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 돌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로서 (1) 원래부터 돌감람나무 종류가 있고, (2) 원래는 좋은 감람나무였으나 주인의 손질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있다. 통상적으로 감람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은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이를 거꾸로 비유한다.
이처럼 참감람나무의 가지 일부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였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방인이 원가지가 아님을 명백히 한다. 아마도 바울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뿌리에 연결되어 좋은 진액을 받아 품질이 낫게 변화되는 것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접붙임으로 원가지와는 전혀 무관하던 돌감람나무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동일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 이방 그리스도인도 이스라엘 족장이 누렸던 구속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주요한 것은 진액이라기 보다는 그 뿌리이다.
즉 이스라엘과 무관했던 이방인이 참 이스라엘에 접붙임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12족장과 맺은 구원의 언약과 연관된다(Hendriksen, Lenski). '참감람나무'는 16절의 '처음 익은 곡식'과 통하는 것으로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모든 혜택의 근원을 상징한다. 이처럼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롬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 유대인들의 일부가 구원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들을 향해 우월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여기서의 '가지'는 꺾여진 가지로 원가지에서 벗어난 유대인을 말한다. 이방 그리스도인은 이들에 대해 자긍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긍(카타카우코)이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높이며 자랑한다는 뜻이다.
당시 로마 교회의 구성원 중 일부가 영적 자만심을 가지고 동료 유대인 신자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원가지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자만심에 빠져 유대인이 원가지에서 꺾여졌다고 주장해도 자신들이 뿌리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가지들을 지탱시켜 주고 가지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뿌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된 '너'가 단수형으로 쓰여 마치 개인을 대상으로 구원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울은 교회에서의 이방적 요소를 하나의 단위로 다루고 있는 것뿐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 민족의 복음 거부로 인해 이방인 교회가 탁월한 위치에 있게 됨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으로 인해 교만과 자만심을 갖게 하지 않도록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기원을 생각하도록 한다.
[롬 11: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는 '꺾이운 가지'와 '접붙임을 받은 나'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예증은 이방인들을 교만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려는 것이다.
[롬 11: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옳도다 - 이에 해당하는 '칼로스'는 '바로 그렇다', '맞다'의 뜻으로 앞절의 내용을 시인하는 것이다. 구속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보장되었던 것이 이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유동적으로 적용됨으로 인한 구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긴장을 보충 설명하려는 것이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 유대인이 버림을 받은 것은 불신 때문이고, 이방인이 접붙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므로'와 '믿으므로'가 모두 여격으로 쓰여져 이유, 수단, 원인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궁극적으로 믿음으로 인해 두 가지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났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은 불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자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이방인은 서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으므로'가 강조된 것은 견고히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믿음인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