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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환상을 통해 보는 교훈과 소망
황의각
본문 성경말씀: 예레미야 1:11-19
참고 성경말씀: 예레미야 애가 3:20, 21; 예레미아 애가 4:11-16
찬송: 저 높은 곳을 향하여 (543장)
저는 경제학도이지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성경말씀을 통전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앞에서 대표기도를 할 때에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전하기 위해 교회 앞에 이렇게 선다는 것은 많은 마음의 부담을 느낍니다.
오늘도 또 이 자리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게 되었습니다만 저의 설교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6.25를 경험한 세대는 많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나 1950년 6.25때의 3년 가뭄 흉년기를 겪었던 분들이 혹 계실 것입니다. 그 때 살아 남기위해 우리가 먹었던 까칠한 수수조밥이 생각됩니다. 비록 저의 설교는 조밥처럼 맛이 좀 부드럽지 못할지라도, 여러분께서는 성경말씀에 담긴 의미를 통해 은혜와 도전을 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두 가지 환상들
예레미야서는 B.C. 627(요시아왕 13년)부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B.C. 587년 이후까지 활동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 언약”에 관한 기록 입니다. 예레미야서 1장으로부터 52장까지를 보면 이 예언서의 메시지는 각장마다 “심판과 구원”관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대 종교지도자(선지자)들의 거짓과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예언과 동시에, 그 백성이 회개할 때에는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놀라운 언약으로 백성들이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성경입니다.
하나님 백성에 대한 심판과 구원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예레미야서의 메시지의 전체흐름은 ‘심판이 먼저이고 구원이 나중에’ 나오는데, 유독, 오늘 본문(1장 11-13절)은 구원(회복)의 환상을 먼저 보이시고 죄악에 대한 심판의 환상을 나중에 보이시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을 세우신 이유는 유다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의 타락을 탄식하시며 아주 타락한 자기 백성이지만, 그래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언약의 성취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말씀 예레미야 1장11절과 1장13절에서 여호와께서 환상을 통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두 번 질문을 하시고, 또 거기에 대해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환상에 대해 두 번 답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대답은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1:11)." 이고,
두 번째 대답은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1:13).”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가지’와 ‘끓는 가마’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죄에 대한 준엄한 징계경고에 앞서 구원사역에 대한 비전(Vision)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살구나무가지환상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뤄질 것임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살구나무가지”는 봄에 꽃을 피우는데, 이 환상은 봄의 도래와 더불어 유다에 생명의 징조가 다시 움틀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살구나무가 싹트는 것이 확실함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끓는 가마”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1장 11-13절에서 보여주신 회복과 심판 환상의 순서를 바꾸어서, 예레미야서 전체의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경고를 먼저 살펴본 다음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에 대해 살펴봅시다.
유다가 하나님께 징벌(심판)을 받게 된 원인은 1장 16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대 선지자들과 백성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던 데 있었습니다(참조: 에스겔 13장-14장).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 그리고 진리가 아닌 거짓을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세상욕망(권력, 명예, 돈, 자기과시를 드러내기 위한 호화로운 예배당, 하나님 불순종(사무엘상 15장 23절)을 겸하여 추구하는 것도 우상숭배 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인간들의 역사에서 말로는 다 “하나님”을 찾는데 서로 다른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형과 아우인 아론과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길을 가면서 모셨던 하나님이 각각 달랐습니다.
동생 ‘모세’가 산위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율법을 받을 때, 조급해진 형 ‘아론’은 백성의 요구에 부응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것을 허락 했습니다(출애굽기 32장).
형 아론과 그 추종자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으로 모시려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교회에서도 목사가 자기 영달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요구에 부합하고 자기 개인욕구를 위해 우상인 ‘금송아지 하나님’, 즉 ‘물질의 신’을 만들어 성도들에게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가 마음속으로는 그런 가식된 물질우상을 제일로 삼으면서 입술로는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 이름을 내세워 온갖 불의와 거짓으로 신자들을 속이며 갈취하는 사이비 종교협잡꾼들과 그들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맹신자들이 많은 것은 기복신앙의 우상을 따르는 사회의 한 단면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초로 한 바른 신앙위에 흔들림 없이 바로 서야만 하는 것이 누누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에서 이탈하여 거짓과 탐욕, 그리고 세속화로 치닫는 것은 우상숭배행위입니다.
오늘날 세계와 한국 교회에 혼합주의의 유혹과 요소가 넘치고 있습니다.
거짓과 황금만능주의, 온갖 불의와 부정부패, 교만이 교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끓는 가마의 면이 북(北)에서부터 기울어진”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백성에게 임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보여주신 것 입니다. 이 환상을 보고 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는 놀라며 탄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따르는 백성에게 재앙을 경고하실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에 떨며 하나님 명령에 순복하여 타락한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깨어나 돌이키도록 전심을 다해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세우시고, 믿음의 그루터기들을 통해 유다를 회복시키시고 건설하시겠다는 뜻과 계획을 “살구나무가지환상”을 통해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셨을 때, 백성들이 회개하면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예레미아는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사용하고자 하실 때, 먼저 비전(vision)을 주십니다.
비전을 주신 후에 하나님께서 패역한 백성에게 경고(선포)하십니다.
재앙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보고 백성들이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일꾼들을 부르심
*이 자리에 모여서, 타락해가는 한국교회를 안타깝게 보며 기도하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경고를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격려하시고 힘을 더하셔서 여러분들을 통하여 부패한 한국사회와 타락한 한국교계의 개혁을 성취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미래(재앙)를 환상으로 보여 주실 때, 예레미야는 먼저 마음속으로 낙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백성을 향해 우상숭배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려고, 다가올 재앙을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교회갱신을 위해나선 여러분들도 오늘 한국 교계에서 예레미야와 같은 몫(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이 같은 사역은 많은 고난과 환난과 세상의 권세가진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탄압과 비난을 이겨내야 하는 힘든 사역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더욱이 독선이나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한 자세로 이 모든 고난과 환난의 전쟁을 이겨내야 하는 중요한 사역입니다.
무척 힘든 사역입니다. 매일 스스로를 쳐서 죽여 하나님 말씀에 복종시켜야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용사들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무거운 책무입니다. 이 사역에서 우리가 내부적으로 무너지면,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이 막중한 책임 앞에서, 분열의 영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면, 그 결과 우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유다에게 내릴 재앙을 예견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택하셔서, 타락한 백성 앞에 세우시고 격려 하십니다: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1:17)”;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 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 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 18-19).”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사용하고자 하실 때, 결코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함께 하시며 늘 위로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고 격려하시고, 그뿐만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예레미야와 같은 신실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위해 그들은 공동체의 힘을 모아야 함을 압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일을 하는 방법과 과정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가슴을 열고 서로 대화하고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늘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한 싸움(투쟁)에서 절대로 말씀과 기도를 놓지 마십시다!
말씀과 기도없이, 자기 힘과 자기 판단으로 행하면 사탄의 궤계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철저한 회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통해 패역한 백성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멸망의 징계를 벗어나는 길은 철저히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1) 배교에 대한 멸망의 징계(13-14절)와 (2) 회개를 통한 회복의 길(11절)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선택을 보이시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특별한 소명을 주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을 볼 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고 사역하는 과정은 (가) 하나님께서 부르심(4-8절), (나) 그 소명을 위해 예레미야를 성별함(9-10절), 즉 그의 입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 쓰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될 것을 보여 주심, 그리고 (다) 하나님은 그를 혼자두지 않으시고 강한 용사가 되도록 배후에서 도우시고 격려해 주심을 보여줍니다(18-19).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의 우상이 된 돈신(mammon)과 목사의 명예욕과 권력과 세상 열락을 좇아서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와 그를 좋게 여기며 따르는 백성에게 계속 탄식하시며 경고하십니다(예레미야 5:30-3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애가 4장 11-16절에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의 책임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도자(선지자와 제사장)들은 하나님 계시의 중보자요 말씀의 집행자들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밝혀 백성과 성도들을 지도했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그들은 의인을 핍박하는 데에 앞장 선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참조: 렘 26:10-16, 20-24 등 및 김희보 저 ‘구약 예레미야애가 주해’, 총신대학 출판부, 1994, p.293).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베드로전서 2장 9절).
[참조: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이 말씀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신 여러분들이 서로 간에, 그리고 사회에 본이 되지 못하면, 성령의 뜻을 어거하는(거스리는) 자들이 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지도자들로 인해 교회가 타락의 길로 가고 있는 현실은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절망은 참 소망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낙심 중에도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교회 개혁을 위한 이곳에서의 기도모임과 신실한 믿음을 가진 남은 그루터기들을 통해 교회를 교회답게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예레미야애가 3장 22-24절 말씀(NIV 한영성경 p.1146)을 같이 읽으며, 예레미야 선지자가 가졌던 소망을 우리도 함께 가지고 승리의 길로 나갑시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교회갱신을 위하여
지난 10개월 마당기도회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들 중에 각자 걸어온 삶과 경험의 차이, 또는 신앙과 세대 차이에서 일어나는 견해차이, 그리고 문제접근방법상의 차이가 다양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한 성령” 안에서 서로 형제와 자매 관계를 가진 성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형제를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존중하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마음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기 위해 매일 자신을 치면서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갱신지체들 간에 사소한 일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혹 있을 수 있는 비판적 입장도 서로 소화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마가복음 3: 24-25).
우리가 성경말씀위에 서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말씀에서 이탈하면 서로 비난하고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교회와 한국교계 갱신을 목표로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단순히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으로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내가 십자가를 지고 기도하며 일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적인 방법(재판)으로 서초동 목사의 거짓들을 밝혀 그를 내려앉게 하는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의뢰함이 없이, 그리고 우리의 힘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룩한다면, 결국 일시적 성취감을 이루게 될지는 몰라도, 그 참 결과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세상사에는 세상적인 방법인 ‘얻고 잃는 것이 영합(zero-sum)’이 되는 수학 법칙이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방법만이 진짜 플러서(plus)승리의 결실을 안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도로서의 근본 정체성에 대해 계속 물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선한 싸움에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의 인간적 잘못은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고 위로하되,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와 거짓에 대해서는 분연히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거짓과 틀린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No!)"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여야 합니다.
우리는 당당한 신앙인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각자 기도와 사색의 시간을 통해 먼저 자신의 영혼의 건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체들 간에 생긴 잘못들은 권면이나 충고로 바로 잡되, 자기 개인의 의(義)만을 드러내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과 기능으로 봉사하는 지체를 비난하지는 맙시다.
나는 열심인데 특히 장로들 그리고 개혁위원이란 당신들은 무엇하느냐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다 보면, 공동전선은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손이 일할 때 왼손은 잠시 쉬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음을 미루어 이해해야합니다. 몸의 각지체가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가 받은 은사의 분량대로 자기 몫과 역할을 다르게 해오고 있습니다.
예컨대, 나는 피켓을 들고 데모하는데, 저 사람은 왜 피켓시위에 참여하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그를 질책하려는 마음이 내 속에서 일어나면, 먼저 자신의 신앙상태가 어떤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의 투쟁목표는 적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자기 존재의식의 부각일 뿐입니다.
또 아무 근거도 없이 같은 교우나 갱신지체들을 지목하여 모함하는 언행을 함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자기의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에, 또는 자기마음에 거슬린다고 판단한 나머지, 지체들을 거짓 참소하며 자기판단으로 정죄하며 함부로 내뱉는 말로 공동전선을 분열시키고 깽판을 조성하려는 비이성적인 자기당착을 살펴보고 경계해야 합니다(참조: 마가복음 3장 24-25).
우리는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려할 때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로 대적하고, 사탄에 대항하여 싸우는 지체들을 서로 존중하고 돕는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루한 영적투쟁에서 우리 모두 많이 지쳐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힘들고 답답할 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기대하기보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통치자 주님을 바라보시며 탄원의 기도로, 위로를 받읍시다(빌립보서 4:4-7).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던 예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교회갱신 그룹”이라는 막중한 책임의 명찰을 우리들 가슴에 달아 주셨습니다. 그 중요한 목표를 앞에 놓고 여러 부차적인 내부 문제들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맙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로 싸우라”(엡 6:10-20)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 명령 순종을 통해 회복되고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저는 다른 연로한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께 인사드릴 때, 우리가 요단강 건너기 직전의 상태로써 ‘요단강 나루터’에 서있는 모습과 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이 많은 은퇴장로들이 비상상황에 직면한 교회를 보며 남은 여생 마지막으로 미흡하지만 교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일을 한번 해보자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여러분 요구에 부합되지 못할지라도 늙은 자들이 나선 것을 긍휼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쓴 소리로 참고가 되는 말씀도 해주시면서 최대한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연로하신 김효은 장로님께서 어찌할 수 없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으시면서,
‘일하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갖자’고 대책위원들에게 당부하셨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의 협조를 의지하여 연약한 몸이지만 여러분 앞에 감히 나섰습니다. 우리들 상당수는 육체적으로 여러분들처럼 금요저녁마당기도회나 피켓시위에도 적극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중에 가능하신 분들이 그 사역에 육체적으로 협조하실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못할지라도 여러분 뒷전에서 “저 늙은 퇴물들이 무엇 할지를 보자”고 방관자처럼 말씀하기 보다는 언제든지 도움이 될 건설적 의견과 건의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우리 비상대책위는 장로의 권위 따위는 이미 다 내려놓고 맨발로, 아니, 옷을 다 벗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교회에 덕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 개인적 자존심도 다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지난 초겨울 서초동 금요마당기도회에 참석했을 때 그곳의 어느 30대 청년(스스로 모태신앙인이라고 자랑하더군요)이 나와 다른 연세 많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아저씨(아줌마) 교인이요(?)” 하며 욕과 저주를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 나에게 다가와서는 나의 가족과 손주에 대한 저주의 막말까지 하는 것을 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막말 저주는 너무 참담해서 함부로 내뱉는 그에게까지도 차마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저는 하나님께 기도해 왔습니다.
처음부터 한 목회자의 거짓과 진실로 부터의 이탈 때문에 교인들이 분열되어 서로 원수처럼 저주하고 미워하는 적대관계의 발화점이 된 우리 사랑의교회 현실이 제 마음에 항상 무거운 부담이 되어 기도제목으로 남아 있지만, 기도가 힘듭니다. 지금 우리의 이 같은 상황은 교회갱신과 개혁에 따르는 불가피한 대립과 우상타파를 위함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분명한 것은 사랑의교회 갱신과 한국교계개혁을 지향하는 우리의 함대가 앞으로 순항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를 구하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에 의존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각오와 소망
말씀을 맺으면서 이곳에 모인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소망을 다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우리들 속에 있는 개인의 죄와 갱신공동체로서의 죄를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의(大意)를 위하여 우리는 철저하게 매일 기도하며 사사로운 의견차나 문제들은 가능한 서로 품고 딛고 서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의 생각을 어둡게하는 사탄의 노략질이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고, 회개와 기도를 통해 승리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십자가를 집시다. 연합과 동행의 삶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덕을 세우는 삶입니다(참조:데살로니가전서 5장 9-11절).
특히 특출한 지도력을 가진 선장이 없는 배는 승선한 승객들 모두가 서로 힘을 합쳐 협력하지 않으면 계속 항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비상대책위원회는 앞으로 가능한 모든 사안과 문제를 여러분과 공유하면서 여러분들의 지혜와 건설적 조언을 기대할 것입니다. 비상대책위원들과 개혁실행팀은 성도 여러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러분과 협력하며 일하기를 바랍니다. 갱신위원들과 비상대책위원들이 절대 여러분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님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이 교회갱신호의 선장님이 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 그의 인도하심에 민감 합시다.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로 뭉쳐 하나가 되어 황량한 우리 마음에 “살구나무 가지의 살구꽃이 움트는 봄”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소망하며, 심기일전하며 전진할 것을 다짐합시다.
계절이 바뀌는 하늘에는 가을빛이 가득합니다.
아무쪼록, 이 사색의 계절에 여러분 큰 소망가운데 가족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시며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찬양 하십시오. 그리고 모두 십자가를 지는 각오로 갱신위원회 실행팀과 열린 마음으로 일하려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바로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협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를 긍휼히 보시고, 패역한 인간들의 거짓과 우상숭배로 무너져가는 이 땅의 교회들을 오직 주님 말씀과 가르침으로 다시 회복시켜주십시오.
국가적으로도 윤리와 도덕, 그리고 정의와 공의가 사회전반에 만연한 불의와 거짓과 맘몬의 세력에 의해 밀려나지 않도록 주의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십시오.
우리 갱신 지체들이 한 뜻이 되어,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색과 결실의 계절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뒷자리 같이 우리각자 마음에 남겨져 있는 상흔들을 떨쳐버리고, 우리 모두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사랑의교회와 한국 교계의 개혁을 위해 주님이 맡겨주신 힘겨운 사역을 잘 감당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 자리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그 가족과 그 이웃과 이 나라를 주님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4. 9. 14. 사랑의교회 강남마당기도회 (황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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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일마당기도회 127 다시보기---http://www.ustream.tv/recorded/52645356
집사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자 한자 꼭 꼭 짚어가며 읽고 묵상하겠습니다
장로님, 그리고 집사님 !
감사합니다.
기도합니다.
장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오랫동안 잊지못할 설교말씀 감사합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집사님 고맙습니다!!
저는 이번명절에 근거없는 우리에대한 유언비어를 들었습니다
오늘 장로님의
악과 대응해서 혈기로 싸우면 질수밖에없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대응해야한다
는 말씀에 무릎을 쳤습니다
악한방법으로야 어찌 사탄을 이기겠습니까
현명한말씀 감사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겸허히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십니다. 아멘
장로님.. 진솔한 내용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 일에 열심이면서 다른 분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너무 다른 분들이 하시는 일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다. 장로님의 열심과 권면에 감사드립니다. 집사님 정리하는 수고에 저희가 더 깊히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심에 감사드리며
김효은 장로님 대책위원장 맡으시면서 '일하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마음을 갖자' 라고
당부하셨다는 말씀에 가슴 뭉클합니다.
장로님들의 말씀들은 목회자들의 말씀들과는 또 다른 오랜 사회생활의 경륜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말씀들이라서 참으로 공감이 가고 은혜를 받습니다 장로님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장로님들이 이끌어 주셔서 과도기를 지나 안정된 갱신위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일하는 방법과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가슴을 열고, 서로 대화하고,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늘 구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갱신공동체에 필요한, 귀한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떠난 성도들이 돌아와서.... 힘을 모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초심으로. 순수하게. 주님을 위하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를 희망합니다.
장로님
어제 말씀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힘든마음으로 쓰셨는지를 알것같았어요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