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는 쉬고 싶고, 쉴 때는 불안합니다
“저는 평소에 많은 일을 하고 싶어서 상당히 많은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주말에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막상 주말에 쉬게 되면 불안합니다. 쉬고 있으면 ‘내가 이래서 뭐가 되려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질문자와 비슷합니다. 목장에 있는 소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소가 풀을 뜯을 때 풀을 뜯기 싫어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서 풀을 뜯습니까, 아니면 그냥 꾸준히 풀을 뜯습니까? 소가 바쁘게 서둘러서 풀을 뜯습니까, 아니면 천천히 풀을 뜯습니까?”
“천천히 풀을 뜯습니다.”
“소는 서두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한가하되 꾸준히 풀을 뜯습니다. 소가 배불러서 누워있다고 심심해합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밥 먹고 똥 누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이 많아서 힘들다’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힘들게 억지로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주어진 일은 그냥 하면 됩니다. 만약 의사라면 환자가 오는 대로 진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밥도 먹지 않고 무리하면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무리하게 일해서 건강을 해치면 일을 지속성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오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책도 보고 청소도 하면 됩니다. ‘일이 없으니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 ‘왜 사람들이 요즘 안 아프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안 아프니 좋은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무 일이 없어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일 중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처럼 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가 명상을 하게 되면 처음 며칠은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리가 엄청나게 돌아갑니다. 앉아서 온갖 일들을 떠올립니다. 회사의 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까지 꺼내면서 명상이 아닌 사색을 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이 한시도 가만히 못 있다가 며칠이 지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주어지면 바쁘게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놀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채근담(菜根譚)에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자면 나뭇잎도 멈춘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죠. 질문자도 가만히 있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면 오히려 시간을 내어 10일 명상에 참여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한가하게 지낼 수 있고, 일이 바빠도 안정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면 일상생활에 큰 번뇌가 없어집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질문자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삶이 고달파지는 것입니다. 일이 있으면 힘들다고 하고,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하거나 세상에 뒤처진다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어떻습니까? 인류문명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환경위기로 인해 지구에 사는 모두가 공멸로 치닫고 있지 않나요? 이처럼 좀 더 크게 보면 빨리 발전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꾸준히 하되 때로는 한가하게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돈을 못 벌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가장 큽니다.”
“돈을 못 벌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돈을 벌 수 있나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불효했구나’ 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부모님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자신의 잘못을 자각했다면 현재 살아있는 주변 사람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과거의 잘못이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불효했다고 후회하고, 남편이 죽으면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아이가 죽으면 아이에게 잔소리한 것을 후회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잘못하면서 삽니다. 잘못, 실패,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실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때 그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게 됩니다. 인류문명은 수많은 실수가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버섯이 독버섯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먹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 개인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지만 인류 전체를 본다면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도주의, 인권, 민주주의, 국제협약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1차,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생긴 것들입니다. 최소한 6천만 명의 사람이 죽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난 후에야 반성하면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왜 지금 전쟁과 같은 바보 같은 짓을 또 하게 될까요? 몇 세대가 흘러가면서 과거의 실수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불안해만 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수를 교훈 삼아 지금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바쁘게 서두른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 성과를 얻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이솝우화에서 보듯이 짧은 시간을 두고 보면 토끼의 승리 같아 보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거북이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조급하게 무리하기보다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가 나와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