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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9년 11월 넷째 주(11/23) 일요 정기 법회일입니다
일요법회가 있는 날이면 봉사하시는 거사님들께서 내외부(內外部)에 어김없이 불광 법회 안내 배너와 게시판을 설치해 놓습니다.
사 측에서, 토요일 요사채 벽면에 붙인 홍보물을 뗀 흔적입니다.
현관에서 법회보를 배부하며 안내하시고 사무국에서 법 회장님께서 법회에 참석하러 오신 혜담 스님, 지환스님을 맞이하고 계십니다.
업무에 바쁘신 사무국 봉사자 보살님들,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시는 분들은 분주히 보광당을 오가고 있는 일요법회 아침 풍경입니다.
떡과 생수 공양 보시하신 동대문구, 중구, 송파 1구, 송파 4구 보살님들께서 준비하신 공양물을 법우 형제들에게 제공하려고 일찍 보광당 입구에서 준비하고 계시고, 데스크 안내하시는 법당 안내팀과 새법우 교육팀이 각각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보광당 안에서도 차를 준비하시는 다도팀, 영상팀, 방송팀에서도 법회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벽히 끝냈습니다.
법회에 앞서 자광 거사님의 목탁에 맞추어 천수경 동송하고, 추담 거사님의 사회로 부처님 전에 헌향과 헌다를 올립니다.
오늘은 멀리서 법문하시러 오신 지환 스님과 각화사에서 오신 혜담 스님 두 분이 함께 자리해 주시니 법당이 꽉 찬 느낌입니다.
법문을 듣고자 일요법회 참석하신 불광 형제들은 진지하게 법회를 보고 계십니다.
금주의 법문 : 반야관행을 실천하면 행복한 삶이 열린다
금주의 법어 : 동화사 금당선원 수좌 지환스님
고맙습니다. 경을 읽을 때는 합장하십시오. '저의 본성품이 부처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거짓 나를 집착하고 경계를 보며 그에 따라 애착과 증오 원망 등 온갖 거친 마음과 행이 나오게 된다. 이와같이 번뇌를 쉬지 못하고 좋아함 즉 애탐과 싫어함 즉 증오가 있으면 끝없이 변화하는 경계를 보게 된다. 이로써 범부들은 수레바퀴 구르듯이 생을 거듭하며 육도를 윤회한다. 그러므로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본성을 깨달아 애탐과 증오가 쉬고 번뇌가 쉬어야 한다.' 합장 내리시고요. 원각경 정업장에 나온 말씀입니다.
우리의 본성품, 참마음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 참나는 부처님, 다시 말하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인데 깨닫지 못하면 내가 알고 있는 거짓 나를 집착하고 그에 따라 경계를 보게 됩니다. 그에 따라서 나에게 맞으면 애착하고 나한테 맞지 않으면 증오하고 갖가지 거친 말과 행동들이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번뇌를 쉬지 못하고 좋아함. 번뇌를 근본번뇌가 나를 모르는 것,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짓 나를 중심으로 해서 좋아함 즉 애탐 싫어함 즉 증오가 있게 되고 이것이 끝없이 애탐과 증오가 반복되는 가운데 변화하는 경계를 보게 되고 이로써 우리 범부들은 번뇌가, 무명이 사라질 때까지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인 것을 확연하게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자기 업대로 생을 받아서 육도를 윤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윤회에서 벗어나서 참으로 행복한, 해탈 열반의 삶을 살려면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인 자기 본성을 깨달아서 애탐과 증오가 쉬고 번뇌가 쉬어야 한다는 것이 원각경 정업장에 나온 말씀이면서 우리 큰스님께서 평소에 자주 인용하신 경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나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여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참나, 편의상 하는 말이에요. 참나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여러 번 반복 말씀드림으로 해서 이밖에 따로 참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비유를 말씀드리면 파도 입장에서 파도만 집착할 때 파도는 바다가 아니다. 파도의 바탕이 바다인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의 본성은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을 개념적으로만 알아서는 힘이 없고 확연하게 다 받아들여 느끼고 그 다음에는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버리게 되면 우리가 해탈하게 되는 것이죠. 해탈이란 말은 대자유 절대평화 참다운 행복의 삶을 이 자리에서 산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가지가지 번뇌 업장에 구속되어 있거든요.
이렇게 번뇌 업장으로 인해서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이것에도 걸리고 저것에도 걸리고 괴롭게 살고 있는 근본원인이 우리 생명의 실상인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게 치예요. 그러다보면 생명력이 나 중심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탐욕인데 탐욕대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안 되게 되어 있거든요 세상이치가. 그러면 그 반작용이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성냄, 진심으로 해서 이게 치탐진으로 근본 원인이 치에요. 탐진치가 발음이 쉬워서 탐진치라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치탐진이라 말해야 돼요. 치탐진으로 인해서 모든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 행동의 업보로서 우리의 괴로운 삶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데 괴로움만 있는 건 아니고 순간순간 즐거움이 있지만 그 즐거움이란 것도 무상해서 금방 사라져버리고 항상 괴로움이 바탕에 깔려있는 중생의 삶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거짓 나에 대한 집착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강한 집착 애착 때문에 다 자기 중심이에요. 다 자기 중심적이야. 이게 공부가 익어가면 익어갈수록 자기를 비우고 더불어 함께 가는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는데 공부가 적게 되고 수행이 덜 된 사람일수록 자기 중심이 강해요. 자기 애착이 강하고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하려니까 가정에도 불화가 일어나고, 사회에도 대립이 있고, 중생 사바세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뜻에 맞으면 기뻐하고 좋아하지만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대립하고 비유하게 돼요. 부처님께서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면 우선 애착과 증오, 자기 중심에 맞는 것은 애착하고 맞지 않는 것은 밀쳐내는 싫어함, 증오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놓아버려라고 말씀하십니다. 애착과 집착 미움과 원망 이 노여움으로 인해서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놓아버리라고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겁니다. 우리 광덕 법주 큰스님께서도 항상 하신 말씀이 대립 감정 갖지 말고 올라오는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아라 비워라 이런 말씀을 수시로 하셨어요.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나라고 할만한 실체가 없는 공부를 하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이 나라고 하는 것을 ‘누구나 다 나야’라고 하지만 사념처관을 하든지 뭘 하든지 조금만 깊이 사유하고 들여다보면 내가 있는 것 같지만, 나라고 하는 것은 여러 조건 인연이 화합해서 생명활동하고 있지 그속에 나라고 하는 실체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착각을 해버려요. 이 나라는 착각이 근본무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라고 할만한 실체가 없다. 이 무아의 도리를. 지난달에도 무아의 도리를 큰스님 말씀을 소개해드렸는데 오늘도 반복해서 반복학습이 중요하니까요.
항상 살펴봐서 ‘나라고 할만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이 법문을 통해서는 종합적인 말씀을 해야되기 때문에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하기는 힘들어요. 언젠가 특강이라든지 또는 구도법회라든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이런 취지를 심층분석해서 아, 나라는 실체가 정말 없구나. 인연이 모여서 나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체로 나라는 것이 없구나. 이게 무아의 삶이구나. 이런 것이 어렴풋이 알아서는 이 번뇌를 조복받고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내용을 삶 속에서 구현할 수가 없어요. 이런 것은 좀 특별한 기회를 빌려서 깊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종합적으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항상 바쁘기에 할 수 없다는 점을 양해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나라고 할 만한 실체 없다는 본래 무아도리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됩니다.
다시 말하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의 자성이 공하다. 불교의 핵심은 오온, 나라고 하는 것을 분석하면 오온의 인연으로 화합되어 있는 건데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자성이 공하다는 이 도리를 실천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거요. 그렇게 되면 오온이 정말 공하다는 것을 지혜의 눈으로, 반야의 눈으로 확연하게 조견해버려요. 그러면 모든 고통 벗어나 해탈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첫구절에 나오는 말씀이면서 불교의 핵심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나를 비우는 공부 나는 본래 없다는 것이 점점 심화되어야 됩니다. 아 나라는 건 정말 없구나. 무아행을 실천해야돼요. 점점점점 하다보면 어느날 비약이 오죠. 이렇게 해서 나와 상대방의 본성이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이 실체가 없는 무아도리를 알고 다시 말해서 오온의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깊이 알면 깨닫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깊이 통찰하게 되면 나와 상대방의 본성이 청정하고 원만한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을 이렇게 관해야 됩니다.
관(觀)은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마음에 깊은 마음으로. 우리의 참마음에는 지혜의 작용이 있어요. 지혜의 눈으로 ‘아 그렇구나’ 관하는 실습을 반야관이라 합니다. 오늘 반야관이 몇 번 나올 거에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청정하고 원만한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을 놓치지 말고 관하라. 이게 큰스님 가르침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본래면목, 참마음, 이것,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어요. 바로 이것, 보고 듣고 느끼는 당처 이것. 자성이니, 본성이니, 참마음이니, 진여니,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우리 큰스님은 너무 멋지게 바로 이것을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원만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한없는 공덕이 원만한,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다 하는 말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뭔가 확 느끼게 만들어주는 언어를 쓰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누구냐? 바로 나, 우리들. 내 생명이라고 하면 내 생명이 따로 있고 각각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그것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말이야. 내 속에 있는 뭐가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게 아니에요. 텅 빈 우리의 참마음 이것이 선(禪)에서도 그것을 밝히는 것이고. 요새는 양자물리학이 발달해서 물리법칙으로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짧은 과학지식으로 설명한다면 시간이 가니까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생명의 실상과 이런 세계의 실상이 따로가 아니에요. 하나에요. 그것을 본성이다, 불성이다, 지혜다, 본래면목이다고 했는데 우리 큰스님은 뭐라 했다고요? 바로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다.
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으로 인해서 나와 내 생명 작용과 온 우주 법계가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작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내 생명 상대방의 본성이 청정하고 원만한 무량공덕 생명임을 관하여서 감사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살지언정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은 내려놓아야 된다. 감사함으로 충만하면 우리 마음이 평화로운 삶으로 흐르고 미워하고 원망하면 괴로운 삶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쌓이고 쌓이면 마음에 병과 몸에 병이 오게 됩니다.
실예를 하나 말씀드리도록 하죠. 지금 살아계시는지 모르겠는데 강동구에 사시던 보살님인데 이분이 고향은 온양이고 결혼해서 남편 직장 따라 서울 와서 살게 되었는데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시동생 셋을 공부시키면서 살았어요. 불평 한 마디 없이 잘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좀 특별한 분인가 봐요. 칭찬 한 번 하지 않고 까딱하면 뭐라고만 해요. 이 며느리가 효부니까 인내하고 순종하고 참고 견뎠는데 그렇게 살다가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시동생도 결혼해서 분가해서 단촐하게 살게 되니까 그동안 긴장해서 살던 긴장이 풀리니까 그때부터 몸으로 마음으로 병이 되어서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고 온 몸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정신적인 불안감과 고통이 심해 이 병원 저 병원 다녔지만 낫지를 않고 사셨는데 당시 강동구 명등 보살님의 인도로 이 불광법회에 나오게 됐답니다.
이 불광법회에 나오면서 큰스님 법문도 듣고 광덕 법주스님이 상담도 해주셨는데 상담도 받고 해서 광덕 법주스님의 가르침 대로 기도생활을 하고 지냈다고 합니다. 큰스님 가르침대로 염불하고 기도를 하는데 어느날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염불하면서 지금 살아계시지도 않는 시어머니를 왜 이렇게 미워하지?’ 하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억압된 상태에서 살아서 병이 되었는데 큰스님 상담 받고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고 염불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노여움을 발견하게 된 거라.
물론 평소에도 시부모님이 밉고 괴롭지만 깊이 ‘아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지금 살아계시지도 않고 돌아가셨는데 나는 큰스님 가르침대로 기도하고 염불하면서도 이렇게 미워하고 노여워하지?’ 하면서 통찰하고 반성하는 거여. 큰스님 시키는 대로 참회하고 자기 마음 들여다보고 올라오면 내려놓고 일심염불하고 올라올 때마다 ‘내 참마음이 아니야. 내려놓아라. 일심 염불해라.’ 큰스님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기도 회향하는 날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지면서 내가 겉으로는 신중하고 잘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진심을 가지고 살았구나. 통찰하고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나서는 병이 말끔히 나았다고 해요. 전법활동도 부지런히 하면서 사셨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직접 그분 말씀을 들은 게 아니고 큰스님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미움 노여움 이런 것은 상대방이 나한테 어떻게 했든지간에 이유가 있든 없든간에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노여워하면 나한테도 해롭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위해서라도. 참 이게 어렵죠. 나한테 미운 짓을 한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나를 괴롭힌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수준이 아니면 그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분은 착한 분인데도 겉으로는 순종했지만 속으로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응어리진 것이 큰스님하신 대로 해보니까 그 응어리가 없어졌단 말이야. 원인이 해결되니까 몸도 낫고 마음도 상쾌해져서 건강을 회복하고 열심히 전법활동을 했어요. 기독교도 보면 기도해서 병이 나으면 간증하고 다니며 활발하게 활동하거든요. 이 보살님도 자기가 실험했으니까 더 열심히 전법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 제가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몸이 아프다가도 불광법회만 오면 몸이 안 아프대. 그건 이유가 있어요. 불광법회 오면 집단적인 긍정적인 에너지가 꽉 있어요. 우리 큰스님은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대해서 계속 역설하시거든요. 그러니 불자들이 항상 감사하고 찬탄하고 배려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니까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이 장, 불광법회가 집에서는 몸이 아프다가도 불광법회에 오면 집단 긍정적인 에너지가 동화되어서 안 아프대요. 이 얘기는 직접 들은 얘기여. 그래서 불광에만 오면 환희심이 나고 어두운 마음이 밝은 마음으로 바뀌고 하는 일이 잘되고 불화가 있는 가정은 평화롭게 되고 그런 기적같은 일들이, 사실 알고보면 기적도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아주 많이 불광 가족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보살님 얘기를 전해드리면서 이 보살님이 큰스님한테 들은 얘기이기도 하지만 저희도 반야행, 밝은 마음, 밝은 말, 밝은 표정, 밝게 살면 업장이 녹고 병도 낫고 행복된 삶으로 바뀐다고 계속 강조하셨거든요. 내가 약간 후회를 하는데 이 후회를 몇 번 할지 모르겠네요. 지난번에도 약간 했는데. 내가 큰스님 모시고 살았더라면 차라리 선방에 앉아서 참선한다고 용을 쓴 것보다 어쩌면 효과적으로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어쩌다 한 번씩 해요. 오늘 우리 형제들 보니까.
그리고 지난번 구도법회 정진에 제가 잠깐 참석을 했는데 참 표정들이 그 연세에 어느 보살님 얼굴이 환하시고 눈빛이 맑고 거기서 나오는 파장이 너무 좋았어요. 그분은 우리 큰스님 가르침 그대로 실천하신 분 같아요. 그래서 표정도 밝고 연세가 많은데도 굉장히 얼굴이 밝고 환하시더라구요. 말씀하는 말 속에도 광덕스님 말씀처럼 밝은 언어 에너지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제가 법문한 내용을 오늘 여러분에게 수정할 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잘못 말한 게 하나 있어요. 우리들이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을 수없이 외고 선언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반문해봤죠. 한 발짝도 못 나간 게 아니고 많이 나갔더라구요. 우리 불광 형제들은 알게 모르게 공부를 많이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그 말을 오늘 수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마음속으로 찬탄을 올렸는데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우리 불광형제들이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부처님 광명이 밝게 되어서 표정도 밝고 말도 바른 말을 하고 행동도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을 위하며 사는 우리 불광형제들이 참 많구나 그걸 그날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 여기에도 계실 겁니다. 우리 불광형제들이 그런 분들이라고 제가 오늘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박수)(보리광 보살님 녹취)
실제 얘기보다도 여기 이거보다도 더 중요한 얘기를 이제 이 보살님도 우리 스님한테 반복적으로 들었고 저도 반복적으로 들었고 여러분들도 아마 들은 분이 계실 거예요.
이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이제 부연 설명을 붙여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반야 관행을 실천하면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이 내용인데 이 반야 관행에 대한 실제 상황이 이제 총론적으로는 반야 믿음으로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믿고 보는 거예요. 사실이니까 믿음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믿었는데 사실이 아닌 걸 믿어 우린 여기서 맹신이라고 그래요 맹신 이건 잘못된 거죠.
내가 모르지만 사실인 것을 믿어 그것은 맹신이 아니야. 이 불교의 믿음은 알고 보면 그게 사실이야 진실이야. 내가 모를 뿐이지 그러니까 내가 모르지만 그 진실도 사실이니까 믿어 버리면 된다. 이 말이야 이것을 반야의 믿음이다 반야입니다.
즉 마하반야의 믿음과 반야 관을 가지고 이렇게 마하 반야 바라밀 행을 단계별로 자꾸 하다 보면은 그 수만큼 반야 관행이 반야심이 깊어지고 반야 관행이 깊어진 만큼 그만큼 다 행복하게 열린다. 확실한 겁니다. 이것을 우리 불광 형제들이 증명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예요.
그에대한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고 요점 되는 몇 가지를 부연 설명을 붙이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큰 스님한테 배운 내용을 제가 부연 설명을 한 겁니다.
첫째 이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상 같은 것이니 그걸 실체라고 여기지 말라는 가르침인 겁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것은 현상이예요. 우리 현상은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도 있고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도 있고 우주 현상도 있고 사회 현상도 있고 모든 것이 인연 조건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현상이에요
모든것이 이것을 화엄경 제37권 ‘십지품’에 나오는 게송하고 금강경 총 결론에 해당되는 一合理相分 제30분 應化非眞分 제32분 ‘응화비진’ 부분에 나오는 그 게송하고 이 두 가지 게송을 가지고 이 문제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화엄경 17품에 나온 게송인데 이 모든 현상은 사실 실제가 아니야 가상으로 있는 거야.
가상으로 마치 꿈에서는 실제 같지만 실제가 아니잖아요.
꿈을 가지고 메아리라고 물속에 달 같고 물속에 달이 있긴 하지만 그게 진짜가 아니잖아요.
실제가 아니잖아요. 그 물 속에 영상을 갖고 이 모든 현상에서 이 몸 마음 우주 현상 하여 모든 인간이 천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환영 같고 꿈 같고 메아리 같고 물속에 달 같고 거울 속의 현상과 같느니라 이게 화엄경 37권 십지품에 나온 게송이고요.
이와 똑같은 내용이 금강경 제32분 ‘應化非眞分’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그 유명한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라
이 게송이 금강경을 똘똘 뭉치는 게송입니다.
금강경을 다 모른다 하더라도 이 마지막 게송 하나만 확실하게 알고 이해하고 실천하면 금강경을 실천한 우리가 됩니다.
해석하자면은 일체유위법 일체란 그대로 모든 유위법이라 이 유위법에 대해서 개념이 잘 안 잡히니까 그다음 말이 와닿지를 않아요.
한글 금강경 보면은 유위법을 함이 없는 법은 이렇게 번역하는데 그래가지고는 우리가 와 닿지를 않아요.
그럼 유위법이라고 하는 건 뭐냐?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 조건으로 형성된 현상들 이거에요.
인연 모든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홀로 독자적으로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어. 모든 현상은 싹에 나타나는 싹, 또 한 현상인데 싹에 나타나는 현상도 그냥 독자적으로 싹에 팍 나올 수가 없어요.
이 조건들이 맞아야 돼. 이게 조건이 싹이라고 하는 현상이 벌어져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형성된 이때의 법은 진리라는 의미의 법이 아닙니다.
이때의 법이란 크게 세 가지로 이 법을 해석하는데 이때 일체유위법이라고 하는 법은 현상이라는 뜻이에요 현상.
일체유위법이라는 말은 인연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모든 현상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렇게 되어야 그다음 말이 연결이 되고 와닿습니다.
여러분 내 몸은 유위법에 들어갑니까? 아닙니까? 몸도 인연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들이야. 이 몸이 처음에 난자와 정자가 이렇게 인연 조건이 만나서 태 속에서는 어떻게 어떻게 인연 조건으로 해서 태아가 자라고 나와서는 어떻게 인연 조건이 이건 뭐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까 긴 설명을 하지 않기로 하고
이 몸도 마음이 마음이라는 것도 인연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우리 처럼에서 마음이 더 오래 있는 게 아니에요. 살다 보면 에너지로 뭉쳐 요즘은 지금 실체는 없어 그 마음도 현상이다. 이 말이야 정치적 현상이에요. 이런 조건과 저런 조건들이 만나서 부딪히고 버리는 현상 경제적 현상 모든 사회 현상 생활의 현상이잖아요.
일체유위법에 안 들어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딱 하나 깨달음 자리만 이것만 유위법이 아니야.
우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위법 속에 살지 유위법을 처음부터 만나는 거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건 유위법이야. 그런데 그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냐 여몽 꿈과 똑같다.
그다음 게송은 반복이니까 여몽하고 똑같고 환상 같고 십지품 게송하고 같은 내용들이에요.
이렇게 이게 반야 관행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에 대한 집착 내 것에 대한 집착 이 집착 때문에 분노가 더 강해지고 커지고 우리가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중생들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이런 덩어리 에너지 뭉치는 것들을 이 반야관으로 회수시켜버리는 거야.
이 모든 현상은 내가 한 생각이 이렇게 미운 마음이 올라온다.
화가 올라온다 또 나한테 잠재적으로 화를 냈던 그 버릇들이 좀 들어 있고 화낼만한 조건이 오니까 화가 확 올라와서 그 현상이잖아요.
이건 꿈 같은 거야 이렇게 관하면 화가 올라오다가 화에게 주의를 줘.
힘을 실어주면 화가 전복되는데 처음에 화가 어때? 활짝 올라오는데 점점점점 화가 커져 나중에 분노가 올라오는데 그때 알아차리고 이것은 꿈 같은 거야.
꿈 마음이야. 이 참 참마음이 아니야. 지금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 아니야.
이것은 내가 망상 업적으로 잘못된 그런 특권으로 올라오는 이건 뭐예요? 이게 유위법이야. 이거는 이동을 하네. 꿈 같은 거야. 진짜가 아니야. 이 참 마음이 아니야.
이렇게 말을 하면 화가 올라오다가 이제 에너지를 안 주니까 의식이 스르르 사라져 버려.
그럼 어떻게 돼요? 본래 마음 상태, 이 본래 마음은 지금 마음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3층 구조로 돼 있어.
3층 구조 본래 마음 즉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참마음이 바탕이고 살아오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이 에너지화돼서 잠재의식 속에 뭉쳐 있어.
에너지로 생명 정보로 그것들이 계기를 만나면 확 올라와 이제 이래가 올라와.
그런데 천상 이런 마음 잠재적인 마음 본래 마음 이렇게 3층 구조로 돼 있어요.
그런데 동시적이야. 이거 화낼 때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해서 나왔나요?
화가 내는 것 에너지 자체는 그 에너지 본질은 참마음 에너지야.
생명력이니까 그것도 생명력이야. 거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뭉쳐서 부정적으로 나타날 뿐이야. 이 화가 날 때도 3층 세 가지 그게 어울려서 나오고 모든 것들은 다 그래요.
우리가 마음을 내서 되는 일어난 마음인데 일어 난 마음이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 작용으로 바로 하면은 해탈이요 진리요 자비요 평화의 회복하는 그런 사람으로 이렇게 마음 작용이 전개됐는데 거기에 뭐가 무명 업장이 함께 뛰어들어서 천만의 에너지가 굴절되고 변질돼 가지고 탐진치도 범죄 작용으로 욕심으로 집착으로 애착으로 미움으로 원망하고 원망을 이제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부정적인 요소만큼 나타나는 모습이 달라.
평소에 계속 큰 소리 힘들어 밝은 마음 밝은 표정 밝은 마음 이렇게 살면은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의 패턴을 그렇게 만들어 가니까 생명력이 이렇게 밝게 나오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냐 우주의 법칙은 밝은 것은 밝은 것을 끌어당기는 법칙이 있고 그래서 이렇게 밝은 마음 밝은 행동으로 밝은 마음 밝은 행동으로 살면 반야행으로 살면은 몸에 아까 말한대로 몸에 병도 낫고 가정도 평화롭고 우리 사회도 밝아지고 행복한 삶이 열린다 이게 공식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현상의 꿈과 같고 환상 같은 것이니 실체 하지 말라 하는 가르침이고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것이 ‘나’야 이렇게 하거든. 이런 것들을 나라고 동요하지 마라. 이게 내가 아니다. 이게 내가 아니야. 쉽게 말하면 어떤 욕심이 일어나서 집착이 일어나서 그 욕심과 집착으로 끌려가 버리면 이거 내 마음이라고 끌려가 버리면 위기가 생기고 이걸 지켜보는 거야.
그래 이것은 꿈 같은 거야. 우리가 영상 같은 거야. 이건 내가 아니야. 이 마음도 몸도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이렇게 이걸 나하고 동일시하지 마라. 사실은 앞으로 내가 이제 법문을 오늘 두 번째인데 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이제 묘를 터득할 거에요.
뭐냐 하면 한꺼번에 많은 주제를 알려주려고 욕심 부리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의 준비하지 말고 50분 안에 완전 소화가 될 수 있는 것 정도로 해서 하면 좋겠어요.
하나는 이 학교의 모든 이것들을 진짜로 보지 마라. 하나는 내 몸과 마음을 꿈 같이 나라고 여기지 마라.
이것은 참 마음의 작용, 진리 작용이야.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의 작용으로서 지켜보는 거야.
말하자면은 우리들은 망상 경계에 빠진 것은 달그림자의 물속 달에 해당돼.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 참 마음은 달에 해당돼.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달을 잘 몰라. 물속에 있는 달그림자를 달이라고 알고 있어. 물속 달은 달이 아니야 이 말이야.
물속 달은 달이 아니야 이 말이야. 지금 우리는 물속의 달을 달이라고 붙잡고 사는 거야.
그러니 물속 달은 진짜 달이 아니다라고 하니까 이 반야바라밀관이다. 반야관 이렇게 관하는 알아차림은 뭐냐 달빛에 해당되는 거에요.
달빛 그림자 속에서 확 올라가 달빛으로 그걸 지켜본다는 거 그러니까 이렇게 알아차림은 반야바라밀 차원이 달라져 버려요.
그래서 달이 그림자가 갖게 되는 겪게 되는 달그림자로 사는 그런 입장으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런 입장에서 온갖 희노애락과 흥망성쇄와 권한을 초연하게 돼요.
달그림자는 이렇게 지켜보니까 달빛이 달빛을 지켜보는 입장이니까 달빛은 어디있냐.
달 달 달 알아차림 반야관 이것은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비유를 들면 달빛에 해당되는 거야.
달그림자가 아니고 이 내용은 중요한 내용이니까 다음에 상세하게 해서 채워주도록 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혜담 스님이 지난번에 여러 형제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절도 하고 참회도 하고 오늘 또 중요한 선언도 하고, 내가 알기로 이번에 문도 스님 입장문 있지 않습니까? 작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이해서 문도 입장문은 제가 주도적으로 했어요.
제가 초안도 잡고 주도적으로 했는데 이번은 혜담 스님이 초안도 만들어주고 정말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정관은 불광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왜 거짓말들을 하느냐 왜 이렇게 하느냐
손수 초안을 만들어서 보내고 해서 혜담 스님이 이렇게 큰 일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또 여러분들 마음 좀 격려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이도 많고 합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불광 정상화를 위해서 고생하신 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찬탄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러운 게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광덕 스님의 큰 가르침을 잘 받들어 행하자는 거 그거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그거 하나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형제들 너무 고생하시는데 이제는 저도 도와야 되겠습니다.(월광화 보살님 녹취)
♬ 찬탄곡 : 무소유의 노래 ( 덕신스님 작사. 김회경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갈 곳이 어디메뇨 머물 곳은 어디런가 대가사와 바루 한 벌 바랑에 넣었으니
번뇌의 봇짐인가 수행의 도구인가 수행자의 구도 행각은 걸림이 없어라
가질 것도 없었으니 버릴 것도 없다네 무소유에 집착하면 소유가 아니런가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바랑 메고 길나서는 나그네의 당당함에 무소유의 소식을 찾을 수 있었네
삼독의 고삐는 풀어서 놓아주고 해탈의 속박마저 벗으려고 하는구나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마음은 풍요롭고 머물지 아니해도 발걸음은 가벼워라
머물지 말지니 번뇌에 머물지 말며 떠나지 말지니 보리심 떠나지 마라
보리심 떠나지 마라
발원문 낭독 : 송파4구 명등 청정여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오늘 처음 법회를 찾아오신 새법우 환영식으로 환영 선물도 전달하고 법회장님과 사진도 한 컷 남겼습니다.
법회 후에 각각 법등모임으로 화기애애한 불광 형제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법등 가족들과 담소하고 계신 오늘 보광당 모습입니다.
일요 법회 후, 귀가하시는 형제들을 배웅하고 계시는 봉사자 여러분들의 공손한 모습, 더불어 모두가 행복합니다.
오늘도 대웅전에서는 법회를 마친 보살님들께서 금강경 독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긴 나무 의자가 새로 제작되어 편안한 모습입니다.
법회 후 오후 1시 30분에 보광당에서 명문 부회장님 사회로 제 5차 불교 기본 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1교시 강사 대자운 보살님 : 수행, 기도 및 보살행
2교시 강사 자광 연화부장님 :목탁 사용법
목탁 사용법을 배우고 계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쉬는 시간에 준비한 차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갖기도 하고, 2교시 교육까지 마치고 귀가하시는 법우형제들께 맛난 떡도 제공합니다.
법회 후. 그리고 교육을 마친 후 법당 정리 모습입니다.
토요일 오후, 청정팀 봉사를 보광당 부처님은 밝은 미소로 반겨주십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형제 여러분이 건강이 염려되어 따뜻하게 방석과 발판까지 준비해 보았습니다.
지난주, 조계사, 봉은사에서 1인 시위 정진 중이신 불광 바라밀 형제들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석촌 호수 주변으로 현수막을 설치하고, 남문, 동문, 북문에서 토요 시위 정진 하시는 보현행자들의 변함없는 신심으로 하루속히 불광 정상화가 이루어지기를 발원합니다._()_
|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큰스님의 상좌스님 두 분이 자리해주시니 불광법회가 한결 든든해보입니다 큰스님의 긍정적이고 밝은 반야관행을 설해주신 지환스님 감사합니다_()()()_
오늘도 경이롭게 이어지는 불광법회 사진 찍으신 지일심님, 법문 풀어쓴 보리광 월광화님, 종합하여 멋있게 일지 작성한 마음님 모두 불광법회의 보현행자들이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