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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글은 스마트폰 ▅ 와이드(WID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강해-25* 고린도후서 11장 1-33절 / 차용철 목사 ⚑참 사도와 거짓 사도 <序言> 바울은 10장에서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했습니다. 이제 11장에서는 적극적이고 격렬한 어조로 거짓교사들을 용납한 고린도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적대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도직의 우월성을 증명합니다. 바울의 이 증명은 단순히 개인적인 자랑이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인들의 바른 신앙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자랑의 자세와 성도들이 자랑해야 할 내용은 복음의 능력과 자신의 연약함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❶교회에 대한 열심(1-6, 13-15절), ❷교회에 대한 관심(7-12절), ❸교회를 위한 염려(16-33절)로 되어 있습니다. ⚑3. 교회를 위한 염려 (16-33절) 바울이 고린도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고 다른 교회들에서 사례금을 보충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교사들은 그것을 바울에 대해 탈취한다고 비방했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한 증거로 삼았습니다. 당시 헬라(그리이스)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수학자나 철학자 이른바 소피스트들은 전문적인 사람들로서 가르친 후에 사례금을 받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16.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다. 17. 내가 자원하여 이 일을 하면 보상을 얻으려니와 내 뜻에 반하여 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분배 사역을 내가 맡았노라. 18. 그런즉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이로써 복음 안에 있는 나의 권리를 남용하지 아니하는 것, 그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21. 율법 없는 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외부적인 조건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외부적인 조건으로 자신들을 높이고 고린도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린도교인들을 업신여겼습니다. 율법적 노예가 되게 하고 재정권리를 탈취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외부적인 것으로 권위를 나타내는 데도 고린도교인들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수준대로 자신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거짓교사들과 외부적인 것을 비교할지라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외주적인 것을 자랑하는 것은 주님의 모본도 아니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린도교인들의 수준을 감안하여 불가불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교사들을 용납한 것같이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육체적인 혈통과 조건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의 거짓사도들이 주장하는 기준으로 봐도 그들에 비해 조금도 부족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①-출신에 정통성이 있었습니다. ➤22절에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인이고 이스라엘인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이라는 것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은 종교적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선택한 족속으로서 율법과 예배 등 특권을 가진 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언약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4-6절에는 “4.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5.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이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자이고 베냐민 지파라고 했습니다.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라고 하는 것은 혈통적인 순수성과 율법적인 정통성을 가진 지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 종파 가운데 율법에 대한 해석과 준행에 있어서 가장 정통성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3절에 “3. 진실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으되 이 도시에서 가말리엘의 발밑에서 자라며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고 이 날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을 향해 열심이었노라.”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높이 존경받는 학자(랍비)에게 배운 자로서 가장 신학적 정통성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②-사역(使役)에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23-27절에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 했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주의 일을 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유대인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태형 법에 의한 매입니다. ➤“3. 마흔 대까지는 때리게 하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많은 매로 그를 이보다 더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비천한 자로 여길까 염려하노라.”(신25:3). 그리고 태장으로 3번이나 맞았습니다. 태장은 로마 형법에 속한 매로서 매 끝에 납을 달아 그 매로 맞으면 살이 찢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19. ¶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움에서 거기로 와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돌로 바울을 친 뒤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는 도시 밖으로 그를 끌어 내니라.”(행14:19). 그리고 파선하기도 3번이나 했습니다. 선교를 위해 바다를 항해하다가 배가 부서져서 꼬빡 하루를 밤낮으로 깊은 바다에서 표류한 적도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강의 위험'이란 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다리가 없음으로 인한 위험을 말합니다. '강도의 위험'이란 여행길에서 강도를 만나는 위험을 말합니다. '동족의 위험'이란 복음의 반대자들의 테러에 대한 위험을 말합니다. '이방인의 위험'이란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신을 우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죽이려 하는 위험을 말합니다. '시내의 위험'이란 도시의 위험으로서 데살로니가, 베뢰아, 빌립보 등에서처럼 군중들의 선동과 고소의 위함을 말합니다. '광야의 위험'이란 광야에서 길을 잃거나 맹수의 공격을 받는 위험을 말합니다. '바다의 위험'이란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나 아가야 지방을 가기 위해 지중해 연안을 건널 때 만나는 풍랑이나 암초의 위험을 말합니다. '거짓형제의 위험'이란 거짓선지자들의 술수와 비방의 위험을 말합니다. ➤32-33절에 “32. 다마스쿠스에서 아레다 왕 밑에 있던 총독이 나를 붙잡으려고 수비대와 더불어 다마스쿠스 사람들의 도시를 지켰으나 33. 내가 바구니를 타고 창문을 통해 성벽을 내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했습니다. ➤“23. ¶ 여러 날이 지나서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의논하였으나 24. 그들이 숨어 있음을 사울이 알게 되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들을 지키므로 25. 그때에 제자들이 밤에 그를 데려다가 바구니에 담아 성벽을 통해 달아내리니라.”(행9:23-25). '아레다왕'(Αρέντα)은 로마의 통치하에서 B.C.9년에서 A.D.40년까지 나바데아(Ναβαδέα)를 다스렸던 왕입니다. 당시 성경에서 언급된 아레다는 헤롯 안디바에게 자기 딸을 준 사람이지만 헤롯이 자기 딸과 이혼하자 그는 그와 전쟁을 하고 그를 격퇴시켰습니다. 그 결과 티베리우스 황제는 시리아의 총독인 비텔리우스를 시켜 그와 전쟁을 하게 하였으나 그 와중에 주후 37년에 황제가 죽었고 이때에 아레다는 다마스커스를 점령하고 주후 39년에 총독을 임명하였는데 바로 그가 바울을 붙잡으려 한 장본인입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고난을 감수하면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 한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 된 증거입니다. ③-교회를 위해 염려했습니다. ➤28-29절에 “28.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느냐?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외적으로 육체적 고난뿐 아니라 내적으로 정신적인 고난도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안된 교인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교훈에 빠지고 서로 분쟁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믿음이 어린 연고로 시험에 들까 봐 심히 염려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시험에 들기라도 하면 마음이 애탔습니다. 자신은 강한 믿음을 가졌으나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을 강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1. 믿음이 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에 찬 논쟁은 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자기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약하여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아니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아니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느니라.”(롬14:1-3). 그들이 시험에 들면 마치 자신이 죄를 지어 실족한 것처럼 애가 탔습니다. 고통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고통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원인론적 시각입니다. 누가 고통을 당할 때 그 원인이 죄인 것을 알게 하고 권면하는 시각입니다. 둘째는 목적론적 시각입니다. 누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 연단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위로하는 시각입니다. 셋째는 상관론적 시각입니다. 누가 고통을 당할 때 그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함께 고통에 참여해 주는 시각입니다. 바울에게 원인론적 시각과 목적론적 시각도 있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언제나 관계론적 시각에서 사역을 하려고 했습니다. 누가 아프면 자기가 아픈 것 같은 심정을 가졌습니다. 그런 정신이야말로 그가 그리스도의 일꾼 된 참된 증거인 것입니다. ➤30-31절에 “30. 내가 어쩔 수 없이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연약한 것들과 관련 있는 것들을 자랑하리라. 31. 영원무궁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내가 거짓말하지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부득불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권이 부정될 때 자신이 전한 복음진리도 권위를 잃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진짜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은 주님 앞에서 도저히 사도직을 감당할 수 없는 악하고 무능하고 약한 자였는데 주님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13-15절에 “13.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바울은 자신이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서 죄인 가운데 내가 괴수(魁首)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귀히 여겨 복음 전도의 직분을 맡겼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 “9.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되 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항상 전에 스데반 집사를 죽이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는 자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자입니다. 도무지 주의 일을 맡을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복음 전도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주의 일을 하기에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인줄 알고 주만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그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므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할 수 없는 자이지만 주님이 하게 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結言>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불가불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하고 자랑했습니다. 그것은 거짓교사들이 자신들을 자랑했고 고린도교인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 진리의 변호를 위해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교사나 거짓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진정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약한 점이었습니다. 그 약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불러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할수록 주님의 강함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일꾼 된 자의 정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입니다. 그렇게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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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