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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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신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저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중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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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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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생명이신 주님,
당신이 주신 생명을 돌보는 거룩한 직종에 봉사하고 있는 모든 의료인들이
참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께 의탁하며 생명을 돌볼 수 있는 은총을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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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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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마태 13,24-30
그때에 24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 하고 묻자, 28‘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 하고 묻자,
29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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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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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없다
관행농법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잡초는 없애야 할 적이다. 그래서 전쟁을 하듯 독한 제초제를 마구 뿌려댄다. 제초제가 편리하긴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후유증을 남긴다. 작물들이 제초제를 흡수하고,개울과 강과 바다로 흘러 물을 오염시키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오염시킨다.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이 부족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고, 어떤 풀도 약효를 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니 어떠한 풀도 잡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과학적인 눈으로 볼 때도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그것들은 인간이 재배하려는 식물들의 영양을 빼앗아 먹는 도둑이 아니다. 밭에 난 풀들은 흙의 입자를 덩어리지게 하여 땅을 비옥하게 해준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흡수하여 토양에 모세관을 만들어 줌으로써 식물의 뿌리가 호흡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식물들끼리의 경쟁은 식물의 자생력을 높여 오히려 더 튼튼한 식물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태풍이 오면 벼들이 쓰러지는 것도 결국 경쟁관계가 없이 거름과 물을 공급받아 편하게 자라서 자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잡초를 뽑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듯 주변 사람들을 우리의 잣대로 필요, 불필요한 사람으로 재단하지도 말고, 그들을 제거하려 들지 말라고 하신다. 전쟁이 언제나 후유증을 만들듯,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면 서로가 편치 않다. 평화를 잃는다. 세상의 모든 것, 악마저도 필요 없는 것은 없다. 일찍이 유다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
예레미야는 말한다.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7, 5 – 7) 잡초라고 여기며 멀리했던 이웃 (자연을 포함한)을 포용할 때, 우린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동훈 신부 (원주교구 남천동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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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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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생명의 샘이 있나이다
구원된 사람아. 너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분이 누구이시고 얼마나 위대하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여 보라. 그분의 죽음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분의 돌아가심에 하늘과 땅은 애곡하며 굳은 바위도 산산히 부서지나니.
십자가 위에서 잠드신 그리스도의 늑방에서 교회가 생겨나고,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이 성취되도록 하느님의 성의는 한 병사가 창으로 그 거룩한 늑방을 헤쳐 열어 우리 구원의 대가인 피와 물이 흘러나오도록 했도다. 그분 성심의 은밀한 샘에서 흘러 나온 이 피와 물은 교회의 성사에 은총의 생명을 베풀 힘을 주었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수가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벗이여, 일어나 "동굴 입구의 벼랑에 둥지를 둔 비둘기처럼 되어라." "자기 집에 들어 있는 참새처럼" 그 안에 끊임없이 깨어 있고, 정결한 사랑의 비둘기처럼 새끼들을 거기에 숨기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거기에 네 입술을 대어라." "에덴 한가운데서 흘러 나와 네 줄기로 갈라져" 사랑으로 타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흘러 퍼져 온 땅을 적시고 열매 맺게 하는 강물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아, 네가 누구이든 간에 열렬한 갈망으로 생명과 빛의 이 샘으로 달려가 마음의 깊은 데서 나오는 힘으로 그분께 외쳐라. "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여! 오, 영원한 빛의 순수한 광채여! 당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이시고, 온갖 빛을 비추어 주시고 동녘이 처음으로 밝아 오기 시작하던 때부터 당신 신성의 옥좌 앞에서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꺼지지 않는 광휘 속에 보존하는 빛이십니다.!
모든 인간의 시야에서 감추인 샘에서 흘러 나오는 영원하고 다다를 수 없으며, 맑고, 달콤함 물이여!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그 높이는 잴 수 없으며 그 폭은 광대하고 그 해맑음은 때묻음을 모릅니다."
그 샘에서 "하느님의 도성을 즐겁게 하는" 강물이 흘러 나와 "환회와 찬미 소리 드높던 그 가운데서" 우리가 찬미의 노래를 당신께 부르고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당신 빛으로 빛을 보게 됨을" 체험으로 확증하게 되는도다.
성 보나벤뚜라 주교의 저서에서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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