳을 찾으니 하루에 150명 이상 이용하는 셈”이라며 “이 분들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매달 쌀 값만 1500~2000만원 가량 들고, 라면도 500만원 어치 이상이 필요한데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매일 오전 9시까지 서울 도봉구 창동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배추와 무 등 각종 야채를 받아오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노원역 인근 던킨 도너츠와 제과점 등에서 연락이 오면 그날 그날 빵을 받아오지만 오전에 100여명만 이곳을 찾아도 금새 바닥이 난다고 한다. 곽 소장은 “한 달에 12번 서울 각 지역과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기탁받은 물건을 갖고와도 금방 떨어져 버린다”고 말했다.
푸드마켓 회원에 등록한 기초생활수급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5가지 품목에 한해서 이곳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단 원하는 물건이 없을 때는 그 달 안에 다시 와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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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푸드마켓에 있는 물건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인심은 후했다. 이날 조미료와 비누 등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발걸음을 돌리던 한 부부는 “거동 못하는 아저씨들에게 나눠 주려고 한다”며 서비스로 나눠주는 공짜 무를 두 박스나 머리에 이고 나가기도 했다. 곽 소장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위한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라며 “이웃에 거동을 못해서 여기까지 나오기 힘든 장애인들과 같이 나눠 먹으려고 무를 가져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소장은 “그래도 내일은 광주에 있는 식품회사 창고에 초콜릿을 가지러 간다”며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시는 기존의 육류 기탁자 분들에게도 전화를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배우 이나영씨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으로 받은 500만원으로 기탁한 돈이 들어오면 쌀이랑 라면도 다시 사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쌀이랑 라면을 무조건 갖다놔야 해요. 그 때 가서 없으면 멱살 잡히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 그동안 이곳에서 일하면서 별의별 욕을 다 들어봤다”며 “술을 드시고 와서 욕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여직원을 혼쭐을 내서 울리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이용하시는 분들이 안 좋은 물건에 대해선 ‘거지 취급 하는 게 아닌가’하고 굉장히 민감해 하신다”며 “지난 만두 파동 당시에도 기탁업체에서 ‘냉동 만두를 가져 가겠느냐’는 전화가 왔는데 못 갖고 오겠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는 “최근에 안전이 검증된 만두를 들여왔는데도 의심을 하시더라”며 “물론 제가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권해드렸고, 금방 동이 났다”고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기억을 묻자 “오늘처럼 좋은 물건을 드리고 싶은데 못드릴 때랑 매 달 오시던 분들이 갑자기 안보이시는데, 알고봤더니 좋은 곳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을 때”라고 말했다. 초창기 부터 단골 손님이었던 어머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참지 못한적도 있다고 한다. 곽 소장은 “여기에 오셨다가 갑자기 쓰러진 어머님도 있었다”며 “119를 불렀는데 바로 안와서 손님을 업고 병원까지 뛰었다”는 아찔한 경험도 털어놨다. 그는 “다행이 건강이 많이 좋아지셔서 요즘도 뵐 때마다 한숨을 내쉬곤 한다”고 말했다.
“사실 푸드마켓이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큰 도움이 못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도움은 됩니다.” 곽 소장은 “한 번은 한우랑 소뼈가 기탁품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들이 ‘일년 내내 고기를 한 번도 못먹었는데, 오늘 고기를 먹게됐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며 “또 한 달 후에 오셔서도 너무 맛있었다고 고마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창동점의 성과에 대해 70~80점 정도의 점수를 줬다. 그는 “서울시에선 처음엔 이곳이 사랑방 처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었는데 그렇게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사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이곳에 오시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곽 소장은 “대신 여기 오신 문들을 모두 가족처럼 대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호칭부터 아줌마, 아저씨가 아니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다들 어려운 시기지만 기업이나 개인들이 좀 더 기탁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도움이 되는 물품은 쌀 같이 주식이 되는 곡류와 라면 종류”라며 “부식거리로는 육류와 햄, 통조림, 야채, 김치 등이 인기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설탕이나 소금 같은 조미료, 고추장 된장 등 장류, 음료수,초콜릿, 과자 등 기호 식품과 샴푸, 비누 같은 생필품도 유용하게 쓰인다도 한다.
곽 소장은 “모든 기탁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지만 특히 매달 쌀이랑 라면 값으로 200만원씩 꼬박꼬박 입금해주시는 강화도의 한 주부님이 기억에 남는다”며 “너무 고마워서 감사패라도 드리고 싶은데 굳이 안받겠다고 하시고, 누구인지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역 앞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매일 아침에 토스트를 5개~10개씩 갖다주시는데 사실 일년이면 몇백만원 어치가 되는 게 아니냐”며 “참 쉬운일이 아닌데,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물품 후원 및 회원등록 문의 /전화: 02-907-1377 /홈페이지 www.s-foodbank.or.kr/s6_4.htm
현금 후원: 우리은행 602-029017-01-001 (예금주 푸드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