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의술]
간염과 제2차 세계대전
 
2차 대전 때 수십만 명 ‘황달’…
전후 백신 연구 급진전
 
1945년 초까지 전 세계에 파병된 미군 중 20만 명이 간염 걸려
1964년 美서 B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5년 뒤 백신 개발 성공
치사율 더 높고 백신 없는 C형 간염 확산 우려…위생에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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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 질환으로 표현되는 황달은 흔한 증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만성 간 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첫째다. 전체 인구의 약 3~4%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이는 찌개를 먹을 때처럼 한 가지 음식에 여럿이 숟가락을 넣어 공동으로 먹는 음식 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와 종전 직후부터 간염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1926∼2006) 감독의 ‘간장 선생(Kanzo sensei, 1998)’을 보면 2차 대전 말, 유명한 의대를 졸업한 섬마을의 내과 의사 아카기 선생은 주민의 건강을 지키려고 성의껏 환자들을 돌보는데, 그가 내리는 진단은 늘 ‘간염’ 한 가지뿐이다. 그는 이 병의 원인을 찾고, 퇴치하기 위해 현미경 성능을 개량하고, 환자를 설득해 부검하는 등 간염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한 의사의 의술을 통해 간염과 같은 집단 전염병의 실체를 밝히려는 역사가 담긴 영화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독립전쟁 때 약 7만 명이 황달에 걸려 ‘부대 황달(camp jaundice)’로 불렸으나, 2차 대전 때 특별한 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이 병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42년 여름, 황열병 예방 접종을 받은 병사들 가운데 5만 명에게서 황달이 나타났으며, 62명이 사망했다. 당시 약 30만 명 정도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조사관들은 예방주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 인체로 전파된 것으로 의심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모두 폐기하고, 백신 제조 과정에서 사람의 혈장이 포함되지 않도록 공정을 바꾸자 유행성 황달은 더는 전파되지 않았다.
또 한 해 뒤인 1943년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주둔한 시칠리 섬의 점령지에서 병사 1000명당 37명 비율로 황달이 발생했다. 환자는 1만6000명 이상이 보고됐고 이들은 평균 6주간 입원했다. 이 부대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기는 했지만, 황달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걸리고 전투력 소실 기간(days of fighting strength loss)도 가장 긴 병으로 1944년 여름까지 2만2000 사례가 보고됐다. 통계를 보면 1945년 초까지 전 세계에 파병된 미군 중에서 간염에 걸린 사람은 20만 명으로 집계됐다.
 영화 ‘간장선생’의 한 장면. 필자 제공 |
2차 대전을 겪으며 대두한 이 유행병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미군 당국은 예일대학 등과 함께 역학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오랜 연구 후에야 마침내 간염을 일으키는 원인인 바이러스를 찾았다. 1964년 미국의 블룸버그(Samuel Blumberg, 1925∼2011)는 유전과 질병 감수성 간의 관계를 연구하다가 호주 원주민의 혈액에서 어떤 항원을 발견했고, 거듭된 연구로 이 항원이 B형 간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임을 밝혀냈다. 1969년에는 B형 간염의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블룸버그는 이 공로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2년 B형 간염을 면역 확대 사업에 포함해 1997년부터 모든 나라에서 B형 간염을 신생아 기본 예방 접종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B형 바이러스 간염이 만연해서 한때 ‘간염 왕국’으로 불렸던 우리나라는 1991년부터 신생아 예방 접종 사업을 시행했고 그 결과 1980년 초 남자 8~9%, 여자 5~6%였던 감염률이 2006년에는 4~6세 소아에서 0.2%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방 접종의 혜택을 보지 못한 중·장년층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만성 간염 환자는 40만 명 정도 된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 C형 간염이 주요 간염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달 증상이 더 심하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이 C형 간염은 이미 백신 개발에 성공한 B형이나 A형보다 유전자형과 아형(subtype)이 다양해 백신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개인 의원에서 일회용 주사기를 여러 차례 사용해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수십 명에게 전파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간염의 심각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예방 접종 사업의 결실로 현재 병영에 있는 장병들은 대부분 B형 간염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가하는 C형 간염에 대비해 과로를 피하고 개인 위생에 더욱 힘쓰면 좋겠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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