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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의 판타지적 욕망
1. 머리말
현대 문화의 있어서 판타지의 위상은 매우 높다.『해리포터』의 세계적 성공은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한국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2006. 11월)을 세운「괴물」역시 판타지적 상상력의 시대적 위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흥행 사례가 문학성 혹은 예술성의 성과와 곧바로 등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 배면에 문학장이나 예술장의 후기자본주의적 속성이 작용한다는 혐의 역시 짙다. 하지만 이들 텍스트의 근저에 자리한 판타지적 상상력은 그것이 견인해 나갈 차후 문학예술의 미래를 전조하고 있다. 판타지는 새로운 상상력의 중요한 화소(話素)임을 부정 할 수 없다.
판타지의 부각은 그 자체로 거대 담론의 해체와 재현의 다양성을 증거로 ‘포스트 모던적’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적 판타지가 근대적 혹은 당대적 상상력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신기하고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통칭하는 판타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학작품 생산에 관계해 왔다.
우리의 신화, 민담, 전설 등 설화의 장 속에서도 신비한 시공간의 설정, 주인공의 신비한 출생 배경과 초인간적 능력 등 판타지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상징하는 동양철학의 구조적 성격과도 연관된다. 가시적 실제를 넘어 초월 세계를 전제하는 구도의 메커니즘은 동양적 세계관의 특성이다. 이러한 전통적 세계관은 문학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문학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이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적인 특징은 판타지의 이중성이다. 문학성과 긴장 역시 판타지의 이중적 성격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또한 판타지는 비현실적 몽환의 구성물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상징적 현실은 하나의 허구로서 비일관성과 균열로 점철되어 있으며, 판타지는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판타지는 따라서 현실 혹은 상징적 질서의 구조적 원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은폐하는 중층적 계기일 수 있다.
본고는 김만중의『구운몽』과 그 현대적 판본인 최인훈의『구운몽』을 중심으로 문학적 판타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텍스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축적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텍스트 이면의 욕망구조와 판타지적 상상력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이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젝(S. Zizek)의 판타지이론은 이들 텍스트에 드러난 판타지적 특성 및 효과를 이해하는데 참고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본고는 이에 주목과 텍스트에 대한 실증적 규명보다는 징후적 읽기로써 접근하고자 한다. 이는 텍스트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방향인 동시에 전범의 현재화를 위한 하나의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2. 김만중의『구운몽』과 현실의 재구(재구)
몽자류 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김만중의『구운몽』은 국문학사에 있어서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최치원전』,『금오신화』와 같은 전기소설 역시 유사한 관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그 중『구운몽』은 새로운 형식으로 후대에 영향을 미치고, 국문판본을 지니는 등 다양한 문학적 요소를 겸비하여 소위 전범의 의미를 지닌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판타지적 상상력이 이데올로기적인 것과 관련된다는 사실에 이 작품은 당대의 현실적 긴장을 발생 맥락에서 지니고 있음은 물론 문학장 속에서 그 모티프가 반복되면서 정치성과 현재성을 이어가는 텍스트이다.
『구운몽』은 몽환적 구조인 판타지 욕망을 정치적 상상력으로 설명해보면, 김만중은 일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유복자이다. 결국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서포 문학의 근간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같은 사실은 서포 문학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 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여성 화자의 어조와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유형은 여성적 세계관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특징은 억압된 주체의 복원을 지향하는 내면적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형성된『구운몽』의 판타지는 현실을 재구하는 형식, 즉 외현되지 않은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구운몽』은 유교와 불교, 도교의 만남이라는 차원을 들 수 있다. 최고 권력을 지닌 귀족 가문의 적자로서 김만중과 유교적 세계관은 매우 가깝다. 그럼에도 모든 진리는 구극의 경지에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김만중은 스스로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구운몽』은 한글과 한문 텍스트가 모두 현전하는 등 표기문자의 이원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원전의 표기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지만, 그 여부와 관계없이 독서층 대중화를 위한 전략적 실천 의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언어의 근대성’을 도출해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현실의 모순 즉 상징계의 균열을 봉합하는 역할은 당대 권력층의 핵심 인사로서 김만중과 그의 작품이 귀속될 자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서사적 욕망의 과정에서 드러난 이데올로기적 허위, 언어 전략, 여성 주체의 부각 등은 봉합될 수 없는 실재이자『구운몽』의 중층적 의미망일 것이다. 지젝(S. Zizek)은 이데올로기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그 비판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러나 현실은 순진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환상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타지의 역설은 이러한 이중적 구조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구운몽』의 판타지적 욕망이 지니는 중층적 특징은 인간 존재와 현실을 반성하는 하나의 계기이며 정치적이고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3. 최인훈의『구운몽』과 욕망의 변주
『구운몽』의 ‘꿈’은 현대적 어법으로 재탄생한다. 특정한 시점으로부터 몽환의 시공을 빌어 자아를 탐색해가는 판타지 구성은 현대소설의 일반적 문법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구운몽’ 모티프는 물신화된 현대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패러디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로서 최상규의『새벽기행』(1989)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연한 일탈로부터 비롯되어 각성의 귀환에 이르는 자아탐색 여정이 환상의 시간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승원의『꿈』(1998)은『구운몽』의 보다 적극적인 패러디에 해당된다. 이 작품의 서사는 꿈과 현실이 별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의미로 귀결되고 있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최인훈의『구운몽』(1962)은 ‘독고민’이라는 인물의 환상을 통해 ‘구운몽’의 꿈을 변주하고 있다. 성진이 세속에의 욕망으로써 펼치는 일장춘몽의 드라마가 독고민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결핍과 사회적 억압 등으로 인해 보다 복잡한 착란으로 전개된다. 최인훈의『구운몽』은 환상소설의 기법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비사실적인 묘사가 하나의 재현 방식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발표된 문제작으로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운몽’의 표제는 김만중의 패러디라는 의도를 단적으로 드러내지만, 최인훈 작품은 원전의 구성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는 이중적 구조를 통해 현대인의 분열적인 심리상황을 드러내는 의도로 해석된다. 현대 소시민이 겪는 분열의식을 복잡하게 이중적이거나 다중적 서사가 유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인훈의『구운몽』은 헛된 욕망을 환몽의 형식으로 묘사한다는 기법적 차용 이외에 ‘현실의 미망’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조화하려는 의도가 지배적이다. 또한 최인훈은『구운몽』을 비롯하여 「금오신화」,「놀부뎐」,「온달」,「옹고집뎐」,「춘향뎐」등 패러디 혹은 ‘고전의 변용’ 전략을 통해 문학적 화제를 부른바 있다.
최인훈의『구운몽』에서 ‘숙’은 개체의 소외(‘독고’ 민)를 충족시키는 환상적 구성물이다. 이 인물은 독고민의 환상 속에서 여러 변신의 양태를 보여주게 된다. ‘숙’의 변이 과정은 원작에서 팔선녀의 양태를 변주하고 있다. 이러한 환상적 욕구 충족 과정은 현실의 결여를 채우려는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동일성을 추구하는 주체가 겪는 혼란의 과정이기도 하다. 편지는 곧 언어이고 언어는 현실의 질서요 이데올로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적 인식의 한계와도 관련되는 종결 형식일 것이며 판타지가 지니는 이중적 성격이기도 하다.
요컨대 최인훈의『구운몽』이 판타지 형식으로 욕망하는 것은 당대의 억압적 현실에 대한 고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비판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현실의 억압을 넘어 자아의 각성과 이를 통한 온전한 주체의 회복, 현실의 부재를 대리 충족할 수 있는 상징계적 완성 등이라 할 것이다.
라깡의 표현을 빌면 작중인물의 상상계적 동일성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실현을 위한 방법 탐구가 이 작품의 핵심적 구조인 것이다.
그러므로『구운몽』에 나타난 불완전한 주체의 반복적 욕망은 존재의 불안한 조건을 ‘사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영원한 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패러디의 관점에서 보면 김만중의『구운몽』이 선취한 욕망의 양상이 시간을 거슬러 현재화되는 맥락이기도 하다.
4. 맺음말
이상으로 김만중과 최인훈의『구운몽』을 판타지적 관점에서 조망해 보았다. 이들 작품은 각각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그 재구의 욕망을 드러낸 판타지물인 동시에 서로의 연관을 통해 욕망을 변주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꿈의 모티프를 통한 환상의 서사를 반복하고 있으며, 나아가 문학사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바 있다. 이들 텍스트는 당대의 억압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다시 그 빈틈을 봉합하여 재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계기였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중성이 곧 판타지의 속성이기도 하다.
김만중의『구운몽』에서 권선징악적 결말은 당대 권력층의 핵심 인사로서 김만중과 그의 판타지적 구성물이 귀속될 자리일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서사적 욕망의 과정은 이데올로기의 허위, 민중적 언어 전략, 여성 주체의 부각 등 중층적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구운몽』의 판타지적 욕망은 인간 존재의 조건과 현실에 관련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최인훈의『구운몽』에서 주체의 욕망은 ‘편지’가 환기하는 상징적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억압된 현실은 여러 층의 이데올로기적 재구성을 통해 봉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족될 수 없는 결여의 현실은 판타지적 서사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그 과정은 불완전한 주체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불완전한 주체의 반복적 욕망은 존재의 불안한 조건을 사후적으로 완성해나가는 꿈의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김만중의『구운몽』이 선취한 욕망의 서사가 패러디되는 맥락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구운몽』이 넓은 의미는 텍스트 외적 조건, 즉 고전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 텍스트의 의미가 현재화되는 맥락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이들 텍스트의 언어적 의미망을 넘어서는 시대적, 문학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한 문제들이 있다. 본고는, 방법론적 입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만중의『구운몽』을 조망함에 있어서 정치한 텍스트 분석보다는 그를 둘러싼 징후적 추론의 차원에서 머물렀으며, 편의상 그 현대적 판본의 예시를 최인훈의『구운몽』으로 한정하고 말았다. 이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참고문헌
김만중, 송성욱 역,『구운몽』, 민음사, 2003.
남기택,『구운몽』의 판타지적 욕망, 강원대학교 박사논문, 2006.
최인훈,『광장/ 구운몽』, 문학과지성사, 1989.
김진경,「우리 판타지 문학의 뿌리를 찾아서-한국 신화의 특성과 판타지 문학의 가능성」, 『정신세계』, 2002.
김병국,『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서울대출판부, 2001.
이유선,『판타지 문학의 이해』, 역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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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떤 면에서 문학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이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잘 읽었습니다^^
몽자류 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김만중의『구운몽』은 국문학사에 있어서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뭔가 신선한 해석인 것같아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구운몽 잘봤습니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내가 성진인가 소유인가
'이들 텍스트는 당대의 억압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다시 그 빈틈을 봉합하여 재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계기였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구운몽에 대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