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ewsn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21
아펜젤러의 목회 활동 (8)
인간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가?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아펜젤러는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설교에서 죽음에 대한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룬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그는 요한복음 11장 11절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는 말씀을 전한다. 여기서 죽음이란 잠을 뜻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잠이 아니라 생명의 주님께서 “잠에서 그를 깨우라”는 말씀은 그분이 오실 때까지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아펜젤러는 “죽음은 무엇이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세상의 과학은 인간의 육체적인 모습만을 가지며 진화론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지만 인류와 유인원을 잇는 가상의 동물들도 발견되지 않는 유물주의적 관점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오류를 말한다. 즉 과학적인 방법도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와 반대로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만 초점을 둔 영지주의자의 사상도 잘못되었음을 말한다. 육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부정하려는 자들에게 성경은 분명히 육체와 영혼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음을 주장했다. 아펜젤러는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의 말씀처럼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 그 둘이 죽지 않게 된 것이므로 육체와 영혼이 모두 소중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였지만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처럼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음을 설교했다. 이는 아펜젤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을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으로 이해 한 것이다. 즉 영혼과 육체를 가진 피조물인 인간이 불순종으로 하나 님을 떠난 삶을 사는 것은 죽음, 즉 구원받지 못한 존재를 의미했다.
하지만 아펜젤러는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고 우리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그분의 속성 때문에 로마서 6 장 23절의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을 가지고 온 존재는 사탄이며 이는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여 죽음으로 이끈다고 했다. 이러한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분은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는 말씀에서 이를 성취하는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 말씀을 그분의 이 세상 가운데 오심으로 인해 성취하셨다고 하였다. 아펜젤러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실 때도 그 가운데 수많은 영적 싸움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 죽음을 가지고 온 사탄이라는 존재와 싸움을 하는 과정을 아펜젤러는 다음의 말씀을 통해서 보다 의미 있고 깊게 해석했 다. 히브리서 2장 14절 “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 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의 말씀과 같이 사탄을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나사로야, 나오너라”라는 말씀으로 그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시편 24편 7절의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나아오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라는 말씀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시는 그분의 음 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인해 사탄에게 승리할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아펜젤러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라”고 당부를 했다.
신앙의 체험
아펜젤러는 신앙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특히 남극의 빙산 비유를 하면서 성도들의 신앙은 인간의 본성보다 깊이 흐르는 빙산의 저변부와 같다고 하였다.
로마서 8:7-8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아펜젤러는 이 말씀처럼 신앙의 저변부보다 빙산의 드러난 일부 만을 살펴보는 천문학자, 지질학자, 논리론자, 과학가, 정치가, 철학자와 같이 걷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 보다 깊게 주와 함께하는 그 깊음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교했다.
그렇다면 어떤 신앙을 체험해야 하는가? 바로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죄의 짐이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하며 이러한 사랑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경험하면 할수록 점점 강해지며 나중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 을 수 없으리라
아펜젤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오래 지속되며 하나님의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고 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이사야 57장 20절 “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요히 쉬지 못하고 평안이 없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의 평화가 한번 찾아오면 로마서 5장 1절의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는 말씀처럼 확고한 평화가 우리에게 있음을 우리는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불멸의 삶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불멸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예비된 안식처로 들어가는 삶이며 요한계시록 21장 10 절의 말씀처럼 그 예루살렘은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곳이며 이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했다.
요한계시록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보이니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의 생애와 신앙" 내용입니다.
#뉴스앤넷 #아펜젤러 #한교총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