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성경이야기 6>
가나의 혼인잔치
갈릴리 가나(Cana)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은 요한복음 2장 1절-12절에 언급된다.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몇몇 사도들과 함께 결혼식의 손님으로 참여했던 예수는 마리아로부터 마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일꾼을 시켜 여섯 개의 항아리를 물로 채우라고 한다. 이물은 모두 최상의 포도주로 변했고, 마지막까지 좋은 술을 내놓은 신랑은 칭송을 받는다.
이 기적 이야기는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스도의 세례와 함께 예수의 현현(Epiphany)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예수의 신성을 처음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물을 그리스도 피의 상징인 포도주로 바꾼 것이기에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또 혼인잔치는 혼인의 기쁨과 잔치의 흥겨움으로 하느님 나라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의 행위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이미지가 처음 등장하는 4세기에는 혼인잔치라는 배경보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예수의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포도주의 기적] 4세기 석관, 바티칸 박물관, 로마
[포도주의 기적] ca. 650년 상아,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런던
그리스도교 초기에 묘사된 가나의 혼인잔치는 물이 포도주는 변화하는 기적의 순간을 중요시하였기에 예수와 물항아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4세기 석관의 일부에 막대를 든 그리스도와 물항아리 세 개가 있다. 그리스도는 막대기로 발치에 있는 물항아리를 가리키는 혹은 휘젖는 모습인데, 물항아리는 한 개에서 일곱 개까지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성서에 언급된 대로 여섯 개가 가장 일반적이다. 9세기 상아조각에는 6개의 항아리가 등장하고, 하인들이 그곳에 물을 붓고 있다. 그리스도는 역시 짧은 막대기를 들고 있다. 이 6개의 항아리는 정결예식을 위한 물을 담기 위해 향연의 자리에 마련된 것인데, 6이라는 수는 완전한 수 7에 못 미치는 불충분한 수로, 메시아가 오시기 전 세상의 6년을 나타내거나, 유대교 율법(Torah)을 암시한다. 게다가 물이 이전에 맛보지 못한 최상의 포도주로 변한 기적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보다 새롭고 더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이는 특별히 혼인잔치의 기적이 유대교 지도자들이 탐탁치 않게 여겼던 갈릴래아 지방에서 일어났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결혼식의 주인공, 신랑-신부의 등장
10세기에 제작된 코덱스 에그버티(Codex Egbert)에는 예수에게 잔치집에 술이 떨어졌음을 알렸을 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2:4)라고 냉랭하게 말했던 아들의 말에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복음 2:5)라고 하인에게 이름으로써 아들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한다. 항아리는 셋, 셋으로 나누어져 예수와 마리아, 하인들을 구분함으로써 두 시점을 한 화면에 나란히 담고 있다. 우측의 마리아와 예수에 비해 좌측의 하인들의 모습이 작게 묘사되어 중요한 것은 크게 부각시키는 중세인들의 관습이 나타난다.
[카나의 혼인잔치] 960년경 채색필사, 시립도서관, 트리어
[카나의 혼인잔치] 1300~1350년 채색필사, 대영박물관, 런던
14세기 초에 접어들면 새로운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바로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이다. 중세에는 이 결혼식의 신랑 신부를 사도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로 동일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가나의 결혼을 육체적 결합보다는 신 앞에서의 신성한 합일로 여긴 성 제롬의 해석이 당시 황금전설을 통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 매리 여왕의 시편(the Queen Mary Psalter)에 그려진 가나의 혼인잔치에는 물항아리는 사라지고, 신랑-신부와 더불어 그들이 앉아있는 향연의 테이블이 등장한다. 신랑신부 옆에는 예수와 마리아가 앉아 있다. 즉 이 필사본에는 포도주의 기적보다 신랑-신부의 신성한 결합에 주요성을 두었다.
향연의 테이블
이제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프레스코로 그린 [카나의 결혼식]에는 향연의 분위기가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되었다. 뒤집어진 L자 모양의 테이블에 신랑과 예수는 왼편에, 신부는 화면 한가운데, 그 옆에는 마리아가 앉아 있다. 화면 왼편에 암포라 형태의 물항아리 앞에서 불룩한 배를 가진 시종장이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에는 지오토 특유의 유머가 베어 나온다. 특히 원근법에 따라 뒤쪽의 항아리를 보다 작게 묘사하면서도 여섯 개의 항아리를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묘사하였다. 향연의 시중드는 이들의 다양한 자세로 화면은 진짜 잔칫집처럼 활기가 넘친다.
지오토 [스크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화 연작] 1304~1306년
프레스코화, 스크로베니 예배당(아레나 예배당) 소장
지오토 [카나의 혼인잔치] 세부
지오토는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실내를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반면, 15세기 플랑드르에서는 당시 귀족의 인테리어를 가늠할 만한 화려한 실내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톨릭 양왕-페르난도와 이사벨-의 거장(Master of the Catholic Kings)으로 알려진 화가가 그린 [가나의 혼인잔치]은 1497년에 있었던 스페인의 왕의 아들인 주앙(Juan of Castila)과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언 1세의 딸인 마가렛(Margaret of Austria)의 결혼에 관한 암시로 해석되어지며, 이는 천장 바로 아래 이들 가문의 문장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잔치를 주관하는 시종장이 테이블 가운데 앉아있는데 매우 풍자적으로 묘사되었고, 그를 사이에 두고 마리아와 예수, 신랑과 신부가 앉아 있다. 테이블 오른쪽 아래에는 결혼의 충실함과 신의를 상징하는 개가 등장한다. 왼쪽 화면 전경에 있는 하인은 기적을 설명하려는 듯이 바닥에 놓인 흙 항아리를 가리키고 있다. 화면을 지배하는 섬세한 표현은 플랑드르 회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나, 주요 인물들 뒷자리에 있는 남자 손님들의 의상과 거친 표정 등은 화가가 스페인 출신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가톨릭 양왕의 거장 [카나의 혼인잔치] 1490년 경 워싱턴 국립미술관
제라르 다비드 [카나의 혼인잔치] 15세기경 패널에 유채,
100cmx128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 중 이 작품을 주문한 주문자이 등장한다. 바로 화면 맨 앞, 좌우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장 드 세다노(Jean de Sedano)이다. 신부는 왕관을 쓰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으며, 신랑은 그 맞은편에 있다. 마리아와 예수의 머리에는 황금색의 광배가 광채처럼 묘사되었고,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말하는 순간으로 여겨진다. 잔치가 벌어지는 공간 밖으로 멀리 보이는 풍경은 카나의 모습이 아니라 당시 화가와 주문자가 살았던 플랑드르 지방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또 화가는 테이블에 놓은 접시가 주석임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향연의 절정
가나의 혼인잔치는 16세기 베로네세(Paolo Verenese)의 작품에 이르면 향연의 절정을 맞게 된다. 지금은 루브르에 있는 이 작품은 원래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마지오레 성당 수도원의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1799년 루브르로 옮겨졌다. 가로x세로가 990x666cm에 다다르는 이 거대한 작품은 등장인물만 130여 명으로 실제 일어나는 결혼 피로연을 보는 듯하다.
베로네세 [가나의 결혼식] 16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666cmx990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마리아와 예수는 ㄷ자형의 식탁에 한 가운데 있지만, 수많은 하객들에 파묻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 작품이 화면의 맨 왼쪽 끝 테이블에는 당시 유럽의 거물급 하객들의 초상이 대거 등장하는데, 왼쪽부터 프랑수아 1세, 그의 부인 엘레오노고레, 카알 5세, 영국의 메리 여왕, 그리고 터키의 술탄이다.(그림1) 이들의 등장은 당시 교황령을 비롯한 여러 공국과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반도는 유럽 열강의 이권장악을 위한 각축장이었으며, 그 안에서 독립을 유지한 베네치아 공화국내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또 화면 중앙에 향연의 흥을 돋우어 주는 악사들이 등장하는데, 왼쪽부터 흰옷을 입고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베로네세, 그에게 귀속말을 하는 틴토레토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젊은 자코포 바사노, 그리고 붉은 옷을 입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티치아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그림2)
1 베로네세 [카나의 혼례식] 세부 – 거물급 하객들
2 베로네세 [카나의 혼례식] 세부 – 악사들
또 티치아노 뒤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마치 연회를 베푸는 주인공처럼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인물은 베로네세의 형, 베네데토 칼리아리(Benedetto Caliari)이다. 실내를 벗어나 야외에 차려진 베로네세의 향연은 종교적인 주제가 그 본질의 의미에서 벗어나 얼마나 세속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글 : 정은진 / 문학박사,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