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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부흥이란 말을 자주 듣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흥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은 양적성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교인 수 증가하고 더불어 헌금이 증가하여, 교회가 외적으로 선교적 사업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 목회자나 성도는 “우리교회가 부흥하고 있어요!!” 쉽게 말을 합니다. 이런 외적 부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이것만 강조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내적 부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흥’은 영어로 ‘리바이벌’(Revival)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즉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5:17)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느 순간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영적생활이 추락하는 벼랑 끝 위기에 봉착하여 일어서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서 알고 있지만 유럽 기독교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가 2022년 3월부터 9월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북아일랜드 전역의 성인 3,05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매주 예배에 참석한다’고 한 응답자가 설문조사 참여자중 10%라고 합니다. 독일은 더 심각합니다. 출석100명 중 4명만 예배 출석 한다고 합니다..... 예배절벽입니다.
한국교회가 태동되어 140여년 이르는 동안 엑스포74 여의도 100만명 성도가 모여 영적 대각성 부흥성회를 경험했습니다. 이 계기로 한국교회는 놀랍게 부흥 성장하여 입버릇처럼 1200만 성도라고 말해 왔습니다. 세계 10대 대형 교회가 한국에 있다며 자랑거리처럼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성장하고 교회도 마루바닥에서 기도했던 자리는 의자가 놓여 지고 배고픔의 서러움도 사라지고 교회건물은 외적으로 덩치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교인수가 날로 줄어들고 다음세대 우리교회가 녹녹히 않음을 보여줍니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교회지도자들이 타락의 실상이 그대로 들어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시련도 걲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따끔한 하나님의 회초리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 아픔이 어떠했습니까? 교회가 문을 닫여야 했습니다..... 교인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개척한 교회는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싫다며 주져 앉은 가나안성도들이 늘어났습니다.
교회가 급격히 힘을 잃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 큰 아픔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초라한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교회에 불러 닥치는 위기가 서구교회보다 더 빨리 찾아 올 것이다. 이렇게 예견하신 분이 많습니다.
너도 나도 한국교회 위기를 말하지만 이 위기를 하나로 뭉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국교회가 10.27 종교개혁주일 이 날을 D-day로 삼고 한국교회의 절박한 현실을 즉시하며 100만 성도가 모이자 호소하며 대 성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월 27일 오후 2시 시청과 광화문, 경복궁과 서울역, 서대문에서 종로까지 한국교회 100만 명이 함께 모여 건강한 가정과 거룩한 나라를 위해 기도회로 모이지는 겁니다. ....부득히 참석하지 못한 교회는 인터넷으로 100만명이 시청하면 200만 성도가 모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절히 부르짖는 대성회가 되자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왜 위기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겁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확대법을 통과 시키려는데 이것은 악법이기에 철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더 소중한 것이 한국교회에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음세대에 믿음을 계승 할 수 없다면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의 성 정체성이 해체되고 ‘X 젠더’ 가 나왔습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또 다른 제3의 성 지닌 사람을 말한다.)
캐나다에 살고 부모는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가 무섭다고 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남자 여자 친구 중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 다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 법으로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세계 선교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 믿음 계승도 선교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는.....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주일 출석률이 30% 감소입니다. 지난 7.24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 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곧 동성결혼도 통과될 수 있다는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성경적으로 틀렸다고 말하면, 소수 인권을 빙자해서 ‘혐오 발언’이라 매도합니다. 곧 목사가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잘못 됐다고 더 이상 말 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 확대법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피해 갈 수 없기에 “지금” 한국교회 앞에 현실로 다가와 한국교회가 민족적 범죄를 저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가정을 지키고, 한국교회를 지키고, 다음세대를 지켜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꾸준하게 편친 한 목사님이 우리교단 총회에 와서 절박하고도, 간절하고도, 가슴앓이 하는 뜨거움으로 호소하는데 정말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한 마음으로 모으고자 했습니다. 간곡한 호소를 들은 모든 총 대원들이 박수하고 결의한 적이 지난 주간 총회에서 있었습니다.
109회 이번 총회는 강단 오른쪽 현수막에 적힌 대로 “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지난 202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목사가 1884년 4.5 인천 제물포항에 새벽 조선 땅을 처음 밟은 날입니다. 즉 140년 맞는 날로 의미가 있지만 그러나 한국교회 현실은 녹녹치 않는 위기 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구약성경 에스겔 37장 14절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택한 이스라엘백성이 우상숭배로 죄악을 밥 먹듯이 하는 참담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면서도 그래도 자기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는 희망 있는 말씀입니다. “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를 살아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희망적인 말씀을 주신 배경은 에스겔37장을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어느날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이끌고 골짜기로 갔는데 그곳은 너무나 참담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것을 본 것입니다. 수많은 해골들이 가득한 골짜기였습니다. 여기 마른뼈는 누구를 가르킵니까!!~~우상숭배로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이 지금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성도여러분!! 말라버린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에스겔은 주께서 아십니다.(겔37:3) 절망한 이 백성을 주님이 아시기에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척척 들어맞습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가죽이 덮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 ‘생기’가 아직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살아나게 하라! 말씀하시니까 생기가 마른뼈에 들어가더니 살아서 큰 군대가 된 것입니다.(겔37:10)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는 사탄의 도구로 위장한 것들이 무기가 되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방해공작으로 발악 하는 모습들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 성령의 터치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반드시 죄악의 요소 죄악의 담이 영적인 능력의 역사로 고쳐지고 새로워지고 죄악을 멈추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신약의 말씀 사도행전 9장 31절이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리하여” 접속사는 사도행전 시작과 함께 사도행전 9장까지 있었던 초대교회이야기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초대교회가 그만큼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평안히 나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평안하고 믿는 자들이 늘어나 부흥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태동기는 마치 어머니 모태에서 나온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스스로 걸어서 가기까지는 넘어지고 다치고 피가 나고 울다가 무엇을 의지하다 어느 순간 스스로 일어나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됩니까? 아동기 청년기 장년기를 걲으면서 많은 경험과 고통을 감내하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초대교회가 그렇습니다.
120명의 마가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을 찢고 어찌 할꼬 회개했습니다. 마치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처럼 회개역사가 일어나 주님 앞에 돌아 온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게 되니까?....... 두 가지 죄가 들어났습니다. 하나는 물질문제였습니다. 사도들 앞에 내놓아야할 약속된 헌금을 몰래 감추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물질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안에서 구제로 통해 먼저 믿는 자와 나중에 믿는 자와 서로 논쟁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부흥하여 왕성하여 나가는데 또 다시 큰 핍박이 온 것은 초대교회 일곱명의 집사를 선출했는데 그중에 한 분 스데반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됩니다.
주동자가 누구입니까? 바울의 엣 이름 사울이였습니다. 이로인해 성도들이 두려워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강팍한 핍박자 사울은 숨어있는 성도들의 명단을 받아가지고 다메섹까지 찾아갑니다.
사울이 혈기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를 잡기만 해봐라 죽인다 얼마나 강팍 했습니까? 이런 강팍한 사울이 혈기등등 다메섹으로 가는데 홀연히 하늘로 부터 빛이 바울을 비추며 부활의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사울은 그 자리에서 엎드려 듣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히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3-4)
사울은 하늘의 강렬한 빛으로 인하여 그 즉시 앞을 보지를 못 한 거예요 보지못하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식음을 전패하고 다소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아나니아 라는 사람을 택하여 식음을 전패하고 누워있는 사울에게 찾아갑니다. 그 살기 등등했던 모습은 다 사라졌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안수할 때 부활의 주님께서 나를 여기에 보내셨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충만으로 하신 것이다 그 순간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사울이 세례 받고 새사람되어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되게 됩니다.
사울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중에 최고의 반열에 있는 자가 예수 믿는 자로 개종한것입니다. 유대인 중에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최고의 특종이요 뉴스입니다. 그런데 핍박자 사울이 새사람 된거예요 이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정 반대가 되었어요 사울이 바울로 이름을 개명하고 예수님처럼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힘 있게 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바울은 이제 예수님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그런데 유대인들이 죽일려고 하니까 그의 제자들이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립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슬아슬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상처를 입고 약화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한사람 사울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더욱 부흥하는 계기를 만들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바울의 개종으로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부흥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전하신 유언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될 것이라(행1:8)며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바울의 개종으로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흩어져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각 처에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적, 문화적, 민족적 경계를 뛰어넘어 땅 끝을 향하여 점점더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복음은 지역과 국경을 넘어 계속해서 퍼져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전파에 본질적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 가슴에 있었던 뜨거운 꿈이 있었어요......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품었던 꿈이 있었지요?..... 복음전파입니다. 바울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꿈이 있었어요?..... 오직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음....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라고 말씀합니다.
환경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핍박 가운데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평안이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폭풍우 속에서의 평안입니다. 전쟁 속에서의 평안입니다. 모진 핍박 속에서도 누리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안만이 참된 평안입니다.
우리 교회는 평안합니까?.... 사람이 모인 곳은 항상 시끄럽고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 자기 고집과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시기와 질투가 늘 따라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작은 문제로 크게 다투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내면적이고 영적인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 겁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인과 갈릴리인, 유대인과 이방인, 율법주의, 선민사상 등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상호존중과 소통, 끊임없는 대화가 있었고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신뢰관계를 이룸에 따라 영적이고 내면적인 성숙을 통하여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나서, 예수 정신으로 서로 든든한 신뢰감과 확신으로 깊이 있게 무장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것, 비본질적인 것은 단호하게 배척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평안하여 든든한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경외함과’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합니다. 복음이 퍼져나가면서 신앙 정체성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을 넘어가면서 그 지역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지역과 문화를 넘어 퍼져가면서도 주를 경외하는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은 변질될 수 없는 겁니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견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흔들림 없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주를 경외하는 교회의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라고 말씀 합니다. 즉,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위로가 함께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령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이끌어가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나니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끌어가는 교회였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해서 교회의 예배와 봉사를 철저하게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 한 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런 모습이 진정 부흥하는 교회로 나아가게 된것입니다.
제109회기 총회 주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로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할 때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부흥하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