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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에서
[ 우아함의 대명사이자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 ]
그레이스 켈리는 1929년에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예인 백만장자의 딸로 태어 났습니다. 어머니인 캐서린은 펜실베니아대학의 물리교육부 학장이었고,아버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후일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시장에 출마했으나 시장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오빠는 후일 멜번 올림픽에서 받은 동메달을 여동생 켈리에게 결혼선물로 바쳤습니다. 삼촌 중 한 명은 퓰리쳐 상을 받은 극작가였습니다.
이렇듯 명망있는 집안 출신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지역행사에 자주 참석해 패션모델로 나서기도 했고, 연극무대에서 주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녀 인생의 첫 좌절이자 인생의 전환점은 대학입학 문제에서였습니다.
수학점수가 모자라 베닝턴 대학의 입학을 거절당한 것이죠. 상심한 어머니의 모습을 곱씹으며 그녀는 배우로서 꿈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미국 연극 아카데미에 오디션을 거쳐 특별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캐더린 헵번, 로렌 바콜, 스펜서 트레이시 등이 다녔던 곳입니다.
* <이창>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데뷔해 주목을 받은 그녀는 1951년 <14시간>이라는 영화에 첫 출연합니다. 작은 역할을 맡았던 그녀에게 많은 출연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하고 연극무대에 전념하던 중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스탠리 크래머로부터 전보를 받습니다.
대배우 게리 쿠퍼가 출연하는 <하이눈>에서 상대역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22세의 햇병아리 여배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서부극의 여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약간 어색한 연기를 펼치긴 했지만, 빛나는 미모로 단번에 관객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 <하이눈>에서
<하이눈>을 촬영하면서 게리 쿠퍼와 감독인 프레드 진네만을 오가며 로맨스를 벌였던 그녀의 자유분방한 남성편력 경험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고 다양합니다. 그중에는 말론 브란도, 클라크 게이블, 레이 밀란드, 윌리엄 홀덴 등 동료 배우는 물론, 후일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 프린스 알리 칸, 이란의 샤 왕자, 유명 패션디자이너 오레그 카시니를 비롯해 사교계의 유명인사들과 숱한 로맨스를 이어나갔습니다.
<컨츄리 걸>,<상류사회>에 함께 출연했던 가수이자 배우인 빙 크로스비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여자가 있음에도 그녀에게 홀딱 반해 청혼까지 했었습니다.
후일 이란의 철권 통치자였고, 그녀보다 서른 살이나 더 많은 샤 왕자는 그녀와 최소 여섯 번의 데이트를 했는데 거부답게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만든 새가 든 황금 새장을 비롯해 어마어마한 선물공세로 그녀에게 구애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결혼할 생각이 없던 그녀는 일부의 구애선물만 돌려주었습니다.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공연했던 레이 밀란드는 끈질기게 그녀를 유혹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어린 시절부터 이상의 남자로 좋아했던 그는 켈리보다 22살이나 더 많았고 아들 둘을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30년이나 결혼관계를 유지해온 부인과 헤어지겠다며 속삭인 그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레이스 켈리는 가정파괴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 <모감보>에서 클라크 케이블과
1952년 클라크 게이블과 출연한 <모감보>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이 작품으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카메라에 잘 어울리는 그녀의 눈부신 미모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았던 알프렛 히치콕 감독는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그녀를 나이트 가운 차림으로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게 해 수많은 남성 팬들로 하여금 그녀의 늘씬한 다리에 넋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1954년 윌리엄 홀덴과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원한의 도곡리 다리>를 찍은 그녀는 비중이 크건 적건 영화를 제대로 받쳐주는 여배우로 영화계의 확실한 신용을 얻었습니다. 1954년 다시 알프렛 히치콕 감독의 부름을 받아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연하는 <이창>에 출연키로 결정하면서 함께 제의가 들어온 <워터프론트>를 망설임 없이 거절했습니다.
* <상류사회>에서 빙 크로스비와
말론 브란도와의 공연 기회까지 포기할 정도로 그녀는 히치콕을 신뢰했습니다. 이후 <워터프론트>는 <이창>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기록되는데, 그녀는 후일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말았을까 궁금하게 되는 대목이죠. 참고로 그녀가 거절한 그 자리를 에바 마리 세인트가 대신했고,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1954년 드디어 그녀는 <컨츄리 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쥡니다. 빙 크로스비, 윌리엄 홀덴이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알콜에 절어있는 가수의 고통받는 아내 역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미 연극무대에서 이 작품과 인연이 있었던 그녀는 영화사에 '이 역을 맡기지 않으면 짐을 싸서 뉴욕으로 영원히 돌아가버리겠다'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당돌한 이면과 함께 이미 영화사를 움직일만한 그녀의 위치를 짐작케 합니다.
* <이창>에서 제임스 스츄어드와
<이창>,<원한의 도곡리 다리>,<컨츄리 걸>,<그린 파이어>를 연달아 찍으면서 서서히 지쳐가던 그녀는 1955년 칸느 영화제에 미국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갑니다. 거기서 그녀는 모나코의 레이니에 공(公)으로부터 궁전에서의 사진촬영 초대를 받습니다. 미국에 돌아와서 찍은 작품은 우연히도 공주역을 맡은 <백조>라는 작품입니다.
그해 겨울, 아마 그녀를 최고의 신부감으로 점찍은 레이니에 공은 미국을 방문해 그레이스 켈리와 부모를 함께 만나 청혼을 했고 그녀는 청혼을 수락합니다. 최고인기 여배우의 갑작스런 은퇴를 의미할 지도 모르는 그녀의 결혼 소식은 엄청난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 레이니에 왕과...
그들의 결혼식은 다음해인 1956.4.19에 있을 것이라고 발표된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대서 특필하였으며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은 그녀가 헐리우드 영화계를 완전히 떠남을 의미하므로 헐리우드로서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으나 헐리우드에서는 명감독 히치코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디자이너가 세기의 결혼식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입을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수 많은 일류 재봉사들이 동원되어 의상을 만들었습니다. 모나코에서는 왕궁의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궁전내부의 데코레이션을 바꾸는 등 바쁘게 준비가 진행되었습니다.
1956년 4월 4일 그레이스 켈리와 그 가족 그리고 들러리를 설 사람들과 그녀의 애완견과 신부의 짐을 실은 대서양 횡단 여객선 콘스티튜션호가 뉴욕항구를 떠나 모나코로 향하였습니다. 400명의 기자들이 동행을 신청하였으나 대부분 발길을 돌려야만 하였습니다. 수 천명의 팬들이 뉴욕항구에서 그녀를 전송하였습니다.
* 결혼식 장면
모나코에서는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연도에 나와서 헐리우드에서 모나코로 시집오는 그레이스 켈리를 환영하였습니다(지금도 모나코의 인구가 32,000명이니 그 당시 2만 명이 나왔다면 거동이 가능한 모든 시민들이 다 환영하러 나온 셈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결혼을 흥행에 이용하려는 영화사는 그레이스 켈리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 <상류사회>의 배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음은 물론입니다.
결혼식은 1956.4.18에 모나코의 역대 왕들이 대관식을 올리던 모나코 왕궁의 대관실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헐리우드의 영화배우에서 일약 일국의 여왕이 된 그레이스 켈리에게는 142개의 공식 직함이 수여되었습니다.
* 케리 그란트와
결혼식은 이튿날 니콜라스 성당에서 교회의식을 치름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결혼식에는 에바 가드너, 데이빗 니븐 등의 헐리우드 배우들도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습니다.이들의 세기의 결혼식은 전 세계로 TV 방영되었으며 3천만명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국왕부처는 왕의 요트로 7주일간의 지중해에서의 허니문을 위해 모나코 항구를 떠났습니다.
레이니에 왕은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한 후에 그레이스 켈리가 출연한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몇 번에 걸쳐 히치코크등 헐리우드의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출연제의를 거절하였습니다. 일체의 영화 활동을 중단하고 단 한 건의 스캔달도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이들 부부는 1남 2녀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스캔달없는 조용한 결혼생활은 그레이스 켈리와 동년배이면서 같은 시절 배우생활을 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마릴린 몬로의 결혼생활과 대비되어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엘리자베스 테일러는 8번 결혼하고 7번 이혼하였고 (1번은 사별함), 마릴린 몬로는 세 명의 남자와 결혼헸고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1962년에 사망하였으나 케네디 대통령과의 염문설과 마피아 및 CIA의 개입설 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었던 것이죠.
* 레이니에 왕과...
1982년 충격적인 소식이 해외 톱뉴스로 전해지게 됩니다. 그건 바로 그레이스 켈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딸인 스테파니 공주가 몰던 자동차를 같이 탄 그레이스 켈리는 자동차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며 안타깝게도 53살의 젊은 나이인 그레이스 켈리는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공주는 큰 부상을 입는 것에 그쳤지만 왕비는 그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53세의 이른 나이에 이세상을 떠난 그레이스 켈리 왕비는 9월 18일에 니콜라스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른 후 가족묘에 안장되었습니다.
레이니에 왕은 그레이스 왕비가 사망한 후 재혼하지 않고 17년간이나 독신으로 살다가 2005년 4.6에 사망하여 그레이스 왕비의 옆에 묻혔습니다. 레니에 3세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펑펑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영화배우로서 오랜 기간을 활동하지 못한 그레이스 켈리였지만 그녀가 남긴 영화와 사진 한컷, 한장은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추억되고 있으며,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왕비하면 오직 한 사람, 그레이스 켈리라는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생전에 단란했던 시절
[ 대표작 소개 <이창> ]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중의 하나입니다. 코넬 울리치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줄거리는 사진작가인 남자주인공 제프(제임스 스튜어트 분)가 다리부상으로 휠체어 신세를 진채, 아파트 창문으로 이웃의 사생활을 관찰하며 무료함을 달래던 중. 우연히 살인사건의 정황을 포착하게 됩니다.
제프의 행동을 관음증으로 몰아가던 그의 연인 리사(그레이스 켈리)와 방문간호사는 제프의 추리력에 점점 확신을 갖게 되고, 제프를 도와 살인범을 붙잡게 된다는 내용이죠.
유능한 사진작가이지만 떠돌이 신세인 제프는, 리사를 사랑하면서도 매일 새 옷을 입고 나타나는 화려한 리사와 결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인의 단서를 찾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리사의 적극적인 행동에 매료돼 마음을 바꿉니다.
왠지 서스펜스 영화와 안 어울릴 것 같은 우아한 미모의 대명사인‘그레이스 켈리’가 리사 역을 맡아, 남성 관객이라면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주로 제프의 방과, 창문을 통해 보여 지는 이웃들의 일상에 닿아있습니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무용수의 현란한 몸짓, 고뇌하는 작곡가, 참깨를 볶는 신혼부부, 외롭게 홀로 사는 부인, 병든 아내를 수발하는 남편 등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웃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제프의 시선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과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제프와 감정이입이 잘돼 몰입감도 상승되고...
영화 용어 중에 ‘맥거핀’이 있는데, 속임수, 미끼라는 뜻입니다.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합니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짚기’ 장치를 말합니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입니다.
<이창>에서의 맥거핀은 ‘화단’입니다. 살인의 결정적인 증거를 숨긴 중요한 장소로 지목받지만, 막상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음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어김없이 허물어 버립니다. 이런 점도 눈여겨 감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살인자가 밝혀지는 순간 제프는 살해당할 위험에 처합니다.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든 휠체어 신세인 제프와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불안감은 극도로 상승하고... 제프가 사진작가답게 카메라 조명을 터트리며 대항하는 장면은 정말 아슬아슬하죠.
마침내 형사들이 들이닥치지만 아파트 창밖으로 떨어진 제프는 양쪽다리를 깁스한 채 다시 침대신세를 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름다우면서 용감하기까지 한 리사가 곁을 지켜주는 행복한 결말입니다. 이 영화와 함께 히치콕의 대표작들인 <새>,<사이코>,<현기증> 등도 꼭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레이스 케리가 53세에 유명을 달리했다면, 미인박명에 해당하는지....어쨌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