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본당에서 사목하다보면 가장 난처하고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봉사자들과 함께
식사할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판공을 앞두고 하는 가정방문과 특별한 날에 봉사자들과 가정방문을
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웃지 못할 일들이 많다.
시골 본당 신자들은 특히 본당 신부 식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같이 식사하러 식당이나 신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본당 신부의 젓가락이 어느 반찬에 먼저
가는가를 관심 있게 지켜보기 일쑤다.
그날도 어김없이 봉사자들과 함께 식사하는데, 그날 메뉴는 보신탕, 즉 개고기였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개고기에 젓가락이 먼저 갔다.
그 모습을 본 봉사자들이 "우리 신부님은 개고기를 아주 좋아하신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나는 본당에서 '개고기 좋아하는 신부'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이 가정을 방문해도 개고기, 저 가정 방문을 해도 개고기를 내놓았다.
한 번은 사제관에 있는데 어느 자매님께서 "신부님, 이거 잡수세요" 하시길래 "이게 뭔가요?"하고
여쭈었더니 "신부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개고기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그 자매님께서 어렵게 준비하신 그 음식을 받아 맛있게 잘 먹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개고기와 씨름을 하면서 이제는 입에 개고기 냄새가 배어버렸다.
이 일을 통해서 나는 본당 봉사자들이 얼마나 신부에 대해 관심이 많으면 식성까지 알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또 신자들이 신부에 대해 그토록 관심과 애정이 많은데, 사제인 나는 얼마나 신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내는가 생각해보게 됐다.
개고기라는 음식을 통해 신자들은 사제와 좀 더 가까이 지내려고 애쓰는 만큼 사제 역시
신자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에 진정한 목자요,
예수님을 닮은 사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일 이후로 신자들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