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건 못 참는 나는 오늘은 지난 번 李叔蕃의묘를 답사한 후 검색을 하던 중 부근에 靜淑翁主 의 묘가 있다고 하여 운동삼아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자전거 도로에 불법주차한 대형차들 때문에 가다가 자주 자동차 도로를 침범해야 하는데 모든 차들이 자동차 경주장인줄 하는지 굉음을내며 있는 힘을 다해 총알 처럼 내달린다 이러니 맨날 교통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 같다
곳곳에 과속단속용 CCTV를 설치해도 무용지물 양심있는 운전자(?)들만 카메라 부근에서 속도를 줄이는 척하다가 카매라를 지나면 다시 달린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법이나 질서 지키는 걸 바보 짓인줄 아는 것 같다 그러니 경제는 세계 상위권 잘서의식은 꼴지서 몇째 참 챙피한 나라다
그러니 정신대 할머니를 위한다고 코 묻은 돈 까지 주어 모아서 꿀꺽하곤 국회의원되고는 변명만 늘어 놓는다
하여튼 위험하니 한손을 들고 서행신호를 하면서 어렵게 고개를 넘어 묘지 부근엘 가니 안내판도 없다 가다 보니 비숫한 곳은 입구가 잠겨 있다
동네는 인가는 없고 작은 공장들만 있으니 물어 볼 사람이 없다
웬 놈의 개 새끼들은 그렇게 많이 기르는지 공장 앞을 지나자니 무섭게 짖어대고 달려든다 공장지킴이용으로 기르는 것 같다
마침 밭에서 일하는 노인에게다가가 靜淑翁主묘의 위치를 물으니 내가 올라 온 길 옆에 있다고한다
靜淑翁主의 남편이 파평尹氏 尹燮이라는 사람인데 자기도 윤씨라 잘 안다고한다
사실 나도 靜淑 翁主가 누구인 줄 잘모르기에 검색을 해보았더니니 정숙옹주는 成宗의 막내딸이라고하는데 81살애 卒했다고한다
성종은 조선왕 중에 2번째 25명(1위는 태조 29명,3위 정종23명,세종 22명)으로 많은 자식들(아들16명 ,딸12명)을 둔 다복한 왕(?)인데 그 중에는 연산군 같은 망나니도 나와 나라를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聖君인 成宗의 얼굴에 먹칠을 한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공주와 옹주의 뜻의차이를 모른체 왕의의 딸은 공주나 옹주로 부르는가 보다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알고 보니 王妃 낳은 딸은 公主 ,後宮이 낳은 딸은 翁主라ㅗ부른다는 걸 이제야 알고나니 좀 창피한 생각이 든다
동네노인에게 내친 김에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의 묘소 위치를 물으니 오던 길로 쭉 올라가면 길이 산등성까지 나있는데 올라가면 된다고 하기에 자전거를 끌고 어렵게 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에 오르니 녹음 속 산속이라 종로에서 김서방 찾기다 마침 지나가는 등산객이 있기에 물으니 이 산 아래로 내려가 다른 능선에 있다고 알려준다
언덕을 한참 내려 가니 시흥 중앙공원이 나오고 永慕齋라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光海君의 丈人인 柳自新 의 齋室이라고한다
그래서 齋室안으로 들어가 보려니 문이 잠겨 포기하고 류자신 묘소로 가려니 또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한다
나무계단으로 된 가파른 언더길을 한참 올라가니 마침내 산 능선 줄기에 류자신일가의 묘소가있다
무지한 내가 한눈에 보아도 명당자리다
柳自新 모소를 답사 후 다시 밑으로 내려와 아까 내려온 언덕을 올라 처음으로 아까 올라 온 오솔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는데 무척 위험하다 생전 처음 짧지만 산악 바이크를 경험했다
오던 길을 내려가다가 정숙옹주의 묘입구에서 철조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언덕길을 한 참을 올라 묘소를 답사했다
문득 오늘은 오래 된 朝鮮 시대의 한 자리씩 한 사람들의 묘소를 방문하면서 한 사람은 왕의 장인으로 화려한 세상을 살다가 몰락 한 후 생을 마감을 했고 한 사람은 왕의 딸로 늦게까지 부귀를 누리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무덤 앞에서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이 땅속에 누워있다
문득 海南 頭輪山 大興寺엘 갔을 때 境內에 안내판에서 본 西山大師의 해탈시 詩句가 생각 난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 남이고(生也一片 浮雲起)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死也一片 浮雲㓕)
죽고 살고 오고 가는 것이 모두 그와 같도다 (生死去來亦而然)
光海君의 丈人인 튜자신의 재실인 영모재 안내판 재실은 문이 잠겨그냥통과
맨 꼭대기에 위치한 류자신의 아버지 류딤의 묘
아버지의 묘의 비석인데 큰 벼슬 한 자리하신 분인듯 이름은 잘안보이고 직함과 柳公之墓라고만 쓰여있다
산 위쪽 부터 아버지 ,작은 아들 ,큰아들, 류자신의 묘 순서로 배열 되어있다
작은아들이 먼저 사망한것 같다
류자신묘의비석
류자신 선생 묘소에서 바라 본 시흥시
문의한인 내가 보아도 좋은 묘자리다
잘 나가다 파장에 광해군 때문에 망했는데 사실 광해군은 서자로 임진란때는 왜적을 물리치는 데 일조했고 왕이 된후에는 等距離 외교로 청나라와 좋은 관계를 이어 간 나름대로 괜찮은 왕인데 쫓겨난 원인도 그 놈의 세력을 잡으려는 당파 싸움때문인데 요새도 서로 정권을 잡으려 헐뜯고 비방하는 골이 꼭 이와 깉다
문득 잠실 에있는 삼전도비 생각이 나는 데 요새 중국 시진평이와 트럼프가 문가 한테 누구 편 들 거냐고 공 갈치는 걸 보니 그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난다
역사는 되풀이돤다고 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 생각나고 잘못 된 외교로 청나라의 침입을 자초한 仁祖의 치욕적인 三田渡의 三跪九叩頭도 문득 생각 나는 건 웬일인지?
*三跪 九叩頭(삼궤구고두)
3번 무릅 꿇고 아홉번씩 머리를 땅에 대는 절 인조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는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의 내용도 생각이 난다 )
靜淑翁主의묘
靜淑翁主와 남편 尹燮의묘비
정숙옹주와 남편 尹燮의묘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59년간 과부로살다가 81세로 졸하였다고한다
자손이없어 남편의 조카를 양자로 입적 했는데 양자가 정숙공주보다 일찍 저세상으로 갔다고 하는데 정숙 옹주묘지 부근에 아들을 포함 손자의묘등을 포함한 윤씨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고한다
합징이 아니고 봉분이 따로있다 아마 남편이 오래전에 먼저갔기때문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