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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41) 또 다른 좁은 문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는 평지보다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해진다. 빌딩풍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장애물이 없는 넓은 공간을 지나는 바람이 좁은 고층 빌딩들 사이를 통과할 때 속력이 2~3배 빨라져서 나타나는 것으로, 간판이 날아가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것은 ‘베르누이의 정리’로 설명되는데, 1738년 네덜란드 출신 스위스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다니엘 베르누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은 유체(流體)가 좁은 통로를 지날 때 속력은 증가하고 압력이 감소하며 반대로 넓은 통로를 지날 때는 속력은 감소하고 압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방정식으로 표현하였다.
빌딩풍의 원인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지오반니 벤투리가 1797년에 베르누이의 정리를 이용해 해석한 물리 현상(벤투리 효과)으로도 설명된다. 창문을 닫을 때 문틈 사이로 바람이 더 세게 들어오는 현상, 넓은 강보다 좁은 물길에서 물의 속력이 더 빨라지는 현상, 고무 호스로 물을 뿌릴 때 호스 입구를 손으로 누르면 물이 더 세게 나오는 현상, 날개 없는 선풍기 등이 모두 베르누이 정리의 예다.
베르누이의 정리를 쉽게 말하면 좁은 입구에 많은 공기나 물이 지나가려니 서로 치열해지고 과격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공기와 물 같은 유체뿐만 아니라 세상일에도 적용된다. 지난해보다 올해 대학 입학 경쟁률은 더 올라갈 듯한데 그 이유는 2007년생인 올해 고3 수험생의 숫자가 작년 고3 수험생보다 약 10%인 4만 5000명 정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황금 돼지띠의 해인 2007년에 태어난 이들은 재물복을 타고난다는 속설 때문에 출산이 반짝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이들이 만 4세가 되던 해에는 사립 유치원에 비해 교육비가 저렴한 공립 유치원 입학 경쟁률이 상승했으며 올해 대학 입시에도 이들은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작년도 서울 소재 주요 12개 대학 수시 입학 경쟁률은 평균 22.80대 1이었으며 의대 입시의 경우 작년 전국 39개 의대 수시 경쟁률은 24.04대 1이었다. 성균관대 의대 논술전형의 경우 412.5대 1의 엄청난 경쟁률을 보였다. 의대 진학 희망자는 많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다 보니 올해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취업의 좁은 문은 젊은 세대를 힘들게 한다. 세계적인 경제침체, 기업의 투자위축으로 심해진 취업난에 주요 대기업의 채용 경쟁률은 평균 50대 1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고 선호도가 높은 기업은 10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해도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대기업 취업률은 10% 내외다.
인간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좁은 문 통과를 위한 경쟁이겠지만 나에게는 통과해야 할 또 다른 좁은 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고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사랑과 관용·정의를 실천해야 도달할 수 있는 문이며, 나의 의무를 다하고 길을 잃지 않도록 늘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야 하는 순례의 삶 끝에서 만나는 문이다. 이번 주일 미사 복음 중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는 말씀을 좁은 비상구 문 위의 안내표지인 것처럼 가슴에 새겨본다.
[과학과 신앙] (40) 지구를 위한 병자성사
025년 전 세계는 혹독한 기후 위기와 씨름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폭염과 폭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7월 열대야 일수는 22일로 1994년의 최장 기록인 21일을 넘어섰다. 또 7월 30일 밤부터 다음날 31일 새벽 서울 최저기온은 29.3도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지 117년 만에 가장 무더운 밤 기온으로 기록됐다.
유럽에서는 6월 말부터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최고 기온이 42도를 기록한 그리스는 아크로폴리스 관광을 금지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지열 과다로 인한 지하 송전선 이상으로 정전 사태 및 고열로 인한 산불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동부 지역에 형성된 열돔 현상은 150년 만에 워싱턴 D.C.의 체감 온도를 49도까지 끌어올리는 살인적인 폭염을 보였으며, 텍사스주의 폭우는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초래했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24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2015년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기온상승 한계치인 1.5℃를 넘어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1.55℃나 올라갔다. 지구 온난화가 빨라지면서 하루 평균기온이 32도를 넘는 혹서기가 길어지고, 전 세계적으로 1년의 절반 이상이 여름이 되어버렸다. 빙하는 더 빨리 녹아내리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바닷물도 뜨거워지고 있다.
1979년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란 저서를 통해 지구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화학과 생물물리학 그리고 의학을 전공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화성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자기 조절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지구는 지구 시스템을 이루는 기권(氣圈)·수권(水圈)·지권(地圈)·생물권(生物圈)들에 의해 적정한 환경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지닌 생명체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따서 가이아(Gaia) 이론이라 부르는 그의 이론은 범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와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은 생명체인 지구에 암세포처럼 작용해 현재 지구는 자가조절 능력을 잃어버렸다.
2023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폭염·산불·홍수·가뭄 같은 자연재해 발생은 더 빈번해지고 육지에 사는 동물과 식물 14%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비극적 결말을 막기 위한 지구환경 및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개선 노력은 단지 환경운동가만의 몫이 아니다. 정치·경제·과학 기술 종사자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며 우리 같은 소시민의 작은 노력이 더해지고 생활화되어야 하는 인식의 문제이자 실천의 문제다. 왜냐하면 이제 인류에게 기후 위기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이아 이론처럼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본다면 지구는 지금 중병에 걸린 병자(病者)다. 당장 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아픈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주는 병자성사를 행한다. 기후위기라는 중병으로 신음하는 지구에게도 우리의 기도를 담은 병자성사가 필요하다.
[과학과 신앙] (39) 탐욕의 우상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atom)란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입자로 핵과 전자로 구성된 물리적 입자 개념이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을 언급할 때는 원소(element)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원소는 물질의 종류를 나타내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2015년 IUPAC(국제 순수·응용 화학 연합)가 공식 인정한 원소의 종류는 118가지인데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 21번 스칸듐(Sc), 39번 이트륨(Y) 그리고 57번 란타넘(La)부터 71번 루테튬(Lu)까지 총 17종의 원소들을 ‘희토류(희귀한 흙이라는 뜻)’라 한다.
희토류의 매장량 자체는 희귀하지는 않지만 순수한 홑원소 형태로 추출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희토류라 부르며 공정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희토류는 배터리, 디스플레이의 재료, 영구자석, 레이저, 첨단 무기 등에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전체 희토류 매장량 대부분은 중국에 있으며 중국은 미·중 무역 전쟁에서 희토류 자원 무기화를 통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체결해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희토류에 대한 이권을 인정받는 대신 군사적 원조를 약속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희토류다. 희토류는 구하기 어렵고 가치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이른바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이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경우 가격이 상승한다는 경제학 원리인 ‘희소성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희소성의 원칙은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에서 확인된다. 이탈리아의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일부러 수요보다 적게 만들어 브랜드 프리미엄을 유지하며,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는 직영 매장만을 운영하고 가방 제작을 일주일에 2개로 제한하는 등 고도의 희소성 전략을 구사해 제조 가격보다 훨씬 높은 고가를 유지한다.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과시욕구와 열등감을 덮기 위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1899)에서 이를 ‘과시 소비’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20~30대 소비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명품 선호현상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돈이나 비싼 물건을 과시하며 자신을 돋보이려는 신조어로 ‘플렉스 하다’는 표현이 생겨날 정도다. 그러나 명품을 소유한다고 그 사람의 가치도 높아지고 인간적으로 명품으로 보일지는 의문이다.
희소한 가치에 대한 욕심은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지위 욕심에서도 볼 수 있다. 정당하지 못한 행위와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로 살아온 사람이 남의 노력을 마치 자신의 업적인 양 등에 업고 출세에만 몰입하는 행태를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청빈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 속에서 죽기 위해 자기를 맨바닥에 눕히라고 했다. 검소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달러(약 14만 원)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이 나 자신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신앙] (36) 착한 사마리아인 법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사람의 심장은 ‘정신의 자리’로 여겨졌다. 따라서 죽은 이를 미라로 만들 때 대부분의 내장 기관은 제거했지만, 심장은 사후 세계에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여겨졌기에 방부 처리한 후 제자리에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을 ‘지식의 자리’라며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여겼다. 하지만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지능과 감정을 담당하는 것은 심장이 아니라 뇌라고 주장했으며 로마 시대의 의학자 갈레노스 역시 뇌가 사람의 생각과 정서·기억을 조절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뇌와 심장은 예로부터 중요하게 여겨진 신체 기관이며 뇌와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뇌는 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양의 20%와 전체 산소량의 30%를 소비하는데, 뇌에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해주는 펌프 역할을 하는 것이 심장이다. 사람의 심장은 보통 자기 주먹만 한 크기로 질량은 250~350g 정도이며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심장이 정지해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4~5분 후에 뇌세포 손상이 시작되고 의식 소실 및 사망으로 이어진다.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에게 즉각적인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다.
2022년 5월 서울 구로구에서 중국 국적의 한 40대 남성이 길을 가던 60대 노인을 이유 없이 무차별 폭행해 쓰러뜨리고 사망하게 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놀랍게도 길 가던 50여 명의 행인이 쓰러진 노인을 본채 만채 지나친 것이 주변 CCTV에서 확인되어 더욱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심폐소생술만 실시했어도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현장에 착한 사마리아인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독일·벨기에·핀란드·이스라엘·호주·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자신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구금 및 벌금에 처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주일 미사 복음에서는 강도를 당해 쓰러진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루카 10,30-37)가 나오는데 이 말씀에서 따온 법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응급의료 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면책 조항 정도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에서 명시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항을 법률로 강제하거나 처벌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뿐 아니라 성선설이나 성악설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됨의 고결한 유전자가 분명히 있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떠나 참 신앙인이라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는 말씀을 몸이 먼저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과학과 신앙] (35) 당신의 향기
올해도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늘 우산을 챙겨야 하는 장마철이 왔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눈으로 비를 보고, 귀로 빗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가끔은 눈과 귀가 아닌 코에 들어오는 냄새로 비를 느낀다. 풀냄새 같기도 하고 흙냄새 같기도 한 그것은 바로 비 냄새다. 비가 내릴 때 나는 이 냄새는 빗물 자체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다. 흙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기름 성분이 빗방울과 함께 에어로졸(공기 중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지는데, 여기에는 토양 속 세균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흙냄새와 비슷한 특유의 비 냄새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비 냄새를 과학자들은 페트리코(petrichor)라 부른다.
사람은 비를 눈(시각)·귀(청각)·코(후각) 등 여러 감각 기관으로 느낄 수 있음에도 과거에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천대받았다. 플라톤은 눈과 귀로 이데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후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감각을 중시했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람에게서 후각은 다른 감각보다 못하다고 했다. 임마누엘 칸트도 후각을 ‘가장 천박하고 없어도 되는 감각’이라 여길 정도로 후각은 과소평가되어왔다.
199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액설과 린다 벅은 1000여 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후각 관련 유전자군을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후각 인지 메커니즘이 밝혀지게 되었고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난해했던 후각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또 신경의학과 뇌과학 분야의 과학자들은 후각이 다른 감각과 다르게 자극 정보를 분석적으로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후각 정보는 대뇌의 변연계로 보내지는데 변연계는 후각뿐만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을 포함한다. 따라서 특정 냄새가 어떤 사람이나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냄새를 다시 맡게 되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감정이 되살아난다. 말하자면 후각은 기억의 열쇠인 셈이다. 이러한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는데,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을 맡으며 과거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서 유래했다.
향기는 꽃이나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나온다. 코의 후각 세포를 통해 뇌를 자극하는 화학물질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언행과 표정, 인품으로 우리 마음에 기억되는 삶의 향기다. 나에게는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러한 향기로 기억되는 분들이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깊고 울림이 있는 향기는 나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다. 나도 그분들처럼 향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과연 지금 나의 향기는, 당신의 향기는 무엇인가?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세속적 탐욕,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위선적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악취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오고 그리워지는 인간미 넘치는 향기를 내고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어떤 향기로 기억될지 이제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과학과 신앙] (29) 흰 연기, 검은 연기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불을 이용하게 된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켰으며 사상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인간이 실제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전해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불의 사용은 인간을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존재로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인간이 최초로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학자들은 약 14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구석기 시대에 번개나 화산에 의해 자연 발화된 불을 인간이 최초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불은 자연에 지배받던 원시 시대의 인류가 자연을 극복하고 다른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불의 사용은 밤의 어둠을 몰아내 인간의 활동 시간을 늘리고, 사냥감을 익혀 소화에 필요한 신체 에너지 소비를 줄여주는 등 삶의 방식뿐 아니라 문명의 진보에 큰 역할을 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18세기 증기기관에 의한 산업혁명은 인간이 불을 길들임으로써 이룩한 대표적 사건으로 증기기관에는 석탄의 연소 반응이 이용되었다. 연소란 물질이 산소와 빠르게 결합하며 빛과 열을 내는 화학반응이다. 인간이 빛과 열을 얻기 위해 사용한 전통적 연료는 나무나 짚으로 탄소·수소·산소로 구성된 유기물이며 석탄은 탄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현대적 연료인 석유나 천연가스(LNG), 액화 석유가스(LPG)는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연소 과정에서 충분한 양의 산소가 공급되면 완전 연소가 일어나 연료 속 원소들은 이산화탄소와 물(수증기)을 생성해 거의 투명하거나 흰색인 연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산소의 양이 충분하지 않거나 연소 시 온도가 낮은 경우에는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일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연료 속 탄소가 미세한 입자 상태로 공기 중으로 나와 그을음과 검은색 연기가 발생한다.
연기는 멀리서도 눈에 잘 보이기에 유·무선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적의 침입 같은 국가적 큰 사변이 있을 때 연기나 불빛으로 멀리 있는 곳까지 신호를 전달했는데 이를 봉화(烽火)라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봉화의 사용은 기원전 중국 주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의 경우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옛사람들이 봉화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주목한 것처럼 콘클라베 직후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색에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한다. 연기 발생법은 비공개이지만 과거 교황 선출 시 흰색 연기는 난로 속에서 투표용지를 완전 연소시켜 만들고, 미선출 시 검은색 연기는 축축한 짚을 함께 태워 불완전 연소시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때부터는 화학약품을 사용해 연기 색을 더 명확히 하고 있다.
콘클라베 직후 흰 연기를 내듯 우리는 일상에서 마음속 양심의 난로를 지피고 자신의 위선·불경·태만 그리고 타인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모두 완전히 연소시켜 흰 연기를 내야 한다. 그릇된 생각과 행동들이 내 속에서 불완전 연소하여 검은색 연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신앙] (28) 어른의 머리, 어린이의 눈, 어린이의 마음
5월 5일은 24절기 중 여름의 시작을 의미하는 입하(立夏)이며 어린이날이다. 어린이의 어원은 ‘어리다’이며 훈민정음에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라 표현했듯이 중세 국어에서는 ‘아직 깨우치지 못하다’란 뜻이었다. 그 후 ‘어린 사람’의 의미로 바뀌고 아동 문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 사람을 높여 ‘어린이’란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고 1923년에는 최초의 어린이날이 생겨났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라며 어린이를 존중했다.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와 어른은 무엇이 다를까? 우선 생물학적으로 몸의 크기가 다르다. 이것은 몸을 이루는 세포의 수, 뼈의 개수 및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2023년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수학연구소가 중심이 된 독일·미국·영국·캐나다·스페인 국제 공동 연구진은 성인 남녀와 어린이의 세포 크기·수·질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몸무게 70㎏ 기준 성인 남자의 평균 세포 수는 36조 개, 몸무게 60㎏인 성인 여자는 28조 개, 몸무게 32㎏인 10살 어린이는 17조 개였다. 뼈의 개수도 달라 해부학적으로 20대 성인 은 평균 206개이지만 갓 태어난 신생아는 305개 정도이며 성장하면서 100여 개의 뼈가 합쳐져 단단해지며 그 수가 줄어든다.
우리말에 ‘잔뼈가 굵어지다’란 표현과 딱 들어맞는다. 이 표현은 여러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잔뼈가 굵어진 만큼 어른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지혜는 어린이보다 많다.
따라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올바르고 건전한 지식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잠언 22,6)라는 말씀처럼 어른은 어린이들의 지식이 경험을 통해 상식이 되고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 사회적 책무를 다하며 어린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것처럼 어른이 어린이에게 배울 점도 있다. 세상을 대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태도, 거짓 없이 타인과 소통하는 맑은 마음은 세속의 때가 묻은 어른이 배워야 할 점이다.
어른으로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로운 어른의 머리,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눈, 그리고 꾸밈없이 타인을 대하는 어린이의 마음이다. “형제 여러분, 생각하는 데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른이 되십시오.”(1코린 1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