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4월3일(월)맑음
간밤에 자다 깨다를 여러 번. 몸이 괴로워서 그랬나. 낮이 되니 몸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저녁 강의하다. 수행자는 시간을 아껴서 실용적으로 써야한다. 시간경영이 필요하다. 세상은 당신에게서 끝없이 시간을 뺏어간다. 세상은 당신을 늘 바쁘게 부리며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의 얽힘에서 풀려나와 ‘홀로됨’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참여함과 홀로됨의 균형을 잡아야한다. 수행자가 진정 자기의 수행을 사랑한다면 시간이란 선물을 귀하게 대하라. 시간을 잡아 쥔 수행자는 생사를 고삐를 장악한 것이니 해탈의 문에 들었다. 지나가는 순간들을 正念正智의 실에 꿰면 열반의 꽃목걸이가 되리라.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라. 흘려보낸 시간만큼 이미 너는 죽은 것이다. 시간을 홀대하는 자, 헛된 죽음이란 벌을 받으리라.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Unne Vie>를 이야기 해주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을 자초하게 만드는가? 순진함과 착함으로 포장된 ‘무지’가 Jeanne잔느를 불행한 삶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환멸을 느낀 그녀는 이렇게 독백한다.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 얽히기도 하지만, 결코 섞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 삶은 영원히 혼자인 채로 간다는 것... 사랑하는 사이라고, 친하다는 사이라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라. 네가 불완전한 것처럼,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불완전 사람끼리의 사랑이나 관계도 불완전할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무슨 변치 않는 행복을 꿈꾸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가? 모두 환상에 지나지 않건만 인간은 불가능한 꿈을 꾼다. 아니 세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한다. 그게 욕계가 자기 영역을 영위하는 방식이니까. Kammasakata 業自性正見. 제가 지은 업을 자기가 상속받아 업대로 살아간다. 함께 살더라도 각자 업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연이 다할 때까지만 같이 살아줄 뿐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상대에 대해 너무 기대할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으리라.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도 않은 거 같아요. 이것이 로잘리의 마지막 독백이다.
<목걸이La Parure> 화려한 각광을 받은 무도회의 한 순간과 십년의 인생을 맞바꾸게 된 상황은 무엇 때문인가? ‘허영심’이라는 인간의 치명적 약점 때문인가? 목걸이를 빌린 친구에게 잃어버렸다고 왜 정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랬으면 십년이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운 순간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데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만다. 두려움을 직면하라. 자연주의, 사실주의 단편소설은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2017년4월4일(화)흐림
간밤에 괴로워서 여러 번 깨다. 아직 다 낫지 않은 거 같다. 땀이 났다가도 금방 추위를 느끼니 정상이 아닌 거다. 어찌 어찌 하루를 버티다가 죽향으로 가서 저녁 강의하다. 강의 끝나고 나니 한기가 든다. 뜨거운 모과차 마시고 한 병 얻어오다. 내일 아침 고려병원 가봐야겠다.
2017년4월5일(수)비
병원에 가니 초암보살이 기다리고 있다. 내과 의사는 증상이 쯔쯔가무시에 걸린 거와 비슷하니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잔다. 가슴 사진을 찍고 피검사를 하다. 링거 주사 맞다. 좀 낫는 듯하다. 겨우 추슬러 저녁 강의하다. 강의 끝나고 송계거사와 보정보살이 침을 놓아준다. 밤에 땀을 흘리며 쉽게 잠들지 못하다.
2017년4월6일(목)비
점심 무렵 硏耕연경보살님과 같이 사천으로 달려 명성과 점심 공양하다. 船津公園선진공원 벚꽃구경 하다. 어제 배운 시를 기억한다.
柳色雨中新, 류색우중신 버들 빛은 비를 맞아 새로워지고
桃花雨中落; 도화우중락 복사꽃은 비속에 떨어지네,
一般春雨中, 일반춘우중 똑 같은 봄비에
榮悴自堪惜. 영췌자감석 피고 지는 다름이 애처롭구나.
-尹弘燦(조선 숙종 문인)
차를 마시며 연경보살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다. 꽃 잎 날리는 길을 밟고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신열이 난다. 송계거사와 보정이 와서 침을 놓아준다. 春愁춘수 가운데 봄날이 간다.
2017년4월7일(금)맑음
아픈 몸을 이끌고 오후에 대구 관오사로 가다. 주지스님 방에서 쉬다. 스님은 선운사 초기불교대학원 빠알리어 과정 연수중이다. 주초엔 주지 소임을 다하고 주말엔 선운사로 공부하러 가시니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2017년4월8일(토)맑음
오후 2시 모임 시작하다. 11명 참석하다. 영일스님 <초전법륜>을 전후한 내용을 빠알리 경전에서 인용하여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스님은 미얀마 불교대학으로 유학 갈 예정이다. 오후8시까지 하고 마치다. 경진스님과 수행의 미묘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탁마하다.
2017년4월9일(일)흐림, 바람
아침8시 동대구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진주로 돌아오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길을 달린다.
‘꽃잎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가 난다. 踏花歸去馬蹄香답화귀거마제향’이란 글귀가 떨어진다. 이런 화제를 주면서 그림을 그리게 했던 송나라 휘종의 운명도 영락하여 떨어졌다. 떨어지는 것이 많고, 흩날리는 것도 많고, 가벼이 날리는 처신도 많으나 모두 자기자리에 돌아가 쉼만 못하다. 자기자리가 어디인가?
2017년4월10일(월)맑음, 바람
바람이 모든 꽃을 떨어뜨릴 심산인지 꽃가지를 훑듯이 불어서 날린다. 雲谷 송한필(宋翰弼, 1539~)이 봄일春事을 노래한 것은 정당하다.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 왕래풍우중
어젯밤 비에 피었던 꽃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
비바람에 오고 가는구나.
금성보살을 수행상담하다. 저녁 강의하다.
2017년4월11일(화)맑음
모처럼 하늘이 청명하다. 오전에 보름 독경법회하다. 오랫동안 결석하던 현정과 문정보살이 참석하여 기쁘다. 현정은 최근 수술하여 요양 중이다.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에서 시를 써서 주었다. 오후에 죽향에서 향인과 리화보살을 면담하다. 저녁 강의하다.
2017년4월12일(수)맑음
대구에서 용계동 보살이 오다. 같이 점심 먹고 아미화보살이 운전하여 진양호로 드라이브하다. 꽃망울을 맺은 왕벚 꽃가지는 인상파 화가가 방금 그려낸 그림같이 선명하다. 춘색 산하가 호수에 잠겼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날린다. 기약 없는 세상에서 겉도 보이고 속도 보이며 무상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우리 존재여! 진양 호반에서 놀다가 용계동보살은 대구로 돌아가다. 저녁 강의하다. 인생을 불확실하나, 죽음은 확실하다. 만남은 불확실하나, 이별은 확실하다.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 그리움이 강처럼 흘러 한 생을 살아간다. 여기에 한 여인이 그리움을 노래했다. 春望詞춘망사-봄에 그리움을 노래하다.
同心草-薛濤(770~832)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동심초-설도(당나라 여류시인)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김소월의 은사인 김억(金億,호 岸曙안서,1896~?)이 이러히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했다. 북한으로 납치된 岸曙, 생사를 알 수 없다. 북한에서 보낸 그의 삶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만의 일일까, 얼마나 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북한에서 적막한 고독 속에 죽어갔을까?
보살의 37수행법을 오늘 완성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다음 주부터 강의할 것이다.
2017년4월13일(목)맑음
문인과 심원보살을 면담하다. 아미화보살과 합석하여 저녁 공양하다. 선원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야 한다. 상담이란 경청과 공감, 이해와 존중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 사람의 그림자를 이해해야 한다. 그림자란 고통스런 기억과 상처, 설움과 억울함, 상실과 비애, 자포자기와 자기비하이다. 이런 것들이 가슴에 엉겨 있으면 자꾸 자꾸 일상으로 불거져 나와 괴로움을 재생산해낸다. 촛불 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우듯, 모든 삶에는 그림자가 진다.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를 찾아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심리는 건강하다. 그 사람의 그림자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위로 받고 치유가 될 수도 있다.
봉선사의 禪圓스님이 찾아와 일박하다.
2017년4월14일(금)맑음
아침을 장만해서 선원스님과 같이 먹다. 객스님은 봉선사로 돌아가다. 저녁에 초록보살 와서 함께 공양하고 차 마시다. 윤회와 願力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첫댓글 "상담이란 경청과 공감, 이해와 존중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길 원한다면 그 사람의 그림자를 이해해야 한다"
스님은 저에게 그렇게 해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