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6 조별 예선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토너먼트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3위 팀 중 4개 팀이 16강에 합류하는 규칙 덕분에 조별 예선 끝까지 긴장감이 팽팽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많은 팀들이 관심을 모았지만 그 중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 호날두가 포진한 포르투갈이 2무로 부진한 가운데 16강 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포르투갈은 헝가리와의 예선 최종전에서 난타전 끝에 3:3으로 경기를 마치면서 3무를 거뒀고 3위 팀 중 상위 4개 팀 안에 들어 토너먼트 단계 진출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 호날두를 조별 예선에서 이별하지 않게 된 팬들에게는 다행인 일이다.
한편 포르투갈-헝가리의 3차전은 팬들과 언론에게 엄청난 호평을 받은 경기였다. 득점이 유난히 적고 수비 축구가 주류를 이루는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팬들을 즐겁게 한 경기라는 평가이다. 헝가리가 한 발 앞서면, 포르투갈이 한 발 다가가는 치열한 양상으로 3:3까지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수비적으로 단순히 물러서서 지키기보다 서로 공격을 위해 전진하며 난타전을 벌였다. 화끈한 골잔치를 매우 오랜만에 접한 팬들의 속을 뚫어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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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예선 최종전 두 골을 터뜨리며 16강 진출을 이끌었지만, 머쓱한 성적을 받아든 호날두와 포르투갈. ⓒ UEFA EURO 2016
이번 조별 예선에서 포르투갈-헝가리 전이 가장 ‘재미있는’ 경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수비 축구가 범람하고 있는데 3골씩 주고 받으며 흥미진진했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포르투갈-헝가리의 경기가 '유로의 귀환'을 논할 만큼 수준 높은 경기는 아니었다. ‘유로의 귀환’을 이야기하려면 유로가 가진 의의를 생각해봐야 한다. 유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축구의 선진 지역인 유럽 축구 4년을 압축한 높은 수준의 전술 그리고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고루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대 유로에서는 허투루 볼 수 있는 팀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유럽 축구 4년의 결과는 바로 ‘수비와 역습’이고, 이것이 이번 대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 된 것이다.
이번 대회가 24개국이 참가하면서 전체적 수준 저하와 함께 긴장감이 떨어지는 조별 예선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수비 축구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립팬인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는 재미 없는 경기가 되었겠지만, 상대적 약팀들은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수비와 역습’ 축구가 아닌 ‘수비’ 축구가 된 것이 문제다. 그리고 주도권을 쥐는 축구를 하면서도 수비 축구를 펼치는 상대의 골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탓해야 한다.
독일, 스페인 등 강한 공격력을 갖춘 팀들은 상대가 수비에 집중해도 골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탈리아나 크로아티아는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제한적 기회를 골로 연결하는 역습을 선보였다. 수비 축구를 펼치는 ‘언더독’들도 승리를 원한다면 수비에서 이어지는 조직적인 역습을 장착해야 하는데, 그런 날카로움을 가진 팀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좋은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 살아남게 될 것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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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인 헝가리. 축구팬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 UEFA EURO 2016
따라서 이번 경기도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두 번이나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스타 선수가 이끄는 팀이 극적으로 부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헝가리를 상대로 리드를 잡지 못했으며, 3골이나 허용했다. 공격적으로 나섰다고는 해도 헝가리에게 3골이나 내준 포르투갈의 수비가 준수했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굴절이란 행운이 좀 따르긴 했지만, 위협적인 슈팅을 허용한 것도 사실이다. 포르투갈의 경기력은 토너먼트 단계에서 승리를 거두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헝가리,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는 비교적 수월한 조 편성임에도 3무를 거둔 결과 자체도 문제다.
헝가리 자체의 경기력은 인상적이었다. 포르투갈이 개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힘겨운 경기를 펼친 반면, 헝가리의 공을 소유하지 않은 선수들은 미리 공을 받기 좋은 위치로 움직이면서 빠른 템포의 공격을 가능하게 했다. 공격 전개가 매우 아기자기한 모습을 선보였다. 헝가리의 경기력이 괜찮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가 포르투갈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헝가리의 공격력이 과연 전력에서 확실히 앞서는 독일이나 스페인을 상대로도 과연 3골을 터뜨릴 수 있을까. 포르투갈 전처럼 좋은 경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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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 한 방으로 스페인을 침몰시킨 크로아티아의 페리시치 ⓒ UEFA EURO 2016
이번 유로2016의 수준은 토너먼트 단계에 들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비슷한 전력을 가진 팀이 만나면 이번 대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정면 승부를 펼치며 주도권 장악 능력을 선보일 팀이 있다. 때로 전력차가 있어 수비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훨씬 날카로운 역습을 장착한 경기를 보이는 팀들도 있다. 일례로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보여준 전반의 경기 장악 능력, 그리고 크로아티아가 후반전에 선보인 불같은 역습이 그랬다. 단순히 골이 많이 터진다고 해서 최고의 경기가 될 순 없다. 단순히 많은 골을 바란다면 조기 축구가 가장 재미있지 않겠나.
‘유로의 귀환’은 바로 상대를 확실히 이기는 것이 중요한 토너먼트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수비 축구의 한계는 명확하다. 수비 축구로 무승부는 이끌어낼 수 있지만, 승리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공격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비 축구로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로 가겠다는 작전을 세울지도 모르지만, 120분 간 체력과 집중력을 모두 쏟은 후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생각은 지나치다.
수비 축구 속에서 화끈한 공격전을 보인 포르투갈-헝가리의 사이다 경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수비 축구를 어떻게 타개하는지, 그리고 언더독들이 어떻게 수비하고 역습으로 강호의 골문을 열지 지켜보는 것 역시 다른 의미에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승리를 위해 팀의 철학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게 될 토너먼트 단계에서는, 드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유로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유로2004의 그리스는 수비축구로 정상에 올랐지만, 지금의 축구는 수비만으로 정상을 오를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진화해있다.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