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9(토)■
(마태복음 17장)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묵상/마 17:22-27)
◆ 마지막 갈릴리 방문
" 갈릴리에 모일 때에"(22)
이 갈릴리의 방문이 예수께서 십자가 이전 생애에서의 마지막 방문이다. 이후에는 예루살렘에 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부활하신 후에 다시 갈릴리에 오셨다.
주님께서 죽으실 것을 들은 제자들은 부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심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 자체로 슬픔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부활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귀에는 부활의 약속이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무슨 메시지를 들어도 항상 내게 필요한 것만 걸러서 듣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 성전세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24)
오늘 본문에서 반세겔은 생명의 속전으로서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남자 중 20세 이상은 무조건 내게 되어 있다. 이것은 성전 수리와 기물 보충을 위해 쓰여졌다(출 30:11-16). 그래서 이것을 보통 성전세라고 칭했다. 그러나 성전세의 본래의 의미는 '생명의 속전'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속전을 바침으로써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속량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래 의미대로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에 응하시면 곤란하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트집잡기 좋아하는 정치꾼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가 성전세를 내는 것을 보았는가? 그것은 곧 그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시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착각을 부식시키시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신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27)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 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음을 분명히 하시고 계신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자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냥 내시기로 했다. 이것은 후에 제자들도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시는 주님의 본이셨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심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27)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적들이 있다. 병자를 고치시고, 바다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물고기 입에서 한세겔을 꺼낸 이 기적이 가장 인상 깊다.
이 사건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예수님은 수중에 한세겔도 없었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는 것이다. 한세겔은 10g정도 되는 은화다. 노동자가 4일을 일해서 얻을 수 있는 품삯이라고 한다.
언뜻 4일 품삯이 매우 커보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품삯은 노동력이 지극히 저평가된 시대임을 고려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는 오늘날에도 하루 일당이 오천원 정도된다고 한다. 그런 나라에서 2만원은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제법 큰 돈일지라도 여전히 부자들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작은 돈이다.
한세겔도 수중에 없으셨던 주님의 청렴하심은 잘먹고 잘살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원망하며 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적어도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라고 고백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이다.
베드로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아시고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게 하신 것은 놀랍다. 이것이 그저 단순한 예지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전지하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물고기 입 속에 동전이 있기 위해서는 고의든 타의든 누군가 동전을 던져야했다. 그리고 물고기는 이것을 입에 물고 다녀야했다. 아마도 목에 걸린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예비케 하심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속성을 보게 한다.
그 물고기는 오로지 예수님의 부르실 때만을 위해 물 속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요나를 뱃 속에 넣고 해변에 토한 물고기보다 이 물고기가 더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사용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물고기는 이미 영광스럽다.
우리 인간은 이 물고기보다 못날 적이 많다. 한가지 사명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죽는 사람이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주님, 제게 주신 것이 이미 풍성하고 넘칩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완수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