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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오늘은 당신이 메인입니다 영화음악가 조성우의 일본 콘서트 동행기 | ||
[필름 2.0 2006-01-03 18:20] | ||
한국영화에서 '음악감독'이라고 불린 최초의 영화음악가 조성우가 12월 17, 18일 일본 도쿄에서 대규모 영화음악 콘서트를 열었다. 조성우 영화음악의 어떤 어떤 박력, 어떤 고집, 혹은 어떤 청승을 본지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기자ㅣ밤이다. 도쿄다. 호텔 방 안이다. 친구 셋이 나가고 맥주 여섯 캔이 들어왔다. 영화음악가 조성우는 감기약을 먹고 맥주를 들이켰다. 일제 맥주는 맛있어도 일제 감기약은 잘 듣는 것 같질 않다고 했다. 하지만 모를 리가 없잖는가. 약은 술과 함께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렇지만 알잖는가. 큰 공연을 앞둔 조성우가 마음 둘 곳은 술뿐이라는 것을. 친구들은 떠나고 기자가 들어왔으니, 잔을 비워야지. 조성우가 감기약 포장지를 갈기갈기 찢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요즘은 정말 힘들어요. 제 얼굴에 점 좀 보세요.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스트레스가 워낙 많으니까 점이 다 생긴 거예요." 과연 많기는 했다. 그래도 난생처음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졌다거나 주름이 늘었다는 사람은 만나봤어도 점이 생겼다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눈치 없이 웃을 순 없었다. 오늘 아침 조성우는 지독한 몸살 감기와 더 지독한 스트레스로 거의 못 일어날 뻔했다가 간신히 리허설을 마쳤다. 오전부터 시작된 7시간짜리 리허설뿐 아니라 리허설이 끝나고 난 후 3시간짜리 나머지 공부까지 했다. 리허설 도중 조성우의 피아노 연주가 자꾸 '삑사리'를 냈기 때문에 지휘자와 피아노 개인 교사는 조성우의 몸 상태를 봐줄 형편이 아니었다. 진땀 나는 리허설, 측은한 나머지 공부로 기진맥진해진 '한국 영화음악계의 대부' 조성우의 방으로 찾아가 오밤중 인터뷰를 하면서 "감독님, 내일 공연인데 술 그만 하시죠"라고 말할 순 없었다. 함께 마시는 수밖에.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공연 역시 음주 공연이 되리라.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오사카, 나고야, 도쿄를 순회하며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외출>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Korean Cinema Music Concert'를 했을 때, 떨리는 가슴을 달랜다며 위스키 딱 한 잔만 하겠다던 조성우가 결국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무대에 올랐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터였다.
데뷔 11년만에 닥친 우울 조성우는 영화음악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철학과 82학번 동기인 허진호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단편영화 <고철을 위하여>의 영화음악을 시작으로 올해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 <외출>까지 30편이 넘는 한국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본격적인 상업 영화 <런 어웨이>부터 꼽아도 10년간 채워진 필모그래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육중하다. 조성우의 필모그래피가 육중한 동시에 출중할 수 있던 까닭은 그가 순수 창작 음악인 '오리지널 스코어'를 한국영화에 뿌리 내린 장본인이라는 데 있다. 흔히 '조성우 출세 3부작'으로 불리는 1998년 발표된 3편의 멜로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 <정사> 이후 조성우는 줄기차게 창작곡을 고집했다. 당시만 해도 음반 회사에서 자신들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곡을 쓰는 조건으로 OST를 제작해 영화음악 시장이 팝 마케팅 시장으로 전락하는 분위기였다. 조성우는 팝송 하나 쓰는 건 관례인 선곡 중심의 한국 영화음악 풍토를 바꾸느라 악전고투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선물> 편집기사가 가편집 상태에서 노르웨이 출신 뉴 에이지 뮤지션 시크릿 가든의 음악을 한번 넣어봤는데 분위기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프로듀서는 조심스럽게 시크릿 가든의 음악을 써보자고 조성우에게 말했다. 조성우는 "도대체 작곡가가 뭐냐? 시크릿 가든이 우리 음악을 연주하면 몰라도 기존 음악을 쓰는 게 말이 되냐?"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은 다음 한번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시크릿 가든에게 곡을 보내 30초도 안 걸려서 "음악이 너무 좋다. 하고 싶다"는 답변을 받았다. 오리지널 스코어에 대한 조성우의 애착은 때로는 지나친 강박으로 나타났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엔 카페 장면이 있었다. 조성우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스스로 만들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엔 여고생들이 합창하는 장면이 있었다. 조성우는 가스펠풍 합창곡을 스스로 만들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생각하자면 창작곡이 아니라 기존 음악을 쓰는 게 맞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순도 100%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선언했던 조성우는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그 당시에는 영화음악 시장이 작곡가 시장이 아니라 팝 시장이었으니까 극단적인 마음이었어요. 작곡가 시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 때문에 타협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친구인 (조)영욱(<접속> <클래식> <올드보이> 등 절묘한 선곡으로 명성을 쌓은 영화음악가)이도 되게 미워했어요. 나는 카페 음악까지 돈 들여서 만드는 데 말야, 걔는 선곡해 가지고 돈 안들이면서 음악하고, 판 팔아서 돈도 벌고.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이라는 게 꼭 작곡일 필요는 없는데 그땐 그랬어요." 그땐 그랬을 적에 올드 팝이나 인기 가요 대신 엔딩 크레딧에 주제가로 쓰기 위해 만든 곡이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다. "현실적으로 전부 연주곡만으로는 갈 수 없으니까 만든 거죠. 내가 안 만들면 호시탐탐 주제가 하나 불러서 뮤직 비디오 싸게 만들려는 가수가 치고 들어오니까."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야 노래방에서도 히트한 애창곡이지만 최근 조성우가 지어낸 어떤 노래는 개봉도 하기 전에 '없던 일'이 됐다. 바로 <형사 Duelist>(이하 <형사>)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기로 예정됐던 하지원, 강동원의 '러브 송'이다. 이 노래는 기자 시사 후 만장일치에 가까운 악평을 받아 일반 공개 시 가사를 삭제했다. "듀엣이 아니라 같은 코드로 진행되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음악을 톱니바퀴처럼 맞춘 거죠. 스크린 앞쪽에선 하지원 노래가, 뒤쪽에서는 강동원 노래가 동시에 나오게 해서 '대결'이라는 주제를 살리려고 했던 건데 그 실험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올해 조성우는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얻은 후 처음으로 어느 음악상 후보에도 못 오르는 수모를 겪었다. 이명세와 허진호의 신작이 동시에 개봉한 해였으므로 조성우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올해가 저한테는 음악적으로 최고의 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최악의 해가 됐죠. <형사>나 <외출>이 받은 평가를 모두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개봉 직후엔 정말 우울했어요. 이게 올 연말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예요."
친구여, 내게 힘을 주소서 영화감독 허진호는 조성우보다 하루 늦게 도쿄에 도착했다. 그와 동행한 M&F의 음악감독 김준석(<결혼은, 미친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등)은 하네다 공항에서 허진호를 환대한 일본 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록 열두 명에 불과했지만 <외출> 열기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12월 17일 첫 번째 콘서트에서 허진호라는 이름이 소개되자 "와~"하는 환호성이 터졌다. 조성우는 23년 묵은 친구 허진호가 정말 고마웠다. "내가 진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외출>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일본에 오고 싶지 않을 텐데 '야, 우정이 무섭다' 그러면서 허락하더군요." 콘서트 중간 마련된 미니 토크쇼에서 허진호와 조성우는 술 마시고 등 두드려주던 철학과 새내기 시절부터 <고철을 위하여>로 함께 영화를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된 길을 간단히 술회했다. 내년 개봉할 허진호의 네 번째 장편영화도 조성우가 함께한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구자범은 지난 10월 베를린, 뮌헨 등과 함께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독일 하노버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 상임지휘자로 선출된 젊은 마에스트로다. 유럽 정상의 오페라극장에서 한국인이 상임지휘자, 그것도 수석 상임지휘자가 됐다고 해서 얼마 전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조성우와는 연세대 철학과 7년 후배로 지난 일본 순회 콘서트연에 이어 이번 콘서트에도 지휘자로 나서게 됐다. 조성우는 후배 구자범이 정말 고마웠다. "자범이 한테 제가 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 복인 것만은 확실해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지휘자인데, 저만한 지휘자를 구한다는 게 큰 복이죠." 구자범은 하루하고 반나절의 짧은 리허설 동안 70인조 편성의 도쿄 뉴시티오케스트라를 특유의 카리스마로 휘어잡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옹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이번 콘서트에 참여했다. 장윤정의 <어머나> <짠짜라>를 비롯해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등 우리가 듣는 가요의 아코디언 연주는 99% 심성락 옹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성우와는 <봄날은 간다>와 <인어공주>에서 멋진 호흡을 보여 준 인연이 있다. 조성우는 선배 심성락 옹이 정말 고마웠다. "지난 도쿄 공연 때는 20년만에 따님을 만나셔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올해 일흔이 된 심성락 옹은 젊은이가 들어도 무거운 아코디언을 양 어깨에 지고 약지 손가락 하나를 못 쓰는 채 아홉 손가락으로 멋들어진 연주를 펼쳐 갈채를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은 맞으면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하곤 한다. 친구가 함께 하면 괴력은 더 해진다. 지난 9월 <외출>과 <형사>를 개봉하고, 10월 일본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뒤 서울로 돌아가 11월 제작자로 나선 <사랑해 말순씨>를 완성해 개봉하고, 12월 빼먹은 강의 일수를 채우느라 보강과 기말고사를 간신히 마치고, 대표로 있는 영화음악 전문회사 M&F의 연말 결산에 매진하다 이번에 도쿄 행 비행기를 탄 조성우는 거의 끌려오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사이 공연 준비차 또 내년에 개봉할 일본영화 <출구 없는 바다>의 제작진 미팅 및 촬영장 방문차 한국과 일본을 오간 것도 여러 번이니 몸과 마음이 안 지쳤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아프고 지치고 우울한 조성우 하나를 믿고 여기까지 온 친구가 허진호고 후배가 구자범이며 선배가 심성락이다. 그의 영화음악에 참여했던 이승열, 류, 러브홀릭, 우성민 같은 뮤지션이 무대에 함께 올랐으며 무대 뒤와 객석에선 부모와 형, 아내, 두 아들, 새끼 같은 M&F의 식구들이 가슴을 졸였다. 손예진, 강동원, 이영애, 유지태, 전도연, 이루마 등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이 공연의 성공을 기원했다.
마음이 기우는 음악의 강 첫 공연 시작 5분 전 장내에 시그널이 울렸다. 대기실에서 이발하고, 분장하고,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은 조성우가 공연장 입구에 섰다. M&F의 후배 음악감독 최용락(<선생 김봉두> <다섯은 너무 많아> 등)이 조성우에게 물었다. 이 뽑기 전에 마취는 했냐는 듯 당연하게 물었다. "술 드셨죠?" 조성우가 답했다. "아니, 오늘은 술 힘 안 빌리고 해보려고." 조성우는 빙긋 웃으며 무대로 걸어나갔다. 'Korean Cinema Music Concert
2nd',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 한류 시네마 콘서트'라고 번역된 이번 콘서트는 <외출> <8월의 크리스마스>
<형사> <인어공주> <봄날은 간다> 조성우 영화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징그럽다'는 것이다. 영상과 음악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기차 바퀴가 레일을 만나듯 좀처럼 화면에서 일탈하지 않는다. 좋은 말로는 영상과 조화롭고, 덜 좋은 말로는 음악 연출이 안정적이며, 안 좋은 말로는 영상을 떠나선 '매가리'가 없다는 뜻이다. 영화음악의 미덕이란 음악적으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문맥 안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는 조성우의 지론이 반영된 탓이다. 물론 친숙한 멜로디를 갖고 있는 그의 음악은 음향에 가까운 미니멀리즘 계열의 영화음악은 아니지만 확실히 귀를 잡아 끄는 데 용한 요즘 영화음악과 비교해볼 때 온건하고 고전적인 데가 있다. 워낙 관현악 합주에 적합한 멜로나 드라마 위주로 선곡한 데다 오케스트라 편성에 맞춰 약간의 편곡을 했기에 콘서트 전체는 서정적인 무드로 진행됐다. 게다가 영화음악 콘서트라는 컨셉에 맞춰 대부분의 곡들이 영화 하이라이트 동영상이나 해당 신의 영상과 함께 연주되어 감정 이입이 비교적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극장에서 영화 볼 때 듣던
조성우의 음악과는 경험의 차원이 달랐다. 영화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고 믿었던 게 떨어져 나와 뭉실뭉실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선율의 움직임이 속속
귀에 박혔다. 비벼서, 두드려서, 불어서, 때려서 나는 그 소리들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강하게, 혹은 약하게 진동을 하며 조성우의 음악
세계를 구현해냈다. 발견의 순간은 영화가 흥행이 안 돼서 별로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앵콜 무대는 한번으로 끝났고, 기립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게으른 박수는 아니었다. 얌전한 일본 관객들의 손 끝이 눈썹 위로 올라가 부딪혔다. 두번의 공연 모두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성공적인 공연을 치러낸 조성우에게 현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다. 여유를 찾은 조성우가 말했다. "무사히 끝났다는 게 기쁩니다. 내 음악이 훌륭하다는 걸 증명해서 기쁜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끝났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후배들은 "역시 감독님은 실전 '치질'이야"라는 농담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거벗은 두 송이 악몽 공연 전 조성우는 두 가지 때문에 괴로웠다.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런 콘서트를 꿈꿔왔다. 지난해 8월 KBS 교향악단의 제의로 이루어진 조성우 데뷔 10년 기념 콘서트는 여러 가지 사정상 조성우의 연주와 지휘가 빠졌다. 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해 '주는' 콘서트를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던 전무후무한 경험은 행복했지만 어딘가 성에 차지 않았다. 지난 일본 공연에서는 두 곡을 연주했고 보컬리스트가 노래하는 동안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에는 모두 네 곡을 연주할 기회가 마련됐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공연에 연습을 못했다. 너무 바빴다. 너무 바빠서 연습을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여기 오기 바로 전날은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음악가로서 여기 와야 하는데, 내 모든 걸 음악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음악에 집중을 못하고 다른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음악가로서의 자존심, 한국의 영화음악가로서의 자존심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무지 괴롭더라고요." 조성우를 괴롭힌 다른 하나는 <외출>이라는 후광이었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조성우 영화음악 베스트 DVD' 발매한 조성우는 12월 일본의 메이저 공연기획사 프로막스와 작크 코퍼레이션에게 콘서트 제안을 받았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되 각각 한번씩 진행하기로 했던 조성우 영화음악 콘서트는 꽤 오래전에 기획된 것이지만 한류와 <외출>에 힘입어 지금의 규모로 불어났다. 이번 콘서트만 해도 아사히신문과 위성 채널 WOWOW, 라디오 방송 TOKYO FM이 주최하고 닛폰방송이 후원하며 작크 코퍼레이션, 포니 캐년, 유니버설 픽처스 재팬, IMX의 협력으로 이뤄진 대규모 행사였다. 그런데 이틀 11,000석 중 5,000석의 좌석만 예매됐다. 절반에 못 미치는 수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만한 데를 잡았으면 좋은데 너무 큰 데를 잡아서 돈 받고 공연하는 입장에서 미안하네요. 내가 <외출> 콘서트로 하면 내 팬들이 오는 게 아니라 배용준 팬이 오는 건데 그렇게 하면 안 한다고 하고, 양심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용을 꾸몄는데 <외출>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말고는 많이 알려진 영화가 없어서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어느 곡 하나 반응이 시원치 않은 건 없었다. 며칠동안 조성우의 음악을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아예 그 속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화를 보고 그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지만 영화음악만 듣고 그런 생각을 하기는 드문 일이었다. 그런 불가능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TV에서 우연히 조성우의 음악이 들렸다. 12월 19일 방영된 MBC TV의 '스타스페셜 생각난다'의 앙드레 김 편에서 김봉남과 그의 새 엄마의 애틋한 사연에 <외출>의 'The Road'가 흘렀다. 저작권료는 안 주고 썼을 게 분명하지만 그렇게 우연히 듣게 된 조성우의 음악 덕에 잠시 또 기억의 극장에 들러본다. 어느덧 한국 영화음악계에서 부정의 대상이 돼가고 있을 만큼 크고 완고해진 이름 조성우. 지금까지 30여 편의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의 극장을 선사한 조성우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후배들과 경쟁하며 극장을 지으려고 한다. 유망한 철학도였던 조성우가 영화음악에 뛰어들 만큼 푹 빠졌던 반젤리스의 <블레이드 러너>처럼, 그 속에서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극장을.
사진 김춘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