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부산수필문학 작품상 심사평/ 수상자 조경숙
우레의 호통 속에 담긴 큰 뜻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조경숙의 수필 <태풍의 눈>을 작품상 당선작으로 선한다. 그녀의 수필은 바슐라르의 얘기처럼 상상력과 미의식의 관계를 통해 구축되고 있어 우리는 체험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 과정을 행복하게 살펴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수필을 통해 한 작가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외유내강의 정신적 가치와 더불어 도전과 응전이라는 생의 교훈을 얻어가는 지혜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다. 특별한 체험이 특별한 언어로 형상화된 문학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더 거센 태풍에 맞서기보다는 들풀처럼 흔들려가며 더 깊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지혜를 통해 고난이 희망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란 것을 깨닫는 시련극복의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척박한 삶 속에서 도전정신은 흔히 삶 속에 운명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대체로 운명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지고, 그 힘에 의해 생을 영위해나간다는 믿음을 갖고 산다. 하지만 조경숙은 운명의 힘에 의해 어떤 난관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에 서서 위험과 고난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조경숙은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다. 그녀의 수필적 테마의 한 축은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써 태풍의 눈을 갖는 데 있다.
조경숙 수필의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특징은 형상적 체험을 통한 깨달음과 성찰이 빛난다는 것이다. ‘태풍에 넘어지고 소나기에 마음까지 젖은 적이 있었다. 바람이 잠잠하고 향기가 좋은 들녘이 부러운 나머지 힘없이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는 진술에서 보듯, 자기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도 굉장히 암시적이다. 이 작품에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작가의 인생관이 다양한 시각으로 펼쳐져 있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조경숙은 뼈저린 체험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이 각자 도전에 대한 응전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태풍의 눈’이란 제재를 통해 난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바람이 부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그녀는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 수필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제재를 통한 주제의 간접 제시는 이 수필의 수준을 가늠해 보게 하는 단초가 된다고 하겠다.
조경숙은 어깻죽지에 커다란 날개를 단 작가다. 하늘을 날며 근심 따위는 털어버린다. 조경숙 수필의 미적 울림, 그리고 생성과정과 공명현상을 확인해 보고나서 느낀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글 참 잘 쓴다.’라고 말할 것 같다. 이 말은 작가가 이야기의 예술적 전개와 감동적인 구조를 형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걸 반증한다. 수필의 발전이 눈에 두드러진다. 그녀의 수필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고 은은한 향취가 풍겨나고 삶의 진솔한 모습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녀는 깊은 의식과 상념으로 감성을 체계적으로 정리 압축하고,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삶에 농축된 비의를 예리하게 포착해서 살피고 있다. ‘태풍의 눈’이 대표적인 메타포다. 이는 평소에 영혼과 마음을 늘상 갈고 닦은 까닭이라 하겠다. 풍부한 교직 경험과 지혜가 좋은 수필가가 되도록 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