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 출처를 밝힙시다
‘남의 글 퍼감’에 대하여
◆ 《좋은 글》, 「작가 미상」이 왜 그리도 많은지…
- 추억의 졸고 수필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이 문득 떠올라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저자
자신의 창작물이 아니고 ‘남의 글’인데도 자유롭게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 관계망에 남의 창작물을 옮긴다.
남의 글을 옮기면서 끄트머리에는 으레 이렇게 표현한다. <‘좋은 글’ 중에서> 또는 <펌 ‘좋은 글’>. 누구에게나 <용납된 공유물>로 보는 것이다. 물론 <공유>장치나 <복사가 허락>된 사이트도 많다.
▲ 각종 사이트 <'좋은글' 퍼옴> 사례 일부
만약, 논문의 경우라면 표절(剽竊) 논란이 끊이질 않을 일이다. 부분 표절도 아니고, 저작자의 허락 없이 ‘통째로 퍼감’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훔치다>, <도둑>, <몰래>의 뜻을 가진 ‘절(竊)’자로 인하여 영예스러웠던 석· 박사라는 학문적 성취가 평생 복구하기 어려운 오점으로 남는다.
SNS ‘퍼온 글’도 말이 좋아 ‘퍼온 글’이지, 원작자의 처지에서 보면 지적 재산을 도둑맞은 셈이다. 누가 쓴 글인지도 전혀 밝히지 않는다. 《좋은 글》, 「작가 미상」 만연 시대다. 어디서 퍼왔는지 지면이든 사이트든 출처도 없다. 그저 막연하게 <‘좋은 글’ 중에서>란다.
아리송하고, 모호하게 <펌>을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옮긴이가 권한을 가진 저작물은 아니다. 그러므로 명백한 ‘지식 절도’다. 작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전재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글이니, ‘절도’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현행범(?)으로 단죄하기 어렵다. 도둑 잡는 것을 업으로 했던 필자 역시 ‘(지식) 절도 현장’을 목격하고도 수수방관한 적이 있다.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직무유기 사실’을 글로 써서 수필 전문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남의 글 퍼감>, 과거와 오늘의 <달라진 풍속도>를 보면서 풋풋함이 느껴지는 과거 나의 졸고 수필 전문을 소개한다.
※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 이 글 역시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걸 보면 누군가가 퍼갔다. <펌>해다가 ‘세상 사는 이야기’ 귀한 공간에서 이른바 ‘좋은 글’ 대접을 해주고 있으니, 필자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나의 졸고 중 어느 한 대목이라도 마음에 들거나 공감하는 데가 있으니, 귀한 공간으로 옮겨 갔을 것이 아닌가. 졸고를 옮겨가면서 ‘필자의 이름 석 자’ 분명히 밝혀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2022.02.02. 필자 주)
※ 출처 : 수필전문지 《한국수필》 1999년 9 · 10월호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
윤승원
시집 코너에서 무언가 열심히 메모하는 두 여학생을 보았다. 그들은 책을 사려고 책방에 온 학생들은 아닌 듯 보였다. 서성이던 두 학생 중 한 여학생은 연신 무엇인가 메모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여학생은 친구의 이 같은 행동을 돕기 위하여 곁에서 말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애써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고르려다 말고 호기심이 일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책을 고르는 척하면서 무엇을 메모하는지 곁눈질했다. 그러나 확인은 쉽지 않았다.
누구의 책일까? 어떤 문구가 그리도 좋아 베끼는 걸까? 그렇게 좋으면 선뜻 한 권 사지, 왜 한 사람은 ‘가림막’이 되어주고 한 사람은 연신 베끼는 걸까?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숱한 호기심이 일어 정작 나의 책 고르기는 잊어버린 채, 짓궂게도 곁눈질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들 곁을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직 그들은 나의 곁눈질을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 그들의 행동에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더는 그 자리에 머물기 어려웠다.
나는 저만치 물러나서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얄궂게 느껴졌으나, 차츰 여학생들이 밉지 않았다. 열심히 메모하는 그 모습이 왠지 사랑스럽고 예뻐만 보였다.
하기야 요즘 책값이 수월치 않다. 한 권에 적어도 4, 5천 원, 비싼 것은 1만 원을 호가하는 신간도 많다. 그러니 여학생들이 무슨 용돈이 풍족하여 사보고 싶은 책을 다 사볼까?
마음 같아서는 내 빈곤한 지갑이라도 털어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시집 한 권쯤 선뜻 사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부끄러움 잘 타는 여학생들에게 자칫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나는 그들의 깜찍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학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어떤 것인가 짐작할 수 있었다. 경험으로 보면, 그와 같은 행동은 어떤 열병(熱病) 직전의 예비증상인지도 모른다. 아니, 단순히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한 줄 베껴 두는 것이라 해도 나는 그들의 손이 예뻐만 보였다.
문학이 별스러운 것인가. 처음엔 모방으로 시작해서 창조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여학생들은 적어도 10여 년 후쯤엔 틀림없이 명성을 날리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학창시절, 나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여학생이 떠오른다. 그 여학생의 편지글은 막힘이 없었다. 그 섬세하고도 이지적인 감성은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의 편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장이 아닌가.
당시 나는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읽고 있었다.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여학생의 문장이 바로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로 시작되는 강신재의 단편 「젊은 느티나무」의 한 구절이 마치 나를 향한 절절한 문구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설령 남의 문장이라도 나는 그 여학생의 편지가 밉지 않았다. 까닭 모를 연모(戀慕)의 정이 더욱더 새록새록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편지로 숱하게 나누었다.
1984년 7월경으로 기억된다. 학생 시위가 가장 극렬하던 시기에 고급 양장본으로 처음 나온 《장길산》을 월부로 사들여 읽었다. 당시 나는 시위 상황을 염려하는 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경찰관의 입장에서 현실 상황과 묘한 대비를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18세기 조선 중기라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어, 연일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시위 상황과 작품을 대비한 것은 어쩌면 나의 과민인지도 모른다. 투옥된 자를 탈취하기 위해 관가를 습격하는 작품 속의 무리와 정권 타도를 외치며 파출소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예사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순수한 독자로서 소설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경찰관의 처지에서 현실 상황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 후 이 책은 작가의 이채로운 행적만치나 세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특히 북한의 도서관에도 비치되어있는 이 책을 학생들이 군데군데 면도날로 오려 갔다는 기사를 읽고 적이 놀란 적이 있다. 책을 오린다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가 아닌가.
내가 가끔 들르는 도서관에는 열람실 옆에 복사해 주는 곳이 있어 이용객들이 늘 줄을 선다. 아직 우리만큼 복사기 보급이 충분치 않은 북쪽의 학생들은 도서관의 책을 훼손하는 일도 있을 법하다.
나도 책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지만, 순수한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책이 비록 재화(財貨)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러나 책을 생업으로 이어가는 출판인이나 서점 주인의 입장은 다르다.
책을 사지 않고 베끼는 행위도 엄격히 말하면 절도다. 저작자의 허락 없이 복제·복사하는 행위를 지적 재산권 침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책방 주인의 눈을 애써 피해가며 시집을 열심히 베끼는 절도(?)행위와 그의 곁에서 가림막이 되어주는 여학생의 방조(幇助)행위, 그리고 이를 보고도 못 본 척 슬그머니 피해 준 나 역시 엄밀히 따지면 직무유기요, 같은 통속의 종범(從犯)이 아닐까? 그러나 티끌만큼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 - 《한국수필》 1999.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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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문화계의 진단을 하신 소중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카톡으로 ‘지은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펌, 좋은 글>을 3통이나 받았습니다.
유익한 건강정보나 생활상식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보내주신 분의 성의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무에게나 유익한 글을 보내주나요.
남달리 각별한 인연과 따뜻한 애정으로 혼자 읽기 아까워
좋은 글 퍼다 옮겨 주시는 분들의 성의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가까운 지인들과 그런 정보 교류마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하지만 시나 수필, 또는 완성도 높은 개인 창작물은
저자나 출처를 꼭 밝혀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많은 이에게 보내어 공유하고 싶어도
《출처 불명, 작가 미상》글이라 혼자 읽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