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웃교회의 어느 장로가 조문을 가서 그 교회 목사의 안내를 받고 위문을 하였다. 『이 분이 미망인 되신 분입니다.』소개를 받은 그 문상객은 『얼마나 슬프십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소개와 인사는 우리 한국교회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깊은 생각을 기울이지 아니한 경우 매우 자연스럽고 정중한 소개요 인사로 보인다.
그러자 조금만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범하는 중요한 실수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명복이라는 말과 미망인이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의 언어는 이 땅에 수천년 동안 자리잡아 온 무속과 불교와 유교와 같은 종교로부터 유래한 언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하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타당하지 않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된다.
1.'명복'이라는 말
앞에서 고인을 위하여 사용한 명복이라는 말은 우리의 언어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린 단어이지만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표현이다. 이 말은 순수한 불교의 교리와 연관된 단어이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가게되는 곳을 저승이라고 일컫고 이 곳을 명부라 한다. 이곳은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는 듯을 가진 말이 명복이란 단어이다. 생각하면 우리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가정에 가서 불교의 진리를 확인해주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인사말을 찾는다. 여기에 대하여 목회의 원로들은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또는 『참으로 뜻밖의 일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그 때 상주는 『죄송합니다』『감사합니다』로 답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이다.
2. '미망인' 이라는 호칭
이 말은 흔히 사용하는 말로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말의 배경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몹시 꺼리고 있다. 이유는 이 말의 뜻이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인 인 동시에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망인이라는 말은 순장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순장이란 어떤 죽음을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체와 함께 묻는 장례풍속을 말한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와 이집트를 비롯하여 신라의 지증왕 3년 (주후502년) 에 이르기까지 존속했었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의 배경을 이해한다면 교회에서 미망인이라는 호칭은 매우 부적절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순장제도는 하나님이 생명을 개체로 창조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기독교 진리를 거역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현대인의 감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만약 이 말을 풀어서 남편이 죽었기에 마땅히 죽어야 헐 몸인데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위로는 커녕 어색함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제는 한 마디의 언어에서도 기독교와 대치된 표현들을 버리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