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우리동네 난곡' 취재팀은 재개발로 달동네 난곡을 떠나간 이웃사촌을 찾고 있던 중 이인순(81)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할머니 앞으로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
[글 최봉실]
이인순 할머니, 안녕하세요.
지난 해 봄부터 오마이뉴스의 '우리동네 난곡' 취재팀은 달동네 난곡을 떠나간 이웃사촌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통과하고 있네요.
할머니를 만난 것은 그 겨울 한복판이지요. 신림7동 중앙단지 노인 쉼터에서, 그리고 40년째 이어온 난곡 계모임에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림7동 국회단지에 있는 노인정에서 만났을 땐, 마루 베란다 창문에 접해 있던 소파 아래 바닥에 주저앉아 긴 사연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짧게 나누었습니다.
2001년 12월 9일. 할머니는 재개발로 난곡을 떠나던 날이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짧고 뽀글뽀글한 퍼머 머리. 동그란 눈매에 동그란 얼굴을 한 할머니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구수한 이북 말씨가 다시 듣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난곡 친구분들 중 절친한 두 분도 이북 출신이셨지만, 할머니의 이북 말씨가 제일 그대로 살아 있었어요.
신림7동 노인정에서 만난 이인순 할머니
할머니는 북에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쟁통에 남으로 피난을 내려오셨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청계천에 라디오 가게를 하나 차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셨지요. 하지만 보증을 잘못 서 그만 가게가 망하고, 그 탓에 전세 살던 집을 빼 이촌동에 사글세 1만 원 집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구청에서 나와 집을 마구 때려 부수었다고 하셨지요.
"갑자기 그러는 거야. 아무 얘기도 없었는데. 우리는 그 길로 쓰레기차에 실려 난곡으로 옮겨졌어." '쓰레기차'라고 하시는 말이 믿기자 않아 제가 재차 물었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40년 전 그 쓰레기 차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 눈살을 찡그리셨습니다.
68년, 그렇게 난곡으로 온 할머니 가족은 난곡으로 이주한 다른 철거민들처럼 손수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 잃고 막막해진 이들이 지을 수 있는 집이 튼튼하면 얼마나 튼튼할 수 있었을까요?
"천막 치고 살았는데. 비가 오면 홀랑 벗겨지는 거야. 이불도 다 젖고, 그랬지." 할머니는 그때의 막막함과 설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어이없어 하셨습니다. 남편은 몸이 안 좋아 집에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란 할머니 혼자서 새마을 일을 하는 것뿐. "그거 해서 밀가루 받아 매달 수제비 해 먹었다"고 하셨어요.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하지만 할머니 가슴을 더욱 저리게 했을 일이란,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에 뇌 마비로 장애를 앓고 있던 아들 일이겠지요? 어미가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아들이 어느날 홀연히 집을 나갔으니. 더구나 아들이 집을 나가 소식을 끊은 것이 40세 때라니요. 몸에 장애를 안고 장년이 될 때까지 아드님은 얼마나 가슴에 한을 쌓고 살았길래, 그렇게 홀연히 집을 나간 것일까요? 그런데 그 아들도 노인이 되었을 60세의 나이에, 할머니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소식을 듣게 되셨지요.
"우암동 송파쪽에 있는 천주교에서 연락이 온 거야. 아들이 거기서 지내다 죽었는데, 데리러 오겠는지, 어떻게 하겠냐고 말야." 폭포처럼 밀어대는 세월의 무게에 이제 더 이상 대응할 힘을 잃은 것처럼, 할머니는 기가 차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그 세월을 도대체 어떻게 견디며 사셨나요? 할머님의 손을 꼭 잡으며 그렇게 여쭸더랬죠.
"그러니 이렇게 나다니는 거지. 집에서 생각하고 있으면 미쳐." 그래서 아침 먹고 나면 옆집 난곡 친구와 더불어 노인 쉼터로, 국회단지 노인정으로, 저녁 먹을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있다가 집에 돌아가시는 할머니. 그런 사연을 간직한 할머니신데, 어찌 그 미소는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지요? 할머니의 한 친구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인순이가 친구들 중에서 마음씨가 제일 좋다"구요.
다행히 지금은 남편 분도 건강해지셨다구요. 하지만 두 분 다 80세가 넘으셨으니 아무쪼록 더욱 건강하셔야지요. 그리고 난곡이 재개발 될 때 받은 이주비와 집값으로 5000여만 원을 받아 그 돈으로 지금 살고 계신 반지하 집을 장만하셨으니 그것도 다행스럽다고 해도 될까요? 게다가 할머니 바로 옆집에 또 절친한 달동네 난곡 친구 분이 살고 계시니, 또 매일같이 난곡 친구들을 만나며 지내시니, 그것이라도 그 고통스럽던 세월에 대한 조금의 위로라 할 만할까요? 부디 남은 여생은, 몸 건강히 즐거우시기를 빕니다.
할머니가 현재 살고 계시는 신림7동 중앙단지에도 재건축추진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더군요. 하지만 8개월 넘게 진행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재검토' 결과가 지난 15일 발표되었어요.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서 공공의 역할이 늘어나 민간 주도 막개발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결론이예요. 뉴타운이 서민주거 불안을 초래해 추가 지정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군요. 뉴타운 사업이 할머니의 남은 여생을 마지막까지 흔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떨리는 가슴을 조심스레 쓸어내려 봅니다.
이인순 할머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인순 할머니가 사는 신림7동 중앙단지. 재개발추진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