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나무
최영숙
바닷바람 다독이며
신념으로 가꾼 꽃과 나무들
순천만 가야정원
색색이 고운 품 그립고
애틋함 문득 일어
한걸음에 달려온 와온길
정겨운 꽃송이 찾아가서
좋은 인연 만나기도
짧은 여정의 긴 길목
꽃길 누비며 이야기꽃 피운다
키 큰 나무 아래 등의자
노을 찬란하게 물들면
갯벌에 뜨거운 속내 풀어놓고
너와 나 하나 되어
사랑의 세레나데 연주하네
2
봄 선물
심오한 지평 모죽 같아 흔들림 없기를
마냥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이어왔는데
탈 붙은 복통으로 뜸하던 인인새
겨울나무처럼 몰라보게 수척해 있었네
청량한 공기 깊숙이 마시며 걷는데
한적한 골짜기 고고히 둥지 튼
산목련 봉오리 뾰족이 밀어 올릴 즘
겨우내 혹한 어디서 보내다 왔을까
새들 나뭇가지 현란하게 오가며
청아한 목소리 봄 문턱 알리고
노랑나비 한 마리 눈길 끌어
홀린 듯 황홀경에 한동안 숨 죽였네
이 모두는 새로 만든 언덕 위 작은 밭에
일상의 재발견으로 새로이 모종한
꽃잔디 꽃수국 꽃양귀비 꽃선인장...
꽃을 바라보니 벌이 따라왔다네
3
봄 보약
꽁꽁 언 가슴 훈풍 돌아
천지사방 새 봄 솟는다네
틈나는 대로 재충전하며
바쁘다는 핑계 삼아
다듬어진 야채로 조리하던
철 모른 시절 지나갔건만
시 시낭송 노래에 열정 쏟아
미력하나마 족적 남겼네
시류 밖 이야기 흘려버리고
새로운 자아 만나기 위해
산으로 바닷가로 여유 부리는
평심 찾은 인생 후반부
든든한 숲 그늘 한몫하네
온산 만개한 진달래 멀미 일면
정갈스러운 밭에 마주한
신비한 생명력 새순 돋아
반나절은 청순한 사랑 수놓네
눈호강 진달래 꽃전
풋풋한 돌나물 샐러드
낱낱이 캐서 끊인 쑥국
뿌리째 만든 달래장
야들야들 부추 겉절이
살짝 데쳐 돌돌 말은 잔파
씁쓰레한 핑크빛대 머위나물
향기 가득한 취나물
명이나물 장아찌
느림의 미학으로 준비한
정성 가득 담긴
꽃내음 초록 밥상 기운 듬북 하네
돌아서면 채워주는 자연품에 깃들었으니
척박한 땅 꽃밭으로 가꾸어 나아가 듯
건강지킴이 욕심 없는 손길 이어지누나
4
순천 난봉산성
홀로 자연의 소리에 몰입하고픈 날이면
난봉장군 업적 기리며 산성 찾았다네
산 아래 세상은 갖은 바람 소리로 시끄럽지만
숲길은 혹한이 무색하게 아늑하고 평온하네
임진왜란 전적지 외곽방어 수성장 난봉산성
이끼 서린 무너진 돌축대 눈여겨 바라보니
우람하고 청정한 충정으로 강남을 굳건히 지켜준
신령스러운 기운 절로 온몸에 느껴져 숙연해졌다
민초들의 폭풍 한파 잠재우던 지난 풍상
안으로 삭히며 한 고을 품어준 노거수들
저 아래 융단처럼 펼쳐진 철쭉 군락은
새봄 재촉하듯 무언의 미소 머금어 장관이었네
오로지 과묵한 박난봉산 기운 받아
넉넉한 품 기대어 순천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어린아이들 사랑과 쉼 없는 자기 계발로
시인의 길 굳건히 지키며 살아왔다네
나의 순천 살이 나이테는 20여 년 훌쩍 지나 30년 바라보고 있나니
순천은 천상 제2의 고향이 되었다네
5
왕의산 둘레길
옛 왕조의 기운 스민 감 잡은 듯
예사롭지 않은 명산이라 생각되었다
대로변에 인접해 있고
매일 지나치는
길목인지라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는데
참 기이한 날이었네
웅장하고 내밀한 둘레길에 들어서니
드넓고 울창한 숲 속은 윤기 났고
비교적 넓은 황톳길 연이어 펼쳐져
고려시대 임금님이 둘러보신 산 다웠으며
온 산 뒤덮은 마삭줄 푸른 기상은
평민들 생명력만큼 신묘스러웠다
유난히 갈림길 많아 들고남이 자유로워
맘 가는 대로 무성한 숲길 거닐다 보면
진정될 기미 없는 오미크론 변이로
꽁꽁 얼어버린 서민들 태산 같은 걱정
언제나 숨통 트일지 귀 기울어졌다
원치 않은 상황 얽히면 잠시 멈춰
망중한으로 자연 품에서 사색하며
영혼 맑히는 누림은 심신의 최고봉이려니
멀리 보고 재충전하며 살아볼 일이다
이 산은 천연 요새 특징을 다 갖추고 있어
그 당시 고립되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며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순전히
필자의 상념에 의존하여 일갈한다네
6
계족산 깃대봉
푸르른 기운 가득한 어느 날
마사치재에서 봉우리 향하는데
저만치 산 초입에 우뚝 선
붉은 소나무 기운 우렁차
새롭게 각오 다짐해 보았다
철쭉향 물들었던 길 오랜만에
더듬더듬 얼마나 올랐던가
측백나무 산림욕 단지 만나
여유 부리다 쉬엄쉬엄 걸어
올망졸망 낮은 키 산죽밭
기상 펼친 선비 분위기 누리다
정상 눈앞두고 경사지 버거울 즈음
여러 줄 흰구름 띠 마중 나와
시 한 수 나지막이 읊조리다
깃대봉 새 기운 양팔로 안았다
생명수 같은 본원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여정에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던
자연은 건강 최고봉이며
영감의 순수한 원천이련가
선인들이 오르고 내렸던 옛길
진중하게 걸으며 영혼 맑혔다
7
심원에서
최영숙
깃대봉 아래 옹기종기 첫 동네
동천 발원지 흐르고 흘러
사유의 풍족함 누림으로 이어져
한가득 순천만에 안겨주네
아무도 측정할 수 없는 물속
산천초목 젖줄로 생기 돌고
굽이치는 물언덕 만나면
하늘 품 둥글고 납작하게 돌아
생명의 근원 물은 삶의 터전
산골 사계절 마르지 않는
맑은 계곡만 있어도
자연에 묻혀 소박한 삶
뿌리내리며 살 수 있다지요
물길 따라 청정한 공기 마시며
줄곧 숲길 오르내리고
가끔은 남도 삼백리 길 걷다
백의종군로 님의 영혼 읽히네
8
불일암을 오르며
삶의 여백 찾아
성근 눈 오고 바람 부는 날
낙엽 밟으며 귀나 씻을 겸
무소유 길에 들었다
올곧게 뻗은 색다른 삼나무 품 지나
대나무 숲길에서 바람처럼 머물다가
향목련 아래서 두 손 모아
비움 의미 새겨보았네
홀가분한 빈 마음으로 둘러보고 도량에서 마주하는 선객 있어
거리두기 위해 잠시
텅 빈 겨울 텃밭 언저리로 비껴 섰는데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젊은 승 성급한 목소리 걸렸지만
저의를 모른 시선의 간극이려니 이해했다
알맞은 물의 온도로 우려낸 신이화차를
여법하게 나누던 친구가 그리운 날이었다
흐름에 맞게 의중을 알아채는
반야의 향기 있었으면 좋으련만
9
다솔사의 겨울
꽃바람 온 듯 포근함이 선물로 준 하루이련만
찬바람 불고 낙엽 진 길 외롭고 쓸쓸하다며
겨울을 유난히 타는지 절절매고 심드렁해 보여
기꺼이 위로하고자 평온한 가람 단걸음에 들었네
초입부터 휘어진 키 큰 소나무들 도란도란 정겹고
그 아래 납작 엎드려 내려놓은 듯 자연에 순응한
마삭 넝쿨이 어서 오라 손 내밀어 가던 길 멈춘 채
벤치에 앉아 눈빛 나누니 하심 할 맘 절로 들었네
층층이 놓인 돌계단 한 발 한 발 올라설수록
허울 좋은 겉치레 하나씩 벗은 듯 가벼워져
담벼락 기왓장만큼 쌓인 지난날들의 발자취
얽매이지 않고 누린 여유는 값진 보석처럼 느껴지네
심신 강건할 때 자유로운 여행 동행할 나날
한 치 앞 모른다지만 어림짐작 십 년 안팎이던가
담소 나누며 걷기 위해 호젓한 산책로 들어서서
서두르지 않고 자연과 호흡하며 오르다 내려왔네
맑은 영혼 시로 노래하고 삶을 사색하는 이여
이슬 맺힌 풋풋한 손길 온정의 벗 곁에 있고
만물 소생하는 따사로운 봄은 여지없이 오려니
허허로운 가슴 두렵다 말고 부디 활짝 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