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의 빛(김셀라)
요한복음 8:12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에 대해 말씀이라고 시작한다. 요한일서 1장 5절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니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라고 선포하고 있다. 요한일서 4장 8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창조 첫날에 빛이 있으라 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빛과 세상의 빛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빛은 본체의 빛이고 세상의 빛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긴 피조물이다. 세상의 빛과 하나님의 빛은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빛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사야 60장 1절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라고 선포한다. 우리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우리 속에도 빛이 생겨 그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없으면 우리는 어둠속에서 사는 것이다. 즉 죄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하나님 닮기를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빛이 오면 혼돈에 질서가 생기고 공허에 의미가 부여되 헛된 인생을 살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빛으로 모든 부정과 부패를 척결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세상에 빛이 한순간이라도 없다면 우리는 눈을 떠도 아무 소용이 없고 소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낮이 없어져 활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빛이 없으면 어둠을 타고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빛이 있으면 우리의 생각, 마음 모든것이 밝아진다. 빛이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따뜻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생명의 빛으로 우리는 실족하지 아니하고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며 주님의 인도를 받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살게되면 놀라운 형통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빛은 생명이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고 말씀한다. 이 생명의 빛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형제에게 미련하다고 하는 자
마태복음 5:21-22
형제에게 미련하다고 하는 자는 무슨 뜻인가?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보면 누구든지 아무런 까닭 없이 자신의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또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카’라고 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말하기를, ‘너, 어리석은 자야.’ 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라고 되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은 '형제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이 형제들은 육신의 형제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영어성경에 나오는 '자기의 형제에게' 라는 것이다. 즉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찾아오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참된 제자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형제에 대해 12장 49-50에서 말씀하셨다. 형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즉 불신자들에 대해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니고 같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다른 예수님 믿는 자들을 보고 미련하다고 하는 사람들 성령을 훼방 하는 자들, 성령 받은 자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결국 지옥불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다르다 라고 말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세상에서 어리석에 사는것이 낫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지혜를 따르면 참으로 어리섞은 자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속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비판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며 세상 지혜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들이 되야 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3. 예수님은 세상의 빛 (2)
요한복음 8장 12절
세상에는 사람이 만든 빛과 여러가지 다양한 빛이 있다. 그러나 이 빛들 이외에도 다른 빛이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도 아주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고 캄캄한 밤에도 다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을 모르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만드신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 몸 속 장부를 다 들여다 보시는 전지전능 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빛만 가지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 보이지 않는 죄까지 꿰뚫어 보신다. 사람이 말하지 않고 감추는 죄까지 다 보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밝은 빛 안에서는 아무도 거짓을 말 할 수 없고 속일 수 없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거룩할 척 할 수 있고 의로운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다.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한 모든 죄에 대해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죄가 숨김없이 다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 마음에 생각까지 다 들여다 보신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밝은 빛을 마음에 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아름다운 성결의 사람으로 변화 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에도 빛이 되어주신다. 아담이 타락하자 그의 육신이 죽기 전에 영혼이 먼저 죽었다. 영혼이 죽었다 라는 말을 성경에 다른 말로 보면 양심이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영혼은 양심이라는 말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할 때에 우리 속에 양심이 살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영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된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라고 말한다. 선한 양심이 살아나게 되면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 앞에 간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마가 다락방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였다. 방언은 영혼이다. 영혼이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죄도 모두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 방언으로 하나님과의 가까운 교통이 이뤄질 수 있다. 방언은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 할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고 은총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양심을 새롭게 만들어 주신다. 양심이 살아나게 되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힘쓰게 된다. 성령받은 사람은 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오늘 하나님의 빛을 받은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자.
4. 예수님은 양의 문
요한복음 10장 7절-9절
예수님의 문으로 드나드는 자가 어떤 복을 받는가 라는 말씀을 볼 때에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어떤 복을 받는가 하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문이시기 때문에 이 문이신 예수님으로만 들어가야 구원을 받는다. 교회만 다니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바울의 옥중서신 네 권의 책을 보면 그 중에 집중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바울의 육신은 감옥에 갇혀있지만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선포한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시기 때문에 그 문 안에 들어가 보호를 받고 있는 한 마리의 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중요한 말씀이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구원에 대해 확신을 주는 종교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제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다.
둘째 그의 문에 드나드는 자는 생명의 꼴을 먹는다 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양식은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부터 나오는 성경 말씀이다. 이것을 말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험을 받아야 한다. 셋째로는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목자가 양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처럼 예수님은 밤새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키고 보호하여 주신다. 넷째로는 양의 문은 양들만 다닐 수 있다. 목자가 인정하고 허락한 짐승만 양의 문으로 드나들 수 있다.
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성경에 문들에 대해 여러가지가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좋은 문들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첫 문은 창세기 28장에 나온다. 야곱이 형을 피해 외갓집으로 가다가 벧엘에서 밤을 지낼 때 꿈에서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하늘의 문이라고 말하고 그 곳을 벧엘이라고 지었다. 예수님은 천국의 문 그리고 하늘의 문이다. 이 두 문을 다른 의미로 말 할 수 있다. 요한 계시록 21장 27절, 22장 15절에 같은 뜻의 말씀이 나온다. 악인들 죄인들은 결코 천국문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 문의 열쇠를 약속하셨다. 말라기 3장 11절에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에게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지 아니하나 보라 라고 말씀하셨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증표이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좁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 하는 문은 좁은 문이다. 좁은 문은 회개의 문, 성결의 문, 순교의 문, 봉사의 문 등 많은 문들이 있다. 이 문들의 특징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좁은 문을 가셨다.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넷째, 누가복음 11장 52절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지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율법사들 또는 제사장들, 장로들 이런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게 하고 일반 가난하고 불쌍하고 배우지 못한 백성들은 알지 못하게 만들었다.
신명기 4장 5-6절.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 이 복을 지금 대한민국이 받고 있다.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가 승리하고 형통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