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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산행기
오늘은 서울 건축사등산동호회에서 영암 월출산으로 정기 산행을 가는 날이다. 그 곳까지 거리가 멀어서 6시 50분까지 교대역에 집결해 7시 정각에 출발하겠다고 공지가 되었다, 어제밤 일을 하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 졸음이 가시지 않은채 서둘러 약속 장소로 나가니 20분이나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버스는 아직 도착전이고 회원 두 분만 먼저 와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차 안으로 들어가니 28인승 리무진 버스여서 좌석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리를 잡고 보니 일행이 속속 도착해 인사를 나누었다. 코로나 사태가 생긴 이후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할 수 없어서 이렇게 단체로 장거리 산행을 나서는 것이 퍽 오랜만인 것 같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회원을 기다려 7시 20분 교대역을 출발했다. 안회장이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을 나서는 소감으로 인사말을 했다. 전에는 출발하자마자 김밥을 주었는데 코로나 상황이니 정안휴게소에 들러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차창 밖에 운무가 끼어 있어서 더 졸음이 들게 했다. 진행중인 도면을 정리하다 잠을 청했다.
정안 휴게소에 다시 출발했다. 휴게소에 나들이 가는 차량이 가득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선 다음 전주, 정읍을 거쳐 10시 40분경 광주를 지났다. 거기서부터 도착지까지 1시간 정도 걸릴거라고 했다. 일기예보에는 종일 흐린 날씨로 에보되어 있는데 잠깐씩 햇살이 비췄다.
가다보니 멀리 월출산이 보였다. 인근의 낮은 산과 들판에서 홀로 솟아난 특유의 형세를 갖춘 산이라 멀리서도 금새 알수 있었다. 그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가는 사이 점차 가까이 나타났다. 산 전체에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모습이 특별함을 자아냈다.
11시 30분 들머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기온이 높아서 회원들이 웃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산행 점검을 한다음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월출산 공원사무소 앞을 지나 산길 입구에서 잠시 단체로 스트레칭을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완만한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갈림길 주변에 대나무 숲이 보였다. 봄기운이 퍼져가는 햇살을 받은 대나무에 윤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정표에 좌측 300M 거리에 천황사가 나타나 있어 잠시 들렀다. 대웅전 뒤로 월출산 정상부의 기암봉우리가 보여서 큰 산세에 놓인 터의 기세가 느껴졌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가 오르다 보니 점차 경사가 급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갈림길에서 구름다리 쪽으로 올랐다. 구름다리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에 그 곳까지 300m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오르는 길의 경사가 매우 급해서 곳곳에 철사다리가 높게 결려 있었다. 그리고 구름다리 아래쪽에서는 그 다리가 허공에 걸쳐보였다.
구름다리 앞에 오르니 주변이 훤칠하게 트여보였다. 월출산 주변 들판과 들머리 주차장 주변 상가 건물들도 보였다. 다리 건너편에는 월출산 정상부의 기암 봉우리에서 기세가 크게 뿜어 나왔다. 거기서 화판을 펼치며 건너편 산세를 그릴 채비를 했다. 바람이 불어 가까스로 화판에 한지를 붙이고 산의 형세를 빠르게 그려나갔다. 정상에서 일행과 합류하려는 생각을 갖다보니 시간이 급하게 느껴졌다.
스케치를 마치고 그림을 화판에 붙인채 서둘러 정상을 향했다. 지나는 길에 만나는 다른 일행들이 화판의 그림을 보면서 관심을 보였다. 화판을 들고 여기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대단하다고 했다. 정상부까지 가는 길이 가파르고 큰 봉우리를 이리저리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쪽으로 보이던 봉우리 정상부에 다다르니 다시 한참 경사길을 내려선 다음 다시 오르게 되어 있었다.
오름길 능선 안부를 넘어갔다. 월출산 정상부가 정면에 보였다. 시야에는 가까워 보이는데 아직 거리는 0.7km나 남아 있었다. 그 정상부에 철계단이 높고 길게 결쳐보였다. 시간이 2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정상을 거쳐 4시 30분까지 집결하려면 서둘러야 될 것 같았다. 바쁘게 이동하느라 점심을 먹지 않아서 허기가 느껴졌다.
다시 계단과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랐다. 철계단을 오르다보니 위에서 내려서는 회원 몇 분이 반가워하며 식사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다시 오름길을 돌아들어 통천문을 지났다. 그 좁은 바위 틈을 지나는 바람이 세차게 느껴졌다. 통천문을 지나 잠시 내려선다음 막바지 정상부로 오르며 다시 회원분들을 만났다. 아직 정상에 남은 회원들이 있다고 했다.
2시 45분 월출산 정상 천황봉(809m)에 도착했다. 그 곳에 남은 우리 일행들이 보였다. 정상석 앞에 다가가 기념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가 줄이라고 해서 물러섰다. 그런데 먼저 줄을 섰던 김용대 회원이 우리 일행이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 산은 월나산·월생산이었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렸다. 예로부터 이 산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이 산의 빼어난 모습으로부터 이 산위로 떠오르는 해와 달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의 소망과 소원을 이루어주는 상징적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형상화되어 있다. 이 산처럼 이 산을 대하며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선하고 고운 숨결을 나누는 산은 드물 것 같았다.
월출산은 천황봉을 비롯해 장군봉·사자봉·구정봉·향로봉 등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이 연어어지며 빼어난 풍광을 이룬다 1973년 전남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총면적 41.88㎢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에서 영산강과 탐진강의 지류가 발원한다. 월출산 인근에는 도갑사, 무위사, 월남사지 등의 명찰 유적과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 월출산마애불좌상과 도갑사 해탈문, 무위사 극락전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월출산 구정봉에는 아홉 개의 돌 웅덩이가 있는데 그 곳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회원들이 모인 곳으로 가니 아까 구름다리에서 만난 김태환 건축사가 가져온 12년 묵은 더덕주라며 잔을 건냈다. 물도 마시지 않고 올라온 터여서 갈증이 난 터였다. 잔에 든 술을 한 모급 마시니 향기가 가득 입안에 퍼졌다. 오래 숙성된 향기였다. 일행들에게 지나는 것을 못 보았다고 하니 육형제봉 쪽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2008년경 백두대간을 종주할 무렵에는 산행의 자신감이 지금보다 더 컷던 것 같다. 지방 출장중에 등산 복장이 아닌 평상복장으로 이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물만 한 병 갖고 왔던 것 같다. 그리 큰 산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리 했던 것 같은데 오늘 오르며 보니 이 험준한 산을 어찌 그리 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 돌아보니 사방으로 인근 고을의 시야가 시원스레 트여보였다. 반듯하게 경작지 정리가 된 밭들이 점차 달아오르는 햇살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막 약동하는 것 같았다. 그 들녘 곳곳에 그 농토에 작물을 가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들이 함께 보였다. 거기서 땅을 근본삼아 살아가는 삶의 체취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야말로 인류가 신석기시대부터 정착생활을 하며 삶을 영위해온 존재 방식인 샘이다. 땅은 삶의 원천이 된다. 그 땅위에 심고 노력한데로 땀의 대가를 거두게 된다.
정상에서 막 내려서다 보니 구름다리쪽에서 올라온 기암봉우리들이 기세를 이루며 펼쳐보여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작은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했다. 옆에서 쉬던 다른 일행 한분이 다가와 자신도 미대를 나왔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보니 반갑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는 것을 좀 보아도 되느냐고 했다. 다른 일행도 다가와 관심을 보여서 화판을 뒤집으면 아까 내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잇다고 했다. 그들이 화판에 붙은 그림을 보며 ‘와’ 하고 외쳤다.
구름다리로 가는 길과 육형제바위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육형제바위 쪽으로 내려섰다. 경사가 급한 길을 지나다 보니 시선에서 금세 고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육형제바위 전망대에서 보니 구름다리와 고도가 비슷해 보였다. 아까 구름다리에서 이 쪽울 보며 그림을 그릴 때 여기에 많은 인원이 모여 있던 것이 떠올났다. 그들이 이 코스로 오르던 우리 일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내림길을 내려섰다. 바로 아래쪽에 바람폭포가 있었다. 표지판에는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가 보였지만 실제 모습은 말라 있었다. 길을 내려서다 만난 다른 일행의 한 남자분이 내가 북한산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여러번 본적이 있다며 인사를 건냈다. 내가 그리던 장소까지 알고 있었다. 전에 관악산에 올랐을 때도 그런 분을 만났었다.
아까 구름다리쪽으로 올랐던 갈림길과 천황사 갈림길을 지나 월출산 입구로 내려섰다. 길가에 월출산 기체험 안내표지찬이 보였다. 택리지를 쓴 조선시대 이중환은 월출산을 “아침 하늘에 불꽃 같은 기상을 지닌 산”이라고 했다 한다. 그 아래 길 우측에 고산 윤선도의 시와 영암아리랑 가사를 새긴 시비가 놓여 있었다.
영암아리랑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지화자자 좋구나
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흥타령 부네 흥타령 부네
목화짐 지고 흥겹게 부네
용칠 도령 목화 짐은
장가 밑천이라네
해가 뜬다 해가 뜬다
둥근 둥근 해가 뜬다
그 임같은 월출봉에 희망이 뜬다.
오랜만에 그 가사를 다시 대하니 월출산 위로 산과 함께 어우러지며 떠오르는 해와 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정취를 노랫말에 순수하게 담아낸 이 고장 사람들의 맑고 고운 심성이 곱게 느껴졌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이러한 심성도 점차 메말라지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 곳 월출산을 다시 다녀가면서 그러한 정서를 다시 볼아보는 시간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4시에 주차장으로 내려서니 타고온 버스가 보였다. 거기서 다시 화판에 한지를 붙이고 올려보이는 월출산 그림을 그렸다. 이달초 마친 ‘서울의 산하’전 전시를 준비하던 작년초에 만난 한 분이 ‘전국의 산하’전도 한번 해보라며 자신이 1호 후원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들으며 그리 하려면 10년은 걸릴거라고 했더니 내가 80대인데 그러면 너무 늦다고 해서 한 5년쯤 후까지 당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에 백두대간 등 전국의 산을 다닐때에도 그때그때 스케치를 해와서 쌓인 그림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작은 스케치여서 제대로 하려면 전국의 중요한 산하의 장면을 더 갖춰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처럼 산행을 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한 장한장 쌓여지면 소박하게나마 작은 전시를 할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일행을 태우고 뒤풀이 식당으로 가서 낙지덮밥으로 저녘을 먹었다. 영암은 해변과 거리가 가까워 갯뻘에서 나는 토속적인 먹거리리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왕인박사가 일본에 학문을 전할 당시에는 이곳까지 뱃길이 닿았었다고 한다. 테이블에 앉은 분들과 소맥잔을 채워 건배를 했다. 산행을 마친 후라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올라길 길이 멀어서 인사말과 건배 등을 생략하고 식사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저만치 보이는 월출산을 보았다. 오늘처럼 멀리 떨어져 잇는 지방의 산을 오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코로나 시대에 서울에서는 주말마다 주로 북한산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이렇게 다시 순수한 땅내음이 풍겨나는 영암에 와서 대지의 기운을 쏘이는 시간이 귀히 다가왔다.
영암 들녘
김석환
정월 영암 들녘
논둑 잔설 남았어도
햇살은 참 보드랍다.
제법 넉넉히 먼 들녘에
낮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세가
어린 아이를 안은
엄마품처럼 포근하다.
그 산과 들이 만나는 언저리에
드문드문 들어선 집과 마을
순한 땅기운만으로 살아온
이 고장이다.
(1997. 1. 3)
1월 들녘
김석환
먼 산 위에 쌓인 눈
앞 쪽 너른 들녘에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
침묵의 세월만
마냥 흐르고 있을
농촌에
그렇게 햇살이 한나절 고이면
바람은 흥이 나서
들녘과 산봉우리를 오간다.
마을 사람들이
무료함을 참다
살얼음 낀 논 가장자리에 모였다.
삽으로 진흙을 갈아엎다
겨울잠 깬 황갈색 미꾸리지가
흙범벅 된 채 나왔다.
멀쩡히 서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왁자지껄 해진다.
그런 일이 드물게
흥분을 안길 뿐
겨울 농촌은 다시
침잠한 세월 속으로 돌아간다.
(2008. 1. 27)
내가 생각하는 월출산의 가장 멋진 광경은 아까 천황봉에서 바라보이던 평평한 들녘 보리밭 같은 평지에서 우뚝 솟아난 모습이다. 거기서는 제대로 보이는 곳이 아니었지만 머릿속으로 그런 관경을 상상하면서 차에 올랐다.
6시 30분에 영암을 출발하여 4시간 후에 서울에 도착해 각자 집으로 향했다.
(20220312)
첫댓글 바쁘신중에도 기록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 산행을 함께해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일이생겨서 함께 할수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었는데~
김석환 건축사님의 잘정리된 산행기를 읽고나니~
마치 함께 월출산을 다녀온듯힌 느낌입니다~
매번 훌륭하신 산행기를 남겨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김석환 건축사님 산행기행기 잘읽었습니다.
좋은사진과 더불어 다시갔다온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무사히 보람찬 산행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