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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조합 대표
송 영
1
대동강의 물결은 노래만 하고 왔다.
질탕거리는 신사숙녀의 「배따라기」 노랫소리만 듣고 보아서, 그리고 젖어서, 유탕한* 기운에:찼었었다.
그러나, 보라! 들어라!
대동강의 물결소리는 변하여버리었다. 오열하는 사공의 탄식과 고기잡이 여인네의 가쁜 숨과 또는 청류벽 아래에서 땀 흘리는 석공(石工)들의 돌 쪼는 소리에 훌륭하게 변하여버렸다.
“이런 제기할 것, 언제나 이것을 면하고 만단 말인가?”
붉은 햇발이 동쪽 기슭을 혜치고 나올 때마다 이러한 탄식소리는 여러 석공의 입으로서 나왔다.
그들은 어디까지든지 그들의 하고 있는 생활을 싫증을 내면서도 또는 내어버리려고도 아니 하고 지내가는 모순을 가지고 산다.
과연 그들은 그와 같은 모순을 스스로 지어가지고 있나? 또는 막으려나 막을 수 없는 물결모양 같은 불가항력의 자연으로 가지게 되었나? 우리들은 가장 단순하게 그중의 하나인 젊은 석공 박창호의 지내가는 꼴이나 검사하여보자.
2
창호의 집은 모란봉에서 멀지 아니한 경산리 산언덕 위이다. 그 산언덕에는 커다란 과원이 있다. 그 과원을 거두어가며 지키고 사는 늙은 원정*이 있다. 창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펴지지 않는 꼬부랑허리를 펴가며 호미와 괭이와 또는 과일 따는 작대로 지내가며, 아들인 창호는 정과 장도리로 돌을 쪼고 다듬으며 또는 비문(碑文)도 새기고 지내간다.
창호는 처가 있었다. 이제 이십이 갓 된 젊은 색시였다. 그리고 작년에 갓 낳은 두 살 먹은 돌 안 아들이 있다. 그의 처는 구옥순이다. 역시 대동문 안 ×× 고무공장의 여직공으로 다닌다.
“벌지 않거든 먹지 말아라.”
이것을 그들은 스스로 실행하고 지내간다.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마땅한 일을 마땅치 않게 강박이 되어 지내가는 데에야 그들의 마음은 언제든지 쓰릴 뿐이다.
봄이다. 늦은 봄이다.
모든 것은 활개를 펐다. 푸르고 붉고 그리고 찬란하게……·하여간 자연만의 세상은 기쁨에 뛰었다.
대동문 아래 연광정 옆에는 커다란 석공장이 있다. 철재로 둥그렇게 둘러싸고 그 안에는 여기저기 비석과 대리석이 쌓여서 있다. 한편에는 나무로 지은 바라끄* 한 채가 있다. ‘××석공장사무소’라는 패가 붙이어 있었다.
돌을 다듬는다. 깨트린다. 또는 갈기도 한다. 새기기도 한다. 한 삼십 명은 된다. 대개는 사오십은 되어 보인다.
그중에 창호도 쭈크리고 앉아서 비문을 새기고 있다. 헌 양복저고리를 사무복 삼아서 입었다. 검정 바지에 고무신을 신었다. 머리에는 헐어빠진 캡을 쓰고 눈에는 헝겊으로 테를 싸맨 커다란 안경을 썼다.
그는 작은 키다. 얼굴은 동그랗다. 눈은 빽빽하다. 매우 소갈머리도 없어 보이고 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손가락집이 따로 없는 뚱그런 장갑을 한편 손에 끼고 가느단 정으로 비문글자를 새기고 앉았다.
그는 골몰하였다. 모든 사람들도 다 정신은 쪼고 갈고 새기는 거기에 통일되고 있다.
강가에는 옹기 실은 짐배가 닿아서 야단들이 났다.
머리에다 수건 쓴 아주머니들이 제각기 값싸고 좋은 것을 사려고 뱃전과 또는 뱃가에 둘러싸서 있다.
아이들……짐꾼…… 굵고 가는 말소리는 한데 합하여 와글와글한다. 강물소리는 없다. 잔잔만 하고 유유만 하였다. 다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철렁철렁하는 가는 물결소리를 멀리서 가지고 올 뿐이다.
와글와글 땡땡……·스르르르 딱 딱 그리고 어기여차 이것들만이 봄날 푸른 강가의 유유한 공기를 출렁거렸다 가라앉혔다 할 뿐이다.
그는 아침부터 큰 글자 다섯과 작은 글자 셋…… 모두 여덟 자밖에는 새기지를 못했다. 물론 다른 날보다는 매우 덜했다. 반도 못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 속히 하려고도 아니하였다.
손 과 눈과 또는 그의 몸 뿐만은 그를 기계와 같은 우상으로 만들었을 뿐이요, 실상 그의 풀린 물결 같은 호활한 마음은 다른 데로 다른데로 떠돌아다니는 까닭이다.
그의 마음은 오늘뿐만 아니었다. 언제든지 이같이 판 박아논 듯한 과도한 노력을 할 때에는 떠돌아다니었었다. 그는 하는 일이 비문 새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영세불망비’ ‘×공자선비’ 같은 것을 잘 새기었다.
이런 비문을 자기의 손으로 새기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 같은 비석 (?)이 자기 손 때문에 이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그는 언제든지 분하였다. 절통하였다. * 그래서 그는 그런 비문을 새길 때마다 그 비문의 주인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가장 엄연하고도 가장 비통하게 꾸짖었다. ‘영세불망* 이라니…… 너의 한 일을 오래도록 잊어버리지 말고 있었다가 뒤집어버리란 말이냐. 아주 이렇게 흥분된 소리로 포함을 쳤다. 그러나 역시 이것은 그의 생각만이었었다. 그러면 그날 저녁에는 삯전을 적게 받아가는 것이 그의 생각이 흥분되었던 보수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생각은 그전과는 달랐다. 얼마 아니 있으면 서울 올라갈 궁리 였었다.
씩씩하고도 무서운 그리고 열정의 모든 뜻 같은, 생활 같은 동지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생각이었었다.
혹은 연단에서도 보고 혹은 결의문도 낭독하여보았다. 혹은 벽력 같은 소리로 야지*도 해보고 혹은 큰 정략가의 명상 모양으로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간 그는 점점 깊이 빠져버린다.
회장(會場)은 변하여 ×× 회장이 되고 자기들은 승리를 축하하는 술잔도 들어보았다.
“나는 ×× 전에는 평양에 있는 석공조합원으로서 모든 같은 석공과 또는 비슷한 동무들의 똑같은 이익과 향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감옥에를 세 번이나 들어갔습니다. (더 비장한 소리로) 그래서 나의 어린 처는 그 사람으로서는 맡지 못할 흉악한 고무냄새를 맡아가면서 나의 늙은 아버지를 공양하고 나를 기다리다가 그만 원통하게도 원통하게도 영양 부족이 원인이 되어서 죽어버렸습니다. 춥고 더운 삼년 동안의 감옥생활을 하다가 나온 내가 처자와 부모까지 다 굶어죽은 것을 당할 때에 과연 이 가슴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그때는 말할 수 없이 나의 마음은 비장하여졌었습니다. 그저 두 토막의 송장이 되더라도 앞날의 승리를 향하여 돌진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와 같은 추억담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승리에 못 견디는 희열에 흥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는 쥐었던 정이 더 꽉 잡히었다. 섬뜩하였다. 그래서 그는 깜짝 놀랐다. 멀리 갔던 공상은 다시 공상 속에서 추억하던 옛날인 지금으로 돌아왔다. 승리를 축하하는 술꾼이었던 그는 승리를 기약하는 젊은 석공으로 또다시 변하여 버렸다.
그날 저녁 때이다. 보름달은 초저녁부터 솟아서 있다.
모든 석공들은 연장을 망태기*에다 넣어서 둘러메고 피곤한 빛으로 저희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들 사무실로 들어가서 쥔에게 인사를 하고야 간다. 그도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한 이 간쯤 되는 방 안에는 조그만 사선상* 하나가 놓였다. 그리고 사선상 위에는 금자 박은 장부책 몇 권과 조그만 손철궤 하나와 그리고 주문서 부스러기, 주판, 재떨이 따위들이 질서 없이 놓였다.
그 앞에는 그야말로 양돼지 같은 쥔영감이 앉았다. 아무것도 없고 배만 있다고 해도 옳을 만치 그의 배는 부르고 크다. 머리는 대머리다. 얼굴은 넓적이…… 게다가 테 작은 금테 안경을 써서 더 넓적하여 보인다. 떡 걸터앉아서 모든 석공들의 인사하는 것을 받고 앉았다. 일부러 안경 너머로 쳐다보는 그의 눈살은 능갈치고* 무서운 잔인성이 띠어서 있다.
창호가 막 인사를 하자마자 쥔은 손을 들어서 멈추면서
“자넨 잠깐만 있게, 점 말할 게 있네.”
매우 거북살스러운 소리다.
“네!”
그도 간단하게 말을 하고 매우 좋지 못한 기분이 되어서 서서 있었다.
모든 석공들이 다 간 뒤에 쥔은 더한층 얼굴이 이상하여졌다. 살기가 돌았다. 그리고 능멸하는 빛이 돌았다.
“자네, 그래 꼭 갔다 오겠나?”
그는 알았다. 물어보는 말이 어떤 것은커녕 물어본 뒤에 어떻게 하리라는 쥔의 마음새까지 알았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저 혼자 마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결정을 한 것을·…….”
쥔은 더한층 노하였다. 목소리는 짯짯하여졌다.* 그 뚱뚱한 몸뚱이에다가 대면은 그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고 짯짯만 하였다.
“아니 대톄 석공조합이란 것은 뭔가?”
그도 홀연히 마음이 굳세어졌다. 언제든지 삯전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던 쥔 앞에서 그는 엄연하게 한 사람이 되었다. 목소리는 떨렸다. 무거웠다.
“그건 별안간에 왜 물으십니까? 썩 쉬웁죠. 석공들이 모인 게죠.”
“그건 누가 몰르나.”
금방 해라로 변하였다. 이 세상에서 그중 분하고 보기 싫은 것을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같이 쥔은 매우 분노하였다.
“그 목적이 뭐냐 말야?”
그도 더 흥분이 되었다. 그와 쥔은 질서 있는 정비례적 분노에 흥분되어 간다.
“그 목적이야 물론 우리들의 향복을 위한 것이지요. 언제든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쥔은 책상을 딱 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향복…… 흥, 그래 멀쩡하게 남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모아논 것을 뺏어 먹는 것이 너희들의 향복이냐. ××주의니 뭐니 하는 것은 멀쩡한 도적놈들이야. 너도 젊은 녀석 이…… 아니 어떤 녀석의 꾀임에 빠졌니·…… 공연히 온공하게 시대를 맞춰 살어서 부모처자를 굶어 죽이지 말라 아니할 생각이나 해……·국으로.”
그는 불이 되었다. 그리고 벙어리가 되었다. 가슴에서 일어나는 불은 그의 말을 모두 태워버린 듯싶다. 다만 불뚝불뚝하는 힘줄과 번쩍번쩍하는 두 눈빛만은 무섭게 되었다. 쥔은 좀 언성을 낮추어서 어린애 가지고 말하듯이 좀 유한 소리로
“너 괜히 순히 이르는 것이니 다 그만두어라. 석공조합 대표가 다 뭐냐. 대표 노릇하면 누가 돈을 푹푹 갖다줄 주 아니…… 그리고 공연히 대표니 뭐니 해서 서울을 며칠씩 가서 있으면 그동안에는 네 집은 다 굶어 죽으란 말이냐?”
쥔이 좀 누그러지자 그는 돌연히 더 홍분이 되었다. 엄연한 소리로
“전 그런 말씀은 들을 줄 모릅니다.”
쥔은 그 소리에 또다시 분이 나서
“뭣? 그럼 꼭 가겠단 말이냐?”
“꼭 가지요.”
쥔은 별안간 외면을 하면서
“그럼 어서 가거라. 귀찮다…….”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너 생각해서 해. 가려거든 너는 가고 관계 끊는 심만 쳐라.”
그는 흥분된 가운데에서도 분통하여져서
“글쎄, 영감께 지가 거기 잠깐 갔다오기로 무슨 이해상관이 계십니까?”
“그래, 나는 이해상관이 실상은 없다고 그러자. 그렇지만 뻔히 너도 모르는 터도 아니고 하니까 너의 집안 사정을 봐서 그러는 말야…… 너 부모나 처자가 얼어 죽으면 네 생각은 시원하겠니.”
그는 또다시 험하여갔다. 일시 애상적이 되었던 그의 신경은 순전한 야수, 주린 야수의 부르짖는 그러한 험악으로 변하여버렸다. 그래서 가슴속에서는 소리를 치면서 피가 꿇었다. 머리는 전광* 같은 공상이 전광같이 왕래하였다. 그래서 말도 하기가 싫고 더 섰기도 싫었다. 그냥 딱 끊어서
“저는 꼭 갈 터이니까 그런 줄 압쇼.”
내어던지듯이 탁 쏘아 말하고 나왔다.
걸음은 매우 빨랐다. 분연하였다. 그리고 ‘그런 줄 아슈’ 하는 시위적 언사, 남성적 결기를 남기고 온 자기의 행위가 매우 장쾌하였다. 그는 이러한 장쾌한 기분에 도취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3
아주 캄캄한 밤이다.
창호가 막 집으로 와서 방문을 열었을 때이다. 방 안에는 같은 조합 대표인 김익진이란 젊은 동무가 와서 앉았다. 그와 김은 반가이 서로 악수를 하였다.
두루마기를 탁탁 벗어 내어던진 창호는 익진이와 손목을 잡은 대로 펄썩 주저앉았다.
“아니 오늘 꽤 늦었네그려.”
떠벌어진 소리로 쾌활하게 묻는다. 그도 저절로 웃음이 나와서 웃으면서
“그것 참, 오늘 또 재수 없었지.”
그의 말소리는 다시 힘이 있어간다. 익진이는
“왜?”
창호는 익진이에게 대면 매우 침착한 성격을 가졌다.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있게, 내가 말하기 전에, 자넨 왜 요새 볼 수가 없나?”
익진이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나?”
“그래.”
“흥 말 말게…….”
막 말을 벌여놓으려는 판에 방문이 열리면서 창호의 처 구옥순이가 들어온다.
머리에는 수건을 평양식으로 둘러쓰고 치마는 짤막한 검정 치마를 입었다. 누비* 처네*로 어린애를 둘러쳐 업고 손에는 벤또* 보자기를 들었다. 얼굴은 동그스름하고 코는 오똑하나 눈꺼풀은 은행꺼풀같이 얇고 눈동자는 수정같이 맑다. 어여쁘고도 영리한 얼굴이다.
그러나 누런빛과 검은빛이 둘러 있었다. 어린애 업은 어깨통은 앙
상하여 보인다. 소리 큰 기계 밑에서 얼마나 시달리었음을 말하고 있다.
원래 이 집은 대문이 없는 집이다. 과원 한편 구석에 서너 간 일자 집을 세워놓은 원정(園丁)의 자는 방이었던 까닭이다. 양쪽이 방이요 가운데가 부엌이다. 일자로 방문 셋이 앞으로 죽 달리었다. 그래서 이 집을 드나드는 문은 낮에는 객실로 쓰고 밤에는 창호의 침방으로 쓰는 이 방 방문이었던 것이다.
익진이를 향하여 인사를 하고 유순하고도 피곤한 소리로 창호를 보고
“아이구, 애 좀 받아주세요.”
창호는 일어나서 엉거주춤하고 팔을 벌려서 자는 어린애를 받았다. 어린애는 아주 곤한 모양인지 그대로 잔다. 창호는 안고서 앉았다. 옥순이 팔을 힘없이 좌우로 벌렸다가 다 시진한* 허리와 엉덩이를 탁탁 치면서
“아이구, 아조 허리가 똑 떨어지는 것 같으이.”
시름없이 앉아서 잠깐 눈을 감는다.
그와 익진이는 묵연히* 앉았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쓸쓸한 빛은 그들의 얼굴빛을 통일시키고 있다. 방은 잠깐 동안 침묵에 잠겼다. 얼마 뒤에 그의 처는 깜짝 놀라는 듯이 눈을 뜨고 몸을 고쳐서 앉으며 웃는 소리로
“에구, 손님도 계시고 한데 내가 실례했네…… 아이구, 어떻게 곤한지 자구만 싶으이 .”
익진이는 얼른 정중한 소리로
“천만에요. 참 어려우시겠습니다.”
그 말대답은 아무도 아니하였다.
그의 처는
“아바지 어데 가셨어요?”
“몰라, 나도 지금 막 온 길이니까.”
“그럼 얼른 내려가보아야겠네. 시장들 하시겠는데.”
하고 그는 꿈같이 늘어진 몸을 다시 수습하여가면서 부엌으로 내려간다.
그의 부처가 공장으로 가면 그의 늙은 아버지는 과원에서 과수를 가꾸어주다가 친히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지어놓는 것이 상례이었었다.
그의 처가 부엌으로 내려간 뒤에는 방 안이 잠시 고요하였다. 그 수선 잘 떠는, 걱정이 있어도 없는 듯이 낙천성의 익진이까지도 별안간 얼굴빛이 애상이 띠어간다. 창호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래서 잠잠만 하다가 익진이의 모양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아니, 자네 별안간에 웬일인가?”
그 소리에 익진이도 잠 깨는 사람 모양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은 번뜻하는 빛이 났다.
“정말이지 나는 자네 와이프 보고 아조 울 뻔했네.”
“왜?”
“자네 아까 날더러 며칠을 못 만나니 웬일이냐 물었지…… 다 일이 있었다네.”
익진이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별안간 그의 언성은 높아졌다. 위풍이 당당하였다. 북풍바람 같아졌다.
“참, 나는 인제는 케케묵은 소리지만 아주 죽고도 싶데.”
“왜?”
“정말이지 자네, 내 와이프 이야기 들었나?”
그때에 창호는 짐작하였다. 익진이가 병이 들어서 한 달 동안이나 석공 일을 못하고 드러누워 있었을 때에 그의 처도 역시 병이 들었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두 젊은 양주*는 불도 못 땐 냉방에 가(그때는 첫여름이긴 했으나) 드러누워 있을 때 창호 양주는 언제든지 가서 구완을 하였었다. 그럴 때에 익진이 처는 먼저 나았다. 그러나 병 앓고 난 약한 몸으로 송충이 잡는 일을 하였다. 송충이가 만연될 때에는 관청에서는 하루 사십 전의 일당으로 송충이잡이꾼을 구했었다. 그 통에 익진이 처도 끼였었던 일이 있다. 아침도 못 먹고 온종일 굶어가면서라도 송충이를 잡아다가 병든 남편을 공경 했던 일이 있다. 이런 것을 언뜻 창호는 연상하였다.
그래서
“그래, 그 양반 말야, 무슨 이야기?”
익진이는 좀 기색이 침울하여지면서
“이건 좀 우스운 소리지만 자네 어떻게 아나…… 우리 와이프를.”
“어떻게라니…… 물론 말할 수 없는 거지. 참 에라이(훌륭)하시지.”
“에라이하지.”
다짐 주듯이 말하더니
“그러니까 말일세. 나의 처의 자랑이 아니라 참으로 나의 처는 훌륭한 여자이었었네. 그런데 벌써 한 달은 되네. 자기 본가로 간다고 가드니 입때 아조 소식이 없네그려. 그래서 나는 하도 궁금했드니만 며칠 전에 서울서 편지가 왔는데 어떤 청년의 후원을 받아서 공부를 한다데……”
아주 시름이 없어져버리었다. 울 듯이 되었다.
“이건 다시 말하면 나의 잘못일세. 내가 돈 없는 탓일세…… 음, 나는 세상에서 요렇게 구박을 받었네. 사랑하는 처를 억제로 고등 매소부*로 빼었기고·……이런…….”
아주 흥분이 되었다. 무뚝뚝하고 할 말 하던, 평생에 한숨 한 번 안 쉬던 익진이는 금방 울었다. 피가 얽힌 눈물이다. 창호도 눈에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억지로 진정을 하면서
“공연히 너무 그렇게 비관을 말게. 그리고 너무 오해를 말게.”
“아니, 오해가 아닐세. 내가 저를 조금도 원망치는 않네.”
말끝도 채 못 마치어서 그는 그만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나는 원수를 갚고 마네. 이 망할 세상에게…… 그래, 젊은 놈들이 되어가지고 가슴에서 바작바작 타는 혈조*를 가만두는 것은. 하여간 손톱만한 향락까지라도 할 수 없는 이런 경을 칠 일이 있단 말인가. 그저…….”
창호도 분연해하였다. 그리고 쥔영감과 싸우던 이야기까지 했다. 두 젊은이는 비분강개한 그리고 용장과 같은 정열에 탔다. 부엌에서는 남편과 또는 익진이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서 눈물 흘리는 옥순이의 손에서 밥솥의 불이 역시 바작바작하고 탔다.
4
며칠 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다.
창호와 익진이는 예전 모양으로 비문만 새기고 있었다. 쥔도 아무 소리 없이 그 조그만 안경 너머로 눈살만 찌푸리고 있었다. 창호의 처도 아픈 허리를 끌고 공장에를 갔다.
어느 날 아침.
창호가 막 밥을 먹고 그의 처와 같이 집을 떠나려고 하던 판에 그의 아버지는!
“얘들아, 내 말 좀 듣고 가거라.”
두 사람이 다 섰다. 아버지는 이제 오십이 갓 된 중노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보면 칠십은 되었으리라고 볼 만치 아주 노쇠한 노인이다.
머리는 백발이고 얼굴은 주황빛과 검은빛이 다 되어서 우글쭈글하다. 허리는 까부라졌다.
그러나 인자한 어버이의 웃음을 띠고 있는 그 두 눈동자만은 유난히 반짝반짝하였다. 흐리멍덩한 그야말로 노인의 눈은 아니었다. 씩씩한 청춘의 눈이었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낼이 그날이지?”
즉 평양석공조합 대표로 서울로 떠나가는 날이다.
“네.”
그의 아버지는 더 웃으면서
“그래 꼭 갈 터이냐?”
“그럼요, 아버지도 별안간에 무슨 소리서요.”
거의 퉁명스런 소리로 하는 자기 아들의 소리에는 노하지 않고 더 한층 화한 소리로
“아니, 너 가는 것을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내가 아모리 늙었기로 그렇게 완고*가 아닌 것은 너희들도 다 알지 않니. 나도…….”
추억하는 빛이 나며
“저, 북만주로 돌아다니면서 학교도 세우고 회도 모으고 하든 내가 아모러기로 너희들의 하는 일을 방해야 하겠니…… 참말이지 너희들 어린것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기쁘고 거룩만 할 뿐이지.”
진정으로 나오는 말이었었다. 그 소리에는 창호도 진심으로 감격해하였다. 사상적으로 무섭게 압박하는 보통 부로* 가운데에 태어나서 정으로나 마음으로나 철저하게 이해해주시는 아버지에게 대하여서는 참으로 거룩한 생각이 났었다.
그래서 마음은 얼마큼 공축(恐縮)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다시 말을 이어
“그런데 너도 다 알겠지만 너의 공장 쥔이란 자가 좀 그악이냐.* 무슨 하필 너와 나뿐 아니라 이 평양 안에 사는 사람쳐놓고 그 영감 좋다는 사람이 어디 있니? 그런데 더군다나 우리는 네가 거기에 매이지 않었니? 그리고 또 이 과원도 그 사람 게 아니냐? 만일 그 사람이 성만 더 나면 네가 거기 못 댄기는 것도 것이려니와 당장에 이 집까지 내놓으라고 그럴 테니 어떻게 하니?……똥이 무서와서 피하니, 더러와서 피하지…… 나도 생각이 너만 같지 못하지 않다. 내가 조금만 원만하면 너희들을 저렇게 고생을 시키겠니? 그러니까 잘 생각해 하란 말이다. 뭐 기회가 이번만이 아닐 것이고 또 일후에도 많을 것이니 너는 이번에 잠깐 빠져도 좋지 않겠니?…….”
그의 말소리는 충곡(衷曲)*에서부터 떨려서 나왔다. 그리고 주름진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펄펄 뛰는 듯한 젊은 자식들을 생지옥 같은 괴로운 생활을 시키는 어버이의 마음 숭고한 감정에 접목된 까닭이다.
태산이라도 뚫을 듯한 창호의 의기는 그만 꺾어졌다. 울 것같이 되었다. 당장에 길거리에서 내어쫓긴 아버지와 처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굶어서 뻐드러진 송장이 보였다. 손가락질하는 세상 사람의 비소* 소리가 들리었다. 마음으로 슬플 대로 슬펐다. 울 때까지 울고 싶었었다. 그래서 그는 잠잠히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평생에 약한 소리를 하지 않던 그의 처는 가만한 소리로
“그것도 옳은 말씀이긴 해요. 세상 일이란 시간이 걸리니까요.”
즉 당장에 되는 일이 아니니 차차 살아가면서 해보시요 하는 말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더 쓸쓸하게만 들리었다.
얼마 가다가 종로 네거리 앞까지 왔다. 언제든지 그들은 이렇게 두 사람이 같이 동행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무덤으로 향하여 가는 마지막 이별의 길을 걷는 듯이나 싶이 추연하였다.*
그는 아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처는,
“자……·이따가 오세요.”
하면서 공장 들어가는 길로 돌쳐선다. 그때에 그는 확연히 무엇을 깨달았다. 익진이의 말소리가 생각이 났다. 익진이의 처의 일이 생각이 났다.
익진이의 처…… 나의 처……
서울로 가버린 익진이의 처…… 공장으로 들어간 나의 처…… 처가 그리웠다. 그 사나이 많은 공장…… 모양낸 사나이가 걸어가는 길…… 아…… 처……약한 처…… 배고파서 밥 찾는 처…… 거지…… 유린…… 애교……배반……아…… 그의 눈에는 도화분 바르고 세비로*양복 입은 사나이와 웃고 가는 그의 처가 보였다. 꼭 보였다…… 그는 거의 신경의 이상이 생길 만치 되었다. 만치가 아니라 생기어버렸다.
급히 골목으로 따라 들어섰다. 멀리 사람 틈에가 어린애를 업고 벤또를 끼고 가는 시름없는 그의 처가 보였다. 여러 사람에게 싸여갔다.
‘아, 사내놈과 닿으면 어떡하나…… 사내놈이 보면 어떡하나.’
그는 달음질을 할 듯이 따라만 갔다.
한참이나 갔다. 그러다가 별안간 어떤 뚱뚱한 신사 하나와 마주쳤다. 그는 멈칫하였다. 몸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석공장 쥔영감’과 같이 보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역시 잘못 보았다. 그 신사는 그냥 그의 옆으로 지나간다. 그는 그제야 정신이 났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만 머리만 힁하여졌다.*
그리하여 다시 고개만 수그리고 공장으로 갔다.
5
공장 안으로 들여놓자 벌써 여러 석공들은 일을 다 시작하고 있다. 익진이도 와서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처와 또는 집과 조합과…… 공장 쥔과 또는 서울 가는 것과…… 모든 것을 한데 뒤섞어서 어떻게 결정을 짓지 못하고 번민만 하다가 건듯 공장 안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은 다 가라앉아버렸다.
쪼고 새기고 갈고 깨트리면서, 서로 웃고 서로 시시덕거리면서, 대동강 물결에 저녁 별빛 나기만 기다리는 그러한 일개 석공의 기분이 되었다. 직업적 기분이 되었다. 요컨대 흥분되었던 감정은 다시 정연한 질서로 돌아왔다.
익진이와 마주 앉았다. 장도리로 정을 때렸다.
“여보게, 내일 저녁차에 갈까?”
익진이가 쾌활하게 묻는다.
창호는 익진이의 소리를 듣자마자 규칙 없이 둘러앉은 모든 석공들이 일제히 박수를 하며 자기를 대표자로 선정하던 광경이 생각났다. 숭엄한 장면에 그는 완전하게 또다시 순전한 조합원이 되었다.
자기네들의 향복과 이익과를 위하여 옳지 못한 협박을 하고 있는 자들과 싸우겠다는 씩씩한 조합원이 되었다.
“글쎄, 아모렇게 해도 저녁차가 낫겠지.”
“쥔이 아모리 내쫓느니 뭐니 해두 무슨 상관있나?”
“그럼! 그야말로 시들방귀*일세.”
“그럼! 굶어 죽기밖에 더 하겠나·……·사실 요렇게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번 막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참 옳은 말이지. 자꾸 죽이는 놈에게 그저 조금만 더 두었다가 죽여줍쇼 하는 것보다 이놈 하고 일어나서 죽드래도 낫지 않은가?”
“그래……그렇지만 하여간 우리들은 불행한 놈일세. 이건 난 왜 요런 땅에가 태어났나 하는 생각도 안 날 적이 없네…… 아모리 젊은 것으로 있어서는 다사다단(多事多端)한* 곳에서 활동을 하는 것도 외려 좋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어떻든지 우리들은 모든 것이 쓸쓸하기가 짝이 없네. 이후에 기쁜 봄이 오드라도 지 리 한 겨울이 지긋지긋하이…….”
두 사람은 장도리소리에 맞추어가면서 이 같은 감상과 담화를 하였다.
언제든지 어기여차만 부르는 뱃사공, 언제든지 동이만 이고 다니는 물가 품꾼여자, 언제든지 장도리만 가지고 되풀이하는 석공들·……
삼천리 금수강산이 언제든지 푸름과 같이 푸르려는가? 혹은 산천이 벽해 되는 것과 같이 커다란 향복과 희열에 춤추게 되려는가?
6
익진이와 창호가 평양을 떠난 지가 닷샛날이다
창호의 처는 어린애가 병이 나서 공장을 쉬고 있고 덧바지를 입고 벌레 잡는 꼬챙이와 또는 휘리*를 가지고 동산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이 훨씬 지난 대낮이었다.
늦은 봄 뜨건 햇빛은 모든 과수의 푸른 잎사귀를 점점 더 녹이어가서 능금색이 빛나고 있다. 파리들은 섬돌 양지까지 와 앉았다가 날았다가 하는 때다.
창호의 처는 마침 어린애를 재워놓고 부엌에서 약을 달이던 때에 바깥으로부터 석공장 주인영감과 또 늙수그레한 사람 하나가 들어온다.
그는 벌써 가슴이 선뜩하였다. 살기가 등등하여 들어오는 것을 볼 때에 벌써 자기의 남편이 상상되었다. 언제든지 얼굴이 침통한 젊은 남편이 상상되었다. 쥔영감은 부리나케 들어오면서 벌써 집부터 아래위로 휘휘 하고 둘러본다.
집을 잘 가꾸고 사나 하는 집 쥔 같은 집요한 눈알이다.
“창호 어른 계시오?”
그는 어름어름하면서 그보다 분한 생각이 나서 가슴이 탁 막히어서
“네!”
“어디요?”
“저 동산에요.”
“점 오라구 그러우.”
퉁명스럽게 저의 집 하인을 저의 하인에게나 불러오라는 듯하였다. 그는 가슴이 콕콕 하면서 금방 울 듯이 흥분이 되었다. 그러나 겨우겨우 참았다.
그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얼굴부터 확확하였다. 팩하기로 유명한 자기 성미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추장 앞에서 굽실거리는 노예와 같았다. 그렇다. 그는 확실히 노예이었었다. 공연히 빙긋빙긋하고 나와서 굽실하면서
“영감 웬일이세요?”
쥔은 그 대답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모른 척하고 가장 살기 있는 소리로
“창호는 언제 온답디까?”
“글쎄요! 갈 적에는 이틀만 있으면 곧 내려온다드니 오늘이 벌써 닷새 째나 되는데 아주 궁금한데요.”
헤혜하고 또 웃으며 저의 눈치만 본다. 그러나 그의 말라빠진 가슴속에서는 뼈 울리는 고동이 날뛰었다.
같은 늙은이로 박대받는 설움, 분노는 온몸을 사시나무같이 떨어놓았다.
“궁금해요? 당신두 딱허우! 여보 길게 말할 것도 없소. 대톄 창호가 갈 적에 날 보고 뭐라고 간 줄은 아시유?”
“그럼요, 한 이틀 동안만 말미를 줍시사고 했다죠?”
쥔은 덜컥 목소리를 높이며
“뭐요! 저러니까 어디 자식 하나 윽박지를 수가 있수…… 내 이야기할게 들어보오. ‘너 갈 테냐.’ ‘네.’ ‘너 가지 마라. 내쫓는다.’ ‘좋소.’ 이랬다우.”
들이대는 소리로
“알았수. 그야 어떻든지간에 그야 창호가 내 공장 아니면 벌어먹질 못할 테요? 내가 창호 아니면 공장을 못할 게요? 아무 상관은 없소.”
사형선고 듣는 듯싶었다. 아버지는 급히 말을 가로채서 애걸하다시피
“아니 영감, 망령의 말씀을 다 하시는구료. 다 어린 사람을 용서를 하세야죠.”
“용서요? 참 어린것입디다. 아모 상관없이 일만 잘하는 모든 공쟁들을 저녁마다 모아놓고 뭐니뭐니 하고 동맹파업이나 해서 쥔을 곯릴 의론만 하는 놈이 어리단 말요! 여보, 그건 어떻든지간에 좀 박정하지마는 영감도 오늘부터는 좀 쉬슈.”
“네?”
“그동안 내 과원을 이렇게 잘 거두어주어서 고맙기는 허오마는 오늘부터는 내가 이 사람을 좀 맡기려고 해서 왔으니 내일 안으로 내놓도록 하시오.”
아버지는 거의 소리를 지를 만치 놀랐다.
물론 상상은 하였지만 이같이 심악하고 또는 급전될 줄을 몰랐다. 분하고 괘씸하고 한 생각은 죄 없어졌다. 다만 엎드리든지 볼기를 맞든지 어떤 무슨 욕을 당해가면서라도 살려주기만 바라는 그러한 초조에 빠졌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 소리는 아주 처량히 들렸다. 늙어빠진 얼굴이 거의 울 듯이 되어서 벌벌 떨고 하는 소리는 마치 외양간으로 멀리 가면서 곡속전율* 하는 늙은 소와 같았다.
그러나 쥔은 도리어 재미있게 보였다. 상쾌하게 보였다. 그리고 자기 말 한마디에 저렇게 벌벌 떨게 만드는 자기의 위력을 스스로 자긍하였다. 사실 자기는 그만 위력, 그만한 권력의 주인인 만큼 그만큼 잔인성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쥔의 마음은 상쾌함이 증오로 변하였다. 늙은것이 벌벌 떠는 것이 재미있다가는 그 재미있는 찰나가 연장됨을 따라 보기 싫게 되었다.
거지가 불쌍한 것보다 누더기옷 입은 꼴이 먼저 보기 싫은 것과 같은 똑같은 심리로 변하였다.
그래서 때리고나 싶었다. 넘어져서 우는 어린애를 더한층 윽박질러 두들겨대는 사나운 어머니의 마음과 비슷하게 변하였다.
그래서 주인영감은 아주 늙은 마귀같이 되었다.
“뭐 늙은 게, 자식 하나 가리키지 못하는 게 뭐? 무슨 큰소리야!”
하고 집을 휘둘러보더니
“그래, 남의 집을 얻어 들었으면 고마운 줄은 모르고. 그래, 남의 집이라고 시들하게 알아서 이렇게 거지를 맨들어놨단 말이냐? 정말이지 내가 웬만한 사람만 같애도 배상이라도 물어받을 형편인데.”
아버지는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영감 덕택은 참 모르는 것은 아니올시다마는 뻔히 아시다시피…….”
말을 끝도 내기 전에 벼락같이 달려들어서 아버지의 뺨을 내리갈겼다. 마음먹어 갈긴 뺨에 아버지는 그냥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금방 두 눈에 눈물이 말랐다. ‘살려주’ 하던 간망적 (懇望的)* 애소(哀訴)*는 눈같이 사라졌다. 그 애소, 그 간망이 들씌우고 있던 그 맨 밑의 불평과 분노, 태산 같은 분노! 그것은 생물적으로 폭발이 되었다. 목소리는 무섭고 떨리었다. 쥔늙은이 소리보다 더 한층 무서웠다.
“뭐냐! 이 개 같은 놈.”
“흥! 개 같은 놈.”
이때 옥순이는 참지를 못했다. 학대와 모욕받는 늙은 아버지, 짐승같이 몰정 (沒情)한* 쥔늙은이…… 아! 그는 악한 계집이 아니었다. 어미를 잃어버려서 미쳐서 날뛰는 암사자이었다.
“너, 왜 사람 치니?”
쥔은 하도 어이가 없는 듯이
“너, 조그만 계집년이.”
그 말대답은 하지도 않았다.
넘어진 아버지는 거의 기색 *이나 될 듯이 씨근씨근하기만 한다. 옥순이는 적어도 돌진성과 모험성을 가진 서쪽 여인이다. 그보다 똑바른 정신 가진 사람이다. 왈칵 달려들어서 두 손으로 힘껏 쥔늙은이를 밀쳤다.
“뭣, 왜 우리 아버님을 때려. 내노면 그만이지…… 우리가 너 집 아니면 못살 듯하냐!”
쥔늙은이는 뒤로 비슬하였다.* 그리고 더욱 분노하였다. 그때 별안간 “으악” 소리가 나며 그의 아버지는 뒤로 나가자빠졌다. 분통이 터져서 기색이 된 것 이다. 금방금방 버둥버둥한다. 옥순이는 급히 달려들었다. 가슴을 흔들었다. 고개를 바로잡고 목이 메었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울기만 한다.
쥔영감은 이 꼴을 보더니 그냥 슬그머니 갔다.
옥순이는 쩔쩔매고 울었다. 가슴은 터질 듯이 되어서 울었다. 그러나 기색한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청기*만 돌아간다. 눈초리는 검어만 간다.
그럴 때에 방 안에서는 어린애의 우는 소리가 난다. 부엌에서 졸아붙는 약소리가 난다.
이러는 때이다. 꼭 이 시간이다.
서울 구리개 광무대 안에서는 대회를 원만히 마쳤다는 최후의 만세소리가 난다.
비장하고도 열렬한 희망 있는 만세소리가 난다.
그중에는 젊은 박창호의 목소리가 더한층 심각하였었다.
『문예시대』 2호(1927. 1)
이무현
본명 이무현(武鉉)인 송영(宋影)은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보 중퇴 후 일본 유리공장에서 일하다가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문학단체인 염군사를 결성했고, 이 단체가 발전한 카프에서 부르주아의 허위성을 고발한 희곡들을 발표했다. 소설로는 1925년 『개벽』 에 「늘어가는 무리」가 당선되며 등단했으머, 이후 「선동자」 「용광로」 「석공조합 대표」 등을 발표했다. 초기 대표작인 「석공조합 대표」는 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현실변혁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월북 후 요직을 두루 거치다 197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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