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소먹이든 추억의 뒷동산은
사실상 천혜의 비경이었습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마을 앞은 넓은 들이 펼쳐있고
강 건너는 굽이치는 낙동강을 따라 마을을 형성할 수 없는 급경사의 험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 뒷산의 산서랑 앞에는
커다란 아들 바위와 딸 바위가 있어 주상절리의 비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들 바위와 딸 바위 뒤의 산서랑은
산의 허리를 끊은 바위의 절리가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어 천혜의 비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은 6.25 사변 때 마을 사람이 피신하였고
강 건너 산에 은신한 적을 소탕하기 위해 국군의 낙동강 전선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여름이라 장마철의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인민군이 넓은 강폭의 낙동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바위의 절리를 지나면 못이 있고
못둑에서 바라보면 타원형의 병풍처럼 둘러쳐진 수 많은 산의 봉우리가 넓은 계곡의 분지를 형성하였습니다.
수 많은 산의 봉우리가 만든 넓은 계곡의 분지는 소를 먹이기에 안성마춤이었고
어린시절 그 아름다운 천혜의 비경은 몸에 밴 목가적 서정을 형성하였습니다.
독특한 산의 구조로 형성된 마을은
일찌기 선조와 할아버지 사형제가 터전을 잡았습니다.
당시에는 오지마을이라 일제시대에도 피해가 전혀 없었고
새마를 운동을 할 때 버스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가 만들어졌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정상은 너무나 가파르고 험악하여
꼭대기의 능선을 따라 일주를 할 수 없었습니다.
산 넘어 기슭에는 다른 마을이 자리잡았지만 산이 험하여 넘어 올 수 없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분지는 오롯이 우리 마을의 뒷산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곳에는 산도라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만
집의 먹거리가 풍성하여 산도라지를 채취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시절 소먹이머 뛰어 다녔던 마을의 뒷산은
지금 생각해 봐도 커다란 아들 바위와 딸 바위가 솟아 있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계곡의 물이 산의 허리를 잘라 바위의 기암 절곡을 이룬 기암단애,
그 천혜의 비경이었습니다.
산서랑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바위의 절곡은 계곡으로 흐르는 좁은 공간을 따라 소먹이러 다니는 길이 되었고
그 나마 물이 많이 흐르면 바위 틈으로 난 길을 따라 다녔습니다.
얼마나 깊은 절곡이 형성되었는지~
맨 손으로 아들 바위를 오르고 바위의 절리를 클라이밍하였던 모험심은
오늘날 몸에 밴 어린시절의 산을 정복하는 호연지기였습니다.
아마도 그 때 바위를 오를 때 바위에 기생하였던 검은 물체가
오늘날의 석이버섯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소먹이던 시대가 끝나고 산에 나무를 하던 시대가 끝난 오늘날의 마을 뒷산은
울창한 숲이 우거진 밀림의 정글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고향 마을 찾는다면
수 십 년이 되었을 바위의 석이버섯과 산도라지를 채취할 것입니다.
이렇게 몸에 밴 어린시절 바위의 절리와 기암절곡의 향수는
천혜의 계곡, 그 비경을 찾는 탐사의 취향을 갖게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등산의 취향을 먼저 가졌고 그 후 출사의 길을 떠나면서
기암절리와 그 단애를 찾는 천혜의 비경을 마음의 상으로 새겼습니다.
몸에 밴 자연의 풍광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다보니
어느듯 더위는 온데간데 없고 눈 앞에 펼쳐지는 계곡의 비경이 시원한 시선의 풍광이 되었습니다.
80년대 초에 한라산 정상을 오르면서
우리 나라 삼대 계곡인 탐라계곡을 견식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삼대 계곡은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지리산의 칠선계곡이 있습니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은 명승 제 101호이며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7키로 구간의계곡입니다.
이 천불동 계곡에는 비선대, 문수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포 등
수려하고 빼어난 경관들이 계속 이어져 있어 설악산의 대표적 명승지며 삼대계곡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지리산의 칠선 계곡은 백무동의 한신계곡과 뱀사골 계곡이 있지만
우리 나라 삼대 계곡으로 손꼽힐 만큼 그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절곡, 그 천혜의 비경이 수 놓아져 있습니다.
칠선계곡은 추성을 출발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용소에서부터 주지터,
추성망바위,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폭포, 마폭포를 거쳐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선경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젊은 시절 해마다 찾았던 지리산은
칠선계곡과 한신계곡과 뱀사골 계곡의 수려한 경관의 선경이 아름다운 마움의 상으로 새겨졌습니다.
그 외에도 대구에서 한 두 시간의 거리에 있는 명산의 계곡을 찾아
세월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천혜의 계곡을 탐사하였습니다.
가야산의 계곡은
성주의 포천계곡과 고령의 백운동 계곡과 합천의 홍류동 계곡으로 유명합니다.
지리산의 삼대 계곡 못지 않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가야산의 계곡은
1430미터의 높이가 만들어 낸 세월의 절곡입니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만나는 기암절곡의 계곡은
그 천혜의 비경 앞에 발길을 멈추고 탄성을 자아냅니다.
성주 포천 계곡의 만귀정은
지리산 칠선 계곡의 일부를 옯겨다 놓은 듯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합천의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과 천불산의 경계가 만들어 낸 기암절곡으로 유명합니다.
몇 년전 해인사의 소리길로 개발되어
그 동안 폐쇠되었다가 이제는 유명한 관광코스가 되었습니다.
고령의 백무동 계곡은
가야산 야생화 단지에서 가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끼고 있어
등산로 대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세상에서 가장 맑은 계곡의 명경지수를 경험할 것입니다.
예전에 도올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극찬하였던 양산의 내원사 계곡은
계곡과 등산로가 인접해 있어 계곡의 수려한 경관을 시선의 풍광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내원사 계곡은 계곡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나무의 뿌리는 세월의 세류가 만들어 낸 예술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원사 계곡은 한번 찾은 이후....
해마다 찾아가는 계곡의 풍류가 되었습니다.
깊은 계곡의 울창한 숲은 계곡의 비경을 이루며
한 여름의 피서 뿐만 아니라 사계절의 경관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계곡의 비경을 찾아 자리를 펴고 물에 발담그는 것은
피서의 가장 낮은 단계일 것입니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곡을 탐사하면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지만
그 세류가 만들어 낸 세월의 흔적을 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북 단양의 팔경 가운데 하나인 선암 계곡은
상선암과 중선암과 하선암과 소선암의 좋은 풍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선암 계곡을 따라 드라이버하는 여유만 가져도
한여름의 피서로는 일생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 계곡과 괴암류는 낙엽활엽수림의 정글을 이루며
등나무 군락을 비롯하여 아름드리 삼나무와 전나무와 편백 나무의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금정산의 범어사 계곡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울창한 활엽수림과 아름드리 삼나무와 편백 나무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암괴석의 괴암류에 자라는 울창한 밀림지대는
한번 탐사한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서입니다.
대구의 팔공산은 치산계곡이 있어
한 여름의 피서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팔공폭포 아래의 소나무 그늘이 만들어 낸 계곡의 풍류는
지리산의 칠선 계곡을 옯겨다 놓은 듯한 절곡으로 유명합니다.
대구의 앞산은 기암절곡의 계곡은 없지만
대덕골이라는 큰 골과 안지랑골과 달비골과 용두골과 고산골이 있어 한여름의 피서지로 안성마춤입니다.
특히 안지랑골의 바위산은
앞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울산바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암괴석의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슬산의 유가사 계곡과 용연사 계곡과 굿밭골은
비슬산 1083 미터가 만들어 낸 유명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대구의 팔공산과 대덕산과 비슬산은 설악산과 지리산과 가야산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세월의 흔적이 만든 수려한 계곡이 있어 여름의 계곡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산이 있는 곳은 어디든 계곡이 형성되어 있고
그 나름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기도 산행으로 찾았던 천혜의 계곡, 그 비경을 찾아
지난 날을 추억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눈 앞에 펼쳐지는 계곡의 풍류를 즐기는 마음의 흐르는 서정의 정취를 한껏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