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산(黃腸山)의 이름은 황장목(黃腸木)이 많은 산이라서 생긴 이름이다.
황장목은 궁궐을 짓고 임금의 관을 만드는 등 국가 대사에만 쓰이는 나무를 말한다.
곧게 자라고 추위에 강하며 성장이 느려 재질이 단단한 나무를 금강소나무라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수령이 오래 되어 속이 누런 최고급을 황장목이라 불렀다.
황장산 북쪽 옥수동에는 황장목을 함부로 베거나 개간금지를 알리는 조선 숙종 때 세운 봉산(封山) 표석이 있다.
황장산 황장목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자재로 썼다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그후 일제 강점기 때 수탈용으로 잘려 나가면서 조선의 명운과 함께 몰락한 셈이다.
그러한 백두대간 명문가도의 산이 월악산국립공원 지정 이후 31년 만에 2016년 5월 개방되었다.
황장산 드날머리가 되는 곳이 생달리인데, 그 중 바깥을 ‘외생달’이라 하고 안에 있는 생달을 ‘안생달’이라 부른다.
옛날 생달계곡 높은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지만 죽지않고 살아나 생달리가 되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전한다.
황장산 일대만 제외하면 좌우 백두대간 능선은 모두 통제구간이고, 유일한 날머리 어리시골은 31년 만에 개방되었으니 거의 원시계곡 수준이다.
발도장 찍기가 만능인 일부 산꾼들은 촛대바위와 문암골로 금줄을 넘어서기도 한다.
와인동굴은 폐광산을 와인저장 카페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때 탄광으로 번성했던 탄광촌이었으나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다.
해발고도가 300m가 넘고 물이 잘 빠져 재배에 적지로서 오미자 특구이다.
산경표에는 작성산(鵲城山)이라 했고, 필자가 가진 지도에는 황정산(皇庭山)이라 적혀있으니 헷갈린다.
작성산은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보이는 작성산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361년 고려에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했다.
공민왕은 문경 어류성에서 한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작(鵲) 장군에게 명하여 황장산에 성(城)을 쌓게 해 노국공주와 비빈(妃嬪), 궁녀들을 대피시켜 머물게
했다지만 전설에 불과하다.
필자는 오래전 방곡리를 원점회귀로 문암골로 올라 투구봉 능선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 http://blog.daum.net/bok-hyun/121

GPX

와인피플 원점회귀이니 시간은 더 단축되어 5km남짓으로 천천히 3시간 반이 걸렸다.

고도표

'월간 산'지의 개념도가 우리들의 코스와 완전 일치한다.

'월간 산'지의 고도표와 구간 거리.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문경새재IC'에서 내려 황장산 들머리인 동로면 생달리를 가다보면 구불구불 여우목고개를 지난다.
마치 지리산 관문인 오도재 고개를 연상시킨다.

버스는 길가에 마련된 주차장을 지나 이곳까지 올라와 '와인피플' 앞에 댔고, 필자는 조금 내려와 '황장산공원지킴터'에서 위를 바라본다.
안내판 우측길은 우리가 내려올 길이고, 좌측 와인동굴과 작은차갓재는 들머리이다.

안내판의 이정표. 계곡탐방로는 어리시골을 말한다.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 버스.

버스 앞 계곡을 따르면 와인동굴과 작은 차갓재가 나온다.

와인피플과 와인동굴은 같은 집이란다. 우리는 와인피플에서 뒷풀이를 하였고, 또 선물용 와인을 샀으니 장소제공은 와인피플의 상술(?)인 셈.

문경 오미자 동굴이 그려진 자연석 뒤로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좌측 겨드랑이에 생달계류를 끼고 포장도로를 곧장 오르면...

와인동굴 안내판이 있고...

문지기 황장목 두 그루 위로 허연 배를 드러내고 있는 산자락 대간능선이 보인다.

포장도로를 계속 오르노라면...

와인동굴이 보인다.

까브(cave)는 불란스 말로 와인저장 창고를 말한다.

창고 안이 궁금하여 기웃거리는데, "구경하는 곳 아닙니다. 장삿집입니다." 해서 그냥 돌아섰다.

오늘 탐방로 안내판. 황장산의 유일무이한 탐방로이다.

와인동굴에서의 이정표.

쉬엄쉬엄 작은차갓재에 올라섰다.

작은 차갓재의 이정표.

좌측 대미산 방향으론 완전 철조망이다.
허용된 이 코스외엔 백두대간이 통제된 셈으로 오늘 산행코스는 열린 곳으로만 걸으면 원점회귀를 이루는 셈이다.

빽빽하게 식재된 잣나무...

숲을 올려다보니 하늘도 가렸다.

데크계단을 오르면...

조금씩 터지는 전망에 좌측 묏등바위가 보인다.

당겨본 암릉지대.

우리가 올라온 생달계곡과 대미산, 그리고 그 뒤로 백두대간이 뻗어 나간다.

다시 잡은 대미산과 문수봉. 그 뒤로 운달산은 가렸다.

데크 전망대에 섰다.

데크 전망대에서의 조망.

암릉지대를 만나 황장산은 우측으로 980봉을 에돌아 가라고 하였지만...

에돌아 980m봉을 되올라 보았더니 묏등바위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전망 포인터였다.

당겨본 묏등바위 암릉지대엔 계단이 안전을 담보해 준다.

980봉은 황장산 오름길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포인터.

오랫만에 전화가 와서 함께한 '산마루산우회' 시절의 멤버.

장수 씨도 걸음을 함께 했다..

묏등바위로 오르는 안전계단.

안전계단에서 열리는 산은 도락산.

단양 방면 월악산 群.

앞을 가리는 소나무는 죽음을 모면한 못생긴 황장목인감?

백두대간의 황장산 묏등바위 구간은 험하였지만 이제 안전시설이 완비되어 편해졌다.

머리카락이 빠져 머리칼이 성성한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수리봉.
수리봉 뒤론 재작년 다녀온 석화봉과 우측으로 올산이 흐릿하게 가려져 보이고, 더 좌측으론 황정산이다.

금줄 쳐진 촛대바위 능선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 주흘산 방면으로 문경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가늠된다.

수리봉과 도락산,

그리고 황정산과 석화봉 올산까지 희미한 가운데 그들의 자취를 더듬어 본다.

이곳 묏등바위 일원이 황장산 산행 중 만나는 최고의 전망 포인터이다.

이제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우측에 수리봉, 좌측 뒤로 걸출한 도락산, 우측 수리봉에 가려진 황정산.

주흘산을 비롯한 문경 방면의 내로라하는 산들도 짚어본다.

안전시설이 없었다면 토끼마저 길을 잃었을 것.

묏등바위 암릉에서 한참이나 머물다 황장산 정상의 뒤통수로 접근을 한다.

지난날 섰던 그 자리지만 큼지막한 자연석이 버티고 섰다.

정상의 이정표.

우측 이정표와 '구간별하산정보' 현수막이 걸려있는 방향이 투구봉 능선으로 해서 방곡으로 내려서는 길로, 통제구간이다.

통제구간인 촛대바위 능선을 눈요기감으로라도 살펴보았지만 이 일대에선 전혀 볼 수 없는 곳.
정상에서 불과 10분 만에 어리시골로 내려가는 갈림길 철조망 앞에 도착한다.

철조망과 ''탐방로 아님' 푯말로 벌재로 가는 백두대간은 끊어져 있다.

자연보존지구로서 출입금지 구간임을 알린다.

이 지점의 안내판.

황장산 구간의 고도와 구간 거리.

날머리인 어리시골을 내려가는 등로는 데크계단으로 열려있지만...

금방 너덜과 돌길로 다소 거친 길. 앞서간 오원석 고문님의 안전이 걱정이 된다.

말이 계곡일 뿐 오랜 가뭄으로 이미 말라버린지 오래.

안생달 1.6km이정표를 지나고...

안전 시설을 지나...

안생달이 1.1km 이정표.

좌측 계곡은 아직 말라있어.

농로 끝지점에 내려섰다.

농로로 내려서서 뒤돌아본 산길.

농로 양 옆으론 오미자밭.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오미자는 청포도를 닮았다. 아~ 이래서 오미자로 와인을 만드나 보다.

탐방로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돌아본 모습.

농로를 따라 내려서며 맞은 편 대미산을 올려다 본다.

당겨도 보며...

안생달 100m 이정표에 닿았더니...

어라~ 벌써 산행을 마친 일행들이 질펀한 뒷풀이를 즐기고 있다.

와인피플에서 제공해주는 수도꼭지에서 웃통을 벗고 땀을 씻으려다 아래를 쳐다보니 아까 산행을 시작하였던 탐방안내소가 보인다.

탐방안내소를 살짝 당겨 보았다.
-오미자 술-
오미자 한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예쁘다.
막소주 분자(分子)가
설악산 오미자 기개에 눌려
하나씩 분자 구조 바꾸는 광경.
매일 색깔 보며 더 익기를 기다린다.
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
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부서지기로 마음먹는다.
가볍게 떫고 맑은 맛 !
욕을 해야 할 친구 만나려다
전화 걸기 전에
내가 갑자기 환해진다.
<황 동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