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부 55
여위고 작은 몸집에 머리를 짧게 깎고 얼굴색이 노란 예프레모브나가 뒷문에서 선량하고 커다란 눈을 반짝이면서 들어왔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네흘류도프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절 기억하셨어요? 자, 앉으시죠."
"이런 데서 당신을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기뻐요! 어찌나 기쁜지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여전히 그 크고 둥근 선량한 눈으로 놀란듯이 네흘류도프를 바라보면서, 더럽고 초라한 구겨진 재킷의 깃 속에서 누렇고 가느다란 힘줄투성이 여윈 목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이러헥 말했다.
네흘류도프는 그녀가 수감된 내력을 물었다. 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면서 무척 활기 있게 경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는 선전이니 계급 타파니, 그녀가 관계하던 단체니, 본부니, 지부니 하는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누구나 다 안다고 믿고 있는 듯했으나, 네흘류도프로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말들뿐이었다.
그녀는 네흘류도프가 혁명운동의 온갖 비밀을 알게 된다는 데 몹시 흥미를 느끼고 유쾌하게 생각하리라고 확신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초라한 목덜미와 숱 적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보면서 그녀가 왜 그런 일을 했으며, 또 무엇 때문에 자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가엾게 여기긴 했으나, 아무 죄도 없이 냄새나는 감방에 갇혀 있는 농민 메니쇼프를 불쌍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머릿속이 몹시 혼란되어 있는 것이 불쌍했다. 그녀는 분명히 자기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영웅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운동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성공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조차 할 수 없었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네흘류도프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용건은, 그녀의 친구 슈스토바라는 여자가 지부에 속하지도 않았는데 다만 보관을 의뢰받은 서적과 서류가 그녀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다섯 달 전에 그녀와 같이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건이었다. 슈스토바의 수감에 대해서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꼈으므로 교제가 넓은 네흘류도프에게 친구를 석방시키는 데 힘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보고호프스카야가 부탁한 또 다른 용건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그루케비치라는 사나이가 부모와 면회할 수 있도록, 또 그의 연구에 필요한 학문 서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네흘류도프는 페테르브르크에 가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보겠다고 약속했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자기 경력을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산파 학교를 졸업하자 혁명운동의 조직원과 교제하게 되어 같이 일을 했다. 처음에는 만사가 잘되어 선언서도 쓰고 공장에서도 선전 운동을 했으나, 그 후 간부 한 사람이 체포되어 비밀 서류가 압수되자 모조리 검거되기 시작했다.
"저도 그때 체포되었고, 이번에 유형을 가게 되었어요...."하고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무척 기뻐요. 마치 올림피아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에요"하고 그녀는 쓸슬하게 웃었다.
네흘류도프는 양처럼 순진한 눈의 처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그녀가 장군의 딸로서, 퍽 오래전부터 혁명당에 속해 있었으며 헌병을 저격한 책임을 지고 체포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비밀 인쇄소가 있는 비밀 아지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관헌들이 가택수색을 하게 되었을 때 거기 살던 동지들은 자위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고 불을 끄고 증거물을 없애기 시작했다. 경관들이 집안으로 침입하자 동지 한 사람이 헌병을 쏴서 치명상을 입혔다. 누가 쏘았는지 심문이 시작되자, 지금까지 한 번도 손에 권총을 들어본 일도 없거니와 거미 한 마리도 죽여본 적 없는 그녀는 자기가 쏘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렇게 인정되어 이번에 유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자기 희생적인 훌륭한 사람이죠...."하고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말하고 싶었던 세 번째 용건은 마슬로바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녀는 감옥 안의 일을 환히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마슬로바 사건은 물론 그녀에 대한 네흘류도프의 태도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슬로바를 정치범 감방으로 돌리든지, 아니면 지금 병원에는 환자가 많아 간호사가 필요하니까 적어도 그쪽으로 돌려보도록 힘쓰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충고에 감사하고 그렇게 되게 노력하겠노라고 말했다.
부활 1부 56
소장이 일어서서 면회 시간이 끝났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네흘류도프는 일어서서 베라 예프레모브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 쪽으로 가다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분, 시간이 됐습니다. 시간이 됐어요." 소장은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장의 요구는 실내에 있던 죄수나 면회인들에게 긴장된 흥분을 야기했을 뿐 누구 하나 헤어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 채로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앉은 채로 이야기를 계속하기도 했다. 작별을 고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폐병쟁이 아들하고 이야기하던 어머니였다. 젊은 아들은 줄곧 종이를 만지작거렸으나, 그 얼굴은 점점 험악해져서 어머니의 슬픔에 끌려들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고는 아들의 어깨에 얼굴을 얹고 코를 훌쩍이며 흐느꼈다. 양 같은 눈을 한 처녀는(네흘류도프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흐느껴 우는 어머니 앞에 서서 무슨 말인지 하면서 달래고 있었다. 파란 안경을 쓴 노인은 선 채로 딸의 손을 쥐고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젊은 연인은 일어선 채 손을 마주 잡고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사람들만이 즐거운 것 같군요." 네흘류도프의 곁에 서서 그와 마찬가지로 작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짧은 재킷의 청년이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흘류도프와 청년의 시건이 느껴지자 사랑하는 두 사람, 고무 재킷을 입은 젊은 남자와 귀여운 금발 처녀는 마주 잡은 손을 뻗치기도 하고 몸을 뒤로 젖히기도 하며 웃으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 밤 이 감옥에서 결혼하고 여자도 남자를 따라 시베리아로 간답니다."하고 젊은 남자가 말했다.
"저 사람은 누군데요?"
"징역수죠. 두 사람은 즐거워 보이지만, 이쪽은 차마 들을 수가 없군요." 재킷을 입은 청년은 폐병쟁이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자, 여러분! 어서, 어서! 제발 엄격한 조치를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소장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자, 어서요, 어서!"하고 그는 힘없이 우유부단하게 말했다. "왜들 그러십니까? 벌써 시간이 됐다니까요. 더는 안 돼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하고 그는 메릴랜드제 담배에 불을 댕겼다 껐다 하면서 힘없이 되풀이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가 아무리 교묘하고, 아무리 오래되고, 또 아무리 익숙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자기 자신은 그 악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할지라도 소장은 지금 이 방에서 일고 있는 슬픔을 빚어낸 장본인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선지 그는 퍽 마음이 괴로워 보였다.
드디어 죄수들과 면회인들은 헤어지기 시작했다. 전자는 안쪽 문으로, 후자는 바깥문으로 각각 흩어져 갔다. 고무 재킷을 입은 남자도, 폐병쟁이 남자도, 흐트러진 검은 머리 남자도,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를 거느린 마리야 파블로브나도 모두 나가버렸다.
면회인들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파란 안경을 쓴 노인은 무겁게 터벅터벅 발을 옮겼고, 네흘류도프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정말 놀라운 제도죠." 수다스러운 청년이 네흘류도프와 같이 층계를 내려가면서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다시 계속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장은 사람이 좋아서 까다롭게 규칙을 지키진 않아요. 그래서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요."
"다른 감옥에서는 이런 면회도 없나요?"
"천만에요! 이런 건 아무 데도 없습니다. 한 사람씩, 그것도 철망을 사이에 두고서야 만날 수 있답니다."
네흘류도프가 메딘체프(수다스러운 젊은이는 이러헥 자기소개를 했다고 했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관으로 나오자, 피로한 얼굴을 한 소장이 그들 옆으로 다가왔다.
"마슬로바를 만나시려거든 내일 와주십시오." 소장은 확실히 네흘류도프에게 친절을 보이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말하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메니쇼프가 죄도 없이 받는 고통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육체적 고통은 고사하고라도 이유 없이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잔인함을 봄으로써 그는 선과 신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서류에 잘못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는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모욕과 고통을 주는 것도 역시 무서운 일이었다. 자기 동포를 괴롭히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서도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믿고 있는, 양심이 마비된 간수들의 존재 역시 무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늙어빠지고 몸이 쇠약해진 선량한 소장이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들 같은 사람들인 어머니와 아들을, 아버지와 딸을 떼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네흘류도프는 언제나 감옥을 나올 때면 일어나는, 정신적인 것에서 육체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구토감을 오늘따라 유별나게 더 느끼면서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았으나,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