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24, 8, 11)
제목 : 지속적인 순종
성경 : 수 10 : 28-43
오늘도 주 앞에 나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반응의 차이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꼬집거나 흔들면 거기에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 있는 사람은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꼬집고 흔들어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반응을 합니다.
찬양을 부르거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다든지, 깨닫게 된다든지, 찔림을 받는다든지 뭔가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자라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삶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은혜를 받는다든지, 깨닫게 된다든지, 찔림을 받는다든지와 같은 변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수십 년 교회를 다녀도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항상 그래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신앙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죽어 있는 신앙입니까?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내 신앙이 찬양을 불러도,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죽어 있는 신앙이라면 하나님께서 살리는 영을 부어 주셔서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나의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막게다 굴에 숨어 있는 남부 연합군 다섯 왕을 죽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계속해서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첫 번째 타겟이 막게다입니다.
막게다를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습니다.(28)
이렇게 하여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 립나,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 드빌을 차례로 점령해 갔습니다.<지도참조>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최남단 지역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와 가사와 고센 땅까지 완전히 전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28절 하반 절에 나와 있습니다.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계속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30,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2,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5,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7,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9,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같았으며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반복적으로 행한 것입니까?
점령하는 곳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28절, 30절, 32절, 33절, 35절, 37절, 39절, 40절에 나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40절에 나와 있습니다.
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기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속적인 순종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 두 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순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일관성 있는 순종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1대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왕이 되었습니다.
왜 그는 실패한 왕이 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순종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아말렉 족속에 대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일부만 순종하고 일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나 양 중에 좋은 것은 살려두고 약한 것들만 진멸했습니다.(삼상15:9)
사울 왕의 핑계는 좋은 소나 양을 살린 것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사울 왕에게 이렇게 책망을 했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결국 사울 왕은 폐위가 되었고 그 자리에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과는 달리 지속적인 순종을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신약에 예수님이십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옮겨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셨을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지속적인 순종을 하신 예수님께 하나님은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빌2:9-1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속적인 순종을 하나님은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가나안 남부 모든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인 순종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관된 순종을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남부로 계속해서 전진해 나갔습니다.
막게다를 점령한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립나로 가서 립나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멈춘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전진하여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 드빌, 그리고 가나안 최남단 가데스 바네아까지 차례로 점령해 나갔습니다.
여기서 배우는 것은 신앙은 중단 없이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후퇴가 없습니다.
신앙은 전진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2세기 경건주의자로 알려진 성 버나드는 신앙에 관한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가지 않고 서 있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이 계속해서 전진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사실상 퇴보하는 것입니다.
지난 코로나 3년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퇴보를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많고, 교회에 나오지 않고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왜 유튜브로 예배를 드립니까?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전진이 아니라 퇴보입니다.
신앙의 퇴보는 결국 믿음이 식어 지게 만들고 자신의 구원까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이 뒤로 물러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 10:38-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오직 앞으로 전진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은 가나안 땅의 왕들이 여전히 다스렸습니다.
그것은 곧 우상이 그 지역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단과 죄악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령한 지역은 하나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만나 큐티 잘 하고 있습니까?
지금 주 만나 큐티에서는 사도행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구제를 위해 세움을 받은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기 전의 사마리아는 마술사 시몬이 마술로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시몬의 마술에 놀라서 그를 추종하며 숭배했습니다.
한 마디로 마귀가 그 지역을 지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가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자 더 이상 사람들이 시몬을 따르지 아니하고 빌립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마술사 시몬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술과 마귀가 지배하던 사마리아 지역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시행되는 하나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막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근에 이순신 장군을 다른 영화 노량이 개봉이 되었습니다.
2014년도에 개봉하여 크게 흥행을 했던 명량에 이어 나온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왜군 300척을 무찌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것은 왜군과의 전쟁에서 23전 23승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이렇게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본문 33절에 보면 라기스를 도우러 온 게셀 왕 호람과 그의 군대까지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진멸시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군사력일까요?
아니면 여호수와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략이 뛰어나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을 읽겠습니다.
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저와 여러분이 모든 삶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 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모든 문제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삶의 국면마다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