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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속의 동화
괜찮아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동구는 날마다 엄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닌다.
수업이 끝나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구.
오늘따리 늦게까지 오시지 않는 엄마 때문에 동구는 슬슬 짜증이 났다.
‘니네 엄마 안 오셨니?”이웃에 사는 영석이는 늘 허름하게 하고
다녀서 아이들이 멀리하는 아이였다.
“응, 괜찮아. 곧 오시겠지.”하고
담담하게 말하자.
영석이는 주춤하더니 이내 가 벼렸다.
해가 산을 넘어가기 시작하지, 둥구는 자신의 처지가 속상해 눈물이 났다.
그런데 영석이가 다시 왔다.
“내가 업고 갈게.”
영석이는 축구 선수가 꿈인데 동구 정도는 업어야 되지 않겠냐며 등을
내밀었다.
망설이던 동구는 더 이상 혼자 있기가 싫어 영석이 등에 업혔다.
어색한 것도 잠시, 어느새 둘은 다정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발소 앞을 지날 때, 영석이가 말했다.
“내 머리에 땜통이 저 이발소에서 옮은 기계충 때문이야.
넌 저기 절대 가지마.”
이번엔 문방구 앞에서 아이들이 동구를 보고 놀리자
“이놈 새끼들!”하고 소리쳤다.
싸워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동구는 괜찮아. 그냥가자.”고
말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영석이, 자꾸 미끄러지는 동구의 팔.
오르막 내리막길은 번갈아 이어졌다.
그러다가 잠시 쉬기로 하고 한숨을 돌렸다.
영석이의 눅눅한 등, 축축한 동구의 가슴과 배는 땀이 식으면서 서늘해졌지만,
영석이가 동구를 업으면서 이내 다시 따듯해졌다.
둘은 제재소 앞을 지나며 나무 자르는 것을 구경했다.
“톱밥에 불붙여서 쥐불놀이하면 엄청 재밌는데.”하고 동구가 말하자
영석이는 “그래?”그럼 내가 톱밥 가져올게.”하고 어느새 제재소로
들어갔다. 톱밥을 한 줌 쥐고 나오려다 들킨 영석이는 아저씨들 고함 소리와
달려오는 진돗개 때문에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
동구를 두고 저만치 도망갔던 영석이가 미안해하며 다시 돌아와 동구를 업었다.
거칠게 뛰는 영석이의 심장 소리가 동구에게 들렸다.
둘은 어느 양옥집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며, 뽑기 장수 아저씨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후드득’ 갑자기 비가 내렸다.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린 동구와 영석이는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한 가운데 공동수도가 나타났다.
영석이는 물 받는 아저씨들을 비집고 들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빠진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 웃었다.
동구를 다시 업고 가는 길은 긴 오르막이었다.
동구는 조심하라고 영석이를 걱정했다.
엄마도 이곳에서 나를 업고 넘어졌다고.
동구는 엄마가 오랫동안 엉덩이가 아팠을 텐데 내색도 하지 않고
학교에 데려다 준 기억을 떠올랐다.
오늘은 서운한 엄마지만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날은 벌써 저물었다.
동구는 손에 든 영석이 가방마저 힘겨웠고 영석이는 기다시피 언덕길을 올랐다.
영석이가 동구를 업은 채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다 왔다!”
동구는 영석이가 한없이 고마웠다.
문득 동구가 물었다.
“넌 같은 반도 아닌데 왜 날 여기까지 힘들게 업고 왔니?”
“쓸쓸한 건..... 나쁜 거야.”
그러면서 할머니와 사는 영석이는 엄마가 있는 동구가 부러운 듯
의젓하게 답했다.
“엄마가 없지만, 난 괜찮아.”
멀리서 동구를 부르며 달려오는 동구 엄마가 보였다.
잡자기 동호가 열이 나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동구 엄마는 고마운 영석이에게 따듯한 저녁을 차려 주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씩씩하게 달려가는 영석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구 엄마는 동구에게 자꾸 미안하다고 말했다.
동구도 등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