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박철웅>수필
새벽안개 자욱한 산행을 할 무렵 스멀스멀 안개는 햇살에 밀려 사라지고,
산자락 밭은 층층 계단에 곡식들이 영글어가고 붉게 익어가는 먹감이 가을 풍경을 한껏 펼치고 있다.
산길은 전에부터 나 있었던 길이었지만 오랜만에 와보니 달라 보여 낯설게 느껴졌다. 흙길이던 곳에 멍석 깔아놓은 길이 생소해 보인다.
우리보다 먼저 온 여자 등산객은 이른 아침인데 맨 발로 멍석 깐 길을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다.
며칠 전 아내와 등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부부가 등산한 최근 경험이 십 년은 족히 넘는다고 말하고 바로 시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완주는 하지 못하더라도 모악산 중간 지점인 편백나무 숲까지라도 건강을 위하여 걷자고 했다.
배낭을 메고 모악산으로 출발하였다. 시원한 산 공기가 상쾌했다. 예전에 느꼈던 청정한 모악산의 기운을 맛보았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싱그런 물은 돌바닥 위로 경쾌하게 살아있는 움직임이 흐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모악산 자연 풍광을 감상하느라 정신이 혼미하도록 집중하고 있었다.
완만한 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일면식도 없는 여자 등반객 한 분이 “안녕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산중에서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얼마쯤에서 포즈를 취하고 한 컷을 찍었다. 편백나무숲 목적지에 도착해서 배낭에 짊어지고 온 찰밥과 과일, 커피를 마시며 상쾌한 아침 식사를 했다.
등산객의 젊은 부부를 바라보며 아내와 나는 오래전에 함께 등반했던 추억에 잠겨 보았다. 그래도 그때는 젊음이 있어 활동량이 좋았었는데, 세월의 덧없음을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어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리를 절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아내는 미래의 우리 모습일 거라고 다가올 미래를 그려 보는듯했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도시에서는 옆집 살면서도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현대는 과학 문명의 발전과 편리함을 강조하고 빠른 결과만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오늘은 등반하는 가운데 사람과 자연이 주는 혜택 속에 조화된 인간미를 보았고, 사람이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낮아질 때 풍성한 인간미가 생기고 겸손이 주는 미덕이 아닐까가 한다. 또 자연은 자연 자체 속에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포용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등산을 통하여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회복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음 등산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들춰 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