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서울의 봄 2
12월 3일(화) 밤 10시 반, 불시에 선포한 비상계엄으로 나라 안팎이 혼란스럽다. 다행히 6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파장과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한밤에 내린 비상계엄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암흑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분명히 확인한 것은 암흑세력의 실체는 비상계엄을 빌미로 내란을 주도하는 당사자들이었다.
비상계엄이 현실화하자 사람들은 ‘서울의 봄’ 시즌 2를 연상했다고 한다. 이미 13,123,641명 관객을 통해 계엄을 대비해 온 시민의식은 계엄군을 태운 헬기보다 더 빠르게 국회로 달려왔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빛의 속도만큼 빨랐다. 금새 모여든 시민 4천여 명이라고 한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신속했다. 갈팡질팡한 여당 일부를 포함한 표결에서 출석 190명, 찬성 190표로 비상계엄은 코미디처럼 끝났다.
빛의 빠르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색동교회는 대림절을 시작하는 등불기도회 주간이었다. 그날 새벽, 휘청거리며 예배당으로 올라가다가 수요일 기도순서자를 만났다. 뜬눈으로 지샌 간밤에 대해 하소연하던 그는 언제 준비했던지, 마치 중계방송하듯 간절한 기도를 이어갔다.
“주님, 밤새 이 나라가 매우 혼란스런 상황에 빠져버렸습니다. 당연한 일상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약 40여 년 전 악몽 같았던 현실이 떠오릅니다. 국민이 오히려 지도자와 국가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부디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셔서 속히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반가운 것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순발력이었다. 감리교단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여전히 계엄상태가 진행 중이던 새벽 3시경 서둘러 즉각 해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당시 감독회장과 스탭은 필리핀 선교 50주년을 맞아 필리핀에 머무르고 있었다. 한국에 있던 선교국총무 직무대행이 긴급히 연락하였고, 감독회장의 결재까지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 돋보인다.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어설프게 진압된 후, 이튿날 한겨레 신문에는 ‘윤석렬 퇴진을 위한 1만 그리스도인 시국 선언문’이 등장하였다. 전면 광고는 여러 날 동안 준비된 것인데, 마치 비상계엄 직후 번개 속도로 대응한 것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 덕분에 결과도 좋았다.
“이제 그만 내려오시오”란 질타는 그 이유로 “그다지도 무지몽매한 자가 2년 반이나 권좌를 꿰차고 국정을 운영해 왔으니 나라 꼴이 멀쩡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엄히 꾸짖고 있다.(2024.12.5./ 한겨레 15면)
고마운 것은 비상계엄을 대하는 젊은 세대의 반응이었다. 두 차례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토요일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연결된 도로에 가득 찬 수많은 인파의 대다수는 젊은이들이었다. 불법 계엄 이후 최근 열흘 동안 달라진 뜻밖의 현상이었다. 그래서 집회가 발랄하고, 색상도 밝고, 표현도 자유로웠다. 기상천외한 이름의 자유로운 깃발들이 등장하였다.
바람결에도 스러지기 쉬운 촛불 대신 화려하게 등장한 응원봉들은 형형색색 대림절의 빛을 자아내고, 빛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아이돌을 향한 환호성은 지금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중이다. 한 시기를 주름잡았던 소녀시대를 소환해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으로 부르고, 가수 백자의 개사곡 ‘탄핵이 답이다’(원곡 Feliz Navidad, 메리 크리스마스)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이번 기회에 청년 세대는 계엄이니, 내란이니 생소한 단어들을 몸으로 학습하고 있다. 친위 구데타 ‘서울의 봄 2’는 당연히 실패하였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재교육 중이다. 다행한 것은 쌓이고 쌓인 폭정에도 불구하고 종식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던 우리 사회가 결국 대통령 탄핵이란 국민적 일치를 보았다는 점이다.
잠시 비상 상황으로 한국 여행을 주저한 외국인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 “와서 다시 새롭게 될 K-민주주의를 경험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