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견해를 밝혀오신 강정구 교수께서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를 분석한 글을 기고해 주셨다.
강정구 교수는 이 글에서 최근의 남북관계의 급변을 미국의 전쟁책동에 대한 민족주체적 대응으로 평가하고, 민족공조만이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는 전쟁위기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금은 길지만 우리 주변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반 평화적인 사건들을 돌아보고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자주 평화 통일"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였으면 합니다.
조선일보/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친미냉전수구 세력들에 의해 이미 우리의 눈과 귀가 가려진 상황에서 "강 정구" 교수의 글을 우리의 양심과 잠제적인 통일의식을 북돋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듯 하다. 8월 말 2차 서해교전으로 남북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 극단의 상황에서 북한의 8.15민족공동행사 서울 참가, 장관급회담 재개, 부산 아시아올림픽 참가, 통일축구 개최,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화해와 협력의 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동시에 북미관계도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경수로 콘크리트 타설 착공이 이뤄지고 켈리 특사파견이 예정되어 있어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는 듯하다. 이에 ‘악의 축’, 서해교전, 2003년 한반도전쟁위기설 등으로 가슴조리고 있던 우리들 대부분은 그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듯하다.
이러한 흐름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및 한반도전쟁위기와 결부시켜 살펴보고 전망해보도록 하겠다.
2003년이야말로 94년 6월의 전쟁위기 보다 더 심각한 전쟁위기
먼저 전쟁위기부터 보자. 2003년이야말로 94년 6월의 전쟁위기 보다 더 심각한 전쟁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화급한 전쟁위기를 감지한 정부는 부랴부랴 임동원 특사를 파견시켜 미국의 전쟁획책에 대해 남북이 슬기롭게 대처하여 이를 극복하기로 합의하고 6.15선언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귀중한 합의가 최성홍 외교장관의 정신 나간 발언으로 파국을 맞았다. “때로는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 큰 채찍(big stick)이 필요하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이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 원인의 하나다ꡓ라고 말함으로써 막가파식 미국의 대북정책을 전적으로 치하했다.
이에 북한의 조평통은 "이런 자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6.15 북남 공동선언의 이행을 바랄 수 없으며 북남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임동원 특사의 방북으로 남북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민족문제를 외세에 의존함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와 성의 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여기다 북한의 임남댐에 대한 안전성문제가 미국이 흘린 인공위성 사진의 일부를 근거로 갑자기 제기되어 더욱 남북관계의 복원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댐 안정성 문제제기는 아주 신중했어야 하는데도 남쪽의 주류 언론과 정치권은 검증도 없이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더구나 86년에 벌린 전두환의 ‘수공위협’이라는 사기 극을 겪고서도 우리 언론은 이에 대한 추호의 반성도 없이 이 번에도 바로 그 댐에 대해서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낙인을 찍었다. 충분한 검증이라는 절차도 없이 말이다.
실제 임남댐은 높이 121.5m, 밑바닥 너비 700m, 최대 저수량 26억t, 연간 평균 저수량 18억 톤으로 86년 10월 이규효 장관이 발표한 길이 1천100m, 높이 200m, 최대 저수능력 200억t의 초대형 댐과는 천지차이로 판명 났다.
이 점에서는 국내 주류언론과 정치권도 미국의 전쟁광적인 매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이 98년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금창리 핵 위기를 일으켜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을 자행했지만 막상 이 지역을 조사한 결과 사실무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인공위성 사진이야 기상상태 등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나올 수 있는데도 외세가 준 사진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 안전성문제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얼마나 이들이 대미 예속적이고 ‘북한은 으레 그래. 뻔하잖아’라는 냉전낙인론에 빠져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북한에게 임남댐은 인민군의 ‘혁명적 군인정신’에 의해 건설된 자존심과 긍지의 상징이다. 이에 대해 북한에 가장 적대적인 미국이 제공한 사진을 근거로 일체의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음해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짓이다. 평양방송은 "남북관계를 대결에로 돌려세우고 `4.5 공동보도문' 이행을 방해하려는 고의적이며 계획적인 행위"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외교장관의 발언과 더불어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자는 합의를 남측이 위배하고 있고 앞으로도 남측을 믿을 수 있는 상대인지에 대한 북측의 의구심이 한층 높아졌다.
여기에다 6월 29일 연평도에서 일어난 2차서해교전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2함대사령부가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퇴각하는 북한 배에 대해 격파사격을 중단시키지 않았더라면 바로 옆 장산곶 등에 포진된 북한 해안포나 미사일이 발사되어 삽시간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뻔했다.
이를 계기로 군당국은 경고방송을 생략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시위기동을 하되, 퇴각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경고사격에 이어, 격파사격을 실시하는 새로운 교전지침을 마련했다. 방어적 성격으로 전쟁발발과 확전을 억제시켜야 할 교전지침이 오히려 전면전 유발 식으로 바뀌어 더욱 더 전쟁위험은 높아졌다. 오히려 한판 붙자는 식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꼴로서 미국의 2003-4년 한반도전쟁위기 획책설에 마치 낚시 밥을 주는 꼴이 되는 격이다.
전쟁위기에 대한 공유가 ‘해빙’의 원동력
한반도전쟁위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크게 여섯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쟁위기가 초래될 것으로 예견된다. 경수로 지연에 따른 보상 문제, 과거 핵사찰의 조기 집행문제, 미사일개발 유예문제, 전역미사일방어체제의 이지스함 북한해안 배치문제, 남한정권교체문제, 서해교전과 같은 우발적 충돌의 문제 등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두 문제는 우리 내부의 문제이고 남북끼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미국이 북한과 체결한 10.21제네바협정이나 미사일에 대한 클린턴 정권과 묵시적인 합의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모두 북한에 전가시키는 적반하장 짓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부시미국의 막무가내 식 일방주의가 한반도 전쟁위기의 주 요인이고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경색의 주범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전쟁국면으로 접어들어 민족공멸을 가져올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다. 이미 미국의 ‘핵태세 비밀보고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곧 바로 핵전쟁이고, 핵선제공격의 지구촌 0순위가 북한이다. 이는 한반도 전쟁은 곧바로 민족전체의 절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남북은 운명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동장치가 파손된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듯한 한반도 전쟁위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비록 최성홍의 막말, 금강산댐 흠집내기, 서해교전이란 파국을 맞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위기인식이 공유된 결과물이 이 번 남북관계의 ‘해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의 ‘능동적 개혁정책’과 해빙
여기에다 북한이 이제까지 추진해 왔던 개혁과 개방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기 시작해 이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서도 남북관계와 외부와의 관계개선이 요구된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변화는 시민사회나 또는 ‘제2사회’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경제 등 사회변화를 사후 수용 및 승인하는 ‘수동적 적응정책’, 좀 더 능동적으로 이 변화를 뒷받침하고 활성화시키는 ‘능동적 적응정책’, 또 정권차원에서 개혁과 개방에 대한 변화를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준을 능가하여 위로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능동적 개혁정책’가운데 세 번째 단계인 ‘능동적 개혁정책’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능동적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북한의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을 진행시킬 자본이 조달되어야 한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모기장 이론’의 기조 하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시원한 바람은 받아들이지만 모기와 파리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북한으로서는 시원한 바람을 남북관계의 개선에서 남한과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들이고 미국이나 일본이 모기와 파리를 날려보내지 말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을 둘러싼 객관적 조건 역시 현재의 교착국면을 타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위기를 막고 북한경제의 활로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개혁을 진행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걸머진 북한으로서는 힘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비록 남쪽에 친미예속수구냉전세력이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돌파구는 남북관계 개선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 북미관계 개선도 모색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지라도 최소한 파국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계속 일방적인 강경 일변도를 지속시키기에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포석 하에 아세아지역안보포럼에서 백남순 외교부장의 적극적인 외교활동, 서해교전의 유감표명, 북미장성급회담재개, 개혁정책 표명, 남북대화 재개, 일본의 적군파 관련자 귀국, 일본과의 수교협상 재개 등 일련의 사안들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파국으로 가는 것을 예방하는 위기관리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김대중 정권의 임동원 특사파견, 서해교전의 악화예방, 일본과의 협력기조를 통한 미국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 행사 등 측면 지원이 있었다.
억지춘향이 격의 캘리특사에게 기대할 것 없어
부시의 오만과 독선에 찬 막무가내 식 외교정책은 지금 세계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미군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면책특권부여,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ꡒ평화주의자ꡓ라면서 이스라엘의 살육전에 대한 공공연한 부추김, 베네수엘라 쿠데타 개입설, 명분 없는 대 이라크전쟁, 고문방지 국제협약체결 반대 등으로 드러난 유일초강대국 미국의 야만성은 북한의 노력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언제 어디서나 조건 없는 대화ꡓ를 공언하고 있지만 친미예속냉전수구세력인 국내의 주류언론과 정치세력 외에 누구도 이를 제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시점에서 나온 북한의 외교 드라이브는 미국에게 최소한도의 대북 접근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 미국은 떠밀리기 식으로 대화재개의 판으로 나간 셈이다. 이러한 억지 춘향이 격으로 파견되는 켈리특사에게 우리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프리처드 대북담당 대사는 7일 경수로 본체시설 착공식에 참석해 북한에 곧바로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 절차에 들어갈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같은 날 국무부 리커 부대변인도 “프리처드 대사가 언급한 대로 이제는 북한이 핵안전사항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원자력기구와 의미 있는 협력을 시작해야 할 때ꡓ라고 강조했다.
북한 과거 핵 특별사찰은 이제까지 전혀 쟁점꺼리가 아니었다.
응당 경수로 공급 1년 정도 전에만 북한이 받으면 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사안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과거 핵 특별사찰 문제는 9.11테러 이후 비공식적으로 제기되다 더디어 공식화시킨 것이다.
느닷없이 기술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과거 핵 특별사찰의 조기 실행을 쟁점으로 몰고 가는 저의는 허구적인 ‘악의 축’ 전쟁위협이나 ‘불량국가’라는 낙인론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2003-4년 대북한 전쟁불사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 볼 수 있다.
94년 영변 핵위기 때 핵 전담대사였던 갈루치도 이러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부시정부를 비판했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정책기조는 외교적 노력으로 비확산(non-proliferation)을 꾀하지만 이것이 안 될 경우 전쟁을 통해서도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을 관철시키는 전쟁의존정책이다. 여기에 핵사찰의 폭발성이 잠재해 있다.
민족공조만이 궁극적 해결책
아무리 미국이 이와 같은 전쟁불사정책을 통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다하더라도 남과 북이 8월 중순부터 진행시킬 화해협력의 기조를 지속해 남북공조를 실행한다면 섣불리 한반도를 전쟁국면으로 몰고 가기는 힘들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민족공조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란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남북공조가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는 힘들겠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최소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쟁예방적 남북공조가 차기정권에서 지속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에 불어 닥칠 전쟁의 파고를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바로 여기에 차기정권의 성격이 핵심으로 대두된다.
곧, 남북공조를 지속시켜 한반도가 전쟁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예지와 역량을 갖춘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것이다.
아울러 지난 2월 ‘악의 축’ 전쟁위기를 맞아 700여 개의 사회단체들이 전쟁반대운동과 반미운동을 맹렬히 벌려나가 전쟁의 불길을 잡았던 것처럼 남북공조와 평화 지킴이의 몫을 꾸준히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