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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 14. 오늘의 양식 : 성경에 대하여 ( 3 ) / 고영민 총장 <백석문화대>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350 우리들이 싸울 것은
242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179 주 예수의 강림이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 288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계 11 : 1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7. 설 교 ---------- 성경에 대하여 ( 3 ) / 고영민 총장 <백석문화대>
(13) 한글 성경 출간
예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 백의민족, 배달겨레 등으로 불려왔다. 우리 조상들은 물 맑고 산 좋은 금수강산에 살면서 흰옷을 즐겨 입고 예의범절을 올바르게 지키면서 멋지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러면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누가, 언제 기독교 복음을 전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은 경주 부근에서 출토된 돌 십자가와 마리아상에 근거하여 신라시대에 네스토리안(Nestorian) 계통의 기독교(경교)가 이미 들어 왔었다고 말한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종군신부였던 세스페데스(G Cespedes)나 혹은 표류하다 제주도에서 붙잡혀 14년 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H Hamel) 일행에 의해 소개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반도에 맨 처음 십자가를 세웠던 것은 천주교였다. 그 무렵 중국에는 이미 예수회 소속 마태오 리치(M Ricci) 신부에 의해 들여온 천주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중국을 빈번히 왕래하던 몇몇 조선인들은 자연히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이승훈 김대건이 각기 영세와 신부 서품을 받으면서 마침내 한국 천주교는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885년 4월 5일은 한국 개신교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이 부활절 아침 유난히 파란 눈을 가진 두 젊은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는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한국 선교의 문을 열면서 의료와 구제, 교육 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시켜 나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두 선교사가 심혈을 기울여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은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오직 성경만이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교 초창기에도 한문 성경을 비롯하여 로스역이나 이수정역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중역이거나 의미가 불분명해서 좀 더 원문에 근거한 정확한 번역 성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서둘러 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1887년 2월) 자신이 직접 위원장이 되었고, 번역에 착수한 지 14년 만에 마침내 신구약 성경이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언더우드는 신(神)의 이름을 ‘천주’(天主) ‘상제’(上帝) 등으로 정하자고 했을 때 강력히 ‘하나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아펜젤러도 성경 번역에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신변보호 문제로 잠시 나가사키에 가 있을 때에도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 직접 설교하거나 번역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어학 공부와 성경 번역에 지나치게 체력을 많이 소모함으로써 크게 건강을 해쳐 9개월 동안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는 목포에서 열리는 번역위원회에 참석하러 가다가 파선되어 4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성경 번역은 꾸준히 계속되어 개역성서(1937년), 공동번역(1977년), 새번역(1991년), 표준새번역(1993), 개역개정판(1998) 등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원문의 의미가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겨지지 못하고 여전히 애매하거나 오역된 부분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깝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성경 번역, 그것은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필수 과제다.
(14) 신구약 성경 66권, 어떻게 확정되었는가
흔히 ‘기독교’ 하면 천주교와 개신교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둘 사이에는 구원의 방법이나 예배 형식, 행정 체계들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성경에 대한 관점과 이해에 있다. 개신교는 성경을 ‘신앙의 유일 규범(Sola fidei regula)’으로 보고 절대 권위를 두지만, 천주교는 ‘신앙의 제일 규범(Prima fidei regula)’ 정도로 보고 교부들의 언행이나 고대 신조, 종교회의 결정, 구전 등을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로 인정하고 있다.
성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늘날 66권의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숱한 논쟁과 회의의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어야만 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인간 구원에 대한 진리가 담겨 있어야 하고,
셋째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되거나 인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못 미칠 경우에는 정경에서 제외되거나 외경이나 위경의 수준으로 낮추어졌다.
구약의 정경을 확정시킬 때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에스더서와 아가서, 에스겔서였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아크로스틱(acrostic) 표현법(단어의 처음이나 끝 문자를 맞추면 한 단어가 되는 기법)을 써서 여호와라는 의미를 은밀히 나타내고 있다(1:20; 5:4, 13; 7:5, 7).
아가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없고 지나친 성적 묘사 때문에 논란이 되었지만, 오히려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사랑이 최고의 문학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에스겔서는 난해한 환상과 계시의 내용이 문제시되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정확하게 예언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수없이 거듭되어온 정경 논란은 얌니아회의(주후 90년쯤)가 39권을 구약정경으로 확정함으로써 그 최후의 마침표가 찍혀졌다.
신약시대의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에 불같은 선교 열정을 통해 여러 지역에 많은 교회들을 세웠다. 성도들은 사도들이 써 보낸 서신들을 서로 돌려가며 읽었고, 예배 시에는 그것들을 낭독하였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이 순교 등으로 하나 둘 사망함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해 둘 필요성이 있게 되어 사복음서가 완성되었다.
사복음서와 서신들이 신약성경으로 모아지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초였는데, 3세기에 이르러서는 교회마다 상당수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 무렵 마르키온(Marcion)은 유대교적인 것을 배제시키려고 누가복음과 바울서신만을 권위 있는 것으로 선정하였다. 그 이후 무라토리 단편(Muratori Canon)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삼서를 정경에서 배제시켰다.
오리겐(Origen)은 성경을 ‘인정된 것’과 ‘토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누었고, 유세비우스(Eusebius)는 또다시 후자를 ‘배제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하였다. 오늘날 27권의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확정한 것은 카르타고(Cartago) 회의(397년)였다.
주의 말씀과 교훈은 순금보다 더 귀하고 정금보다 더 사랑스럽다(시 19:10, 119:127). 그러기에 인간적인 불순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불 속에서 검증해야 할 기간이 그렇게 오래 필요했었던 것은 아닐까?
(15) 성경 옮긴 서기관은 누구인가?
성경의 원저자(原著者)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글로 기록한 기자(記者)와 책으로 옮겨 쓴 서기(書記)는 인간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안에서 일점일획도 흠이 없는 가장 완벽한 형태로 인간의 글과 만나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고대에는 문자 모양이 온전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글을 쓰거나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으며, 특히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바벨론의 설형문자 같은 것은 그 문법체계가 매우 난해하였다. 그래서 자연히 그것을 읽고 쓰는 직업적인 전문가인 서기(관) 혹은 서사가 출현하게 되었다. 서기관들은 왕과 국가의 문서를 쓰거나 보관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사관(史官)과 더불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서기관의 전통은 후대에까지 내려왔으며, 한때 공산세계에서 제1인자를 서기장, 총서기로 불렀던 것이나 미국의 국무장관을 국가서기(Secretary of State)라고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에서 서기관이란 명칭은 다윗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서기관은 바사(페르시아) 제국의에스라였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았고, 스룹바벨에 이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암기를 통해 재현시킨 인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이주하여 백성들에게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다(스 7:10).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은 율법사, 율법학자로 불렸으며, 공의회에서는 제사장, 장로들과 더불어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2대 종파 중 사두개파는 주로 제사장 출신으로 이루어진 반면 바리새인은 서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기관들의 주요한 업무는 성경책을 베끼거나 가르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정치적인 이권에 관여하였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행에 동참하였다. 서기관들은 처음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았으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였다. 다른 동료들의 작업을 검토하거나 그가 옮겨 쓴 글들을 일일이 세어 원본과 사본이 다름없는지 확인하였다. 혹 사본들과 돌비에서 틀린 글자가 발견되면 반드시 그것을 수정하여 적어 넣었다.
고대 구약사본 가운데 가장 정확한 사본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 중 이사야서 두루마리이다. 성경학자들이 감탄하며 놀라워한 것은 그 내용이 1000년 후의 레닌그라드 사본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직업 전문가가 아닌 일반 필사자들이 옮겨 쓴 신약 사본들은 구약의 그것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어떤 사본들(보드머 P, 바티칸 M)에는 문구 누락(요 13:32), 이중 반복(요 17:18), 고의적인 삭제(눅 17:30), 내용 변경(요 10:7) 등이 있다.
당시 성경 사본책을 구입하려면 베끼는 품삯과 재료비 등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사야서는 삼일 품삯이 들었는데, 2세기에는 헬라어 1000줄 베끼는 값(2데나리온)에다 파피루스 값(1데나리온)을 합치면 3∼4데나리온(25만∼30만원) 정도 들었다. 지금 여러분의 성경책 값은 얼마인가?
(16) 유물에서 밝혀진 성경
가장 오래된 성경책은 어떤 것이며, 어떤 형태로 기록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곧 성경을 둘러싼 많은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처음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세시대까지 35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 시대의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8년 전 노아 방주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6명의 현지 셀파, 포터와 함께 터키의 아라랏산(5180m)을 올라간 적이 있다. 영하 40∼50도의 매서운 강추위와 엄청난 고산증세와 사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올라간 정상 부근에는 평평한 눈 언덕만이 자리 잡고 있을 뿐 노아 방주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곳에 “방주가 있었다”(창 8:4)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맨 처음 문자로 새겨진 것은 시내산에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십계명을 “돌판에 친히 쓰셔서”(출 31:18) 모세에게 주셨다. 이 돌판(증거판)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와 함께 법궤(언약궤)에 보관하도록 명해졌다. 이 법궤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주전 586년) 전까지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 이후의 종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 일부 정통파 유대교 랍비들은 이 법궤가 옛 성전 어느 곳에 은밀히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랍인들이 목숨 걸고 지키는 회교 사원(알 아크샤)이 되어버린 곳을 직접 파헤쳐 확인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사실상 성경의 주요 무대가 된 애굽이나 중동지방에서 찾아낸 많은 고대 유물에서는 성경과 연관된 구절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소위 고등비평가들은 성경의 기록 연대를 훨씬 후대로 끌어내리려고 하였다. 심지어 다윗이나 벨사살, 빌라도와 같은 인물이 일반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을 강력히 부인하기도 했다. 성경의 기록들이 고대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1)수없이 반복된 국가 재난과 포로생활 (2)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의 삶 (3)서기관과 같이 특정인에게만 허용된 성경 필사 및 교육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성경구절이 새겨진 기록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유대인 고고학자 가브리엘 발케이(Gabriel Barkay)에 의해서였다(1079년). 그는 예루살렘의 어느 무덤에서 민수기의 축복기도문이 새겨진 두 개의 은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 그것들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시작한 주전 600년쯤에 기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도 아비가드(N Avigad)가 수집한 바룩(렘 32:12)의 인장, 바이란(A Biran)과 나베(J Naveh)가 발견한 ‘다윗의 집’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비문,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가이사랴에서 찾아낸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석 등 수없이 많이 있다.
1947년 사해 근처에 있는 동굴들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사본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동판들이 2000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빛을 보았다. 거기에는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성경과 외경, 위경, 주해서, 각종 종파 문서들이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로써 성경의 진정성은 더욱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성지순례 때 쿰란동굴은 필수 코스로 정하자.
(17) 유대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는가?
동서고금을 통해 옛 사람들은 ‘읽고 외우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으로 생각하였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당에서는 천자문과 논어, 맹자 등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덤불이 생긴다”는 뜻의 한시를 남기고 있다.
성경을 읽고 낭독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교육방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적인 예배의식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유대 어린이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가 소리 내어 읽어주는 토라(율법) 소리를 들으면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천재들로 성장하였고, 회당에서는 사회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타나크(구약성경)에 귀를 기울이면서 경건한 믿음을 쌓아나갔다.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이 4000여 년 동안 강대국들에 짓밟히고 세계 각국을 떠돌아다니면서도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성경에 기초한 여호와 신앙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 마카비가 중심이 되어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수리아 안티오쿠스에 맞서 싸울 때(주전 168∼166년) 그들의 한 손에는 언제나 작은 성경 두루마리가 쥐어져 있었으며,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마사다 정상으로 급히 피신했던 960여명의 유대인들이 로마 군단에 포위되어 마지막 저항을 죽음으로 마치기 전까지(주후 70∼73년) 그들의 입에서는 성경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을까?
성경 두루마리는 양팔 길이의 다섯 배(약 7.5m) 정도였고, 왼손으로 풀고 오른손으로 감으면서 읽었다.
원래 회당에서는회당장이 성경을 읽도록 되어 있었으나 때로는 그가 지정한 외부인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관습을 따라 예수님께서도 종종 회당에서 성경 읽으실 기회를 얻으셨던 것 같다(눅 4:16). 초대교회에서는 성경 이외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적은 어록이나 사도들의 서신 등을 읽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살전 5:27).
그런데 한 사람이 오랫동안 성경을 읽다 보면 듣는 성도나 청중들은 자연히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면서 성경 말씀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성경 읽는 것만을 전적으로 담당하는독경사(讀經士·Sutra-Chanter)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50여개의 각종 부호들이 적혀 있는데, 그것들은 성경낭독을 위한 음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헬라어에도 단순하기는 하지만 세 종류의 악센트(에큐트, 써컴플렉스, 그레이브)들이 있으며, 때로는 강하거나 길게 또는 낮고 굵게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히브리어는 시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목소리의 높낮이에 맞추어 노래하듯이 발음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독경사들은 각 지역들(팔레스타인, 예멘, 에티오피아 등)의 정서를 최대한 살려 특유의 목소리로 성경을 읽음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유대인들 중에 멘델스존, 쇼팽, 아이작 스턴, 번스타인, 바렌 보임, 호르비츠 등 세계적 음악가들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유대인들은 마치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고난의 바람과 역경의 파도가 밀어닥칠 때 뒤로 물러서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맞서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그 힘과 용기는 성경을 목숨처럼 부여잡고 읽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시 119:105).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411 아 내 맘속에 -------------------------------------------------
10. 폐 회 ---------- 주기도문 ----------------------------------------------------------

첫댓글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잠 13:9).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일 가득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활기차게 출발하는 즐거운 날 힘찬 하루 보내시어
굿 데이 해피 데이 되시고 매일 매일 외치는 소망도 바라는 데로 원 하는 데로 모두 이루어지는 하루
작은 소망이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최고의 하루 만사형통 하기를 매일 매일 바라는 일이 성취 되는 하루
즐거웁게 맞아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